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끝에서 시작을 보다

입력 2025-12-01 06:00

[권두언]

(조성권 미래설계연구원 원장)
(조성권 미래설계연구원 원장)


달력의 마지막 장이 바람에 흩날리듯 넘겨지는 순간, 우리는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멈춰 선다. 한 해를 어떻게 살아왔는가, 다가올 날을 어떻게 맞아야 하는가. 12월은 우리에게 묻고, 우리는 누구나 그 물음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동서고금의 시와 격언은 이 특별한 달을 오래도록 노래해왔다.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는 ‘소지(小至)’에서 “동지가 지나면 양기가 다시 살아나 봄은 다시 온다”고 읊었다. 겨울의 깊은 어둠 속에서도 봄의 기운이 움트고 있다는 깨달음이다. 같은 당나라의 백거이(白居易)는 “저녁이 되어 눈이 내리려 하니 한잔 술을 함께하지 않겠는가”라며 추위 속에서 나누는 따스한 정겨움을 노래했다. 12월은 차갑지만, 그 차가움 속에서 비로소 인간적 온기가 더욱 빛난다는 것을 일깨웠다.

서양의 목소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국 속담은 “12월이 곧 한 해를 말해준다”고 정의했다. 마지막 달은 단순한 끝이 아니라 지나온 모든 계절을 비추는 거울이다. 또 다른 격언은 “12월은 완성의 달이자, 동시에 희망의 달”이라 일러준다. 알베르 카뮈는 “겨울의 한가운데서 나는 내 안에 꺼지지 않는 여름이 있음을 알았다”고 썼다. 혹독한 계절을 지나며 인간은 내면의 강인한 불꽃을 확인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동양과 서양의 선현들은 모두 12월을 단순히 얼어붙은 계절로만 보지 않았다. 추위와 고독 속에서도 새로운 시작과 따뜻한 온정을 발견하는 달로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오늘의 나이 든 세대에게 더욱 깊은 울림을 던진다. 시니어의 삶 또한 12월과 퍽 닮았다. 인생의 긴 사계를 지나 마침내 겨울 언저리에 서 있지만, 이는 쇠락의 시간이 아니라 결산과 성찰, 그리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고요한 순간이다.

“12월의 눈이 이듬해 농사를 지킨다”는 것은 농가에서 흔히 하는 말이다. 인생의 12월에 내리는 눈 또한 다음 세대를 위한 거름이 된다. 손주에게 남기는 한마디, 사회에 건네는 조용한 기여,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사색의 시간 모두가 다가올 다른 봄을 향한 씨앗이다. 바로 그게 ‘나이 든 이의 지혜’다. 한 해를 매듭짓되 서두르지 않고,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으며 나누는 기쁨이야말로 삶의 완성을 이룬다는 깨달음이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더 깊이 타오르는 불빛처럼, 시니어의 지혜는 세대를 이어 밝히는 등불이 된다. 그리고 그 등불은 12월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값진 선물이 된다.

그래서 이달에는 묵혀두고 미뤘던 만남을 가지자. 밥 한 끼 나누는 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다. 서로의 관계를 강화하고, 문화적 전통을 이어가며, 감사의 마음을 나누는 의미 있는 행위다. 끝에서 시작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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