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산 속으로 내리는 폭포, 침묵하는 신들의 광장
새벽 1시. 세상이 가장 깊은 잠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을 때, 나의 하루는 비명 같은 알람 소리에 떠밀려 수면 위로 튀어 오른다. 눈꺼풀은 납덩이를 매단 듯 무겁고, 사지는 물먹은 솜처럼 바닥으로 꺼져 내린다.
하지만 머릿속을 스치는 것은 어제 미처 다 처리하지 못한 배송 물량과 이번 주까지 입금해야 할 아들의 야구 레슨비 150만 원이라는 숫자다. 그 숫자는 채찍이 되어 나의 등을 떠민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현관문을 나설 때, 코끝을 스치는 새벽 공기는 유난히도 차다. 내 마음의 계절은 이미 영하의 고원(高原)을 헤매고 있는 듯 오들오들 떨린다.
오늘도 어김없이 인덕원역으로 향한다. 빗줄기가 굵다. 우산을 챙겨 들었지만, 비바람은 비웃기라도 하듯 가랑이와 어깻죽지를 사정없이 적셔온다. 때로는 우산을 받치고도 그 안에서 더 큰 비를 맞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 주변은 이미 아수라장이다. 휠체어에 몸을 실은 장애인들이 출근길 대로를 막아선 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리도 이동하고 싶다!”, “우리도 살고 싶다!”
그들의 절규는 빗소리에 섞여 흩어지지만, 내 가슴에는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박힌다. 저들 곁에 서서 나 또한 피켓이라도 들고 “하나님, 열심히 사는데 왜 제 삶은 이토록 젖어만 갑니까?”라고 시위라도 해볼까?
택배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거대한 트럭들이 쉴 새 없이 상자들을 토해내고, 컨베이어 벨트는 쉼 없이 돌아간다. 그 위를 구르는 상자들은 마치 우리네 인생 같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등 뒤에 찍힌 주소 하나에 명줄을 걸고 끝없이 굴러가는 운명.
나는 젖은 장갑을 끼고 상자들을 집어 올린다. 눅눅해진 판지의 감촉이 손가락 끝에 닿는다. 이 상자 안에는 누군가의 선물, 누군가의 생필품, 혹은 누군가의 간절함이 들어 있을 것이다. 나의 고단한 노동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기쁨이 된다는 사실이 가끔은 위안이 되지만, 내 어깨에 쌓이는 무게는 여전히 정직하고도 가혹하다.
찰리 채플린은 말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지금 내 삶을 멀리서 관찰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투잡을 뛰며 가족의 꿈을 뒷바라지하는 억척스러운 가장의 모습에서 나름의 숭고한 희극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싹 다가와 내 얼굴을 본다면, 빗물과 땀방울이 뒤섞여 범벅이 된 채 초점 잃은 눈동자로 상자를 나르는 한 인간의 비극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비극의 한복판에서, 역설적이게도 시(詩)를 찾으려 애쓴다.
오전 10시. 택배 배송의 1라운드를 간신히 마치고 숨 돌릴 새도 없이 두 번째 일터인 콜센터로 향한다. 젖은 옷을 갈아입을 여유도 없이 자리에 앉아 헤드셋을 쓴다. 책상마다 뿌려진 DB(고객 정보)는 오늘 내가 정복해야 할 또 다른 전쟁터다. 10시 정각, 신호음이 울림과 동시에 콜센터 안은 거대한 소음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그러나 수화기 너머에서는 날 선 칼날들이 날아온다.
“바빠 죽겠는데 왜 전화질이야!”, “너희 같은 보험팔이들 때문에 진절머리가 나!”
쏟아지는 욕설과 비난. 남들 새벽기도 갈 시간에 컴컴한 빌딩 화장실 청소를 하며 밑바닥을 전전할 때도 이토록 자괴감이 들지는 않았다.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짧게 진동한다. 첫째 아들이다.
“아빠, 나 수학학원 한 개만 더 다니면 안 될까?”
짧은 메시지 한 줄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얼마나 어렵게 꺼낸 말일까. 야구에 전념하는 둘째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공부 잘하는 첫째는 늘 제 몫의 욕망을 누르며 살았다. 속 깊은 아이의 제안을 나는 아빠라는 이름으로 냉큼 받아들인다.
“그래, 아빠가 해줄게. 걱정 마.”
전화를 끊고 다시 헤드셋을 고쳐 쓴다. 이제 나에게는 더 치열하게 구를 명분이 생겼다. 아들의 학원비와 레슨비, 그리고 우리 가족의 내일이라는 ‘별’을 띄우기 위해, 나의 바퀴는 더 세차게 굴러야만 한다. 그것은 이 비극적인 현장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꿈틀거리는 시의 운율이다.
오늘 밤 내가 배송할 것은 단순한 택배 상자가 아니다. 그것은 어둠을 뚫고 누군가의 집 앞에 놓일 작은 희망이며, 동시에 내 삶이라는 밤하늘에 새길 고단한 별자리다. 나는 젖은 어깨를 펴고 다시 ‛콜’ 버튼을 누른다. 나의 비극이 찬란한 시가 되는 그날까지.
낡은 수레바퀴에 새긴 가계(家系), 등 뒤에서 지는 초승달
콜센터의 소음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지독한 이명과 텅 빈 허기다. 헤드셋을 벗으면 세상은 잠시 고요해지지만, 내 마음속의 계산기는 다시 요란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아들의 야구 레슨비 150만 원. 그 숫자는 단순한 돈의 단위를 넘어, 내가 오늘 하루를 견뎌야 했던 이유이자 동시에 나를 짓누르는 족쇄다. 퇴근길, 편의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스마트폰 속 둘째의 경기 영상을 본다. 마운드 위에서 씩씩하게 공을 던지는 아이. 그 아이는 내 삶이 우주라면 가장 눈부시게 빛나는 ‘별’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그 별빛이 시리다. 첫째 아들이 힘들게 건넨 “수학학원 한 개만 더”라는 말이 가슴에 가시처럼 걸려 있기 때문이다. 아빠니까 냉큼 “그러자”고 답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느껴지는 지갑의 두께는 한없이 가볍기만 하다. 준비 없이 예체능을 시킨다는 것이 이토록 무모한 도박이었음을, 그때의 나는 미처 몰랐다. 고정 월급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시작한 이 이중생활이 어느덧 나의 일상이 돼버렸다.
가난은 대물림되는 악취와 같다. 씻어내려 해도 살결 깊숙이 배어들어 문득문득 존재감을 드러낸다. 나의 가난은 서른 해 전, 경기도 외곽의 낡은 단칸방에서 시작됐다. 형과 누나들은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채 어린 나이에 공장으로, 시장으로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너만이라도 대학에 가야 한다”며 형이 건네준 꼬깃꼬깃한 돈뭉치. 공장에서 밤을 새워 번 그 돈에는 기름때와 형의 눈물이 섞여 있었다. 윤동주 시인은 “나의 가난은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고 노래했지만, 나의 가난은 별을 노래하기엔 너무나 비릿하고 구체적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의 소식까지 들려왔다. 크게 넘어지는 바람에 고관절이 부서져 급하게 수술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이다. “못난 애미 만나 자식들 고생만 시킨다”며 울먹이시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누나에게 선뜻 돈을 보태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아 입술만 깨물었다.
다시 밤이 찾아오고, 나는 택배 트럭의 운전대를 잡았다. 아들이 던지는 ‘야구공’과 내가 배송하는 ‘상자’는 어쩌면 닮았다. 둘 다 누군가의 꿈을 향해 궤도를 그리며 날아간다. 아들의 공이 스트라이크 존에 꽂힐 때의 쾌감을 위해, 나는 이 육중한 상자들을 고객의 문 앞에 정확히 ‘스트라이크’시켜야 한다.
오늘 배송지 목록에 예전에 아이들과 함께 살았던 아파트 단지가 포함되어 있다. 한참을 아파트 정문 앞에 정차한 채 멍하니 창밖을 보았다. 아이들과 공놀이하던 놀이터, 맛있는 것을 사준다고 손잡고 갔던 마트. 풍경은 박제된 듯 그대로인데, 그 풍경 속에 살던 ‘아빠’라는 남자는 이제 차가운 트럭 운전석에 앉아 젖은 장갑을 끼고 있다.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 뒤에 숨은 별들이 속삭이는 것 같다.
“조금만 더 구르렴. 조금만 더 버티렴.”
나는 핸들을 꽉 쥐며 중얼거린다. 내 가난은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지만, 그 별을 따서 아이들의 가슴에 달아줄 때까지 나는 결코 이 바퀴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젖은 도로 위로 트럭의 헤드라이트가 길게 빛의 길을 낸다. 그 길을 따라 나는 다시, 나의 별자리를 향해 구르기 시작한다.

파쇄(破碎)되는 황금빛 미소, 절망이 잉태한 시의 세례
인생에도 과부하가 걸리면 타는 냄새가 나는 법일까.
몸과 마음이 한계에 다다른 어느 날, 나는 영혼이 탈탈 털려나간 껍데기만 남은 기분이었다. 낮에는 콜센터의 빗발치는 폭언을 견디고 밤에는 무거운 침묵의 상자들을 나르는 생활이 수개월째 이어지자, 내가 과연 인간인지 아니면 그저 바퀴가 달린 기계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됐다.
아들의 야구공이 스트라이크 존에 꽂히는 쾌감도, 첫째의 수학 성적이 올랐다는 소식도 무뎌진 감각 너머의 일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그때 선배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너 이러다 죽어. 딱 하루만 내 뒤에 타라.”
그렇게 반강제로 끌려가듯 도착한 곳은 전북 고창의 청보리밭이었다. 하지만 계절은 이미 보리를 거두어간 뒤였다. 보리가 사라진 텅 빈 들판에는 대신 해바라기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런데 그 풍경조차 평화롭지는 않았다. 저 멀리서 커다란 트랙터 한 대가 굉음을 내며 다가오고 있었고, 그 날카로운 칼날 아래 노란 해바라기들이 힘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을 꽃들이 한순간에 흙바닥으로 고꾸라지는 모습.
“너 닮았네, 저 해바라기.”
옆에 서 있던 선배가 툭 내뱉었다. 나는 쓰디쓴 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쓰러지는 꼴이 나 같다는 거예요?”
선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꺾인 꽃 한 송이를 가리켰다.
“아니, 쓰러져도 웃잖아.”
그의 말을 듣고 다시 보니 정말 그랬다. 트랙터에 짓밟혀 고개가 꺾이고 줄기가 뭉개진 해바라기들이었지만, 그 둥글고 노란 얼굴만은 여전히 하늘을 향해 환하게 웃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비극적인 종말 앞에서도 자신의 빛깔을 잃지 않는 그 기묘한 생명력. 니체는 일찍이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역설하지 않았던가.
그날 밤 선배와 마주 앉아 소주잔을 기울였다. 고창의 밤하늘은 서울과는 달랐다. 검은 비단 위에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 수많은 별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저 별들은 지상으로 내려오고 싶어 저토록 반짝이는 걸까, 아니면 지상의 꽃들이 밤마다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는 걸까. 몽롱한 취기 속에서 문득 잊고 지냈던 단어들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야, 시 한번 다시 써보는 건 어때? 네 시 참 좋았는데. 재능 썩히는 것도 죄다.”
선배의 그 한마디는 내 가슴속에 켜켜이 쌓여 있던 먼지를 한꺼번에 털어내 주었다. 대학 시절 형의 피땀 어린 돈으로 시를 공부하던 청년. 가난한 자들의 삶을 활자로 위로하겠다던 그 뜨거웠던 열망이 아직 내 혈관 어딘가에 살아 숨 쉬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배송 물량 65집, 165박스라는 숫자에 갇혀 죽어가던 내 시적 영혼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제와는 공기가 달랐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샛별이 유난히 선명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하늘의 별이기도 했지만, 유리창에 맺힌 나의 땀방울에 가로등 불빛이 투영돼 만들어낸 눈부신 환영이기도 했다. 내 이마에서 흐르는 이 짠 땀방울이, 내가 짊어진 이 무거운 짐이 사실은 내 인생이라는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빛나는 항성(恒星)들이었음을 비로소 이해했다.
나는 트럭 조수석에 늘 비치해두던 배송 명단 뒷장을 넘겼다. 그리고 볼펜을 들었다. ‘별을 배송하는 시인’이라는 제목이 그 갈색 갱지 위로 새겨졌다. 내가 배송하는 상자는 이제 단순한 짐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전해질 온기였고, 나의 가족을 지탱할 의지였으며, 무엇보다 나 자신을 다시 살게 할 시의 첫 줄이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구르는 트럭 바퀴 소리가 이제는 경쾌한 리듬으로 들려온다.
브라보, 나의 고단한 인생아.
브라보, 쓰러지면서도 별을 꿈꾸는 나의 영혼아.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나의 진짜 ‘브라보’ 인생을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심연을 배송하는 자의 축복, 비로소 만개한 보름달 인생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여전히 새벽 1시의 알람은 잔인하게 고막을 찢고, 인덕원역의 빗줄기는 어깨를 적신다. 콜센터 수화기 너머로는 여전히 차가운 거절의 말들이 화살처럼 날아와 박힌다.
하지만 내 안의 공기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이전의 노동이 그저 생존을 위한 ‘굴레’였다면, 지금의 노동은 시적 영감을 길어 올리는 ‘우물’이 됐다. 나는 배송 차량 조수석에 낡은 노트를 상시 비치해뒀다. 신호 대기 중일 때, 혹은 배송 마치고 잠시 숨을 고를 때, 내 머릿속을 스치는 문장들을 낚아채 그곳에 옮겨 적었다.
“영광은 시련을 거쳐야 비로소 빛이 난다.” 어디선가 읽은 이 구절을 되뇌며 나는 등단이라는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디뎠다. 퇴근 후 쏟아지는 잠을 쫓으며 쓴 원고들을 정성껏 봉투에 담아 보냈다. 여러 번의 낙방이 있었지만, 더 이상 예전처럼 절망하지 않았다. 떨어진 낙엽이 거름이 되어 내년의 꽃을 피우듯, 거절의 통보들 또한 내 문장을 더 단단하게 벼리는 과정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한 문예지로부터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택배 상자를 가득 실은 트럭 안에서 혼자 펑펑 울었다. 그것은 가난에 대한 설움이 아니라,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안도와 기쁨의 눈물이었다.
이제 나에게는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택배 시인’.
낮에는 목소리로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밤에는 물건으로 그들의 문 앞을 지키며, 새벽에는 시로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사람.
어느덧 둘째 아들의 야구 시즌이 돌아왔다. 마운드 위에서 힘차게 공을 뿌리는 아들을 보며 나는 더 이상 레슨비 150만 원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다. 그 공은 아들이 던지는 꿈이자, 내가 트럭 바퀴를 굴려 만들어낸 희망의 궤적이기 때문이다.
수학 학원비 걱정에 입을 꾹 닫고 있던 첫째도 이제는 내게 다가와 시를 읽어달라고 조른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집 안 가득 퍼질 때, 나는 비로소 진정한 ‘브라보’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그것은 대단한 성공이나 부(富)가 아니라, 고단한 하루 끝에 가족과 마주 앉아 나누는 따뜻한 찌개 한 그릇, 그리고 내일을 꿈꿀 수 있는 작은 여백에 있었다.
오십이 넘은 나이, 이혼의 상처와 경제적 빈곤은 여전히 내 삶의 그림자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림자가 짙다는 것은 그만큼 근처에 밝은 빛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이제 내 삶의 ‘부정적 결여’들을 ‘긍정적 모티프’로 바꾸어 읽기 시작했다. 거칠어진 손마디는 훈장이고, 무릎의 통증은 성실의 기록이며, 새벽의 고독은 시의 세례다.
오늘 밤도 나는 어김없이 트럭에 오른다. 65집 165박스. 라우팅을 확인하며 나는 나지막이 읊조린다.
“브라보!” 이 외침은 지난 세월 모진 풍파를 견뎌온 나 자신에게 건네는 가장 뜨거운 찬사다.
“브라보, 나의 고단한 어깨여.
브라보, 멈추지 않고 굴러온 나의 바퀴여.
브라보, 어둠 속에서도 기어이 별을 찾아낸 나의 시여!”
배송지에 도착해 박스를 내려놓는다. 아파트 복도의 센서 등이 켜지며 상자 위로 환한 빛이 쏟아진다. 그 모습이 마치 무대 위 주인공을 비추는 핀 조명 같다. 내가 놓아둔 이 상자가 누군가의 아침을 기쁘게 하듯, 내가 쓴 이 글이 누군가의 시린 가슴에 작은 모닥불이 되기를 소망한다.
트럭으로 돌아와 백미러를 보니 어느덧 동이 터오고 있다. 밤새 나를 지켜주던 별들은 잠시 몸을 숨겼지만, 내 가슴속에는 이제 초승달이 아닌 꽉 찬 보름달이 차오르고 있다. 나는 시동을 건다. 엔진 소리가 마치 웅장한 교향곡의 도입부처럼 들려온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무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나는 오늘 더 당당하게 나의 배역을 수행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배송하는 나의 진짜 인생, 브라보 마이 라이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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