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23년 기준 60세 (66.4%)와 65세(23.5%)정년인 기업이 가장 많다. 일본 정부는 2021년 65세까지 고용 확보를 의무화하고, 65세 이상 직원도 원한다면 70세까지 취업 기회를 확보하도록 기업에 노력할 의무를 부과했다. 이에 기업들이 각종 대책을 세우는 가운데, 정년제를 폐지하는 회사(3.9%)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정년제를 폐지하고 오히려 매출이 두 배로 늘어난 회사가 일본 언론에 소개되어 찾아가 봤다.
도쿄와 인접한 사이타마현(埼玉県) 가와구치시(川口市)에 도착한 날은 5월의 봄비가 대지를 촉촉히 적시는 날이었다. 입사 3년째인 미쓰타 하루카(満田遥花) 씨가 역까지 마중 나와 정중하게 인사했다. 주식회사 세라후에노모토(セラフ榎本) 본사는 니시도쿄역(西東京駅)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설립 61년째인 세라후에노모토의 대표 사업은 아파트 대규모 수선 공사, 반려동물과 살 수 있는 집 리모델링, AI와 드론을 이용한 아파트 외벽 상태 조사 등이다. 드론으로 아파트 건물을 촬영한 각종 영상 데이터를 AI로 진단하는 시스템은 2019년부터 도입했다.
“저는 유튜버랍니다”
회사 유니폼을 차려입고 미소를 가득 띠며 들어온 에노모토 오사무(榎本修) 대표는 반갑게 맞이하며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50대 대표의 첫마디가 뜻밖이라,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잠시 머뭇거렸다. 그가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 회사는 과거 사이타마현에서 아파트 수선 공사 부문 고객 만족도 2위였어요. 어떻게 하면 1위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5년 전부터 유튜브에 주목했습니다. 일주일에 20개의 영상을 올렸고, 현재는 2500개 정도 영상이 올라가 있는데요. 500개가 넘어가니 아파트 수선 공사 주문 전화가 걸려오더라고요.”
회사를 방문하기 전 사전 조사를 하면서 홈페이지에서 본 2분짜리 동영상에는 대표가 직접 골든위크(4월 말에서 5월 초에 걸친 일본의 장기 연휴 기간을 이르는 말) 연휴 대응을 위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수선 공사 중인 아파트에 연휴 기간 발판이 그대로 놓여 있는 경우가 있을 텐데 불편함을 초래해 죄송하다면서,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공사 현장에 있는 작은 간판에 적어둔 전화번호나 라인(LINE) 메시지 혹은 회사 홈페이지 고객 문의로 연락하면 24시간 신속히 대응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런 노력으로 2023년에는 관동 지역에서도 아파트 수선 공사 부문에서 고객 만족도 2위를 달성했다. 다음 목표는 관동 지역 1위라고 한다.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공사 수주 금액에 관계없이 고객 요청에 응하고 있어, 작게는 2만 엔부터 크게는 1억 엔 규모의 공사 수주에 대응하고 있다고 한다. 고객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정년제를 폐지한 이유
자신을 유튜버라고 소개한 에노모토 대표는 경력도 특이하다. 30세에 시의회 의원으로 세 번 연속 당선되었다. 열심히 의회 활동을 하다가 부친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시의원을 그만두고 대를 이어 회사 운영을 맡게 됐다고 한다. 전무로 일을 시작해 15년 전부터 대표를 맡고 있다. 에노모토 대표는 언제부터 시니어를 채용한 걸까?
“10년쯤 전부터 시니어를 채용했고, 정년제를 폐지한 건 3년 전이에요. 거래처나 전시회에서 훌륭한 기술을 가진 분들을 만나게 됐어요. 그분들에게 ‘퇴직하면 우리 회사에 오지 않겠냐’고 물어본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에노모토 대표는 이런 분들이 오래 축적한 기술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정년제를 폐지하고 적극적으로 시니어를 채용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회사의 최고령자는 78세로 설계를 담당하는데, 숙련된 기술과 경험으로 회사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는 오래된 인사 관행으로 55세 역직정년(役職定年)이라는 게 있습니다. 과장·부장이라는 직책을 상실함과 동시에 월급이 줄어듭니다. 건설업의 경우 특히 보수적이어서 과거의 관행을 그대로 지키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 30년 정도 근무했다면 이력서도 보지 않습니다. 그만큼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 노하우, 인맥이 대단하기 때문에 신뢰한다는 의미죠. 이분들이 정말 회사에 열심히 공헌하니까 채용 후 매출이 해마다 늘어나는 거예요.”
시니어 채용하자 일어난 변화
시니어를 적극적으로 채용하면서 매출이 두 배로 늘어났다고 뉴스에 보도됐기에, 어떤 이유에서 이런 변화가 일어났는지 물어봤다.
“4~5년 사이에 20억~30억 엔이던 매출이 30억~40억 엔이 됐고, 최근에는 45억 엔까지 늘었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타사에서 50대에 역직정년(일정 연령에서 직책을 그만두는 제도)을 맞고 우리 회사로 전직해온 우수한 인재들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젊은 사원, 중견 사원, 시니어 사원이 잘 융합해서 이뤄낸 결과라고 봅니다. 젊은 사원만 많은 회사라면 시니어 채용을 권하고 싶어요.”
그러면서 에노모토 대표는 취직을 원하는 지원자로부터 온 이메일을 보여주었다. 전국에서 거의 매일 문의 메일이 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시니어 사원의 월급은 얼마일까?
“채용할 때 ‘월급은 70세 이후 감소합니다’라는 안내를 합니다. 만약 금·토·일요일을 쉬고 싶다거나 자택에서 거래처로 출퇴근하고 싶다는 분이 있으면 요청을 받아들이고 있어요. 이런 경우 근무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월급도 감소합니다. 이 부분은 함께 일을 시작하기 전에 협의하고 있어요. 시니어분들은 연금도 받고 있기 때문에 월급이 줄더라도 자율적으로 일하고 싶어 해서 그에 맞추어 배려하고 있습니다.”
정년제를 폐지하고 기술이 축적된 시니어를 채용하면서 유연근무제를 도입해 직무 만족도와 생산성이 향상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대표는 또 하나의 변화가 있다고 덧붙였다.
“나이를 의식하지 않게 됐어요. 몇 살이든 개의치 않고 자유롭게 일하는 회사 분위기가 만들어졌죠. 정년제를 폐지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장점밖에 없다니까요.”
시니어와 주니어의 화합
세라후에노모토 사원은 모두 100명이고, 이 가운데 65세 이상 시니어 사원은 10명이다. 시니어 사원 입사가 늘어남에 따라 직장 분위기가 바뀐 점은 없는지 궁금했다.
“우리 회사는 대표실이 따로 없어요. 젊은 사원도, 시니어 사원도, 저도 대형 사무실에서 같은 크기의 책상에 앉아 일합니다. 왁자지껄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평등하게 일하죠. 무엇보다 대표인 제가 시니어 사원들에게 존경하는 마음으로 정중하게 예우를 해드리면 다른 사원들도 마찬가지로 시니어 사원들을 존경하게 됩니다.”
세라후에노모토의 가장 큰 장점은 대표가 이렇게 솔선수범하는 태도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에노모토 대표는 라이온스클럽이나 로타리클럽 등에 가입하지 않고 골프나 접대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도 샐러리맨이라는 마음으로 사원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일한다. 대표는 “사원들에게 본을 보이는 거죠. ‘나도 열심히 일할 테니 여러분도 열심히 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하니 사원들이 언제든 스스럼없이 다가와 여러 가지 질문을 하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시니어 사원을 뽑고 나서는 이런 분위기가 한층 더 정착됐다.
“시니어분들은 인생 경험이 풍부해요. 몸에 밴 기술과 안목이 있거든요. 시니어들의 힘으로 젊은 사원과 중견 사원을 잘 융합시켰다고 생각해요. 시니어 사원과 임원이 이인삼각으로 회사 업적을 높이면 회사 매력도도 향상됩니다. 자연스럽게 젊은 사원이 입사하고 싶은 회사가 되죠. 사람을 대하는 방법, 클레임이 들어왔을 때 처리하는 방법 등을 시니어 사원이 젊은 사원에게 가르쳐주면서 지도해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시니어를 적극 채용한 뒤부터 매출도 올랐지만 사원 수나 회사 규모도 두 배 이상 됐어요. 이런 상승효과가 발생한다는 의미에서 시니어 사원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죠.”
실제로 세라후에노모토는 이직률이 낮고 직원 만족도도 높다고 한다. 고객 만족도는 직원 만족도와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직원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입사 3년 차인 미쓰타 하루카 씨와 4년 차인 고토 하루나(後藤遙菜) 씨에게 회사 분위기에 대해 물었더니 같은 답이 돌아왔다.
“대표님도 시니어 사원분들도 친근감이 들어요. 뭐든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상담하기 쉽습니다!”
30년 전쯤 일본의 대기업 회사 대표님에게 “한국의 S기업과 기술 제휴를 했는데, 기술 전수를 할 때 사무직 직원에게 전수하려 했더니 현장 직원에게 맡겨야 한다며 배우려 하지 않더군요. 왜 그럴까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름의 답변을 드렸지만, 의문이 풀리지 않은 표정이었다.
대부분의 일본 회사는 대학을 졸업하고 갓 입사한 사원이 최소 1~2년 현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의 대표도 직원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손에 기름을 묻혀가며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일한다. 대표도 직원들과 같은 구내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며 평등하게 일하는 문화가 일본 기업의 조직력을 발휘하는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올해부터 954만 명에 이르는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 출생)가 법정 은퇴 연령에 진입했다. 한국은행은 이로 인해 우리나라 연간 경제성장률이 0.38%p 하락할 수 있다고 예상하며, 계속고용 정책을 통해 부정적 영향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1일 ‘2차 베이비부머의 은퇴 연령 진입에 따른 경제적 영향 평가’ 보고서를 발간했다. 분석 결과, 현 60대 고용률이 유지되는 시나리오에서는 2차 베이비부머의 은퇴로 2024~34년 기간 중 연간 경제성장률이 0.38%p 하락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고용률 증가 추세가 이어진다면 경제성장률 하락 폭을 0.14%p로 줄일 수 있다는 의견이다.
2차 베이비부머는 은퇴 후 계속근로 의향이 강한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2023.5월)에 따르면 55~79세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계속근로를 희망하는 응답자의 비중이 2012년 59.2%에서 2023년 68.5%로 상승했으며, 평균 근로 희망 연령 역시 71.7세에서 73.0세로 높아졌다. 60세 이상 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 또한 2010년 이후 상승 추세이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이 본격화된 시기에 성장한 2차 베이비부머는 이전 세대와 비교하면 근로 의지가 강할 뿐만 아니라, 교육 수준 또한 높은 편이다. 아울러 AI가 산업 전반에 침투하는 상황에서 IT활용도가 높고, 소득·자산 여건이 양호하며, 사회·문화 활동에 대한 수요도 크다.
이에 따라 2차 베이비부머의 계속고용이 이뤄진다면, 경제성장률 하락 폭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일본은 정부의 고령층 고용 촉진 노력으로 60대 고용률이 크게 상승한 바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재호 조사총괄팀 과장은 “향후 급격한 고령화 등으로 경제성장률이 낮은 수준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2차 베이비부머 인력 활용을 통한 성장잠재력 제고를 위해서는 정책적 뒷받침이 긴요하다. 특히 생애에 걸쳐 축적한 인적 자본을 장기간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고 전했다.
한국은행은 먼저 2차 베이비부머의 은퇴 후 계속근로와 고용의 질적 제고를 동시에 이루기 위한 법·제도 마련에 사회적 합의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고령층의 재고용 의무화, 법정 정년 연장, 탄력적인 직무‧임금 체계 도입 등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는 고령층 고용 연장 제도와 관련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두 번째로 고령층 소비 여건 개선을 통한 내수 기반 확충이 필요하다고 봤다. 2차 베이비부머는 보유 자산 등에 기반한 소비 여력과 사회·문화 활동에 대한 수요가 기존 세대에 비해 크기 때문에 자산 유동화, 연금제도 개선 등을 통해 이들의 소비를 활성화해 급격한 인구 감소에 따른 내수 기반 약화에 대비할 수 있다.
인공지능 스타트업 미스터마인드의 AI 돌봄 로봇은 54개 지자체와 29개 치매안심센터·보건소· 정신건강센터를 통해 약 8500명의 어르신을 만나고 있다. 미스터마인드는 어르신들이 실제 필요한 케어까지 받을 수 있도록 연계하며, 이제는 질병 예측도 가능한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2017년 설립된 미스터마인드의 AI 돌봄 로봇은 외형이 다양하다. 인형이라는 점은 공통적이지만, 서비스 도입을 원하는 지자체나 기관이 이용하고자 하는 캐릭터에 맞춰 제작한다. 예를 들면 진안군은 ‘빠망’, 대전시는 ‘꿈돌이’ 같은 지자체 캐릭터를 활용한다. 물론 미스터마인드의 대표 캐릭터도 있다. AI 돌봄 로봇 ‘초롱이’와 블루투스 스피커 ‘미니미’다.
돌봄도 ‘재미’있게
초롱이는 어르신들에게 애교도 부리지만 잔소리도 하고 때로는 투정도 부린다. 아프다는 말을 반복하면 “병원에 가야 한다”고 잔소리하고, 늦은 저녁까지 말을 걸면 “이제 대화 안 한다”고 투정도 하며 자야 할 시간임을 알린다. 어르신들이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미스터마인드 돌봄 로봇은 ‘돌봄’이라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재미’도 놓치지 않는다. 콘텐츠는 ‘인지 카드’로 다양성을 더했다. 기본 다섯 가지 인지 카드에는 인지력 퀴즈 100문제, 수면 유도 음악 100곡, 말동무 기능 100여 가지, 옛날이야기 100편, 노래 200곡 등이 수록되어 있다. 현재까지 개발한 인지 카드는 15종이 더 있다.
외로움을 돌보기 위해 능동 대화도 매일 50회 이상 실시한다. 어르신이 말을 걸지 않아도 자동으로 말을 거는 기능이다. 긴급재난, 생활안전, 어르신 정책 사업을 안내할 때는 ‘감성 대화’로 전달한다. 정보를 재가공해서 어르신이 이해하기 쉽도록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르신 창밖을 보세요. 눈이 내려요.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빙판길이 생긴 것 같아요. 어르신 다치면 저도 슬퍼요. 조심하세요”라고 안내하는 식이다.
더불어 돌봄 로봇을 사용하는 과정 자체가 인지 능력을 유지하는 방향이 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어르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콘텐츠는 노래다. 어르신들은 좋아하는 노래 2~3곡을 반복적으로 재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전문가 자문을 통해 같은 노래를 반복하는 것이 인지 능력 유지에 도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다른 노래를 랜덤으로 재생하도록 바꾸었다. 다섯 곡을 재생하고 나면 “어르신 나 물 마시고 올게요”라며 노래를 멈춘다. 따라서 어르신이 200곡을 모두 들으려면 최소 20번은 돌봄 로봇의 버튼을 눌러야 한다.
김동원 미스터마인드 대표는 “보통은 버튼을 반복해 누르거나 인지 카드를 바꿔 넣어야 하는 방식이 ‘불편하다’고 인식하지만 어르신에게는 아니다. 대화하고 싶으면 오른손, 놀이하고 싶으면 왼손을 누르고, 특정 놀이는 카드를 꼽는다는 방식이 어르신들에게는 직관적”이라고 설명했다.
돌봄 넘어 질병 예측까지
김동원 대표는 “질리지 않고 반복해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강조했다. 아무리 똑똑한 인공지능이 탑재되어도 초반에만 관심을 끌다가 방치되거나, 24시간 작동하는 인형의 전원을 꺼버리면 돌봄 기능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이 반영되어서인지 미스터마인드를 이용하는 어르신들은 평균 32개월 동안 돌봄 로봇을 사용했다. 미스터마인드의 돌봄 로봇을 채택한 지자체의 68%는 로봇을 재구입했으며, 기존에 사용하던 돌봄 로봇의 재계약률은 98%에 이른다.
이렇게 어르신들이 돌봄 로봇을 통해 재미를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지속적인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앞으로는 인지 카드도 TV 드라마처럼 매주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또한 “임영웅을 만나고 싶다”는 등 어르신들의 요청을 받아 연예인 음성으로 대화하는 인지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하나의 돌봄 로봇을 오래 사용하면 좋은 점이 있다. 질병 예방이나 발견, 더 나아가 예측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미스터마인드는 지난 5년간 AI 돌봄 로봇을 통해 어르신들이 실제 사용한 단어와 문장으로 구성된 이상 징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지난해 8월에는 특정 단어가 발화되는 점을 포착해 19개 지자체에 이를 알렸다.
자살 고위험군으로 진단된 사례는 보호자에게 알리고 자살방지센터와 연계해 관리하는 지자체도 나왔고, 보건소와 연계해 우울증과 치매를 발견한 곳도 있다. 이는 인공지능 돌봄 로봇으로 어르신 질병 진단을 받은 첫 사례로 꼽힌다.
김동원 대표는 “돌봄 로봇이 기술 제공에만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돌봄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이상 징후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사회복지사, 간호사, 케어매니저 등이 현장에서 바로 대응할 수 있는 돌봄 융합센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이 음악도 만들고, 그림도 그린다. 인간 고유의 재능으로 여겨졌던 ‘창작’이라는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AI가 더욱 고도화될 거라는 건 정해진 미래다. 사람들이 ‘어떻게 AI를 활용할 것인가’ 고민할 때 ‘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변호사가 있다. 아니, 그는 소설가다.
장편소설 ‘밤의, 소설가’는 “AI와 공동 집필에 몰두했던 소설가의 미스터리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한 작가는 이 책을 읽고 ‘저자의 상징적 죽음’이라는 평을 내놨다. AI의 발달로 인간 고유의 영역을 빼앗기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이면에는 ‘위태로운 저자의 지위’와 ‘왜 창작하는가’ 같은 뿌리에 가까운 질문이 담겨 있다. 저자 조광희 변호사는 왜 이런 이야기를 쓰게 됐을까?
영화에서 소설까지 ‘올라운더’
법무법인 원에서 근무하는 조광희 변호사는 ‘올라운더’라 불린다. 올라운더는 스포츠 등에서 모든 역할을 골고루 하는 선수를 가리키는 말로 다재다능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의 이력을 보면 이 별명이 이해가 된다.
1990년 제3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후 영화사 봄의 대표이사를 지내며 ‘밤과 낮’, ‘해변의 여인’, ‘멋진 하루’ 등을 제작했다. 그리고 선거캠프에서 세 차례 비서실장을 맡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씨네21’, ‘한겨레’, ‘경향신문’의 칼럼니스트로 글을 썼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2003년에는 영화인들의 필독서로 유명한 ‘영화인들을 위한 법률가이드’를 펴냈다. 이후 ‘그래봐야 인생, 그래도 인생’ 산문집 한 권과 ‘리셋’, ‘인간의 법정’, ‘밤의, 소설가’까지 세 권의 소설을 냈다. 이뿐인가. 소설 ‘인간의 법정’은 뮤지컬로도 제작됐는데, 조 변호사는 이 뮤지컬의 각본까지 맡아 각본가로도 데뷔했다.
“변호사 일은 30년째 하고 있어요. 문화예술, 엔터테인먼트 관련 업무를 주로 합니다. ‘평판 관리’라고 하는 대중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한 분야도 담당하고요.”
이 정도 이력이면 작가로 전업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조 변호사는 변호사로 오래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전업 작가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이유죠.(웃음) 두 번째로 변호사는 마음만 먹으면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이 일이 결국 소설의 토양이 됩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간접 경험을 많이 할 수 있거든요.”
버스에서 설계하는 소설
조광희 변호사는 뮤지컬 각본 작업도 소설 집필도 변호사 일을 하며 병행했다. 무척 바쁜 일상이었을 텐데 어떻게 일의 균형을 잡았을까? 작품들이 그의 일상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것은 소설을 쓰는 그의 방식과도 관련 있었다. 조 변호사는 ‘필 꽂히는’ 대로 써 내려가면서 수정을 거듭하기보다, 처음부터 구조를 짜임새 있게 구성한 뒤 살을 붙이는 방식으로 글을 쓴다. 소설을 설계하는 셈이다.
“처음에는 어떤 주제로 글을 쓸지 아이디어와 콘셉트 차원에서 생각합니다. ‘밤의, 소설가’는 ‘10여 년 전 알았던 여성이 소설가가 돼 법률사무소에 나타나 일을 맡긴다’는 내용으로 시작했어요. 아이디어는 버스 타고 출퇴근할 때, 산책할 때, 카페에 앉아 커피 마실 때 등 일상에서 떠올리는 편입니다.”
다음으로 시놉시스를 쓰고 트리트먼트를 만든다.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조 변호사는 영화에서 쓰는 개념을 가져와 설명했다. 시놉시스와 트리트먼트 역시 산책하다가 휴대폰에 메모하거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며 작성하는 방식으로 채워나간다.
“시놉시스는 한 페이지 정도의 줄거리를 쓰는 일이에요. 인물과 사건을 그럴듯한 구조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한 페이지지만 의외로 쉽지 않습니다. 시놉시스가 완성되면 이를 바탕으로 20~30장짜리 트리트먼트를 씁니다. 좀 더 자세한 줄거리죠. 인물이나 사건 설명이 더 상세하게 나와야 합니다. 저는 트리트먼트 작업을 할 때 챕터를 나누어서 써요. 트리트먼트가 일종의 설계도 역할을 하는 셈이에요. 여기까지 완성되면 이제 조금은 기계적인 작업이 됩니다. 살을 붙이는 과정이죠. 이때는 책상에 딱 붙어 앉아 쓰는데요. 주로 집에서 하지만 자주 가는 카페도 있고, 어떤 때는 2~3일 정도 여행을 떠나 작업하기도 합니다.”
소설을 처음부터 설계한다는 건 꽤나 논리적인 작업이다. 변호사라는 그의 직업적 특성이 소설 쓰기에도 반영된 듯한 방식이다. 하지만 ‘밤의, 소설가’는 기존과는 좀 다르게 완성됐다. 처음에는 한 문예지에서 작품 요청을 받아 쓰게 됐는데, AI는 비서 역할로만 등장시킬 생각이었다. 그런데 작품을 완성한 후 문우들과 대화하다가 생각이 확장됐다.
“발상의 전환이 되면서 ‘소설 쓰기에 관한 소설’이라는 주제까지 다루게 됐어요. 소설 속에 소설 집필 과정 자체를 노출시키는 일종의 메타 소설이 된 셈인데요. AI에게 창작의 영토를 빼앗기는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지, 소설을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러면 소설이라는 장르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생각이 꼬리를 물더라고요.”
‘왜 사는가’에 대한 고찰
AI ‘레비’와 함께 소설을 써 내려가던 소설가 건우의 고민을 따라가다 보면 조광희 변호사가 작품을 통해 던지고 싶었던 질문을 만나게 된다. ‘저자의 위태로움’이다.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지만, 동시에 ‘대중과 시장이 요구하는 것’도 고려해야 하는 모순에 빠진다.
“요즘 사람들은 고전문학을 잘 안 읽잖아요. 그렇다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만 쓰면 달콤한 글만 쓰게 되죠. 저자라는 지위 자체가 위태롭다고 보는 지점이에요. 그걸 AI가 가속화하는 거죠. 심지어 AI와 소설 쓰기를 경쟁합니다. 나보다 더 글을 잘 쓰는 AI라니, 그렇다면 저자로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고민에 빠지게 되겠죠. 차라리 AI에 기대는 노예가 될까 고민도 하게 되고요.”
벌써 AI는 단순노동의 많은 부분을 대체하고 있다. 변호사 업무에도 쓰이니 말이다. 조광희 변호사가 처음 변호사가 됐을 때만 해도 판례가 전산화되지 않아 법원도서관에서 종이 파일을 뒤져야 했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모든 판례를 검색할 수 있고 AI에게 말하면 대신 검색해줄 수 있는 지경에 가까워지고 있다. 실제로 AI가 영문 계약서를 번역해주는 일은 제법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소설 속 소설가는 AI와 소설 쓰기에 관해 경쟁하지만 현실에서는 변호사가 AI와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소송 기록을 주면 논점이 뭔지 분석해내는 것까지 AI가 해낼 거예요. 그렇다면 변호사의 주요 업무는 재판에서 어떻게 전략적인 접근을 할 것인가, 법정에서 증인의 말을 신뢰할 것인가 아닌가 등의 인간적이고 섬세한 일에 집중하는 형태로 바뀔 거라 봅니다. ‘일’이라는 영역에 AI가 계속 침식해 들어오니까요. 결국 인간은 어떤 일을 도대체 ‘왜’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연결됩니다.”
예술, 문학, 바둑, 체스 등 많은 분야에서 AI는 인간의 창조성과 지적 능력을 대체하고 있다. 조광희 변호사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어떤 일을 할 때 ‘무엇을 이루고 싶다’는 목표에 도달하리라는 희망을 AI라는 존재가 단 몇 초 만에 허물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 활동을 왜 하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고민에 빠지게 돼요. 그걸 고민하다 보면 ‘산다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까지 이어지겠죠. 글쓰기도 그렇습니다. 소설을 쓴다는 행위가 단순히 책을 팔고자 하는 일은 아닙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설로 토로해내는 일종의 쾌감과도 연관된 일이거든요. 자신의 미학적인 정열 때문에 글을 쓰는 건데, AI가 소설을 더 잘 써내는 시대가 온다면 미학적인 쾌감을 빼앗기는 거죠.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위협받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품으로 녹아드는 삶
조광희 변호사의 이런 고찰과 경험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첫 소설 ‘리셋’은 주인공인 변호사 강동호가 현직 서울시장의 의뢰를 받아 미스터리한 정치적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그린 내용이다. 돈과 권력, 그것을 쫓는 정치 세력 간의 블랙 커넥션을 파헤치는 내용인데, 아무래도 선거캠프에서 일했던 경험이 도움이 됐을 테다.
두 번째 소설 ‘인간의 법정’은 주인을 살해한 AI ‘아오’가 재판을 받는 이야기다. AI와 인간의 관계, 생명과 소수자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제시한다. 이 책이 뮤지컬로 탄생한 것은 뮤지컬 ‘그날들’을 작업했던 장소영 음악감독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무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영화 각본처럼 썼고, 장 감독의 도움으로 극에 맞춰 수정을 거듭해 완성할 수 있었다. 젊은 시절 시를 습작했던 경험이 아리아 가사를 쓰는 데 도움이 됐고, 영화사 대표로 일하며 수많은 영화 시나리오를 본 것이 체득되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도 반영됐다.
세 번째 소설 ‘밤의, 소설가’는 두 번째 소설을 쓰면서 AI에 대해 많은 자료를 찾아봤던 것이 도움이 됐다. 어느 정도 AI에 대해 학습되어 있었기에 이야기를 확대해갈 수 있었다.
차기작으로 준비 중인 소설 ‘도시의 은자’는 대중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이야기다.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자신은 정작 숨어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계획이다. 소설뿐 아니라 드라마도 준비하고 있다. 영화감독인 동료 변호사와 함께 드라마 기획을 완성하고 대본을 쓰고 있다. ‘올라운더’의 면모가 돋보이는 행보다. 분야가 무엇이든 그가 만드는 작품에는 그의 삶이 녹아 있다. 아니, 작품으로 녹아드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차기작들에도 역시 변호사가 나올 것 같다. 그는 “꼭 변호사를 등장시켜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지만, 경험과 인생관을 녹인 캐릭터를 고민한다면 “변호사가 자주 등장할 가능성이 높겠다”며 웃었다. 어쩌면 ‘변호사’라는 등장인물이 그의 상징이 될 수 있으리란 생각도 들었다.
소설 쓰는 변호사 조광희가 있고, 그 소설 속에서 변호사이면서 뮤지컬을 만드는 인물이 있고, 소설 속에서 만들어지는 뮤지컬에서 변호사를 연기하는 배우가 있을 것만 같다. 마치 ‘밤의, 소설가’ 작가의 말에 그가 남긴 말처럼.
여기 ‘밤의, 소설가’를 쓰는 조광희가 있다. 소설 ‘밤의, 소설가’에도 소설을 쓰고 있는 남자가 있다. 그 남자가 쓰는 소설 속에서 ‘먼저 상상하고 나중에 움직이다’라는 소설을 쓰고 있는 여자도 있다. 소설 ‘먼저 상상하고 나중에 움직이다’에서도 주인공인 여자가 소설을 쓰고 있을 것이다.
-‘밤의, 소설가’ 中
어떻게 놀아야 잘 놀았다고 소문이 날까?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동행이 있다면 더욱 고민이 필요하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여행관이 맞지 않으면 ‘갈 때는 같이, 올 때는 따로’가 된다는 괴담(?)도 들린다. 비행기에 몸을 싣기 전 나와 동행의 성향·취향을 계획에 적절히 반영한 뒤 실행해보자. 여행 말미에는 ‘잘 놀았다!’는 말이 절로 나올지 모른다.
결국 여행의 목적은 ‘환기’다. 나를 위협하는 그림자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다. 김영하 작가는 저서 ‘여행의 이유’에서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기왕 어딘가 향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미리 짜인 틀에 맞게 움직여야 하는 패키지여행보다 내 취향과 상황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자유여행은 어떨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계획해야 할지 막막할 때 참고할 만한 몇 가지가 있다.
너, 내 동료가 되라! 여행 궁합 보기
가족여행에서 하지 말아야 할 십계명이 화제다. ‘부모님 버전’은 ‘아직 멀었냐, 음식이 달다, 음식이 짜다, 겨우 이거 보러 왔냐, 조식 이게 다냐, 돈 아깝다, 이 돈이면 집에서 해 먹는 게 낫다, 이거 무슨 맛으로 먹냐, 이거 한국 돈으로 얼마냐, 물이 제일 맛있다’가 포함됐다.
‘자녀 버전’은 ‘똑같은 거 물어본다고 짜증 내기, 1시간 이상 외출 준비하기, 하루 종일 휴대전화 하기, 30분 이상 맛집 줄서기, 음식 사진 다 찍은 다음 먹기, 못 알아듣는 줄임말 쓰기, 사진 다시 찍어줘, 조금만 더 가면 돼, 다시는 같이 여행 안 올 거야, 엄마는 몰라도 돼’가 꼽혔다.
평소 잘 통하는 사이여도 여행지에서 생각지 못한 문제로 부딪힐 수 있다. 따라서 여행 전 서로의 성향을 확인하는 편이 좋다. 합의점을 찾으며 맞춰갈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동행이 없다고 해도 본인의 스타일을 파악해두면 도움이 된다.
Plus Check
여행 성향 체크리스트
겉핥기는 그만, 맞춤 테마 찾기
# 책방에서 얻는 감성: 한정된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명소를 둘러보며 ‘도장 깨기’(유명한 도장을 찾아가 그곳의 실력자들을 꺾는 것처럼, 특정 분야에서 어려운 장벽이나 기록 따위를 넘는 일) 하듯 다녀본 경험이 있는가? 몇 개국 몇 도시를 다녀왔는지 세어보는 재미도 있지만, 낯선 공간과 마음을 나누며 고유의 기억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나에게 맞는 테마를 잡아보길 권한다.
아직 목적지와 테마를 선정하지 못했다 해도 괜찮다. 여행 관련 서적을 소개하는 책방을 방문해 아이디어를 얻어보자. 뮤지컬 주인공의 대사 한 줄에 감명받아 해당 장소를 뒤따르는 이야기, 현지인들의 생생한 삶을 포착할 수 있는 마트와 슈퍼마켓 중심으로 돌아다니며 맛있는 상품을 발견하는 이야기, 유명 화가에 대한 단서를 수집하러 무작정 떠난 이야기 등 저마다의 가치를 찾는 과정을 엿보다 보면 어느새 묻어뒀던 로망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걸 느낄 테다. 고른 책을 한 손에 들고 여행 다니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다.
Plus Check
가볼 만한 여행 책방(자세한 영업시간은 홈페이지 확인)
책방 여행마을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17길 57 지층. 월·목 정기 휴무. 여행 관련 독립출판물과 여행 에세이를 전문적으로 취급한다. 책방지기는 왕초보 여행 짜기, 맥주 마시며 여행 수다, 부루마블로 여행하기 등 관련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책을 만들고 싶은 이에게 한컴으로 책 만들기 수업, 꾸준히 글쓰기 모임을 통해 독립출판물 제작을 돕기도 한다. 캠핑 장비로 분위기를 낸 공간이 돋보인다.
책크인 :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29안길 29 2층. 영업일은 매달 상이. 매달 열흘간 여행을 떠날 정도로 진심인 책방지기는 여행사도 운영하고 있다. 여행지에서 만난 인상적인 카페 혹은 근사한 맛의 커피를 만나면 원두를 구매하고 돌아와 ‘이달의 원두’로 사용한다. 매달 세계 곳곳의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셈이다. 와인도 판매한다.
공간인흑석 : 서울시 동작구 흑석로5길 94, 1층. 예약제 북카페. 시즌별·나라별로 새로 출간된 여행책을 전시 중이다. 러시아, 중국, 몽골, 스웨덴, 독일 등 해외 서적도 보유하고 있다. 2~4층은 게스트하우스 및 임대주택, 옥상에는 셀프 사진관이 마련돼 있다.
스페인책방 : 서울시 중구 퇴계로36길 29 기남빌딩 302호. 일요일 정기 휴무. 스페인 사진집과 여행 에세이를 꾸준히 펴내던 독립출판 제작자들이 연 책방. 스페인어 문화권의 문화와 예술을 소개한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책과 원서도 있다. 명확한 테마가 있는 장소라 스페인 여행을 계획하거나 다녀온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 AI가 안내하는 코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가기 위해 일정을 짜려면 긴 시간이 걸린다. AI는 우리의 여행 코스를 구성해줄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원하는 방향과 인원수, 기간 등을 입력하거나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명소를 추천받을 수 있다. 다만 여전히 오류가 조금씩 있고 면밀하지 않기 때문에 참고만 하거나, ‘AI의 말대로’ 떠나는 여행을 시도해보는 데 의의를 두자.
Plus Check 참고 홈페이지
어렵게만 느껴진다고? 작은 목표 세우기
장소 위주로 계획을 짜기보다 나만의 목표를 정해 챌린지를 시도하는 방법도 있다. 우선 여행의 목적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Plus Check
예시에 따른 추천 과제
인간관계에 지친 마음을 달래고 싶은 사람 : ‘여행 기간 타인에게 하루에 세 번 이상 연락하지 않기’, ‘일상과 관련 없는 현지인 친구 한 명 사귀기’, ‘한 시간씩 바닷가에서 멍때리기’
루틴을 잃어 건강을 되찾고 싶은 사람 : ‘하루에 만 보 이상 걷기’, ‘서핑·승마·스쿠버다이빙 등 레포츠 한 종목 배우기’, ‘간편식 끊기’, ‘7시간 이상 수면하기’
나쁜 습관을 고치고 싶은 사람 : ‘동네 반경 5km 안에서 생활해보기’, ‘전자기기 없이 살기’,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기’, ‘최소한의 돈으로 살기’
흔한 기념품보다 색다른 물건을 수집하고 싶은 사람 : ‘그 나라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향수 구매하기’(뿌릴 때마다 해당 장소를 떠올릴 수 있다), ‘여행지의 언어로 된 좋아하는 책 찾아보기’
정보통신기술(ICT) 혁신을 기반으로 전 국민 건강을 보장하는 ‘헬스케어 4.0 시대’가 열렸다. 코로나19 이후 원격 진료가 도입되었고, 인구 고령화에 따라 만성질환자가 증가하면서 디지털 헬스케어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전 세계 시장은 2026년 약 826조 원 규모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건강하고 편리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 뒤에는 우려되는 점도 존재한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질병의 예방·진단·치료, 건강관리, 연구개발 및 사후관리 등 건강 증진과 관련된 일련의 활동을 모두 포함한다. 전문가들은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디지털 헬스케어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법과 제도를 중심으로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해 연구하는 이호용 한양대학교 정책학과 교수는 “현재 고령자들은 탈시설화와 커뮤니티 케어를 원한다. 병원이나 시설을 벗어나 집과 지역사회에서 케어받고 싶어 하는데, 이제 병원을 가지 않고도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면서 “그러한 이유로 도시보다 상대적으로 고령자가 많은 농어촌에서 디지털 헬스케어의 유용성이 더욱 발휘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의료진에 의한 사후 치료 중심에서 환자 스스로 참여하고 자기 결정권이 강조되는 사전적 예방·관리 중심으로 보건의료의 패러다임이 변화된 점도 촉발 요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스마트 기기와 AI 의사
디지털 헬스케어의 필요성이 증가함에 따라 국내 주요 기업들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최근 추세는 ‘스마트 웨어러블 디바이스’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몸 상태를 직접 체크하고 관리하는 기능을 갖춘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스마트폰을 연동하는 시스템이다. 이를 활용하면 일상에서 병원에 가지 않고도 건강관리가 가능하다. 당뇨병, 고혈압, 심장병 등을 앓고 있는 고령자에게 특히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연내 웨어러블 헬스케어 기기 ‘갤럭시 링’ 출시를 앞두고 있다. 장시간 착용이 용이한 반지 형태로 만들어 기존 스마트워치의 한계를 넘겠다는 목표다. 기기는 365일 24시간 사용자의 건강을 모니터링한다고 알려졌다. 수면 패턴 및 심박수, 혈압 등도 측정 가능하다.
카카오 자회사 카카오헬스케어는 당뇨병에 주목했다. 지난 2월 인공지능(AI) 기반 모바일 혈당 관리 서비스 ‘파스타’를 내놓았다. 당뇨병 관리 솔루션 최초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인증도 받았다. 출시 두 달 만에 누적 조회수 1만 명을 넘어서면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롯데헬스케어는 기기 연동을 통해 지난해 9월 출시한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플랫폼 ‘캐즐’을 더욱 보강한다는 계획이다.
헬스케어 기기는 예방을 넘어 의료 현장에서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현재 CT나 MRI 등 촬영 결과 판독, 수술 등에 AI가 활용되고 있다. 네이버는 2020년 사내에 네이버헬스케어연구소를 설립했으며, 로봇수술 권위자로 꼽히는 나군호 전 세브란스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를 소장으로 영입했다. AI 기술로 의료진의 업무를 간편하게 하는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으며, 연구소 내에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디지털 헬스케어의 의료적 역할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느냐는 의견도 나온다.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비대면 진료 또한 가능해졌기에 조만간 AI가 의사를 대체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이른바 ‘AI 의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AI 의사의 안전성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할 수 없으며, AI 의사가 의료사고를 내면 법적 책임은 누가 물어야 하는지 등의 문제도 거론된다.
이호용 교수는 “AI가 병증에 대한 이해 및 분석과 판단, 그에 따른 처방에 대한 의견도 낼 수 있어 의사의 주된 업무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AI를 의사라는 직업과 동일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판단된다”면서 “인간에 대한 판단은 그것이 무엇이든 인간이 하고, AI는 도구 혹은 어시스턴트 역할에 그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인간 존엄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는 가능성은 배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파스타로 당뇨 잡으세요”
김경화 카카오헬스케어 매니저 인터뷰
김경화 매니저는 요즘 ‘파스타’ 홍보로 강연·미팅 등을 다니느라 바쁘다. 14년간 간호사로 일했던 그는 2022년 카카오헬스케어에 합류해 파스타 앱 기획을 담당했다. ‘당뇨는 잘못된 생활습관병’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 파스타는 한국인의 혈당 관리를 돕는다.
파스타는 ‘실시간 혈당 측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차별점으로 내세웠다. 스마트폰 앱과 연속혈당측정기(CGM)를 연동한 덕이다. CGM은 과거처럼 혈당을 재기 위해 채혈을 할 필요가 없고, 신체에 부착하기만 하면 된다.(보통 팔에 부착한다) 현재 파스타와 연동되는 CGM은 두 개로 국내 기업 아이센스의 ‘케어센스 에어’와 미국 기업 덱스콤의 ‘G7’이다. 앱 자체는 무료지만, CGM은 10만 원 정도 비용이 든다. 김 매니저는 금전적인 부담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당뇨병에 걸린 뒤 고치려고 하면 더 큰 돈이 들어간다”고 전했다.
김경화 매니저는 부모님과 시부모님에게 CGM을 부착하고 파스타를 이용하게 했다. 특히 시아버지의 경우 ‘뭐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라는 반응이었지만, 실시간 혈당 변화를 눈으로 보고 깜짝 놀랐다고. 김 매니저는 “아버님께서 경각심을 많이 느끼셨다. 음식도 건강하게 드시고 걷기 운동을 하는 등 습관 자체가 아예 바뀌었다. 살도 많이 빠지셨다”고 설명했다. 또한 파스타는 음식 사진을 찍어 올리면 칼로리와 영양소를 분석해준다. 뿐만 아니라 혈당 관리에 대해 잘한 점과 아쉬운 점을 리포트로 제공한다. 혈당 수치를 가족,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어 관리의 지속성을 높여준다.
“놀랍게도 국내 당뇨병 환자가 6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해요.(2020년, 성인 30세 이상 기준) 당뇨병 전 단계 인구는 1583만 명으로 추정되고요. 당뇨병 인구를 1%라도 줄이는 것이 파스타의 목표입니다.”
의료 마이데이터 가능할까?
정부는 2025년 전 분야 마이데이터 확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마이데이터란 정보의 주체가 개인정보를 이동해 본인이 원하는 서비스에 활용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의료 분야의 마이데이터 사업은 ‘마이헬스웨이’라고 한다. 여러 병원에 흩어진 개인 의료 정보 조회 및 활용이 가능해지며, 궁극적으로 환자의 편의성을 높이고자 한다.
마이헬스웨이 시행을 위한 법적 근거가 미약해 법 개정 요구도 높았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5월 국회 보건복지위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은 ‘디지털 헬스케어법’(디지털 헬스케어 진흥 및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 의료법은 보건의료 데이터의 제3자 제공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개정안에서는 환자가 요청 또는 동의하면 병원이 개인의 건강·의료 정보를 민간 기업에 제공하도록 허용하고, 민간 기업이 개인 건강 정보를 가명 처리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12월 법안소위에 상정됐지만 시민단체 및 의료계가 개인정보 유출 우려로 반대해 보류 판정을 받았다.
그러한 가운데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1월 ‘의료법 일부 개정 법률안 입법 영향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의료법이 통과되면 개인 맞춤형 의료 서비스, 신약, 의료기기, 질병 진단 기술 등 개발에 활용돼 긍정적인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온다고 예상했다. 다만 개인정보 유출, 오·남용 우려가 공존한다고 분석했다. 법안에 대해 산업계를 대표해 카카오헬스케어는 찬성했으나,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는 신중해야 한다는 상반된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이호용 교수는 “의료 데이터는 개인정보 중 민감한 정보에 해당하고 보호성이 강조되는 데이터다. 그러나 개인 데이터 활용에 대한 규제에 치중하면 정보 보호라는 가치는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밝은 미래는 보장할 수 없다”면서 “데이터의 보호와 활용 중에 어느 가치를 중시할 것인가는 사회의 공감대적 가치와 경제 상황 등을 모두 고려해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와 맞물린 세계적인 흐름은 기술 중심 사회다. 선진국은 의료 데이터 활용 규제를 약화하고 산업 발전에 방점을 두고 있다. 이 교수는 “우리는 맹목적인 기술 중심 사회를 우려하고 인간 중심 사회로 회귀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면서 “디지털 헬스케어로 발전하는 산업 또는 회사가 거대 자본으로 권력화되지 않도록 국가가 개입하는 분산형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도움말 한양대학교 정책학과 교수]
김광석 ‘사랑이라는 이유로’, 김건모 ‘아름다운 이별’, 박진영 ‘너의 뒤에서’, 성시경 ‘내게 오는 길’, 신승훈 ‘I Believe’, 엄정화 ‘하늘만 허락한 사랑’, 임창정 ‘그때 또 다시’…. 1990~2000년대 부드러운 리듬으로 우리의 마음을 헤아려주던 김형석 작곡가. 특유의 감성은 어쩌면 여름 초입과 닮았는지도 모른다. 비가 촉촉이 내리는 날, 피아노 선율을 곱씹으며 옛 추억에 잠겨 있노라면 귀를 시원하게 때리는 전자음악과는 또 다른 기분을 느끼게 될 테다.
김형석의 여름
‘작곡가의 여름’을 주제로 화보 촬영을 진행했는데 어땠나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이 시점에 잘 어울릴 법한 의상들을 입어서인지 정말 휴가 온 기분이 드네요. 밖에는 비가 오고, 담장에 매달린 넝쿨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걸 보고 있자니 평온해지는 느낌이에요.
이 계절에 떠오르는 악상이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너무 빠르거나 느리지 않은 미디엄 템포 음악이 먼저 떠올라요. 긴장이 풀리고 편안해지죠. 드라마 ‘눈이 부시게’ OST인 하림의 ‘소풍’처럼요. 하림이 묵직한 목소리로 ‘인생의 모든 게 아름다웠고 선물 같았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에 또 웃자’고 노래해요. 담백하게 피아노로만 작업했는데, 훨씬 호흡이 섬세해진 것 같아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양한 악기와 화려한 효과음이 섞인 노래도 물론 좋지만, 여름만의 따스한 정취를 잘 담았다고 생각해요.
보통 휴가를 어떻게 보내나요?
가족들이 하와이에 있어서 두 달에 한 번 정도 가요. 워낙 물을 좋아하는데, 바닷가에 멍하니 앉아 있기만 해도 충전이 돼요. 산은 오르기가 좀 힘들고.(웃음) 여행 가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최대한 새로운 장소에 집중하려고 해요. 아무래도 쉬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특정 경험과 기억을 녹여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편이라서요. 본격적으로 영감을 얻고자 하면 건반 하나 들고 혼자 떠나기도 합니다. 제주도 핀크스 포도호텔이라고, 세계적인 건축가 이타미 준이 만든 호텔을 종종 방문해요. 더 깊게 내 안으로 파고들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늘 건반과 함께네요. 촬영장에 도착해서 꺼낸 첫마디도 ‘와, 피아노가 있네?’였어요.
촬영장에 피아노가 있어서 너무 기뻤어요. 가장 친숙한 악기거든요. 아버지가 음악 선생님, 어머니가 피아노 선생님이셨어요. 돌이켜보면 최고의 환경이네요.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자기 전까지 자연스럽게 피아노 소리를 들었죠. 데뷔할 즈음(1989년)에는 당시 활동하던 거의 모든 가수의 건반 세션을 맡았고요. 작곡 프로그램으로 노래를 만들 때도 있지만, 중심은 피아노예요. 무작위로 치다가 테마를 발견하고, 아이디어를 얻어요.
창작자이기 때문에 일과 쉼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을 것 같아요.
작곡 과정이 일이자 쉼이에요. 이 닦고 세수하고 잠자는 것처럼 당연하게 여기고요. 어떤 경우든 이걸 소리로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습관처럼 고민해요. 반복되는 생활을 하더라도 날씨나 기분,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이 매번 다르니까. 오늘 촬영하고 인터뷰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예요. 매 순간 나에게 물음표를 던지는 겁니다. 명확한 공정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유기적으로 모든 요소가 다 얽혀 있죠. 쉽지는 않지만 게을리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가끔 스트레스를 받진 않나요?
오히려 작곡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이에요. 배출구라고 해야 하나. 감정을 꾹꾹 눌러 담고 있다가 안으로 곪는 것보다 나아요. 그렇게 생각해야 덜 힘들지 않을까요.
무한히 확대된 음악 세계
어느덧 작업한 노래가 1500곡가량 된다고 들었어요.
하하, 그렇게 됐어요. 최근엔 ‘사계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옛날 발표했던 음악을 재구성해보고 있습니다. 의뢰를 받아 작업할 때는 근본적으로 내가 원하는 노래가 아니라 가수를 돋보이게 할 노래를 만들어야 해요. 그가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스타일의 음악을 연구해야 하죠. 제 취향과 상관없이요. 하지만 사계 프로젝트는 예전부터 리메이크하고 싶었던 노래를 자유롭게 골랐어요. 첫 번째 트랙은 드라마 ‘상어’의 OST인 ‘천국과 지옥 사이’예요. 보아도 너무 잘 불러줬는데, 백지영의 슬픈 목소리를 만나면 어떻게 바뀔지 궁금했습니다. *매 분기별로 김형석 작곡가의 구보를 활용한 리메이크곡이나 신곡을 발매하는 프로젝트.
굵직한 이력을 가졌음에도 AI에 위기감을 느꼈다고요.
한 박람회의 주제가 공모전 심사에 참여해 최우수작을 뽑고 보니 그게 AI를 활용해 만든 곡이었어요. 상을 줘도 되나, 이제 난 뭐 먹고 살아야 하나 걱정이 됐어요. ‘도레미’를 배우지 않아도 명령어만 잘 설정할 줄 알면 그럴싸한 노래를 몇 분 만에 만들 수 있다니. 창작의 문턱이 확 낮아진 거죠. 미래학자가 아니라 섣불리 예단하긴 어렵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결국 아이디어가 전부인 시대가 될 것 같아요. 예술보다는 예술가가 훨씬 주목받을 겁니다.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만들었는가, 삶의 결과물을 어떤 스토리로 대중에게 소구할 것인가가 중요하겠네요.
많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네요.
내면의 여러 소리를 더 예리하게 들어야 한다고 느꼈어요. 그러려면 내 경험에 의한 선입견이나 고집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흡수하고 연구해야 하고요. 나이 들수록 점점 그런 면모가 사라질까 봐 신경 쓰여요. 가치 있다고 여기는 기준이 굳어지게 될지도 모르죠. 예전과 달리 감성보다 이성이, 이상보다 현실이 앞서게 돼요.
나이 듦이 주는 긍정적인 변화도 있지 않을까요?
요즘 들어 삶은 유한하다는 걸 부쩍 체감해요. 여전히 뭔가를 잘 해내고자 하는 욕심은 있지만 좀 더 가치 있는 방향으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됐죠. 어릴 땐 나의 만족을 위해서만 일했다면 이제는 내 아이와 후배들, 그리고 대중을 위해 작업하려 합니다. 작업의 의미가 확대된 셈이에요.
끝나지 않을 성장
후배들을 보면 어떤가요?
다들 너무 잘해요. 오히려 배우는 부분도 많고요. 신선하고 감각적인 음악을 통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즐거워요.
주목하는 아티스트는 누구인가요?
선우정아 노래에 푹 빠져 있어요. 크러쉬, 자이언티도 좋아해요. 보석 같은 존재죠. 요새 양카일과 작업도 해요. 색다른 시각을 접할 계기가 되더라고요. 계급장 떼고 음악이라는 공통 언어를 통해 서로를 이해시키고 이해하는 것. 그게 진짜 교류라고 생각해요. 가르치고 이끌어준다기보다 같은 업계에 몸담은 이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영감을 얻어요. 제 음악과 또 다른 음악이 융화되는 과정이죠.
김형석의 감성, 김형석의 음악을 어떻게 느꼈으면 하나요?
아무리 원망스럽고 미워도 지나고 보면 그런 감정이나 상황은 희미해지잖아요. 결국 추억으로 여기고 용서하게 되죠. 제 음악이 상흔을 어루만져주는 수단이자, 추억과 용서의 계기가 됐으면 해요.
앞으로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요?
감성을 끄집어내야 하는 직업을 가져서인지 꽤 예민한 편이에요. 겉으로는 부처님 미소를 짓고 있지만요.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때가 있어 미안하면서도 죽을 때까지 곡을 쓰다 가고 싶어요. 내가 일흔 살이 돼서도 할 수 있는 음악이 뭘까 고민하죠. 드라마, 영화, 광고, 뮤지컬 등 부지런히 활동하고 재능도 나누고. 그러면 여한이 없겠어요.
Bravo Question - 나에게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음악에 대한 관심, 애정, 집중. 한 분야에 오래 있다 보면 퇴색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고요. 사실 1500곡을 쓸 때마다 1500번의 슬럼프를 겪었어요. 그때마다 이론은 빠삭해지겠지만, 감각이 느는 건 아니에요. 경험이 곧 성장은 아니더라고요. 얼마 전 쓴 노래가 10년 전 노래보다 별로인 경우도 있어요. 그럼에도 변하지 않았던 건 저 세 가지예요. 그래서 꾸준히, 오래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Summer Playlist - 김형석이 꼽은 여름 노래
김광석-사랑이라는 이유로
김조한-날 봐요
박진영-영원히 둘이서
존박-굿데이
하림-소풍
●Exhibition
◇고인물전(古人物展)
일정 6월 30일까지 장소 화정박물관
화정박물관이 소장한 초상화나 옛사람을 소재로 한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다. 회화, 공예품 등 약 90점을 볼 수 있으며, 총 4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 섹션 ‘Portrait’(초상화)에는 한국과 중국의 초상화가 전시됐으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해본다. 조선시대 문신 이정영 초상과 프랑스 화가 프라이가 그려 1899년 영국 잡지 ‘베니티 페어'에 실린 고종황제의 캐리커처 등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섹션은 ‘Ideal Life’(이상적 삶)로 ‘서원아집도’, ‘동파입극도’ 등을 통해 속세를 떠나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살았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알아본다. 세 번째 ‘Extraordinary Life’(특별한 삶)에서는 ‘여동빈’, ‘포화대상’ 등 신선이 된 인물이나 신비한 능력을 가진 승려 이야기를 다룬 그림을 볼 수 있다. 마지막 ‘Into the Real Life’(실생활 속으로)에서는 ‘어촌도’, ‘어제경직도’ 등 당시의 생활상을 묘사한 작품, 그리고 ‘삼국지’와 같이 당대 인기를 누렸던 대중문화 작품을 알아본다. 화정박물관 측은 “종교와 문화, 사상 등 인간의 관심사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어떻게 표현됐는지 살펴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필립 파레노 : 보이스
일정 7월 7일까지 장소 리움미술관
전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프랑스 작가 필립 파레노의 국내 첫 대규모 전시회다. 1990년대 초기작부터 대형 신작까지 파레노의 대표작 4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가장 주목받는 작품은 신작 ‘막’(膜)으로 야외 데크에 설치된 높이 13.6m의 타워 구조물이다. 42개의 센서는 기온, 습도, 풍량, 소음, 대기오염 등 외부 환경 정보를 수집해 새로운 언어 ‘∂A’(델타 에이)를 만든다. 이 언어는 배우 배두나의 목소리를 학습한 AI를 통해 전시장 곳곳에서 들린다. 전시 기획자인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파레노 개인전은 ‘보는 전시’가 아니라 하나의 공연과 같다. 작품이 계속 진화하고 변화하는 시간을 경험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Book
◇변방에서 중심으로(문재인·김영사)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2년 만에 첫 회고록을 펴냈다. 책은 문 전 대통령 재임 기간 대부분을 보좌했던 최종건 전 외교부 차관이 질문을 던지고 그가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김정은 위원장과의 도보다리 회동,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남·북·미 판문점 회동 등 재임 당시의 외교사적 사건을 문 전 대통령의 시각으로 서술했다.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을 비롯해 일본의 수출 규제 대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등 국민의 생명 및 안전과 관련된 주요 결정의 뒷배경 이야기도 생생하게 전한다.
더불어 문재인 전 대통령은 파트너였던 지도자들(김정은, 트럼프, 아베)와의 물밑 협상 과정과 그들에 대한 평가 또한 최초로 공개한다. 외교·안보 성과뿐 아니라 아쉬움과 한계, 성공과 실패 요인, 정책에 대한 공과 판단을 솔직하게 기록했다.
책은 ‘미국의 손을 잡고’, ‘균형 외교’, ‘평화 올림픽의 꿈을 이루다’, ‘그리고 판문점’, ‘결단의 번개 회담’ 등 총 13장으로 이뤄졌다. 출판사 김영사는 “현재 국제 및 남북 정세에 대한 진단과 앞으로의 변화에 대한 희망과 조언을 담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조건에서 ‘대한민국에 외교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줄 것이다”고 밝혔다.
◇오십, 나는 재미있게 살기로 했다(이서원·나무사이)
30년 동안 3만 명을 상담해온 저자는 50대에는 자신이 가장 편하고 좋아하는 옷을 입어야 한다고 조언하며, 38가지 통찰을 제시한다.
◇AI 사피엔스 : 전혀 다른 세상의 인류(최재붕·쌤앤파커스)
‘포노 사피엔스’ 저자가 말하는 AI 시대 이야기로, 산업·분야별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한다. 특히 ‘팬더스트리’(팬덤+인더스트리)의 부상을 예측했다.
◇전국 맛집 가이드북(한국여행작가협회·상상출판)
한국여행작가협회 소속 작가 20명이 전국 팔도를 여행하며 직접 맛보고 엄선한 맛집 300곳의 정보가 담겼다. 맛있는 여행을 계획해보자.
●Stage
◇햄릿
일정 6월 9일 ~ 9월 1일
장소 홍익대학교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손진책
출연 전무송, 이호재, 박정자, 손숙, 정동환, 길용우, 김성녀, 길해연, 강필석, 이승주, 루나 등
연극 ‘햄릿’은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로,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뇌하는 덴마크 왕자 햄릿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이해랑 선생의 연출로 1951년 첫선을 보인 뒤 관객과 꾸준히 만나고 있다. 신시컴퍼니의 ‘햄릿’은 이해랑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2016년 초연됐으며, 2022년 재연을 거쳤다. 2년 만에 돌아오는 이번 공연에서도 연극계 원로 배우와 젊은 배우들이 호흡을 맞춘다. 60년 경력의 최고령 전무송을 비롯해 24명의 배우가 출연하며, 연기 경력만 900년에 달한다. 손진책 연출은 “햄릿의 통시성은 그대로 가져오되 더 감각적이고 격조 있는 현대의 햄릿을 선보이려 한다”며 “경륜 있는 배우들이 주축을 이루는 만큼 그들의 존재감과 연기력이 빛나는 무대를 만들겠다”라고 전했다.
◇메노포즈
일정 6월 13일 ~ 8월 25일
장소 한전아트센터
연출 이윤표
출연 문희경, 유보영, 조혜련, 서지오, 이아현, 김현숙, 류수화, 주아, 민채원, 신봉선
중년 여성의 고민을 유쾌하게 풀어낸 뮤지컬 ‘메노포즈’가 2018년 공연 이후 6년 만에 관객과 만난다. 메노포즈(Menopause)란 폐경을 뜻하는데, 근래에는 월경을 완성했다는 의미에서 ‘완경’으로 해석되는 추세다. 우연히 백화점 란제리 세일 코너에서 만난 네 명의 여성은 옥신각신하다 완경이라는 공통된 고민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문직 여성, 한물간 연예인 등 살아온 삶은 다르지만,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고통을 함께 나눈다. 그 과정을 통해 중년 여성에게 ‘완경기는 완성된 여자로서 또 다른 시작’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프랑켄슈타인
일정 6월 5일 ~ 8월 25일
장소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연출 왕용범
출연 유준상, 신성록, 규현, 전동석, 박은태, 카이, 이해준, 고은성 등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이 10주년 기념 공연을 펼친다.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신이 되려 했던 인간과 인간을 동경했던 피조물의 이야기다. 철학과 의학의 천재 빅터 프랑켄슈타인 역에는 유준상, 신성록, 규현, 전동석이 캐스팅됐다. 박은태, 카이, 이해준, 고은성은 빅터의 조수 앙리 뒤프레와 괴물 역을 맡는다. 엄홍현 EMK뮤지컬컴퍼니 대표는 “10주년 기념 공연으로 한국 공연계에 의미하는 바가 크다. 공연의 완성도와 관객들의 반응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전 세대가 함께하는 글로벌 영화 축제 '제16회 서울국제노인영화제‘가 오는 30일 개막한다.
올해로 16회를 맞은 서울국제노인영화제의 콘셉트는 ‘늙지 않은 노인; 당신과 나의 이야기’다. 기술과 자본에 부응하지 못한 늙음은 경시 받지만, 또 그 기술과 자본에 의해 쉽게 죽을 수 없는 노인이 되는 부조리한 현대사회를 말한다.
올해 상영작은 노인과 가족, 세대통합을 주제로 한 49개국의 장·단편 영화 75편이다. 30일부터 내달 3일까지 5일 동안 CGV피카디리1958에서 무료로 관람 가능하다. 그중 본심에 오른 45편은 개막식 현장에서 서울시장상이 수여된다.
단편경쟁부문은 서로 다른 색채를 가진 10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때론 남보다 멀게 느껴지지만 그 누구보다 소중한 가족의 모습을 담은 ‘가족에게 묻다’, 시스템의 빈틈을 예리한 시선으로 추적
하는 ‘사각지대’, 삶과 죽음이라는 철학적인 주제를 안고 깊은 통찰의 시선을 보여주는 ‘생과 수레바퀴 밑에서’ 등 노인과 가족, 다양한 세대를 주제로 국가 간 노년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올해 개막작은 안드레아 베스콘드, 에릭 메타이어 감독이 연출한 ‘빅 키즈’이다. 급식 중단 문제로 인근 요양원 식당을 이용한 초등학생들의 실제 경험담을 그렸다. 끊임없이 문제 제기되는 복지의 사각지대와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행착오 과정 안에 놓인 사회시스템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제 콘셉트인 ‘늙지 않은 노인’을 테마로 하는 다양한 특별초청프로그램도 만나볼 수 있다. 홍보대사 최귀화 배우와 함께 하는 핸드프린팅 행사와 더불어 다채로운 부대행사도 진행된다. 후원존, 포토존과 나만의 명함제작, AI필터로 노년의 내 모습 체험해 보기, 어르신이 그려주는 캐리커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영화제를 즐길 수 있다.
서울노인복지센터의 관장이며 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지웅스님은 “서울국제노인영화제는 ‘늙지 않은 노인’으로 다양한 세대와 함께 노인의 문제를 고민해 보고자 했다”며 “특히, 다양한 국가에서 제작된 양질의 작품을 소개하고 각기 다른 고민을 교류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 현상이 중대한 이슈인 지금, 세대 간의 이해와 공감을 넓히는 데 기여하는 대표적인 영화제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편 서울국제노인영화제는 노인과 노인문화뿐 아니라 삶과 죽음, 관계와 세대에 대해 질문하며 노년과 인생을 아우르는 깊이 있는 통찰을 제시해왔다. 특히, 국제노인영화제로서 다양한 국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나라별 노년에 대한 관점과 고민을 나누는 공감과 연대의 장으로 확장되어 가고 있다.
행사 관련 자세한 내용은 서울국제노인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옥상훈 네이버클라우드 AI SaaS 비즈니스 리더
온라인 게임에서 통용되는 단어인 본캐와 부캐. ‘본캐’는 주로 사용하는 본래 캐릭터, ‘부캐’는 본캐 생성 이후 만든 부차 캐릭터를 말한다. 근래 유명인들이 기존과는 다른 활동명과 캐릭터로 대중의 인기를 끌며 ‘부캐 열풍’이 일기도 했다. AI 전화 돌봄 서비스 ‘클로바 케어콜’을 성공적으로 이끈 옥상훈(53) 네이버클라우드 AI SaaS 비즈니스 리더에게도 그런 부캐가 있다. 바로 인스타그래머 ‘컵누들러’다. 아직 본캐만큼 왕성하진 않지만, 여러 가능성을 품고 일상의 감칠맛을 더하는 존재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부캐를 일컬어 ‘히든캐’(숨겨진 캐릭터)라고도 부른다.
먼저 본캐 이야기부터 해보자. 본캐 타이틀은 ‘네이버클라우드 AI SaaS 비즈니스 리더’. 얼핏 앞뒤 키워드만 떼어 보더라도 국내 굴지의 IT 기업인 네이버에서 특정 사업의 리더인 셈인데, 일단 본캐의 레벨도 심상찮게 느껴진다. 참고로 사스(SaaS)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를 뜻하는데, 대표적인 모델이 바로 ‘네이버클라우드’다. 옥상훈 리더는 한마디로 자신의 역할을 ‘BD’라고 소개했다. 여기에도 본래 뜻과 그만의 숨은 뜻이 담겨 있었다.
“흔히 업계에서 BD라고 하면 비즈니스 디벨로퍼(Business Developer)를 말합니다. 직역하면 사업 개발자인데, 대개 새로운 사업에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을 담당하죠. 그것도 맞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비즈니스 디자이너(Business Designer)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AI 생태계를 만들어 클라우드 사업을 키우고 파트너로 성장시키는 과정이 비즈니스를 디자인하는 듯한 느낌이 들거든요. 같은 단어지만, 제 나름대로는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요.”
본캐의 전환, 본업 모먼트 시작
옥상훈 리더의 대학 시절로 거슬러가 보면, 그때도 본캐와 부캐가 있었지 싶다. 한양대학교 90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생물학이 전공임에도 늘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더랬다. 그러다 졸업할 즈음 IT 소프트웨어 교육을 받았는데, 마침 관련 업계에서 개발자를 양산하던 분위기였다. 부캐도 쏠쏠히 키운 덕에 그는 IT 세계로 진입해 SI(System Integration) 개발자가 될 수 있었다. 부캐가 본캐로 전향된 것이다.
이후 본캐를 성장시키며 네이버와 인연을 맺었다. 2011년 입사 후에는 소프트웨어 개발이 아닌, 관련 사업을 만들고 제휴 맺는 업무를 맡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10여 년간 네이버 개발자센터 개편, 오픈 API 표준 제작, 네이버 D2 스타트업 팩토리 론칭 등 수많은 프로젝트를 담당해왔다. 최근 그가 집중하는 사업은 전화 돌봄 서비스 ‘클로바 케어콜’이다. AI 기술을 적용해 어르신의 말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기억까지 해내는 혁신적인 서비스로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를 계기로 시작된 사업이에요. 당시 코로나 감염자에게 발열 여부 확인 전화를 사람이 일일이 했는데, 어느 순간 확진자가 대폭 늘어나며 인력으로는 감당이 안 됐던 거죠. 처음에는 성남시와 협력해 전화 업무를 AI로 대체하는 시도를 했습니다. 이후 코로나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도입하는 지자체가 더 많아졌어요. 그러다 보니 서비스를 이용하는 지자체 쪽에서 아이디어를 주시더군요. 발열 여부만이 아니라 독거노인들의 안부를 확인하는 서비스로도 가능하겠느냐고요. 그렇게 부산 해운대구랑 도모해 처음 케어콜을 선보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초반 성적은 저조했다. 실제 사용자인 독거노인들이 보인 만족도는 50% 남짓이었다. 옥상훈 리더는 실패에 가까웠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기술을 고도화해나갔고, 생성형 AI와 하이퍼 클로바 기술 등을 적용했다. 초기 버전에서는 AI와의 자연스러운 대화가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이러한 문제를 극복해나가며 발전을 이뤄온 것이다.
“아무래도 대상자가 어르신이다 보니 AI 기술에 익숙하지 않으셨죠. 때문에 최대한 AI와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 덕분인지 업그레이드한 서비스로 조사했을 때는 90% 정도의 만족도를 나타냈습니다. 놀라운 성장이죠. 그런데 이런 피드백이 있더라고요. AI가 말귀도 알아듣고 공감해주는 건 좋은데, 이전 대화를 기억 못 하니 얘기를 반복해야 한다는 문제였죠. 결국 2022년에 기억하기 기능을 탑재해 출시했어요. AI가 질환이나 병원 이력 같은 걸 기억해주는 덕분에, 이제는 케어로봇처럼 어르신들의 건강관리 쪽으로 발전 가능성을 보고 있어요. 아직은 독거노인이나 취약계층으로 대상자가 한정되지만, 장차 누구나 자기 편의에 맞게 맞춤형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리라 전망합니다.”
상극의 맛을 더할 때 최고의 궁합
본업 이야기를 한창 하던 중에도 그의 시선은 호시탐탐 한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건 바로 촬영 소품으로 기자가 준비한 컵라면. 비닐봉지라는 베일에 가려진 컵라면들에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이제 본캐는 접고 부캐 이야기를 해보자고 운을 떼자, 그의 눈이 반짝거렸다.
“아까부터 계속 여기에 관심이 쏠려 있었습니다.(웃음) 좀 꺼내봐도 될까요? 이야, 다 새로 나온 것들이네요. 아직 못 먹어본 것들이에요. 어떻게 이렇게 골라오셨어요?”
옥상훈 리더는 신기한 듯 물었지만, 방법은 간단했다. 그의 인스타그램을 봤기 때문이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400여 가지 컵라면 리뷰가 올라와 있는데, 첫 사진은 늘 위에서 찍은 컵라면 뚜껑이다. 메인 페이지만 봐도 그가 어떤 컵라면들을 먹었는지 한눈에 보인다. 리뷰도 간단명료하다. 면발, 맵기, 염도 등을 5점 만점으로 표기하고, 총평도 한두 줄 정도로 짤막하게 남긴다. 올리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편리한 방식이지만, 한 가지 아쉬움은 있었다. 컵라면 종류가 워낙 많아 특정 제품의 리뷰가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쉽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맞습니다. 저도 늘 새로운 컵라면을 사려고 하는데, 가끔은 ‘이걸 내가 먹어봤던가?’ 헷갈릴 때가 있어요. 오죽하면 아예 내가 컵라면 검색 엔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니까요. 그런데 뭐 마음만 먹고 아직 시도는 못 해봤습니다.”
지금의 컵라면 리뷰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시점도 클로바 케어콜이 탄생한 시기와 맞물린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며 바깥에서 타인과 식사하는 일이 어려워진 터였다. 혼자 먹는 식사이니 간편하면서도 기왕이면 요리다운 메뉴였으면 했다. 그 두 가지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는 게 컵라면이었던 것이다.
“그 전까지는 컵라면을 잘 안 먹었어요. 그런데 계속 먹다 보니 나름의 철학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항상 이야기하는 건 ‘컵라면은 요리’라는 거예요. 사람들은 그저 인스턴트식품 정도로 치부하지만 저는 하나의 요리로 인정해야 한다고 봐요. 궁극의 맛을 잘 응축해서 편리성을 극대화한 형태잖아요. 물만 부으면 끝나니까요. 게다가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면발 상태나 수프, 건더기 맛도 다양하고 훌륭해졌어요. 또 컵라면끼리 조합해서 먹어보는 것도 흥미롭죠. 가령 짜장과 짬뽕, 크림소스와 매운소스처럼 상극의 맛을 더할 때 의외로 궁합이 잘 맞아요. 또 이건 저만의 팁인데 짜장컵라면에 콜라를 한 숟갈 정도 넣어보세요. 단맛이 확 우러나서 훨씬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어요. 그거 말고도 팁은 무궁무진해요.”
컵라면 이야기라면 밤을 새도 모자라다는 옥상훈 리더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며 컵라면 먹는 일도 줄었지만, 멈추지 않고 꾸준히 해나가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부캐의 장점 중 하나는 표면적인 성과가 없더라도 큰 타격이 없다는 것 아닐까. 본캐처럼 책임이나 강박을 느낄 필요도 없다. 마음이 동하는 대로 이따금씩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자기만족이 된다. 그 과정에서 얻는 일상의 즐거움과 신선함은 덤이다.
“가장 재미있는 순간은 새로운 컵라면을 찾았을 때예요. 라임 향 나는 컵라면이나 침대 회사에서 사은품으로 특별 제작한 컵라면을 손에 쥐었을 때의 기쁨도 잊을 수 없네요. 그렇게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맛을 찾아가는 게 참 흥미로워요. 편의점을 가더라도 컵라면 코너부터 둘러보고, 해외나 낯선 지역에 가도 컵라면부터 확인하죠. 일상에서 늘 마주하는 게 편의점이고 컵라면인데, 손쉽게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또 그런 경험을 기록해가는 재미도 쏠쏠하고요. 나름 잘 정리해놓은 거라 라면 회사에서 제안이라도 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아직 깜깜 무소식이네요.(웃음)”
본캐를 성장시키는 힘, ‘통찰력’
언젠가는 본격적으로 부캐를 키워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은퇴 이후쯤이 될 테다. 아직은 본업에서 할 일이 많고, 아직 학생인 아이들을 키우려면 더 오래 현업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다. 늘 선도하고 혁신을 일으키는 분야다 보니, 그에 따른 고충도 있으리라. 실제 그와 동년배인 50대 직장인들은 새로운 기술이나 MZ세대의 문화를 따라잡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물론 그도 때때로 버거움을 느끼지만 독서와 학습을 통해 그 간극을 좁혀나가는 편이다. 일련의 노력을 통해 그가 본업에서 이루려는 목표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이 분야에서 좀 더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가령 클로바 케어콜의 경우에도 지자체로 치면 100곳, 사용자로 치면 2만 명 정도 되는데요. 더 다양한 범위로 확장해서 사업적 성과를 이루는 동시에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사실 기술이라는 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과 도구이지, 어떤 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기술들이 합리적인 비용으로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면 꽤 의미 있는 성과가 아닐까 합니다.”
옥상훈 리더는 IT나 신기술 관련한 책뿐 아니라 새로운 분야의 식견을 넓힐 수 있는 책도 고루 섭렵 중이다. 꾸준한 독서를 통해 인생에서 중요한 건 결국 ‘통찰력’이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끝으로 그에게 다소 엉뚱한 말을 던져봤다. ‘자신의 인생과 컵라면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이윽고 우문현답이 나왔다. 그간의 통찰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인생이든 컵라면이든 결국 ‘맛’이 중요한 것 같아요. 잘 숙성되고, 그것이 우러나야 진가를 발휘할 수 있죠. 정말 괜찮은 컵라면은 물을 붓기 전에도 그 가치가 느껴질 때가 있어요. 뜯기 쉬운 포장, 친절한 설명글, 풍부한 건더기 등. 역시나 먹어보면 맛도 진국이죠. 반면에 별로인 컵라면은 겉으로 보나 맛으로 보나 ‘정말 대충 만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인생도 마찬가지 같아요. 스스로가 만든 인생의 가치를 정성스럽게 담아내고, 잘 표현해야 하니까요. 제가 지금까지 너무 맛없어서 못 먹고 버린 컵라면이 딱 두 개 있는데요. 제 인생도 잘 가꿔서 누군가에게 버려지지 않고, 좀 먹을 만한 컵라면 같은 존재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