몇 해 전 어쩔 수 없이 주례를 선 적이 있다. 공중파 메인뉴스 앵커와의 인터뷰가 발단이었다. 그와 저녁 식사 약속을 했는데, 그가 여성분과 함께 나왔다. 같이 일하는 아나운서라고 했다. 나는 세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는데 누군가에 의해 두 사람이 연인 관계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나는 뜻하지 않게 비밀 연애 발설자가 됐다. 얼마 뒤 그 두 사람이 결혼했고, 내가 주례를 맡게 됐다. 기왕에 맡았으니 주례사를 잘하고 싶었다. 적어도 신랑 신부에게는 기억나는 주례사를 하고 싶었다.

기억에 남는 주례사 하는 방법을 찾았다. 신랑과 신부에게 상대에게 바라는 점 세 가지씩 써달라고 했다. 주례사를 통해 상대가 이런 걸 원한다고 하객 앞에서 공표했다. 들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못 하겠다고 할 리 만무하다. 잊을 수도 없다. 여기에 덤으로 주례의 당부 세 가지를 짧게 덧붙였다.
6가지 인사
나이 들수록 주례사 같은 인사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일어난다. 인사는 안부 인사, 축하 인사, 위로 인사, 격려 인사, 당부 인사, 감사 인사 등 크게 6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안부 인사를 자주 해야 한다. 명절이나 선거철에 맞춰 누구에게나 하는 인사는 효과가 없다. 또 누구에게나 하는 인사가 아니라 그 사람에게만 하는 인사여야 한다. 단체 메일이나 메신저를 보내더라도 수신인은 따로 해서 개별적으로 보내야 한다. 내용도 의례적이기보다는 각별해야 한다. 상대의 안부를 묻는 인사는 각별하기 어렵다. ‘잘 계시지요?’, ‘행복하세요’, ‘건강을 기원합니다’가 고작이다. 상대의 안부를 챙기되 자신의 상태나 상황도 알려주는 안부 인사여야 한다. 나이 예순을 넘어서부터는 뜬금없이 안부를 묻는 친구의 연락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둘째, 축하 인사를 해야 할 일이 많다. 축하 인사는 두 가지를 염두에 두면 잘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축하해야 할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기대를 표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른 생일을 맞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단지 생일을 축하하기만 하면 할 말이 별로 없다. 나이 서른이 갖는 의미를 말해주고, 앞으로 있을 그의 미래에 관해 기대를 표명하는 것이다.
축하 인사에서 신경 써야 할 또 하나는 대상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졸업식에서 축하 인사를 한다고 할 때, 먼저 졸업생과 학부모께 축하 인사를 해야 한다. 선생님과 축하하러 온 재학생, 내빈에게도 감사 인사를 해야 한다. 졸업생을 배출한 학교에 관한 칭찬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두루두루 빠진 사람 없이 언급해줘야 한다. 생일 축하를 할 때도 생일을 맞은 당사자에게 축하하는 것은 기본이고 낳아준 부모님께 감사하고, 그가 낳은 자식이 있다면 그에게도 축복의 인사를 한다. 그래야 할 말이 풍성해지고 내용도 충실해진다.
셋째, 위로 인사도 필요하다. 요즘 위기의 시대지만 진심 어린 위로를 받은 사람은 좌절하지 않는다. 위로가 넘어진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위로의 말을 할 때는 위로를 가장한 충고를 가장 조심해야 한다. 병에 걸린 사람에게 술을 많이 마셔서 그렇다, 시험에 떨어진 사람에게 공부를 몇 시간 했냐는 등 추궁에 가까운 위로는 오히려 마음의 상처가 된다. 동정에서 비롯된 위로도 좋지 않다. 남의 처지를 딱하게 여기는 것은 좋은데, 그것이 동정으로 비치면 위로받는 사람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다. 누군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의외로 복잡하다. 착한 마음 못지않게 내가 그보다 낫다는 우월의식과 나는 저런 처지에 있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묻어 있다. 위로한답시고 당사자의 고통을 과소평가하는 말도 삼가야 한다. 상가에 가서 ‘호상’이라고 하거나, ‘나는 너보다 더한 일도 겪었다’고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넷째, 격려의 인사야말로 어른이 해야 할 일이다.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하는 격려, 믿어주고 한편이 되어주는 격려, 자신감을 키워주고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게 하는 격려, 주위를 살펴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향한 격려…. 어른은 이런 격려에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격려를 잘하는 사람이 진정한 어른이다.
다섯째, 당부 인사도 빼놓을 수 없다. 당부는 부탁과 다르다. 당부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부탁할 때 쓰인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당부한다고 하진 않는다. 당부라는 말에는 권위적 속성이 배어 있기 때문에, 이에 성공하려면 수평적 관계를 강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시나 명령이 된다.
당부를 잘하려면 먼저 칭찬해야 한다. 그동안의 노고를 아낌없이 치하하고 감사를 표한 다음, 아직 부족한 점을 얘기한다. 이런 미진한 점과 함께 향후 목표도 제시한다. “지금까지 잘 해왔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어디이며, 그 길을 가야 하는 이유와 잘 가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라고 말해준다.
당부한 후에는 보상책이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당부받는 사람은 소극적이고 방어적이다. 희생만 강요해서는 당부대로 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당부대로 했을 때 뭔가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 그 길을 온전히 갔을 때 누리게 될 청사진을 보여줘야 한다.
여섯째, 감사 인사를 잘해야 한다. 축사를 하든 격려사를 하든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감사 인사다. 인사치레의 감사가 아니라 진심으로 감사해야 한다. 감사 인사는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다. 고맙다는 말을 듣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고, 그렇게 말하는 자신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며, 감사의 말을 주고받는 사람 사이의 관계도 좋게 한다. 마땅히 할 말이 없을 때 무조건 감사해보라. 불러주셔서 감사, 와주셔서 감사, 기다려주셔서 감사, 함께 밥 먹을 수 있어서 감사 등.

버려야 할 마음 3가지
인사말을 잘하려면 3가지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첫째, 완벽하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왜 사람들이 똑똑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왜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서 나오려고 허우적거리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사람은 완벽해 보이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완벽은 시샘의 대상이다. 질투만 불러올 뿐이다. 백해무익이다.
나의 매력은 허점이 많다는 것이다.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내게서 ‘똑소리’ 나는 말을 기대하지 않는다. 나를 떠올리면 빙긋이 웃는다. 만만하게 여긴다. 그래서 편하게 말할 수 있다. 아니 편한 정도가 아니라 말을 즐길 수 있다.
다음으로 이기고 싶은 마음이다. 말은 상대가 있다. 남을 이기고 싶은 마음이 소통의 걸림돌이다. 남보다 말을 잘해야지, 남에게 지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이 문제다. 사람에게는 약자를 도우려는 마음, 측은지심이 있다. 잘난 사람, 이기는 사람보다는 못난 사람, 지는 사람 편에 서고 싶다. 거만해 보이기보다는 안쓰러워 보이는 게 유리하다.
그렇다고 무조건 져주는 게 능사는 아니다. 이길 수 있으면 이겨야 한다. 그러나 이기려는 욕심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 적어도 관계라는 측면에서는 그렇다. 누구나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 내가 이기면 누군가는 지게 되고, 진 사람과의 관계가 좋을 리 없다. 어쩌면 말로 지는 게 관계에서 이기는 길 아닐까 싶다.
끝으로, 주인공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누구나 인생의 무대에서 주역을 꿈꾼다. 그러나 살다 보면 알게 된다.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사실, 그저 주인공의 등장에 환호하고 박수 보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도 처음부터 조연이나 단역이 목표는 아니었다. 그런데 방송에 나가 말해보니 주인공보다는 조연이나 감초 역할이 제격이다. 2인자나 넘버 3로서 한마디씩 거드는 역할을 잘한다. 방송이나 토론을 진행하는 역할은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거북하다. 어쩌다 진행을 하더라도 그 자리의 주인공을 빛내주는 역할이 내게 맞다.
주인공이 되는 걸 포기하거나 양보하면 그때부터 소통이 수월해진다. 대화 자리나 회의, 토론하는 시간에 스스로 조연 역할을 자임해보라. 학교 다닐 적 부회장이나 부반장이 느끼는 편안함을 누릴 수 있다. 말은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때 더 잘 된다. 운이 좋으면 주연보다 더 빛날 수도 있다.
지켜야 할 마음 4가지
3가지 마음을 내려놓은 대신, 4가지 마음은 곧추세워야 한다. 첫 번째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자기 연민이 필요하다. 말을 잘하려면 스스로를 존중해야 하고, 자존감이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성취하고 싶은 마음이다. 모든 말에는 목적이 있는데, 그 목적에 충실한 말이 좋은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하기 전에 먼저 ‘나는 무엇을 얻기 위해 말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말할 때는 ‘내가 목적에 부합하게 말하고 있는지’ 상기해야 한다. 또한 말한 다음에는 ‘내가 말한 목적을 달성했는지’ 복기해야 한다. 말하는 목적을 이루지 못했으면 반성하고 원인을 찾아야 한다.
세 번째는 배려하는 마음이다. 말은 상대가 있다. 내 말을 듣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말의 성패를 가늠한다. 남을 배려하기 위해서는 나를 내려놓고, 그 자리에 상대를 올려야 한다. 자신에 대한 절제와 상대를 향한 존중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겸손해야 한다. 말에서 겸손하려면 내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남의 말을 듣고 그의 마음과 사정을 읽는 데 주력해야 한다.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으면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리가 없으면 빈 공간 없는 주차장처럼 답답하다. 결국 소통이 안 된다. 내 안에 빈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끝으로 진실한 마음이다. 말에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솔직함과 함께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말만 번지르르한 것이 아니라 말이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고, 말한 대로 실천하면 사람들이 믿고 따를 수밖에 없다. 또한 남이 내게 해주길 바라는 것과 내가 남에게 하는 게 같아야 한다. 이 사이의 불균형이 그 사람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반발과 반항심만 불러일으킨다.
인사(人事)는 사람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다. 잘된 일에 축하를 보내고, 도와준 데 감사하고, 힘든 사람을 보면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인사말은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는 말이다. 또한 들인 수고에 비해 효과가 가장 큰 말이다.
‘안녕하세요’란 말을 먼저 건네면 된다. 축하 인사나 감사 인사도 마찬가지다.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이 한마디면 된다. 그에 반해 얻는 것은 참으로 많다. 그러니 인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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