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심(孝心)은 하늘도 감동 시킨다”는 말이 있으나 요즘에는 핵가족시대라 해서 집단보다는 개인의 삶을 중시하면서 청소년 문제와 노인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고 맹목적인 내리사랑은 있어도 부모에 대한 효심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이러한 문제는 가족 중심의 도덕성 회복이 전제되지 않는 한 가족붕괴로 인한 사회적 문제의 정답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효(孝)를 가부장적이며, 일방적인 이미지를 갖게 한 유교적 사상으로 회귀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할 수만 있다면 가족제도의 복원은 필요 할 것 같다. 핵가족 제도는 도덕적 가치 상실은 물론 과다한 사회적비용이 요구되고 문화적 단절을 가져 온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식생활문화라 할 것이다. 노부모(老父母)의 손맛을 이어 받으려는 노력보다는 ‘가져다’ 먹거나 가공식품을 사다먹으려 하니 가문에서 내려오던 손맛이 단절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선시대 종가집 며느리의 덕목(德目)으로 예(禮)와 효(孝)를 바탕으로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장(醬)담는 비법, 술(酒) 담는 비법, 김치담는 비법, 병과(餠菓)하는 비법 등을 익혔으며, 제삿날이나 혼삿 날에는 모든 식구들이 모여 음식을 직접 정성스럽게 만들고 하였다. 궁중에서 동궁(東宮)에는 별도의 수라간이 마련되어 상궁 등이 음식을 장만하고 하였지만 부친인 왕에게 올리는 음식은 세자빈(世子嬪)이 직접 만들었다.
그 대표적인 세자가 문종(文宗)과 소현세자(昭顯世子)다.
숙종27년(1689)에 동평위(東平尉) 정재륜(鄭載崙)이 쓴 <공사문견록(公私文見錄)>에 보면 “문종은 세자 시절 동궁에서 세자빈과 함께 복국을 직접 끓여 소갈증을 앓고 있는 부왕(父王)인 세종(世宗)에게 문안 인사를 갔다”라고 쓰여 있으며, 구수훈(具樹勳 : 1685~1757 영조 때 무신)의『이순록(二旬錄)』에는 “인조(仁祖)가 전복만두(全鰒饅頭)를 좋아하였는데, 생신날에 왕자가 비(妃)와 함께 동궁에서 직접 만두를 만들어 가지고 새벽에 문안을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듯 궁중에서 조차 효가 깃든 음식은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인조의 왕자라면 비운의 세자인 소현세자를 말하는데,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淸)나라에 항복한 이후, 인조(仁祖) 15년 2월 5일 강빈(姜嬪)과 소현세자는 청나라 인질이 되었고, 이후 고국으로 돌아오기까지 꼬박 8년간을 청나라 심양에서 머물렀다. 강빈이 청나라에 머무는 동안 익힌 솜씨 중에 하나가 만두 빚는 법이 아니었나 쉽다. 그러나 만두 빚는 법은 『고려사(高麗史)』나 『고려가요(高麗歌謠)』인 ‘쌍화점(雙花店)’에 볼 수 있듯 이미 고려시대부터였다. 『영접도감의궤(迎接都監儀軌)』(1643년)에도 중국사신 접대에 올려 진 음식이다.
잦은 전란(戰亂)으로 심신이 허약해 진 인조의 몸을 추스르는데, 전복만두만큼 좋은 음식은 없었을 것으로 여기고 소현세자는 아버지 인조의 생신에 강빈과 함께 전복만두를 빚어 새벽문안을 드렸던 것이다. 전복은 허약한 몸을 다스리는 최고의 보양음식으로 기운을 나게 하는 자양강장 식품임과 동시에 메티오닌 및 시스테인 등의 성분이 있어 소변을 잘 배출 시켜 방광염을 예방하고 요오드 함량이 높아 당뇨나 고혈압 예방에 좋아 궁중에서 만두를 빚어 즐겨 먹었을 것이다.
이미 핵가족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소현세자의 효심을 부러워하거나 세태를 탓한들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고 귀한 음식으로 대접 받던 전복도 가격이 그리 높지 않으니 전복만두를 빚어 찜 솥에 넣고 쪄 먹고 기운을 내는 것이 상책이다. 전복만두를 빚으려면 조선 중기의 학자 허균(許筠:1569~1618)이『도문대작(屠門大嚼)』에 “큰 전복을 얇게 썰어 만드는 만두가 맛 이 좋다”라고 하였듯이 작은 전복 보다 큰 전복이 전복만두재료에 좋다. 전복은 날로 먹으면 약간 질긴 맛이 있지만, 데치면 무척 부드러워 만두소로 알맞다.
전복만두는 큰 전복을 얇게 저미고, 죽순과 두부, 숙주, 마늘, 생강, 파등을 다져서 참기름, 설탕 진장 후추 등을 넣어 주물러 소를 만들어, 만두피를 규아상 즉 미만두(해삼처럼 끝이 뾰쪽뾰족 나왔다 해서 해삼의 옛말을 붙여 ‘미’ 즉 해삼만두라고 함)처럼 빚으면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은 궁중‘전복만두’가 될 것이다.
효심이 깃든 소현세자의 전복만두를 기대 할 수 없다면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전복만두를 빚어 자식들을 불러 함께 먹는다면 이보다 좋은 행복(幸福)은 없을 게다.
식생활문화연구가 氣琨 김영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