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환자 좋은의사되기] 비인두암, 대장암, 위암과 싸우는 노신사와 종양내과 전문의의 라뽀

기사입력 2016-01-12 11:14 기사수정 2016-01-12 11:14

“세 가지 믿음으로 세 암(癌)과 싸웠습니다”

▲김규태 씨는 화순전남대학교병원 전남지역암센터가 개최한 제1회 ‘암극복 수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브라보마이라이프)
▲김규태 씨는 화순전남대학교병원 전남지역암센터가 개최한 제1회 ‘암극복 수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브라보마이라이프)

체력 하나만은 자신 있던 그였다. 한국통신에서 평생을 일하는 동안에도 건강은 자신 있었다. 뜨거웠던 5월 광주의 한가운데에서 시위대로부터 직장을 지키기 위해 기지를 발휘했을 때도 그 바탕에는 체력이 있었다. 즐겨 마시던 소주는 3병쯤 들이켜야 취기가 돌기 시작했을 정도였다. 그러다 갑자기 드리운 암이란 그림자에 그는 잠시 절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규태(金奎太·69)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화순전남대학교병원의 심현정(沈炫廷·39) 교수를 만나 조금씩 이겨나가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는 지금 “삼암(三癌)을 삼신(三信)이 이겼다”고 이야기한다.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처음에는 암이란 게 믿기지 않았죠. 증상이 있었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의 검진 결과라 더 믿기 힘들었죠.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나 싶기도 했고, 두려움과 공포라는 걸 느꼈습니다.”

정장에 검은 코트를 말끔히 차려입고, 새의 깃털이 달린 페도라로 멋을 낸 김규태씨는 전형적인 점잖은 중년의 신사였다. 하지만 화순전남대학교병원 전남지역암센터에서 만난 그가 조용히 건네는 투병 이야기는 멋들어진 그의 모습과는 달리 치열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증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부터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더라고요. 동네 병원에선 귀에 물이 찼다며 간단한 처치를 해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물이 차기 시작했습니다. 몇 번을 그렇게 반복하다,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아들 얘기에 동네 병원의 추천으로 전남대학교병원에서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귀에 이상이 있어 간 병원이었는데, 의사들은 코에 집중했다. 조직검사라는 것도 했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 후 그는 암 판정을 받았다. 2007년 11월의 일이었다.

“비인두암(鼻咽頭癌)이라고 했죠. 평생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었는데 말이죠. 귀가 이상해서 간 병원인데 코에 암이 있다고 하니 쉽사리 수긍할 수도 없었습니다. 자다 한쪽 코가 막히는 일이 많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는데, 그것이 암 증상의 하나라는 것도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치료를 맡은 심현정 교수는 그를 긍정적 환자로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비인두암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임파선에도 전이가 된 상태였고요. 부위가 부위이니만큼 수술을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항암화학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병행해야 했는데 잘 버텨주셨습니다. 보통은 항암 동시 방사선치료 과정이 고통스러워 포기하고 병원에 안 오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김 선생님은 치료도 빠지지 않고, 힘들다는 하소연도 병원에 와서 하셨습니다. 그런 성실함이 암과 싸우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비인두암의 경우 그 증상이 없거나 있어도 코가 막히거나 분비물이 나오는 정도여서 감기로 오해해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고 심 교수는 경고했다. 상당히 암이 진행된 후에야 심한 두통이나 사물이 겹쳐 보이는 등의 시력이상 증상이 나타난단다. 이 때문에 감기증상이 낫지 않고 지나치게 오래 지속되면 반드시 병원을 찾아 검진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

김씨의 항암치료는 쉽지 않았다. 항암치료를 위해 좋지 않은 치아는 미리 빼야 했다. 무려 11개나 뽑았다. 치료 과정에서 머리는 빠졌고, 방사선이 지나간 자리는 까맣게 타들어갔다. 침샘에 이상이 생겨 침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식도에도 영향을 줘 물 한 모금 삼키기 어려웠다. 입맛이 변하는 것을 걱정하는 것은 사치였다. 물맛도 변할 정도여서 즐거운 식사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 어려웠던 싸움은 2008년 5월 다행히 그의 승리로 끝이 났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아직 진짜 전쟁은 시작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렇게 치료를 끝내고 3년을 살얼음 걷듯 살았습니다. 5년이 지나면 완치라고 이야기하니까 2년만 더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암을 겪고 나니 귀가 얇아졌습니다. 혹시 재발될까 두려워 암에 좋다는 음식이란 음식은 모두 찾아 먹고, 채식 위주로 생활했습니다. 야채도 직접 텃밭에서 유기농으로 가꿔 먹었습니다. 농약을 쓰지 않아 벌레가 먹고 남은 것들이었지만, 몸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죠. 물론 음식에 소금은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입맛에 맞지 않았지만, 그 스트레스는 음식 투정에 불과하다 생각했습니다.”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브라보마이라이프)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브라보마이라이프)

매달 하는 추적검사에선 별다른 소견이 없어 안심하던 시기에 변고는 느닷없이 찾아왔다. PET(양전자단층촬영)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된 것이다. 대장암이었다.

“전이된 것이 아니라 대장에서 암으로 발전된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젊을 때 그렇게 마셔댄 술이 사달을 낸 것이겠지요. 마셨다 하면 소주 서너 병은 기본이었고, 1년에 366일을 마셨으니까요. 결국 수술을 했고 대장을 일부 잘라냈죠. 의사 이야기로는 30㎝ 정도라더군요. 위에서도 암이 발견됐습니다. 다행히 위암은 초기여서 복강경 수술로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대장암 수술을 마치고 깨어나 아내의 얼굴을, 그리고 아들과 딸의 모습을 보면서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눈물을 삼켜야 했다고 그는 이야기했다. 수술 직전에는 차라리 깨어나지 않기를 남몰래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술을 마친 그는 독한 맘을 먹고 그 힘든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했다. 치료는 그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이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달라져 있었다.

“비인두암 치료 이후에 그렇게 조심스런 삶을 살았는데, 다시 생겨나는 암을 겪으면서 암을 바라보는 관점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일종의 암에 대한 해탈과 같은 것이었죠. 그렇게 좋다던 차가버섯부터 살구씨, 후코이단(미역이나 다시마의 점액성분), 개똥쑥, 상황버섯까지 모두 큰 효험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병원에서 교수님들이 알려주신 대로 아주 짜고, 맵고, 달고, 기름진 것과 술, 담배, 탄 음식 정도를 빼고는 맘껏 먹었습니다. 소금도 적당히 먹고 고기도 열심히 먹었습니다. 산나물이나 야채는 아직도 열심히 먹지만 효소나 즙같이 유난스럽게 만들지 않고 간단하게 반찬으로 해 먹는 정도입니다.”

그렇게 먹고 싶었던 라면과 삼겹살을 실컷 먹게 된 일은 남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물론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다. 일과 운동을 놓지 않은 것이다.

“비인두암 치료와 추적검사가 어느 정도 지난 후에 체력을 되찾은 시점부터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35년 일한 한국통신에서 퇴직한 이후 발병 때까지 아파트 관리소장 일을 했는데, 항암치료를 받고 2009년 7월부터 다시 시작했죠. 아직까지 일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크지 않은 돈이지만 치료비에 보탬이 돼 정신건강에도 좋고,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에 도움이 돼 체력적으로 좋습니다. 일을 하지 않을 땐 조선대학교 뒷산에 올라 운동을 하기도 하고요.”

심 교수는 이런 그의 모습을 칭찬한다. 정상적인 일상생활과 가정생활을 유지하며 긍정적 마음으로 병과 싸워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암환자들은 항암치료를 받게 되면 일상생활을 중단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충분히 통원치료가 가능한데 장기 입원을 하려 한다거나, 요양병원 같은 곳에 머무르려고 하는 것이죠. 이런 경향은 비용적인 부담뿐만 아니라 우울감을 키워 치료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소중한 시간을 가족과 떨어져 낭비하는 것도 문제죠. 김 선생님은 가족과 생활하며, 일상생활을 유지하셨다는 면에서 모범적인 환자입니다. 선생님처럼 투병에 대한 의지를 자신 있게 이야기하시는 환자가 많지 않을 정도니까요.”

▲그의 일터인 아파트 관리실에서 근무 중인 김규태씨의 모습. 투병 중에도 직장생활을 유지한 것은 건실한 투병의 배경이 됐다.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브라보마이라이프)
▲그의 일터인 아파트 관리실에서 근무 중인 김규태씨의 모습. 투병 중에도 직장생활을 유지한 것은 건실한 투병의 배경이 됐다.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브라보마이라이프)

김규태 씨는 화순전남대학교병원 전남지역암센터가 개최한 제1회 ‘암극복 수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김씨가 수기를 쓰게 된 것은 아내의 추천이 계기가 되었다. 2010년 KBS <우리말 겨루기> 본선에 진출했을 정도의 실력자였기에 글을 쓰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수기를 통해 전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다른 환우들이 암치료 과정에서 저처럼 시행착오를 겪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특히 음식에서 말이죠. 저염식에 너무 스트레스 받거나 불필요한 건강식품에 휘둘리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골고루 맘껏 먹고, 일을 놓지 않고, 운동을 쉬지 않으면 암을 이기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삼신(三信)으로 삼암(三癌, 비인두암·대장암·위암)을 이겨가고 있다고 썼는데, 삼신은 가족과 교수(병원), 나를 믿는 것을 이야기해요.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오늘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암은 극복해낼 수 있는 병입니다.”

그의 치료에는 심 교수뿐만 아니라 이비인후과, 방사선종양학과, 대장암과 위암 치료를 위한 외과의 많은 교수진이 참여했기 때문에 신뢰는 반드시 필요했다는 것.

긴 이야기를 풀어낸 뒤 조금 지쳐 보이는 그였지만,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진심이라는 것, 암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의 투병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치료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믿어본다. 그의 확신을. 그리고 그의 완전한 승리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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