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이 남긴 이 말은 그의 60여 년 화업을 가장 잘 설명한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리는 ‘유영국 : 산은 내 안에 있다’는 ‘한국 근대 거장전’ 시리즈의 첫 전시다. 탄생 110주년을 맞아 미공개작을 포함한 작품과 아카이브 170여 점으로 그의 예술 세계를 펼쳐 보인다.
1964년, 고독을 선택한 유영국의 새로운 시작
전시의 시작은 작가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된 1964년에서 출발한다. 48세에 생애 첫 개인전을 연 유영국은 작가 동인전 중심의 그룹 활동을 뒤로하고 개인 작업에만 몰두하기로 결심했다. 스스로 고독을 선택한 셈이다. 전시는 이 지점에서 시간을 거슬러 그의 젊은 시절로 향했다가 다시 1960~1970년대 추상의 절정과 생애 후반으로 나아간다. 한 작가의 삶과 작품을 단순한 연대기가 아닌 ‘결단’에서 시작해 바라보게 한 구성이 흥미롭다.
그가 평생 붙든 대상은 ‘산’이었다. 고향 울진의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출발한 산은 처음에는 점·선·면과 강렬한 색채로 변주되고, 생애 후반에는 눈앞의 풍경을 넘어 자연과 자신이 하나로 포개지는 듯한 내면의 풍경으로 깊어진다. 같은 산을 주제로 끊임없이 다른 회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그의 몰입은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59세에 처음 팔린 그림, 병고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유영국의 작품은 1975년, 그의 나이 59세에 이르러서야 처음 판매됐다. “60세까지는 기초 공부를 하겠다”라고 했던 작가는 1977년 이후 여덟 차례 큰 수술을 받으며 병고를 겪었으면서도 붓을 내려놓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작업실로 향했고, 생로병사의 무게를 견디며 자신의 예술을 이어갔다.
전시장 출구 쪽에 마련된 다큐멘터리 영상도 놓치지 않기를 권한다. 빠르게 변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시대에 한 가지 주제인 ‘산’을 평생 붙들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간 삶은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시대별 주요 작품

일본 유학 시기 유영국, 1930년대 말~1940년대 초, 유영국미술문화재단
1916년 경상북도 울진에서 태어난 유영국(1916~2002)은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선구자다. 1935년 일본 도쿄문화학원 유화과에 입학, 김환기·장욱진·이중섭 등과 교류하며 추상의 길로 나아갔다. 1964년 개인전 이후 유영국은 개인 작업에 몰두했고, 평생에 걸쳐 약 800점에 이르는 유화 작업을 남겼다. 고향 울진의 자연, 특히 ‘산’을 평생의 화두로 삼아 강렬한 색과 기하학적 추상으로 구현하면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이뤘다.

<1964년, 내밀한 예술의 문을 열다>
유영국, ‘작품(Work)’, 1964, 캔버스에 유채
1935년 도쿄에서 입체파·구성주의 등 서구 아방가르드 미술을 접한 유영국은 회화·부조·사진을 넘나들며 다양한 실험을 펼쳤다. 귀국 후에는 고기잡이배를 타고 양조장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리는 등 긴 작업 공백도 겪었다. 1964년 첫 개인전은 그 모든 탐색을 지나 그룹 활동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추상에 집중하기로 한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심상 추상 : 산은 내 안에 있다 >
유영국, ‘작품(Work)’, 1977, 캔버스에 유채
1964년 이후 작업에 더욱 몰두한 유영국은 1960~1970년대 선과 면, 강렬한 원색이 만들어내는 기하학적 추상의 절정에 이른다. 교수직까지 내려놓고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작업실을 지키며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정교하게 다듬었다. 생애 후반으로 갈수록 산은 형태의 재현을 넘어 자연과 자신이 하나 되는 내면의 풍경으로 깊어지며 ‘심상 추상’의 세계로 나아간다.

<무한, 그 너머>
유영국, ‘산-블루(Blue)’, 1994, 캔버스에 유채
유영국의 최대작 가운데 하나인 ‘산-블루(Blue)’(1994) 앞에서는 그의 산이 더 이상 하나의 풍경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거대한 화면을 채운 단순한 형태와 색은 산 너머, 보이지 않는 세계로 시선을 이끈다. 평생 하나의 대상을 바라본 끝에 산과 삶, 이성과 직관의 경계마저 흐려지고, 그곳에 유영국만의 ‘무한’이 펼쳐진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중구 덕수궁길에 자리한 서울시립미술관은 서소문본관을 중심으로 근현대와 동시대 미술을 폭넓게 소개한다. 올해부터 한국 근대미술의 성취를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살펴보는 ‘한국 근대 거장’ 시리즈를 새롭게 시작했다. 첫 번째 작가로 유영국을 선정해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회고전을 선보인다.
‘유영국 :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시 정보기간 10월 25일(매주 월요일 휴관)까지
관람 시간 화~금 10:00~20:00, 토·일·공휴일 10:00~19:00
매주 금요일 ‘서울 문화의 밤’ 21:00까지 연장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1층(서울시 중구 덕수궁길 61)
관람 요금 무료
전시 해설 매일 오전 11시 선착순 운영 / 오디오 가이드 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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