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에 대하여 PART3] 우리도 老老 상속시대에 대비해야

기사입력 2015-08-21 10:19 기사수정 2015-08-21 10:19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식들에게 절대 재산을 물려주지 말라. 물려주면 그때부터는 자식들이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요즘 나이든 자산가들 사이에 이런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돈이라도 갖고 있어야 자식들이 자주 찾아와서 노년이 외롭지 않을 거라는 생각일 것이다.

이 말을 들으면서 한 일본인 친구로부터 들은 말이 생각났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의 큰어머니는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67세의 사촌형에게 재산을 상속했다고 한다. 92세라고 하면 일본인의 평균수명을 생각할 때 특별히 오래 살았다고도 할 수 없는 나이이다. 그런데, 92세 고령자라면 그 배우자 또한 비슷한 수준의 고령자일 것이고, 자녀들도 젊어야 50대 후반이나 환갑을 넘은 나이일 것이다. 즉, 일본의 노인이 세상을 떠날 경우에는 갖고 있던 재산이 거의 확실하게 노인에게 상속된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사회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老老(노노)상속이 일본에서 그렇게 큰 문제가 된다는 것인가? 돈이 노인들 수중에서만 돌고 경제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젊은 세대에게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미래의 꿈을 가진 벤처비즈니스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큰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20여년의 일본의 장기 경제불황은 ‘돈 쓰지 않는 부자 노인’과 ‘돈이 없어 소비하지 못하는 가난한 젊은 세대’라는 이중적인 사회구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현재 일본의 60대 이상의 고령세대는 일본 전체 가계금융자산의 70%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노인은 지금과 같이 100세까지 살아야 하는 시대에 언제 어떤 고생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현금을 움켜쥐고만 있다. 본인도 쓰지 않을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 물려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수익성이 높은 곳에 투자를 하지도 않는다.

돈 가진 세대가 소비도 안 하고 투자도 안 하니 경제 또한 활성화되지 않는다.일본의 정책당국은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많은 정책적 노력을 해왔다. 특히, 노인들 수중에서 잠자고 있는 돈이 젊은 세대에게 이전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세제 우대제도를 도입했다. 부모가 자녀들의 주택 구입자금, 교육자금, 결혼·출산·육아비용 등에 원조를 할 경우 일정 금액 한도 내에서 증여세를 면제해주도록 한 것도 이런 정책적 노력의 일환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아직은 고령세대가 보유한 자산이 그다지 많지 않다. 전체 가계금융자산 중 60세 이상의 고령세대가 보유한 비율은 30%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715만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세대로 편입된 이후이다. 그때쯤이면 고령세대가 보유하는 가계금융자산의 비율은 50~60%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때까지 정책당국의 대응책이 나오지 않고 고령세대의 인식도 바뀌지 않는다면 한국판 老老상속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 정부의 정책도 자산가들의 마음가짐도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산가들은 자신들이 그 동안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자신들의 능력이나 노력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지난 30~40년 동안 우리 경제가 고성장을 지속하면서 자산가격이 계속 상승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고성장시대의 혜택을 받은 세대로서 사회공헌 조직을 만들거나 기존의 사회공헌단체에 기부활동을 함으로써 그동안 받은 혜택을 사회에 환원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녀들에게 재산을 상속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자산가라면, 그 재산을 자녀에게 상속은 할 것인지, 한다면 언제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100세에 세상을 떠나면서 70세 된 자녀에게 상속을 한다면 그 재산이 생산적인 곳에 쓰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녀가 조금이라도 젊을 때, 자신의 몸값을 높이는 데에 투자하거나 꿈이 있는 사업에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자녀의 장래를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나 훨씬 더 바람직할 것이다.

재산상속과 자녀들의 효도문제에 대해서도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어릴 때부터 자녀교육을 잘 시켜서 자녀들 스스로가 부모 공경하는 마음으로 찾아온다면 모르지만 돈을 미끼로 찾아오게 만든다면 그 노년이 얼마나 비참해지겠는가? 차라리 노부부 둘만 남았거나 사별해서 혼자되었을 경우에라도 외로움에 견딜 수 있는 능력, 고독력을 키우는 편이 보다 현실적이지 않겠는가?

보유재산으로 사회공헌활동을 하거나 자녀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하고 싶어도 노부부가 몇 살까지 살게 될지 또는 노후생활비가 얼마나 들지를 예측할 수 없어서 지원을 망설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우선, 현역시절에 가입해둔 3층 연금(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이나 즉시연금, 주택연금, 농지연금 등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기본생활비 정도를 보장받을 수 있겠는지를 먼저 계산해 볼 필요가 있다. 계산해본 결과, 이들 연금으로 기본생활비를 보장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선다면, 나머지 재산 중 일부는 안심하고 사회공헌 활동 또는 자녀 지원에 쓸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느 경우이든 고령세대 자산가들에게는 재산 축적과 사용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재산을 움켜쥐고만 있으면 이것은 국가경제를 불황에 빠뜨릴 뿐 아니라 그 불황의 여파는 다시 자신과 자녀들의 불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 강창희 트러스톤 연금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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