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배 전 광주하남교육장

많은 사람이 퇴직을 인생의 쉼표라고 말한다. 하지만 전근배 전 광주하남교육장에게 퇴직은 새로운 문장의 시작이었다. 교단을 떠난 지 16년 됐지만, 그는 여전히 학교폭력 예방 교육자료를 만들고 인성교육 강연에 나서며, 마약중독예방교육연구회를 조직해 활동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는 준법 캠페인과 공동체 활동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교단은 떠났지만 그의 교육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퇴직하고 가장 먼저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생각했어요.”
전근배 전 교육장은 교사와 교감, 교장, 교육장, 대학 객원교수를 지낸 교육자다. 42년 5개월의 교육자로서 역할이 끝난 후, 그는 스스로에게 ‘국민스승’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했다. 학교 안의 학생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교육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뜻이었다. 그는 “선생님이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스승은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사람”이라며 “퇴직 후에는 국민스승으로 살아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면 된다’가 바꾼 한 소년의 인생
전근배 전 교육장의 이야기는 가난한 농촌 소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0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난 그는 경제적 형편 때문에 중학교 진학조차 쉽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중학교는 의무교육이 아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나무하러 다니던 그에게 교장 선생님이 손을 내밀었다. “공부 잘하는 아이인데 왜 학교를 안 보내느냐”고 부모를 설득한 것이다.
그렇게 진학한 중학교에서 그는 평생 잊지 못할 가르침을 만났다. 지붕에는 구멍이 뻥 뚫려 있었고, 바닥은 흙바닥인 열악한 교실이었다. 겨울이면 교실 안까지 눈이 날려 들어오던 그 공간에서 교장 선생님은 수업이 끝날 때마다 12번씩 “하면 된다. 안 되면 다시 하자”를 외치게 했다고 회상했다.
그 말은 어린 전근배의 가슴 깊이 새겨졌다. 그는 잠을 줄여가며 공부한 끝에 중학교를 졸업했고, 형수의 반지를 팔아 입학금을 마련해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며 학비를 충당했다. 이후 인천교육대학교에 진학해 마침내 교사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지금도 자신의 인생을 움직인 원동력으로 그 시절의 가르침을 꼽는다.
“친구들을 따라 교대에 진학했지만, 돌이켜보면 무의식적으로 그 교장 선생님의 교육철학을 따라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면 된다. 안 되면 다시 하자’는 말이 제 삶의 방향을 결정한 셈이죠.”
실패보다 포기가 더 위험하다는 그 믿음은 그의 교육철학이 됐다. 첫 발령지였던 용인 장평의 산골 학교에서도 그는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저녁 8시면 공부할 시간이 됐다는 신호로 호루라기를 불며 마을을 돌았다. 그는 집집마다 찾아가 아이들의 학습 상황을 살피고 부족한 부분을 직접 지도했다.
“처음에는 호루라기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종각을 세웠어요. 그렇게 ‘사랑의 종소리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울려 퍼진 종소리는 단순한 알림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는 공부할 시간을 알려주는 신호였고, 부모들에게는 자녀 교육에 대한 책임을 일깨우는 약속이었다. 그의 작은 실천은 지역사회의 참여를 이끌어냈고, 결국 전국적인 관심으로 이어졌다. 언론에 소개됐고 대통령의 격려도 받았다. 전근배 전 교육장은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며 “교사 한 사람의 열정이 아니라 마을 전체가 아이들을 키운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퇴직 후 시작된 ‘2차 함수 인생’
2010년 정년퇴직 당시 주변에서는 “이제 좀 쉬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을 자주 건넸다. 하지만 전근배 전 교육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퇴직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며 “앞으로 10년, 20년은 더 살아갈 텐데 그 시간을 의미 없이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그 무렵 유튜브와 독서를 통해 ‘1차 함수 인생’과 ‘2차 함수 인생’이라는 표현을 접했다.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삶이 1차 함수라면, 사회를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삶은 2차 함수라는 설명을 듣고, 그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노년을 사회에 기여하는 시간으로 채워나갔다. 근무했던 12개 학교를 직접 찾아다니며 학교폭력 예방 교육을 재능기부로 진행했고,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객원교수로 3년간 예비 교사들을 가르쳤다. 강의평가 평균 98점은 학위보다 현장 경험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결과였다.
“사랑의 종도 누군가는 쳐야 아이들에게 좋은 것 아니겠어요. 우측통행 캠페인도, 마약 예방 교육도 마찬가지예요. 누군가 해야 할 일인데 아무도 하지 않으면 내가 하면 됩니다.”
퇴직 후 새롭게 만난 동반자는 색소폰이었다. 퇴직 1년 전부터 독학으로 익힌 색소폰은 요양원과 경로당, 노인대학을 찾는 봉사의 매개가 됐다. 강연 전에 한 곡을 연주하고, 강연이 끝난 뒤에는 어르신들과 음악으로 소통했다. 경기도 시낭송 퍼포먼스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것도 이 시기였다.

그는 이러한 활동을 특별한 재능의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봉사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었다고 말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봉사는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가를 바라지 않아도 언젠가는 다른 형태로 반드시 돌아옵니다. 결국 봉사는 남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더라고요.”
은퇴자는 많지만 스승은 부족해
전근배 전 교육장이 최근 가장 자주 사용하는 말은 ‘국민스승’이다. 그는 “선생님과 스승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선생님이 교육과정에 따라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라면, 스승은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존재죠.”
그는 과거에는 부모와 교사, 마을 어른들이 자연스럽게 그런 역할을 했다고 회상했다. 밥상머리에서 삶의 원칙을 배우고, 동네 어른들의 조언 속에서 공동체의 규범을 익혔다. 하지만 사회가 급변하면서 그런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가정은 바빠졌고, 학교는 성적 중심이 됐습니다. 지역사회 역시 예전 같은 공동체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워졌고요. 그 때문에 아이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와 가치관을 배울 기회가 예전보다 훨씬 적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그를 새로운 교육 현장으로 이끌었다. 최근 그가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분야는 청소년 마약 예방 교육이다.
2022년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그는 2년에 걸쳐 방대한 교육자료를 직접 개발했다. 사건과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구성한 교재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수준별로 세분화하고, 딱딱한 이론 대신 현실에서 벌어지는 위험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얼마 전 학원가에서 마약 음료 사건이 있었죠. 이렇게 생활에서 쉽게 마약을 접하는 세상이 됐어요. 아이들은 호의인 줄 알고 나눠주는 음료나 젤리 같은 걸 먹은 것뿐인데 마약에 빠지게 되는 거예요. 나도 모르게 이런 상황이 생기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전에 예방부터 이뤄져야 합니다. 예방 교육이 정말 중요해요.”
그는 이러한 교육을 개인의 노력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강인수 수원대학교 전 총장을 회장으로 추대해 마약중독예방교육연구회를 조직했다. 퇴직 교장과 전직 공무원, 지역사회 인사들이 뜻을 모은 이 연구회는 경기도 24개 시·군의 퇴직 교장을 대상으로 강사 양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교재 제작과 배포 역시 대부분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후원으로 이뤄진다. 국가 지원은 없지만 그는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 아이들이 위험에 빠진 뒤 손을 내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위험에 가까이 가지 않도록 길을 비춰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은 10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전근배 전 교육장은 인터뷰 내내 나이를 이야기하면서도 결코 늙음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남은 시간을 이야기했다.
“80세가 됐다고 끝난 게 아니잖아요. 통계적으로 제 나이에서 85세까지 살아남을 확률이 15% 정도라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제게 남은 시간이 2~3년일 수도 있습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쓸지는 결국 내가 정하는 겁니다.”
그는 은퇴 이후 삶을 준비하는 중장년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돈을 얼마나 모았는지, 얼마나 오래 사는지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삶의 방향을 정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누군가는 여행을 선택할 수 있고, 누군가는 취미를 선택할 수 있다. 또 누군가는 봉사를 선택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의미를 찾는 일이다.
그에게 그 의미는 여전히 교육이다. 그래서 “나이 들수록 해야 할 일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분명해졌다”면서 지금도 새로운 강의자료를 만들고, 사람들을 만나며, 사회문제를 공부하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목표를 묻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국민스승 운동이 꼭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연금을 받는 퇴직자만 62만 명입니다. 그 절반만 참여해도 30만 명이 사회 곳곳에서 스승 역할을 하는 거예요. 저는 그 힘이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50년 전 그가 가르쳤던 제자들이 지금도 스승의 날이면 그를 찾아온다. 올해 가장 먼저 찾아온 제자들은 어느덧 일흔이 됐다.
가난한 농촌 소년에게 “하면 된다. 안 되면 다시 하자”를 가르쳐준 교장 선생님. 그 가르침을 평생 실천하며 또 다른 스승이 된 한 사람.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냥 살지 말고,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정해보세요. 그게 인생 2막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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