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분명 대한민국이지만 "같은 나라 맞아?" 할 만큼 뭔가 다른 특별한 문화가 많이 있다. 아무래도 오랜 기간 독자적인 나라(탐라국)로 지내왔고 중앙정부 손길이 잘 닿지 못한 지역인데다가 섬 문화가 만들어낸 생태문화가 결합된 데 따른 것이다.
집을 수리하고 이사하는 구간 ‘신구간’
“언니, 신구간이 아니라서 집이 없다는 게 무슨 말이야?”
제주 이주를 준비하는 후배가 나에게 전화해서 물어본 말이다. ‘신구간’ 뿐 아니라 ‘연세’라는 개념도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어리둥절한 말이다. 나 또한 탤런트 ‘신구’는 들어봤어도 ‘신구간’은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또 ‘전세대란’이란 말은 제주에는 없다. 전세 자체가 거의 없으니까. 신구간은 대한(大寒) 후 5일에서 입춘(立春) 전 3일 사이에만 집을 수리하고 이사하는 구간이다. 약 7일 정도다. 땅에 내려와 있던 신들이 잠시 하늘나라에 올라가 있는 교체기간을 뜻하는 신구간. 이 기간에는 지상에 신이 없기 때문에 신이 두려워서 못했던 일들을 해도 아무런 탈이 없다고 믿었다.
천상천하를 관장하는 신들이 일 년에 한 번씩 모이기로 할 때 소별왕이 대한 후 닷새부터 입춘 전 사흘까지 약 일곱 날 동안이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한다. 이 시기는 농한기이고 1년이 시작되는 중요한 시기다. 제주 신화에는 이렇게 '신구간'의 유래가 소개되고 있다.
신구간이 되면 이사 관련 업계 뿐 아니라 인테리어, 가구, 가전 업계에서도 덩달아 매출이 오른다. 아마도 신구간 기간 세일을 하는 건 제주도에서만 벌어지는 일일 것 같다.
신구간에 이사를 한꺼번에 하다 보니까 제주도는 이 기간에 쓰레기와의 전쟁을 치르게 된다. 2014년 제주시의 경우 신구간 기간에 하루 쓰레기 발생량이 평소 526t보다 40t정도 더 증가했고 청소차 운행횟수를 하루 1.5회에서 3회로 늘렸다.
지금 세상이 어느 세상인데, 광대역 LTE급 세상에 이 무슨 근거 없는 풍속인가 싶지만, 제주의 기후와 문화를 이해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신구간은 제주에서 일 년 중 일평균기온이 5도 밑으로 내려가는 거의 유일한 기간이다. 고온다습한 기후로 늘 세균 감염에 시달려야 했던 제주사람들에게 신구간은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기간이었다.
민간신앙-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에 영이 깃들어 있다
제주에는 1만8000여 신이 있고 400여개 신당이 남아 있어서 '신화의 섬'으로 불린다는 걸 들어 봤을 것이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제주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지역을 연고가 있는 '고향'이라 부르지 않고 내 탯줄이 있는 땅이란 뜻의 '본향'이라 부른다더라. 태어날 때부터 탯줄을 태우면서 기도를 했던 그 땅. 본향이다. 그래서 마을마다 본향당이 있다.
와흘 본향당에는 수령이 400년 넘은 폭낭(팽나무)이 있는데 입구에서부터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 나무 줄기마다 걸려있는 소지와 염색 천들. 나약한 인간들은 이렇게라도 신령스러운 나무에 기대어 위로받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내가 차 접촉 사고가 났을 때다. 직장 동료분 말씀이 ‘넋들이’러 가야 한다는 거였다. 제주에는 아직도 일상 생활에서 사고가 났을 때 넋들이는 풍습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한 마디로 놀란 넋(혼)을 달래주는 것이다. 이렇게 초월적 존재를 믿고 의지하려는 마음은 제주의 풍습 중 하나로 깊이 자리하고 있다.
방사탑은 도로 중간에도 있고 마을과 마을 경계선에도 있다. 탑을 쌓아 올릴 때는 밥주걱이나 무쇠솥을 넣기도 했는데 밥주걱은 밥을 긁듯이 외부의 재물을 모아 달라는 의미고 솥은 불에도 끄덕없이 이겨내니 솥처럼 마을의 재난을 막아 달라는 의미이다.
칠성신은 곡물을 수호하고 풍요를 가져다 주는 뱀신이다. 제주에서는 특히 뱀을 신으로 섬기는 모습이 강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제주에 워낙 뱀이 많기도 하거니와 식량이 부족한 섬에서 뱀은 쥐를 잡아주는 아주 유용한 동물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철저한 분가제도-안거리 밖거리
제주는 육지와 달리 예로부터 자식이 결혼하면 분가를 원칙으로 했다. 부모와 자식은 취사를 따로 할 뿐만 아니라 경지를 분할하여 독자적으로 생산했다. 말 그대로 한 집안에 살지만 독립된 생활을 했다.
제주도 주택은 ㄷ자 구조나 ㅁ자 구조로, 주 생활 공간을 안거리 밖거리 2채를 짓는다. 한 집이지만 2세대가 살 수 있도록 각 채에 부엌이 마련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2세대가 한 집에서 살 때 부모님이 작은 집(밖거리)을 쓰고 자식들 가족이 큰 집(안거리)을 사용한다. 식구들이 많은 집이 큰 집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육지의 시선으로 보면, 한 집에 살면서도 안거리 밖거리에서 각각 따로 밥을 해먹는 것이 야박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밭일과 물질로 바빴던 제주의 여성들은 같이 모여서 밥을 먹고 하는 것이 오히려 비능률적이었다. 각자 챙겨서 얼른 밥을 먹고 일하러 가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은 일이었다. 80이 넘은 노모도 혼자 밥 지어서 혼자 밥 먹는 게 일상화되어 있다. 우리 동네 이장님댁 어멍(어머니)은 항상 이렇게 말씀하신다.
“어떵 안 햄져”(혼자 먹어도 괜찮다는 뜻이다)
“지금은 덜하지만 2010년까지 신구간 기간에 이사를 하려면 평소 요금의 2배에서 4배를 요구하기도 했죠. 그러다 보니 연세라는 임대 방식은 강화될 수밖에 없었죠. 어차피 다른 달에는 이사를 하려 해도 집을 구할 수가 없으니까요”(고진석 상무이사, 제주희망협동조합)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제주 사람들의 믿음은 여러 책자에서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생태 중심적 사고이지 어리석은 생각이 아니다. 제주에 이주해 살면서 여러 번 느꼈는데, 여기 분들은 웬만하면 뱀도 죽이지 않고 거미도 죽이지 않으려 한다. 그냥 자연에 있는 것들은 자연 속에서 사람과 함께 살아가길 바란다. 해산물도 필요한 만큼만 채취했다고 한다. 절대 욕심내지 않고 자연과 함께 사는 삶. 그것이 제주인의 삶이다.
이런 분가제도는 부모자식 간에 독립적인 삶이 강조되어서 결혼한 자식들은 철저하게 자립을 해야 했고 부모 역시 완전히 몸져눕지 않는 이상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았다. 또 분가제도로 인해 부부 간에도 어느 정도 독립된 경제활동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여자들끼리 계가 따로 있고, 경조사에서도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가 각각 따로 겹부조를 하는 특이한 상조문화도 생겨났다. 예를 들어 상갓집에 갔을 때, 그 집 큰 아들과 큰 며느리를 알고 있으면 큰 아들과 큰 며느리에게 각각 부조를 해야 한다. 육지에서 온 사람들의 경우, 제주도 경조사 풍습이 낯설게 느껴지기 마련인데, 그 뿌리에는 제주의 분가제도가 있음을 알면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된다. 알고 보면 배울 점이 많은 합리적인 문화가 많다. 육지엔 없고 제주에만 있는, 독특한 것들이 아주 많다.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 국어교사
-'랑이야 제주에서 학교가자'(대숲바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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