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내 집에선 괜찮아!”… 노후 주거 전문가의 조언

기사입력 2025-03-25 08:48 기사수정 2025-03-25 15:39

[북인북] 김경인 노년 신경건축학자

북인북은 브라보 독자들께 영감이 될 만한 도서를 매달 한 권씩 선별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해당 작가가 추천하는 책들도 함께 즐겨보세요.

걷기 힘든 보도, 앉을 곳 없는 거리, 단절된 커뮤니티 등에서 노인을 위한 배려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작은 변화가 시작된다면, 도시도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변할 수 있다.

벤치를 설치하고, 보행로를 정비하며, 세대 간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면

나이가 들어도 살아가기 좋은 도시를 만들 수 있다.

- ‘나이 들어 어디서 살 것인가’, 13p

노인 5명 중 1명이 혼자 살고, 고령자 사고의 63%가 집에서 일어난다는 통계는 뭔가 잘못 설계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할지도 모른다. 집과 도시가 노인을 지켜주기는커녕 위협이 되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브라보 마이 라이프)
(브라보 마이 라이프)

친숙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내 집’이라도 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그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균형 감각, 근력, 시력 등 신체적 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노인들은 종종 오래도록 살아온 보금자리를 떠나 요양시설로 옮기라는 권유를 받지만, 삶의 흔적이 담긴 곳을 떠나는 일에 큰 두려움과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상황은 단지 고령자만의 일이 아니다. 누구나 나이를 먹고, 지금의 집과 도시는 언젠가 위험한 환경이 될 수 있다. 신간 ‘나이 들어 어디서 살 것인가’는 노인이 마주한 일상적이고도 현실적인 어려움에서 출발한다. 노년 신경건축학 기반 공간 디자인 전문가이자 책의 저자인 김경인 박사는 “지금 공간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미래 또한 안전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공간·주거·도시라는 세 가지 관점을 통해 고령화 시대를 분석하고, 익숙한 환경에서 존엄을 지키며 자립할 방법을 소개한다. 부모의 주거 환경을 고민하는 자녀는 조언을, 혼자서도 품위 있는 삶을 원하는 사람은 노후 지침을, 건축가·도시계획가·사회복지사 등 업계 종사자는 통찰과 영감을 얻을 기회가 될 수 있다. 초고령사회가 현실이 된 2025년. ‘나이 들어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는 전 세대가 함께 고민해야 할 화두다.

▲김경인 작가의 저서와 사인(브라보 마이 라이프)
▲김경인 작가의 저서와 사인(브라보 마이 라이프)

당연한 것은 없다

김경인 박사는 노인의 신체적·정서적·사회적 변화를 깊이 이해하고, 이를 반영한 주거 및 도시 구축 방안을 제안해왔다. 2016년부터는 서울시 인지건강 디자인 프로젝트에 참여해 치매 예방과 대응을 위한 공간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외에 1000여 건의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고령자들에게 최적화된 장소를 구현하고자 힘썼다. 이렇듯 그가 사람을 위한 환경을 구상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2001년 한 실습에서 비롯됐다.

“‘장애인 편의시설 시민대학’에서 휠체어를 타고 경복궁을 둘러보는 실습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직접 휠체어를 타보니, 나에게 당연했던 상황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도전인지 절실히 느낄 수 있었어요. 이후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고, 자연스레 고령자에게도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책 ‘나이 들어 어디서 살 것인가’는 초고령사회 진입에 발맞춰 시민 모두가 존엄을 유지하며 자립적인 노후를 보낼 방법을 같이 고민해보자는 취지에서 집필했습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브라보 마이 라이프)


노인만을 위한 실버타운이나 세대를 분리한 주거 형태는

세대 간 교류와 돌봄의 기회를 제공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위와 같은 세대 교류형 주거시설이다.

세대 교류형 주거시설은 사회적 돌봄과 정서적 유대를 통해

다양한 세대가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서로의 삶을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 ‘나이 들어 어디서 살 것인가’, 190p


노인의 삶을 들여다보면

“너도 나이 들어봐!”

노인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단순한 푸념이 아니다. 신체적·정신적·사회적 변화를 이해해달라는 간절한 호소다. 일상적인 활동도 세월이 지나면 점점 버거워진다. 척추가 굽고 머리가 앞으로 기울어지면서 체형이 바뀌어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면, 앞을 포함한 주변의 다양한 요소를 인식하기 어렵다. 그렇게 ‘안락한 내 집’은 ‘나를 해칠 수 있는 장소’로 바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공간 설계는 여전히 젊고 건강한 세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은 언젠가 노인이 되잖아요. 이들을 이해하는 일은 곧 우리가 맞이할 날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관련 세미나나 포럼, 통계자료를 보면 여전히 수치로만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진정으로 노년에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봐야 하죠. 하지만 최근 가장 주목받는 주거 형태인 실버타운조차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여생을 어디서 보낼지 고민하는 이들이 떠올리는 곳 중 하나인 실버타운. 주거·의료·여가 서비스가 결합된 맞춤형 모델로, ‘낙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브라보 마이 라이프)

노후의 낙원은 어디일까

여러 실버타운을 직접 둘러본 김 박사는 오히려 ‘집에서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외관은 고급스럽지만 내부는 지나치게 표준화된 구조였고, 자연스러운 생활공간이 아닌 관리 시설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세 끼 식사, 건강검진 등 편의를 제공하지만, 결국 개인의 삶과 취향을 반영하지 못했어요. A타입, B타입은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했다기보다 평형에 차이를 둔 거죠. 자연경관도요. 일정한 형식으로 배치된 나무와 꽃은 활력과 추억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워요. 건강한 사람에게 적합하게 만들어진 운동시설 역시 노인들에겐 부담스럽고요. 무엇보다 65세 이상만 입주 가능한 곳은 비슷한 연령과 배경의 사람들로 구성돼 안정감을 줄 수는 있지만, 대화 주제가 과거에 머물거나 자주 반복될 거예요. 이런 상태로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자극이 부족해질 가능성이 높아요. 입주민 외 외부인도 이용하도록 공용공간이 개방된, 세대 교류형 시설로 발돋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꼭 고급 시설 입소만이 ‘낙원’은 아니다. 김 박사는 간단한 개선을 통해 익숙한 공간, 소중한 사람 곁에서 나이 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문턱 제거, 손잡이 설치, 동선과 생활 반경을 고려한 가구 선택과 배치부터 개선해야 한다. 작은 정원을 꾸리고, 가족사진이나 소중한 물건을 배치하면 정서적 안정과 정체성 확립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사회가 함께 변화해야죠. 노인 친화적인 공간을 마련해 자립을 돕는다면 사회적 비용도 절감되거든요. 노인의 경험과 지혜를 자산으로 활용하기 위해 공용공간을 연결의 장으로 만들면 어떨까요. 세대 간 공존의 해답이 공간에 달렸습니다. 고령화는 사회의 쇠퇴가 아닌 새로운 가능성의 시기가 될 거예요.”

(브라보 마이 라이프 마이 라이프)
(브라보 마이 라이프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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