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은 일 년의 중심에 우뚝 선 달이다. 상반기의 끝과 하반기의 시작이 교차하는 시점이다. 선조들은 이 시기를 ‘어정칠월’이라 불렀다. ‘일에 정성을 들이지 않고 대강 하여 어울리지 않는다’는 ‘어정’은 ‘어정거리다’에서 왔다. ‘어정거리다’를 사전은 ‘키가 큰 사람이나 짐승이 이리저리 천천히 걷다’라고 풀이한다. 모내기를 마치고 추수철이 오기 전, 농사일도 어정쩡하고 사람도 어정쩡해지는 시기를 그렇게 표현했다. ‘어정쩡’은 의태어 ‘어정’에 ‘쩡’을 붙여 자세, 태도, 위치 등이 불확실하거나 어중간한 상태를 이른다. 선조들은 7월을 어정칠월이라 부르며 어정쩡한 태도에 자경(自警)의 뜻을 새겼다.
뜨거운 햇살과 더위 속에서 몸도 마음도 느슨해지는 7월을 우리 신중년·꽃중년들은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쉼조차 바쁘게 쫓겨 다니는 이 시대에, 7월은 오히려 잠시 멈춤의 지혜를 되찾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이다. 땀과 열기, 뜨거운 햇살 속에서 우리는 다시 삶의 방향을 돌아볼 수 있다. 7월이 단순한 시간의 경계가 아닌, 삶의 중심축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우리 선조들처럼 삶의 중심축으로 여기려면 이달엔 적어도 두 가지 사건에 관심을 둬야 한다. 17일은 제헌절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기틀을 마련한 날이다. 7월 17일(음력)은 1392년에 조선 왕조가 건국한 날이다. 헌법 제정자들은 이날을 택해 대한민국이 조선의 역사적 유산을 계승하며,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는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념하며 대한민국의 법적·정치적 체계가 시작된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27일은 6·25전쟁의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이다. 유엔군 참전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국가 존망의 기로에 처한 대한민국을 수호한 90만 국군과 21개 참전국 195만 유엔군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에 감사해야 하는 날이다. 2013년 정부가 지정한 기념일이다. 이날을 기점으로 3년 1개월간의 참혹한 전쟁이 마무리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었다. 또한 굳건한 한미 군사동맹을 바탕으로 국가 안보를 확립하고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서양도 그렇다. 로마 시대에 7월은 본래 다섯 번째 달 ‘퀸틸리스(Quintilis)’였다. 그러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개력(改曆)으로 달력의 구조가 바뀌었고, 원로원이 그 공로를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 ‘율리우스(Julius)’, 즉 지금의 7월이 되었다. 7월은 권력자의 이름이 새겨진 달이자, 제국의 절정이 담긴 시기였다. 이달은 단순한 여름이 아닌, 어떤 상징과 메시지를 내포한다. 절정, 중심, 그리고 전환. 인생 후반기를 살아가는 신중년에게도 가장 적합한 상징으로 다가오는 달인 7월의 의미를 짚어보자.
젊을 때는 달리는 삶이었다면, 나이 든 이들은 보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 경쟁에서 한 걸음 물러나 관찰하고, 사색하고, 성찰하는 삶이 그것이다. 속도를 줄여야 비로소 보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취의 크기가 아니라 삶의 깊이다. 7월은 그 속도를 늦추며 삶의 중심으로 다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다. 이런 ‘어정거림’은 결코 나태함이 아니다.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방향을 다시 점검하는 똑똑한 쉼이다. 이 더위는 몸과 마음을 쉬게 하라는 자연의 신호다. 바로 칠월은 삶의 속도를 줄이라는 지혜를 주는 달이다.
땀 흘리는 7월은 덥다. 그 땀 속엔 삶의 진짜 활력이 숨어 있다. 걷고 뛰고 움직이며 우리는 몸의 활력을 되찾고, 동시에 마음도 깨어난다. 몸이 살아야 마음도 산다. 건강한 땀방울은 꽃중년의 삶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그리고 또 하나, 배움이다. 세상이 빠르게 바뀌는 만큼 배우려는 마음은 우리를 언제나 젊게 만든다. 디지털 기술, 미술, 음악, 운동, 지역사회 활동 등 우리를 성장시키는 길은 무한하다. 시니어만이 가진 경험과 지혜는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귀중한 자산이며, 나눔은 곧 삶의 보람이 된다. 배운 것은 나누어야 진짜 내 것이 된다. 그래서 칠월은 땀과 배움, 그리고 나눔의 계절이다.
이제는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는 삶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할 때다. 몰입하고 즐길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의미 없이 사는 삶은 단지 시간만 흐르게 한다. 반대로 나를 위한 작은 몰입은 하루를, 한 달을, 나아가 인생 전체를 새롭게 바꾼다. 그렇게 칠월은 다시 나를 위한 인생 2막, 인생의 방향을 다잡는 시간이다. 상반기의 다사다난함과 아쉬움을 뒤로하고, 하반기를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재정비 기회다. 건강, 가족관계, 사회참여, 마음가짐까지 모든 것을 다시 정돈해보자.
해바라기는 언제나 태양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흐린 날에도, 비가 와도, 해가 뜨는 방향을 기억한다. 그렇게 매일매일 태양을 바라보며 노란 얼굴을 활짝 피운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태양 쪽으로 돌리는 순간, 열정은 다시 살아난다. 나이는 숫자일 뿐, 삶을 어떻게 마주하느냐가 진짜 삶의 에너지다.
과학자들은 현대인이 대부분의 시간을 실내에서 보내기 때문에 ‘햇빛결핍’에서 오는 질병을 앓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정기적으로 일광욕하는 여성은 실내에 머무는 여성에 비해 20년동안 사망 위험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조사도 보고되고 있다. 움츠리지 말자. 한낮의 더위에 지쳐 고개를 숙일 수는 있지만, 그 땀방울 속에 인생의 활력이 숨어 있다. 지금의 작은 움직임, 작은 결심 하나가 앞으로의 삶을 바꾸는 전환점이 된다. 땀은 삶의 증거이며, 오늘 하루 동안 최선을 다해 살아냈다는 흔적이다. 칠월에는 해바라기처럼 태양을 바라보고 서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