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화만사성의 조건 Part 1] 97세 김형석 교수의 위대한 가족愛 '사랑이 있는 가정으로 돌아가라'

기사입력 2016-05-06 06:39 기사수정 2016-05-06 06:39

가정의 달이 되면 기억에 떠오르는 한 평범한 가정이 있다.

박 선생은 50전 후의 여자였다. 서울 강남에서 다과와 음료수를 겸한 알뜰한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어떤 날 전혀 모르는 한 남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미국에 사는 초등학교 친구가 꼭 전해 달라는 편지 부탁을 받고 서울에 왔는데 만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편지는 부산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 가까이 지냈던 친구의 두툼하게 밀봉한 흰 봉투였다. 전해 준 남자는 심부름만 했으면 되니까 곧 떠나야겠다면서 자리를 떴다. 박 선생은 집에 돌아와 옛날 친구의 어떤 사연인가 궁금해 뜯어 읽어보았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어렸을 때 같이 지냈던 일들이 생각난다. 나는 결혼을 하고 3,4년이 지난 후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시카고에서 남편과 두 딸과 함께 지낸다. 식료품재료상을 경영하고 있는데 지금은 주변사람들이 성공했다고 부러워 할 정도로 자리가 잡혔다. 남편은 성실하고 더할나위 없이 착한 사람이다. 이 편지를 전해주는 사람이 남편인데 나는 아직 모든 내용을 비밀에 부치고 있다. 큰딸은 고등학생이고 작은딸은 중학교에 다니는데 아버지를 닮아서 성격이 온순하고 공부도 잘하는 우등생이다. … 그런데 3년 전에 내가 건강검진을 받다가 불치의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두 딸들에게는 숨기고 있으나 남편은 잘 알고 있다. 지금은 병세가 악화되어 내 생각에는 앞으로 3~6개월 정도가 남은 인생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나는 세상을 떠나면 모든 것을 잊게 되겠지만 저렇게 착한 남편과 희망에 가득 차 있는 딸들을 두고 갈 생각을 하니까 눈을 감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남편은 길고 긴 세월을 두 딸들과 보내려고 결심한 모양이다. 나는 아내와 엄마의 책임이 이렇게 소중한 줄은 지금까지 모르고 지냈던 것 같다.

한 달 가까이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네가 아직 결혼을 안 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 같고 주소는 모르지만 서울 영락교회에 다닌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써보내기로 했다. 그 사이에 결혼을 했거나 사랑하는 남자가 있으면 이 편지는 찢어버려라. 만일 아직 결혼을 안 했으면 우리 가정을 좀 책임맡아 주었으면 좋겠다. 간절한 부탁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위해 너를 보내 주신다면 가족들과 더불어 감사기도를 드리면서 눈을 감고 싶다.

깊은 생각의 몇 날을 보낸 박 선생은 친아버지와 같이 지내던 정 장로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상의했다. 정 장로는 나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박 선생은 내가 이끌어오던 성경공부 모임의 한 중진회원이었다. 우리는 부산에 사는 박 선생 친아버지의 동의를 얻어 선생의 미국행을 돕기로 했다. 내가 상배(喪配)하고 서울로 온 박 선생 친구의 남편을 맞아 결혼식 주례를 맡아주었다. 박 선생은 주인이 떠난 한 가정의 구세주가 되어 미국으로 떠나갔다.

최근 우리는 가정상실과 파괴에서 오는 고통을 직접 간접적으로 너무 많이 보고 체험하면서 살고 있다. 그 가정파괴에서 오는 상흔이 많은 사회악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가난한 서민층만이 아니다. 지도층 인사들의 가정에서도 흔히 보는 현상이어서 더욱 걱정스럽다.

가정에서 실패했고 불행해진 사람이 어떻게 행복한 인생을 영위할 수 있으며 이웃과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가정은 사랑의 보금자리이다. 참 사랑이 있는 가정은 언제 어디서나 행복을 찾아 누릴 수 있다. 사랑은 빼앗아 갖는 것도 아니고 혼자 누리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위해주는 마음과 실천이다. 사랑은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한 것이다.

나는 가정의 극치는 여성들의 모성애에 있다고 믿는다. 우리 어머니의 눈물이 우리 가정을 키워주었다. 내 아내의 희생적인 고생이 지금은 30여 명의 가족을 행복으로 이끌어주고 있다. 나는 우리 주변의 많은 여성들이 그 모성애를 베풀어주기 바란다. 그것만이 따뜻하고 행복한 가정과 사회를 다시 건설해 줄 것으로 믿고 있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 김형석(金亨錫) 연세대 명예 교수

올해 97세인 김형석 교수는 평남 대동에서 태어나 일본 조치(上智)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철학과에서 30여년간 후학을 길렀고 지금은 저서활동과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30년 전부터 일주일에 2번씩 수영을 하고 아침 식사로 계란, 사과를 먹는 게 건강 비결이다. 후배들과 신촌 카페에서 담소를 즐기는 따뜻하고 다감한 한국 철학계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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