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오십, ‘쓸모’를 찾아서

입력 2026-02-25 07:00

[북인북] ‘나이 오십에 청소노동자’ 송은주 작가

북인북은 브라보 독자들께 영감이 될 만한 도서를 매달 한 권씩 선별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해당 작가가 추천하는 콘텐츠도 함께 즐겨보세요.

가족들 밥을 챙겨주고 나면 무기력하게 늘어지던 아침에 탄력이 생겼다. 어딘가 갈 곳이 생겼다는 것. 할 일이 생겼다는 것.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 내가 이 사회에 쓰임이 있고 누군가와 함께 발맞추고 있다는, 오래전 잊었던 어떤 유용함에 대한 감각이었다.

- ‘나이 오십에 청소노동자’, 20p

워킹맘에서 전업주부로 살아온 10년. 두 아들을 키우며 아등바등 살다 보니 어느덧 중년이 되었고, 삶에는 ‘나’가 보이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다고 느끼던 시기에 우연히 시작한 ‘청소노동자’ 아르바이트. 그는 다시 사회 속에서 ‘송은주’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송은주 작가(주민욱 프리랜서)
▲송은주 작가(주민욱 프리랜서)

일주일에 네 번,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하루 세 시간은 송은주 작가가 한 병원의 ‘청소노동자’가 되는 시간이다. 2024년 12월 시작, 어느덧 1년이 넘었다. 그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이 일을 ‘꿀알바’라고 말한다. 혼자 일하며 하루의 리듬을 해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청소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 지인들은 반신반의했다. 작가 스스로도 “내가 청소노동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몸 쓰는 일에 편견이 있었다기보다, 그에게 청소는 낯선 세계였다.

그러나 집에서 무급으로 하던 가사 노동이 유급 노동으로 전환되면서 감각은 달라졌다. 매달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내가 여전히 사회에 쓸모 있는 존재’라는 증명이 됐다. 그러면서 자존감 또한 회복했다.

책 제목과 표지만 보면 밝고 희망적인 이야기, 혹은 청소노동자의 일상이 주를 이룰 것이라 짐작한다. 그러나 전개는 예상과 다르다. 전업주부로 살아오며 두 아들을 양육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고립감과 우울, 외로움이 솔직하게 담겼다.

마침내 알을 깨고 나온 작가는 다른 이들에게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었다. 그의 이야기는 온라인 기록에서 출발해 출판으로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그는 ‘청소노동자’에 이어 또 하나의 이름을 얻었다. ‘작가’다. 그는 에필로그에 이렇게 적었다.

“나도 이제 이름을 갖게 되었다. 작가 송은주. 이름이란 정말 좋은 위안이다.”

▲송은주 작가 저서와 사인(브라보 마이 라이프)
▲송은주 작가 저서와 사인(브라보 마이 라이프)

청소노동자로 일하며 ‘유용함’을 다시 느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경력 단절 기간이 10년을 넘기면서, 저 역시 흔히 말하는 ‘집에서 놀기만 하는 여자’라는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어요. 사춘기를 겪는 아이와 많이 부딪혔고, 그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제게 남은 건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 아닐까’라는 감정이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조차 성과로 평가받는 사회에서 제 성적표가 좋지 않다고 느꼈던 거죠.

병원 청소 일을 시작하면서, 몸을 움직이며 하루를 보내는 감각을 다시 회복했습니다. 그 변화가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청소 일을 하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힘들었던 순간은 거의 없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일을 하러 가는 데 부담이 없었어요. 예전에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늘 ‘제대로 답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는데, 청소는 그렇지 않거든요. 사물은 질문하지 않으니까요.

가장 기뻤던 순간은 책을 출간했을 때입니다. 이 작은 일이 제 삶에 어떤 균열을 낼지 알지 못했어요. 무언가를 시작할 때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모르잖아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들이 이어졌다는 사실이 좋았습니다. 저 스스로 확신이 낮은 사람이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하면서 무시받거나 서러웠던 적은 없었나요?

청소할 때 사람을 만나지 않기 때문에 그럴 상황 자체가 없었어요. 책에도 썼지만, 저는 사물이 주는 평온함이 참 좋습니다. 하루를 살아낸 사람들이 있던 공간에는 은은한 열기와 공기가 남아 있죠.

청소 일은 제게 정말 딱 맞는 일입니다. 노동이라고 부르기엔 할 일이 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아닌, 딱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에 알맞은 일이니까요.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책은 청소노동의 기록을 넘어 삶 전반의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무엇을 전하고 싶으셨나요?

책을 쓰는 과정 자체는 힘들지 않았어요. 경험한 일과 제 생각을 정리한 거니까요. 사실 가장 쓰고 싶었던 건 아들 이야기였습니다. 이 시대에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았거든요.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분명한 목표를 가진 아들은 대학 대신 일을 선택했습니다. 그 선택에 아쉬움과 고마움이 동시에 밀려왔죠. 육체노동을 하는 아들의 모습은 제게도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용기를 줬고, 청소 일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대학 등록금 부담이 사라지자, 비로소 제가 번 돈을 제 삶에 쓰기 시작했고 마음의 여유를 되찾았죠.

과거로 돌아간다면, 전업주부로서의 삶을 다시 선택할 것 같나요?

니체가 말하는 ‘영원회귀’ 개념이 있어요. 어떤 악령이 나타나 “네 삶을 다시 한번 살게 해주겠다”고 하는데, 하나의 조건이 붙죠. 편집은 불가능하다는 것. 좋았던 순간만 다시 사는 게 아니라, 그간 겪었던 힘든 시간과 불행한 순간까지 전부 포함하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과거로 돌아가도 저는 비슷한 선택을 할 것 같아요. 니체의 결론은 하나입니다. 과거를 바꾸려 애쓰기보다 지금의 삶을 후회 없이 살아가는 것. 제가 도달한 답도 결국 그 지점이었습니다.

다시 사회로 나오려는 경력 단절 여성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제 주변을 보면 다시 일을 시작한 또래 여성이 정말 많아요. 대부분 아이 키우느라 일을 그만뒀다가 생계나 교육비 때문에 다시 사회로 나오게 된 경우죠.

중년이 되면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차이가 생기는 것 같아요. 받아들이는 사람과, 받아들이지 못한 채 자신을 계속 비교하는 사람이 있죠. 저는 지금의 조건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인정하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도전장을 내미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예전 자리로 돌아가려 하기보다, 사이드에서 시작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그때 홀연히 청소가 찾아왔다.언니가 어느 날 청소하는 아줌마가 그만두게 되었다고 말했을 때, 평소 같으면 그냥 스쳐 지나갔을 그 말이 내 귀에 꽂혔다.

(…) 해보지 뭐. 그게 뭐라고.

그렇게 어느 날 슬쩍 던진 말 한마디가 진심이 되었다. 나는 오래 누워 있던 자리를 다시 털고 일어났다. 청소노동자 ‘송 여사님’이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작은 균열이 또다시 무엇을 가져다줄지 전혀 모른 채였다.

- ‘나이 오십에 청소노동자’, 288~289p

오십의 변화는 삶에 어떤 의미로 남았나요?

오십에 시작한 청소노동자는 제 삶에 균열을 가져왔죠. 그 작은 시작이 책으로 이어지고, 또 ‘작가’라는 이름으로까지 연결됐습니다. 이 과정을 겪으며 생각했어요.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속도와 시선이 있다는 걸요. 이전에는 가장 뛰어난 사람, 가장 완성된 삶만 의미 있다고 여겼다면, 이제는 내가 살아온 이 시간 역시 고유한 이야기라는 걸 인정하게 됐습니다. 오십이라는 나이는, 그 사실을 처음으로 받아들이게 된 시점 같아요.

중년 이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해진 태도는 무엇일까요?

불행하다는 생각에 갇히면 자꾸 자기 안으로만 파고들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주 작은 것이라도 기회가 오면, 자신을 던져보세요.

그렇게 발을 내딛고 나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옆에 있어 줬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고, 요즘은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혼자만의 울타리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기보다, 조금이라도 경계를 넘어 이웃과 사회를 향해 시선을 돌려보셨으면 합니다. 그 순간부터 삶은 더 좋은 방향으로 열릴 수 있다고 믿어요.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더 궁금해요0

관련 뉴스

  • 욕쟁이 엄마, 100만 유튜버 되다
    욕쟁이 엄마, 100만 유튜버 되다
  • 렘브란트의 브랜딩을 배우다
    렘브란트의 브랜딩을 배우다
  • 손녀딸에게 보내는 백 년의 편지
    손녀딸에게 보내는 백 년의 편지
  • “실패는 마침표 아닌 쉼표” 실패에서 배우는 어른의 공부
    “실패는 마침표 아닌 쉼표” 실패에서 배우는 어른의 공부
  • 극장의 진화, 나는 왜 이리 어지러울까
    극장의 진화, 나는 왜 이리 어지러울까
저작권자 ⓒ 브라보마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브라보 스페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