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명절은 ‘온 가족이 모이는 날’로 기억됐다. 몸은 고됐지만, 그래도 가족이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의미를 찾던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명절은 조금 다르다. 많은 이에게 명절은 이동과 준비로 지치는 날이 아니라, 잠시 쉬고 기운을 회복하는 ‘연휴’로 인식된다. 실제로 예전만큼 고속도로는 붐비지 않고 상차림은 간소해졌다.
‘가벼워진 명절’이 모두에게 같은 의미로 다가오진 않는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자녀 세대에게는 자연스러운 변화일 수 있지만, 여전히 명절을 가족의 시간으로 여기는 중장년·노년 세대에게는 허전함과 아쉬움이 남는다. 전통과 관습의 문제라기보다, 명절을 바라보는 기대와 마음의 온도가 서로 달라진 결과다. 몸이 예전보다 한결 편해진 대신, 관계의 무게를 혼자 감당해야 하는 순간이 늘고 있다.
‘의무’에서 ‘선택’으로

명절 문화의 변화는 통계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하 KREI) ‘농정포커스’가 2025년 추석을 앞두고 실시한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상을 준비하겠다는 가구는 40.4%에 불과했다. 이는 2016년 조사 당시의 74.4%와 비교하면 무려 34.0%p 급감한 수치다.
농촌진흥청에서 조사한 ‘2025년 설 명절 농식품 소비 행태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설 명절에 차례를 지내겠다는 가구는 48.5%로, 2014년 71.0% 대비 22.5%p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명절이 이제 ‘당연한 의무’가 아니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복합적인 사회 변화의 결과로 해석된다. KREI 조사에서 차례를 지내는 가구 중에서도 준비 방식은 전통 예법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간소화하겠다’는 응답이 58.4%로 가장 높았으며,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준비’하겠다는 응답도 14.9%로 2016년 대비 증가했다. 이는 전통 의례가 가족 상황과 현대적 가치관에 맞게 재해석되는 경향을 보여준다. 또한 농촌진흥청 조사 역시 차례 음식을 직접 준비하기보다 ‘일부 또는 전부 구매한다’는 응답이 57.7%로 전통 의례가 가족 상황과 현대적 가치관, 편리성에 맞게 재해석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는 차례 음식을 9가지 품목 내외로 간소화하고, 진설 방식에 얽매이지 않으며, 조상이나 가족이 선호하는 음식을 올리도록 권고하는 지침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전통을 지키되 부담을 줄여, 모두가 명절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사회적 기준 자체가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 명절 연휴 계획에서도 KREI 조사에서는 ‘집에서 휴식 및 여가 생활을 하겠다’는 응답 비중이 34.9%로, 54.2%를 차지한 ‘본가·친인척 집 방문’ 다음으로 높게 나타났다. 특히 1인 가구는 ‘집에서 휴식 및 여가 생활’을 선택한 비중이 52.8%로 과반을 넘기며, 명절을 ‘이동의 시간’이 아닌 ‘머무는 시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연령별 차이도 분명하다. 30대 이하에서는 해외여행(3.7%) 비중이 국내여행(4.1%)에 근접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명절 여행’에 대한 인식 변화가 빠르게 나타났다. 반면 60대 이상은 본가 방문(35.1%)보다 집에서 휴식 및 여가 생활(52.0%)을 선택한 비중이 훨씬 높아, 고령층 역시 명절을 반드시 이동해야 하는 의례적 시간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명절 인식의 차이는 더 이상 세대 간 단순 대비가 아니라, 가구 형태와 생애주기에 따라 재편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명절 경제’의 변화

명절 의례는 간소화됐지만, 명절 상차림과 선물에 대한 지출은 여전히 물가상승의 압력을 받고 있다. 명절 지출 비용이 전년보다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 이들은 그 이유로 ‘물가상승으로 인한 비용 증가’를 1순위로 꼽았다.
흥미로운 점은 차례상 품목의 변화다. KREI 동 조사에서 전통적인 국산 과일(배 28.9%, 사과 28.6% 선호) 외에 추석 차례상에 수입 과일을 올린다는 응답 비중이 34.9%로 2016년(23.8%) 대비 증가했다. 바나나(49.5%), 오렌지(22.0%)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하며, 가격 부담을 줄이고 선택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명절 의례까지 확장된 결과다.

‘명절 블루스’와 ‘고립감’
명절의 ‘가벼움’은 모두에게 ‘자유’로 다가오지 않는다. 명절 노동에서 해방된 자녀 세대에게 명절이 재충전의 시간이 되는 반면, 고령 부모 세대에게는 관계의 공백과 정서적 고립감을 체감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명절에 전화 한 통, 방문 한 번이 줄어들면서 “아무 일 없는 날보다 명절이 더 허전하다”는 목소리는 이제 낯설지 않다. 평소에는 견딜 만했던 고독이 명절의 사회적 기대와 맞물려 ‘명절 블루스’를 가중시키는 것이다.
이는 명절을 둘러싼 세대 간의 근본적인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다. 자녀 세대는 명절을 휴식과 개인의 자율이 우선되는 시간으로 인식하는 반면, 부모 세대는 여전히 ‘온 가족 총출동’이라는 전통적·정서적 기대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한국행정연구원과 통계청 사회조사에서도 연령과 소통 방식의 차이가 세대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반복적으로 지목되듯이, 명절은 세대 간의 기대치가 충돌하는 현장이 되고 있다.
또한 명절 노동의 ‘외주화’나 간소화가 몸은 편하게 만들었을지 몰라도, 명절 음식을 함께 준비하고 나누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했던 ‘관계의 시간’마저 함께 사라졌다는 점을 간과하기 어렵다. 명절 노동은 힘든 의무였지만, 동시에 가족 구성원 간의 유대감을 확인하고 세대 간 소통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도 했기 때문이다. 육체적 노동은 줄었으나 정서적 노동의 무게는 오히려 증가한 명절의 역설적인 단면인 셈이다.
특히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격히 확산된 비대면 명절 문화는 이제 보편적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고향을 직접 찾는 대신 영상통화로 안부를 전하고, 정성껏 고른 선물 세트를 택배로 발송하는 방식이 일상화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효(孝)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동반한다. “직접 찾아가야 효도”라는 대면 중심의 사고에서 “서로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진심을 전하는 방법”으로 전환된 것이다.
새로운 명절의 재구성, 의례를 넘어 연결로
달라진 명절 풍경은 전통을 지키는 것과 개인의 행복 추구 사이에서 지속 가능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사회적 과제를 던진다. 명절이 ‘의무’에서 ‘선택’으로 전환된 이상, 앞으로의 명절은 ‘지켜야 할 의례’가 아닌 ‘함께 즐기는 공동체의 시간’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미 명절을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준비’하거나, 종교시설이나 여행지 등에서 차례를 지내는 소수의 움직임은 명절의 형식보다 가족 간의 관계와 의미를 중시하는 새로운 시도의 반영이다. 배달 음식·밀키트·외식이 명절 상차림을 대체하고 온라인 차례나 영상통화 인사가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된 것처럼, 기술과 현대적 라이프스타일은 명절을 유지하는 새로운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새로운 명절 모델은 세대 간 ‘기대 격차’를 줄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노동의 분담을 넘어, 명절 연휴를 어떤 방식으로 ‘함께’ 보낼지에 대한 가족 구성원 전체의 합의와 새로운 문화적 약속이 필요하다. 간소화된 의례 속에서도 정서적 유대감을 강화할 수 있는 대체활동, 예를 들어 함께 떠나는 가족여행이나 평소보다 긴 시간의 진솔한 대화 등을 통해 명절의 본질적 가치인 ‘연결’과 ‘사랑’을 재확인하는 방식으로 명절은 계속 진화할 것이다. 명절을 둘러싼 사회의 명암(明暗)을 직시하고 정서적 공백을 메우는 노력이 병행될 때, 비로소 명절은 모두에게 ‘더 가볍고 따뜻한 시간’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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