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성공적 데뷔-7人7色] 영화감독 데뷔 5년차, 윤아병(尹阿炳·77) 씨

기사입력 2015-06-12 16:37 기사수정 2015-06-12 16:37

▲영화감독 데뷔 5년차, 윤아병(尹阿炳·77) 씨. 사진=이태인 기자 teinny@

시집살이에 자식들 키우랴 손에 물이 마를 날 없던 주부의 손에 열정 가득한

땀내가 배기 시작했다. 이제는 자신의 밥을 짓는 일보다 타인의 삶을 찍는 일이 많아진 그녀. 직접 연출, 각본, 촬영, 편집, 내레이션까지 해낸 다큐 영화 ‘나이야 가라’로 제1회 NILE단편영화제에서 영예의 대상을 수상한 윤아병 씨의 이야기다.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데뷔하고 싶었던 때는 언제?

어떤 때라기보다는 인터넷부터 포토샵, 무비메이커까지 컴퓨터를 단계적으로 배우며 서서히 꿈을 키워나갔어요. 농사와 집안일에만 희생했던 내가 안타까웠는지 남편은 늘 컴퓨터를 배우라고 얘기했어요. 하지만 그땐 듣지 않았죠. 컴퓨터를 배운 건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였어요. 그게 벌써 한 15년 전(당시 62세)이니, 나도 꽤 꾸준히 노력해온 셈이죠.


데뷔하는 과정 중 가장 힘들었던 점

장·단점이 보이기 시작할 때가 힘들더라고요. 처음엔 뭣도 모르고 즐겁게 했는데 경력이 쌓일수록 잘한 것과 못한 것을 구분할 줄 알게 됐죠. 영상을 편집하다 보면 모자란 점들이 보이거든요. 그럴 때면 ‘내가 젊었으면 더 배워서 모험도 해볼 텐데’ 하고 생각하다가 내 나이가 떡하니 떠올라요. 하지만 나이 때문에 다 포기하는 것은 아녜요. 그 한계를 인정하고, 내 체력과 능력에 알맞은 목표를 세워요. 그 범위 안에서 가장 즐거우면서도 도전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고 있죠.


데뷔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을 해야지’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매 순간 즐겁게 하고, 무언가를 이루고 나면 그때 잠깐 ‘다음엔 뭘 할까’ 생각하는 정도죠. 감독으로 데뷔했을 때는 세상 사람들에게 내 작품을 보여줬고, 또 인정받았으니 앞으로는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솟구쳤어요. 지금까지 20여 편의 영상을 제작했지만, 계속해서 조금이라도 더 나아진 작품을 선보이고 싶죠. 그 마음은 변함없어요.


데뷔하게 된 자신만의 강점은?

적성에 맞는 일을 했다는 것이 결국 강점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나는 사람들을 만나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고 활발한 성격인데 시집살이다 뭐다 해서 참고 사는 게 많았어요. 그런 내 안에 숨겨온 재능과 끼를 훨훨 펼쳐볼 수 있는 일이 바로 영화감독이었죠. 촬영하는 것도 정말 재밌고, 특히 편집하는 과정이 참 좋아요. 그렇게 적성에 꼭 맞는 일을 한 것이 데뷔할 수 있었던 비결이죠.


데뷔 전·후 달라진 점

원래는 누구 엄마, 아무개 할머니 이렇게 불렸는데 지금은 윤 감독님, 윤아병 선생님 이렇게 불린다는 게 가장 커요. 나 같은 노인들이 어디 가면 노인정 가서 화투나 치고 그러는데, 그래도 나는 인정받고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해요.


‘데뷔를 잘했구나’ 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누군가가 나를 보고 롤모델로 삼고, 동기부여가 생겼다고 할 때 보람을 느껴요. 지난해에 한 TV 강연프로그램 섭외가 들어왔는데 처음엔 나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이 그런 대단한 자리에서 강연을 잘 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그런 마음으로 강연 무대에 올랐는데 생각 외로 반응이 뜨거웠어요. 내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죠. 그 전까지는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 영화를 찍길 잘했다고 생각해 왔지만, 이제는 나를 통해 새로운 꿈을 꾸고 용기를 얻은 사람들이 생기는 걸 보고 정말 데뷔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1985년 6월 남편과 함께 다정하게 찍은 사진과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윤아병 감독(당시 66세)의 모습

<윤아병 Profile>

전직 주부

경력 53년

나이 77세

데뷔 연차 감독 데뷔 5년차, 데뷔 작 ‘나의 여로’

큰 꿈은 없고 현재 촬영하고 있는 ‘노인들의 유치원’을 잘 완성하는 것. 제2, 제3의 윤아병이 나올 수 있도록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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