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떴을까?83세 소설가 조정래가 최근 장편소설 ‘서리꽃’을 펴냈다. 조 작가는 한국 현대사를 다룬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으로 유명하다. 이번 신간은 조 작가의 첫 연애소설이다. 그는 최근 열린 ‘서리꽃’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작품과 자신의 작가 인생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놔 눈길을 끌었다.
조정래 작가의 사랑 이야기
‘서리꽃’(해냄출판사)은 ‘황금종이’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조정래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1970년 등단해 56년 동안 수많은 작품을 써왔지만, 남녀의 사랑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왜 선생님은 역사와 사회에 관한 소설만 쓰고 연애와 사랑 이야기는 쓰지 않으십니까.”
조 작가는 20년 전 한 독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 말을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있다가 마침내 사랑 이야기를 쓴 데는 “장편소설은 이 책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라는 예감도 작용했다. 그는 “나이는 자꾸 들어가는데 소설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죠. 인생을 마무리하면서 독자들이 원했던 사랑 이야기를 쓰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사랑 이야기가 낯선 작업만은 아니었다. ‘태백산맥’의 소화와 정하섭, ‘아리랑’의 송수익과 필녀, ‘한강’의 임채옥과 유일민 등 앞선 작품에서도 사랑을 그려왔기 때문이다. 조 작가는 이들 작품에서 이미 다뤘던 사랑이 마음속에 남아 있어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쓸 수 있었다고 했다. 후배 소설가 김훈이 ‘태백산맥’에도 ‘춘향전’을 능가하는 사랑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던 기억도 떠올렸다.
‘서리꽃’은 시와 그림을 통해 가까워진 철학도 이재이와 미술학도 윤소인이 이별과 시련을 지나 다시 사랑을 완성해가는 이야기다. 하지만 단순한 연애소설은 아니다. 두 사람의 사랑을 통해 자본과 권력, 가부장적 가족 질서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도 들여다본다. 조 작가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는 아니다”라며 자본과 권력이 결탁해 건강한 시민의 삶을 파괴하는 이야기에 사랑을 덮었다고 설명했다. 작품 속 여행 장면을 위해 2024년 프랑스 파리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직접 답사하고, 4권의 수첩에 현지 풍경과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조정래 작가의 실제 사랑은 어떨까. 그는 간담회에서 아내 김초혜 시인의 이야기도 여러 차례 꺼냈다. 두 사람은 동국대 국문과 동기로 만나 1967년 결혼했고, 내년이면 결혼 60주년인 회혼을 맞는다. 자전적 요소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25세에 결혼한 아내 외에는 여자를 알지 못한다며 “완전히 픽션”이라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인간이 세끼 밥을 먹고 사는 한, 어떤 방법으로든 사랑을 창조하게 돼 있습니다. 제가 소설에 썼듯 자본주의가 아무리 험악해도 사랑을 막을 순 없습니다. 사랑의 영원성과 확신, 그것이 바로 이 소설의 주제가 될 것입니다.”

AI 시대에도 손으로 글 쓰는 작가
80대에 접어든 조정래에게도 몸의 변화는 찾아왔다. 그는 지난해 9월 복부대동맥 수술을 받았다. 배를 30㎝가량 가르는 큰 수술이었다. 이동 침대에 실려 수술실로 들어가면서 ‘다시 못 깨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열심히 살았으니 후회는 없다’는 마음도 들었다고 한다. 다행히 수술을 무사히 마친 그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고, 결국 ‘서리꽃’을 완성했다.
조 작가는 디지털 기술이 일상이 된 시대에도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원고를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손으로 한 자 한 자 쓰는 것은 영혼을 거쳐 나오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약 60년의 작품 활동 동안 변하지 않은 것으로는 ‘노력’을 꼽았다. 작가로서 재능이 있다고 믿었기에 주색잡기를 멀리하고 오로지 글쓰기에 매진해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노동뿐 아니라 글과 그림까지 만들어내는 시대에 창작 활동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조 작가는 AI가 많은 분야에서 인간의 노동을 대신할 수는 있어도 작가의 상상력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고 봤다. 그는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소설은 물론 모든 예술 분야는 인간의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큰 수술을 겪고 마지막 장편소설을 이야기하지만, 그의 글쓰기가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조 작가는 “장편소설을 50년 가까이 쓰다 보니 단편을 쓰는 데 많이 소홀해졌는데, 다시 단편을 쓰고 수상록도 남기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까지는 100m 달리기처럼 투쟁하듯 문학과 대적해왔는데, 앞으로는 좀 쉬엄쉬엄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편이라는 긴 경주에서는 물러날지 몰라도, 작가로서의 삶까지 내려놓겠다는 뜻은 아닌 셈이다.
그가 ‘서리꽃’의 ‘작가의 말’에 적은 마지막 소원도 이를 보여준다. “글을 쓰다가 책상에 엎드려 죽는 것.” 그는 그렇게만 된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83세, 큰 수술을 견디고 AI가 인간의 창작 영역까지 넘나드는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조정래는 여전히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문장을 써 내려간다. 오랜 시간 세대를 넘어 조정래의 문학이 꾸준히 읽히는 힘은 이처럼 인간과 사회를 끝까지 바라보고 기록해온 집요함에 있을지 모른다.

[TIP] AI 시대, 시니어에게 필요한 자세AI를 낯설고 두렵게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호기심을 갖는 시니어가 많다. 그렇다면 AI 시대를 살아가는 시니어에게 필요한 자세는 무엇일까. 강원국 작가가 ‘중장년 진짜 공부’에서 전한 내용을 바탕으로 살펴보자.
ㆍAI를 피하지 말고 도구로 활용하기 : 검색, 글 정리, 여행 계획 등 일상의 작은 일부터 직접 써본다.
ㆍ답을 그대로 믿지 말고 판단하기 : AI의 정보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오랜 경험과 상식을 바탕으로 한 번 더 확인한다.
ㆍ좋은 질문을 던지는 연습하기 : 원하는 상황과 조건을 구체적으로 설명할수록 더 유용한 답을 얻을 수 있다.
ㆍ나만의 경험과 기록을 쌓기 : AI가 대신하기 어려운 것은 각자가 살아온 경험과 관점이다. 글·사진·기록으로 남겨본다.
ㆍ내 방식을 잃지 않기 : 조정래 작가가 AI 시대에도 손으로 글을 쓰듯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에게 맞는 방식은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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