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바심 나는 유월에

기사입력 2025-06-02 09:33 기사수정 2025-06-02 09:33

권두언 - 조성권 미래설계연구원 원장

6월이다. 문득 ‘바시다’라는 우리말이 떠오른다. ‘탈곡(脫穀)하다’의 옛말이고, 표준어는 ‘부시다’다. ‘그릇 따위를 씻어 깨끗하게 한다’라는 뜻이다. 곡식의 이삭을 비비거나 훑어서 낟알을 털어내는 일을 뜻하기도 한다. 명사형이 ‘바심’이다. “김 첨지 댁 바심이 갔다 온다”처럼 소설에도 나온다. 곡식 중에 가장 잘 털리는 건 콩이다. 바싹 말리면 두드리기만 해도 털린다. 깨도 마찬가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알이 우수수 잘 쏟아져 탈곡이 재미있다. 이제 막 결혼해서 재미나게 사는 신혼부부를 보고 ‘깨가 쏟아진다’고 하는 말은 그렇게 생겨났다.

잘 안 털리는 오곡(五穀) 중 하나가 조(粟)다. ‘덮을 아(襾)’ 아래에 ‘쌀 미(米)’를 붙여 만든 글자다. 이삭이 질겨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비비고 문지르면서 바심해야 간신히 좁쌀을 얻을 수 있다. 조바심할 때는 힘만 들고 마음대로 되지 않아 초조하고 조급해진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까 봐 마음을 졸인다는 뜻의 ‘조바심’은 거기서 나왔다. 그래서 조바심의 ‘심’은 ‘마음 심(心)’이 아니다. 조 수확은 손이 많이 간다. 거둬들인 후 눌(가리)을 만들어 저장한다. 틈이 날 때마다 낫으로 이삭을 따서 모아두었다가 도리깨로 타작(打作)한다. 도리깨질에서 발전한 게 연자매다. 맷돌에 조 이삭을 놓고 돌려 비로소 좁쌀을 얻는다.

‘조바심 나는 6월’이란 말은 서울 강동구에서 50년 가까이 내과의원을 하는 의사가 한 말이다. “작은 병원의 임상만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6월이면 노인 내원 환자가 여느 달에 비해 는다. 옆집 정형외과에도 눈에 띄게 많이 온다”라고 알려줬다고 한다. 나이 든 내과 의사는 “외부 활동이 느는 계절이라 노인들은 평소 보이지 않던 여러 질환을 겪는다. 3, 4, 5월을 보낸 고령자들은 이제 뭔가 해봐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활동력을 높이지만, 준비 없이 밖으로 돌다 보니 힘에 부쳐 여러 질환을 겪게 되는 것 같다”라는 분석을 내놨다.

양력 6월과 음력 6월의 차이는 매년 일정하지 않다. 양력 6월은 고정되어 있지만, 음력 6월은 양력에서 한 달 정도 차이가 나며 대체로 양력 7월과 8월 사이에 걸친다. 병원에서는 음력이든 양력이든 노인 질환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선인들은 “노인들이 무리해 6월에 병을 얻는다. 6월을 잘 보내면 그해 넘기고, 득병하면 해를 넘기지 못한다”고 해 6월을 중시했다. 지금도 쓰이는 표현이다. 실제로 매달 2만 5000여 명, 한 해 35만 명 넘게 생을 마감하지만, 12월과 1월 두 달에는 3만 명 넘는 이들이 숨을 거둔다. 원인(遠因)을 따져보면 여름이 시작되는 6월에 무리한 활동이나 관리 부족으로 병을 얻어서라고 한다.

6월은 여름이 본격화되기 전에 서두르는 건강 점검 시기다. 예약이 이 시기에 몰린다. 고혈압·당뇨·심혈관 질환이 있는 시니어들이 병원을 찾는 비율이 높다. 내과 의사는 노인들이 6월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조바심 내는 이유는 여러 가지라고 했다. 첫 번째가 피로다. 기온이 급격히 상승하는 시기이므로, 체온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고령자는 체내 수분 균형이 깨져 쉽게 피로해진다. 꽃가루 알레르기가 심해 호흡기 질환, 천식이나 알레르기 비염이 있는 노인들이 가장 힘겨워한다. 또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가족들이 여행이나 외출을 많이 하는 시기여서 노인들이 사회적 고립감을 많이 느낀다. 가파르게 변하는 기온뿐 아니라 기압도 변화가 커 관절염이나 두통 등의 증상이 심해진다. 긴 일조시간 때문에 생활 패턴이 영향을 받아 수면 부족이나 불면증이 생기고, 식욕 부진으로 이어져 노인들의 영양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유독 노인 환자가 많다는 내과 의사는 “내 몸이 편치 않으니 조바심 나는 나이 든 이들에게 6월은 견디기 힘들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6월 장마에 돌도 큰다’라는 속담은 돌이 크게 보일 정도로 물이 불어나는 상황을 비유한다. 인간의 감정적·심리적 반응을 경계하는 말로도 해석한다. 작은 문제나 불만도 과도하게 확대 해석하거나 부풀려서 감정적으로 큰 반응을 보인다. 사람은 종종 불확실한 상황이나 변화에 불안감을 느끼고, 그 불안이 과장되어 문제가 커진다고 지나치게 염려한다. 나이 든 이들이 종종 자신의 감정에 휘둘려 상황을 불필요하게 과장할 때가 많은 이유다. 조바심만 커진다.

선인들은 그래서 6월을 귀중하게 여겼다. 6월은 여름이 무르익고, 곡식들이 본격적으로 자라는 시기다. 자연이 생명력을 절정으로 뿜어내는 성장의 달이다. 계절의 전환점인 하지(夏至)는 해가 가장 긴 날로, 양기가 극대화되는 시기다. 선조들은 이 시기를 음양의 균형이 전환되는 시점으로 여기며, 기운을 다스리고 조화를 추구했다. 즉 6월은 단순한 여름 한 달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삶의 중심 시기로 여겼다.

여름이 시작되면서 6월을 수십 번 보낸 이들은 ‘절반’이라는 말을 단순한 수량을 넘어 철학적이고 감정적인 의미를 지닌 상징어로 본다. 절반을 맞이하거나 보내는 일은 무언가를 완전히 소유하지도, 완전히 놓지도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 안에는 불완전함, 기다림, 수용, 가능성 등 다양한 감정과 자세가 담겨 있다. 특히 절반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그 자체로는 어딘가 부족하고 어색하지만, 그 안에 성장 가능성과 여백이 있다는 데 퍼뜩 정신이 쏠려 고령자들은 무리하게 된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6월호에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위로하고, 되돌아보게 만드는 시의 힘을 빌리려 한다. 시는 언어의 압축과 울림을 통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시는 개인적인 감정에서 출발하지만, 누구나 비슷하게 느껴본 감정을 건드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선사하고 깊은 위안을 준다. 리듬과 운율, 줄 바꿈은 독자가 자연스럽게 천천히 읽고 생각하게 만드는 명상을 줄뿐더러 시는 고운 언어, 기발한 비유, 아름다운 이미지로 감정의 정화(카타르시스)를 일으켜 불안을 줄이고 마음을 정돈해준다.

▲조성권 미래설계연구원 원장.
▲조성권 미래설계연구원 원장.
시니어들이 시에 끌리는 이유는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기와 맞닿아 있다. 노년기는 삶의 길고 복잡한 여정을 되돌아보는 시기다. 시는 그 여정을 짧지만 진하게 응축해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다. 긴 인생을 살아오며 느꼈던 사랑, 상실, 후회, 감사를 언어로 정리하고 싶어진다. 말할 상대는 줄어들고, 내면의 목소리는 커진다. 자녀의 독립, 배우자와의 이별, 사회적 역할 축소 등으로 인해 심리적 고립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시는 그런 침묵 속의 대화, 자기 자신과의 조용한 대면이 된다. 조바심 나는 6월은 절제된 시어(詩語)로 삶에 정서적 집중력을 높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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