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도사 되는 법] 컴퓨터 영어 정복 위해 야간대학 다녀

기사입력 2016-05-31 15:47 기사수정 2016-06-22 12:22

도덕경에 필작어세(必作於細)란 말이 있는데 어떤 큰 일이든 반드시 조그만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어떤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릇 작은 고통은 반드시 감수해야 한다.

직장에 입사해 누런 16절지에 인쇄된 양식 위에 먹지를 대고 네, 다섯 부를 작성한 기억이 떠오른다. 검은 볼펜으로 꾹 눌러 써야만 제일 뒷장이 보일 정도이니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지 알 것이다. 특히 오타라도 생길라치면 글자 위에 두 줄을 긋고 정정한 글씨를 쓰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필자가 20대 시절엔 마이컴, 마이카의 세상이 오리라곤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위해 프랑스 기술자들과 같이 근무할 때 필자는 타자기가 고작이고 이것도 한번 사용하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인데 외국인들은 노트북 컴퓨터를 사용했다. 노트북이 워낙 신기해 외관도, 자판도, 모니터도 몇 번이건 만지고 또 만졌다. 우리나라 기술자는 도면, 기술서류 등 하드카피에 파묻혀 일하고 있는데 외국인은 책상에 노트북 컴퓨터 1대만 덜렁 올려 놓고 근무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달나라에서 온 이방인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워드프로세서라는 브라운관식 모니터가 딸린 컴퓨터가 사무용으로 보급됐다. 물론 덩치가 워낙 커서 책상 1대를 독차지하고, 70명이 근무하고 있는 사무실에 1대가 배치돼 신입사원인 쫄다구가 한번 사용해 보려면 퇴근시간 이후나 가능했지만. 그래서 필자는 퇴근시간 이후에 컴퓨터를 만져볼 수 있다는 기대로 마냥 그 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막상 컴퓨터 전원스위치를 켜면 모니터에 C:// 도스를 진행할 용어를 넣으라고 커서가 깜박 꺼린다. 컴퓨터 컴자도 모르는 컴맹이 사용하기에는 너무 어려워 고철덩어리나 다름 없었다.

컴퓨터 전공자들은 그나마 사용할 수 있어 퇴근시간이면 이들이 하는 걸 어깨너머로 보고, 노트에 기록하면서 배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용하다 보면 밤 12시를 넘겨서 통행금지 시간에 걸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사용하다 보면 에러 메시지가 뜨는데 재부팅해서 사용하다 컴퓨터가 먹통이 된 적도 많았다. 그런 다음날 출근하면 으례 상급자들에게 욕을 먹곤 했다.

사용 매뉴얼을 읽어 봐도 어려운 영문용어로 돼 있어서 사용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글판 매뉴얼이 발행되어 보기는 쉬웠으나 해석이 잘못돼 영문 매뉴얼을 같이 보지 않으면 않됐다.

컴퓨터 달인이 돼 사용법에 대한 쉬운 책을 쓰겠다는 생각에 대학 영어영문학과 3학년에 편입했다. 주간에는 업무 보고 야간에는 학생으로서 공부에 매달리느라 정말 ‘밤을 잊은 그대’가 됐다. 그러나 시작하면 반은 이룬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당시 하루 하루는 정말 지루하고 너무 힘들었지만 1년은 순식간에 가버렸다. 1년이 이렇게 짧은걸 처음 알았다. 어느덧 졸업도 하고 하나를 이뤘다는 성취감이 뿌듯했다.

하지만 컴퓨터에 대하여 배우면 배울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을 느꼈다. 컴퓨터를 쉽게 배울 수 있는 책들이 시중에 하루가 멀게 홍수처럼 나오기 시작했으나 대부분의 책들이 번역한 책들을 모방하는 수준 밖에 되지 않았다.

컴퓨터를 잘하려면 자판의 글자를 익혀야만 쉽다고 해 그때 나온 프로그램도 활용했다. 한글과 영문 자판 숙달용인데 글자가 모니터 상단에서 내려오면 그 글자를 자판으로 쳐서 손이 자판에 익숙하도록 하는 게임이었다.

드디어 회사에서 1개 부서당 3대의 공용컴퓨터를 지원해주게 돼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많아 졌다. 근무시간에도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틈을 이용해 자주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문서를 작성하고 편집하고 인쇄하고 사용하는 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는 됐다. 하지만 사용 중 에러메세지가 뜨면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을 몰랐다.

컴퓨터에 대해 좀 더 깊게 공부 하려고 생각하고 있을 때 회사에서 컴퓨터 활용능력 필기 및 실기시험을 시행한다는 공고문이 나왔다. 필자가 원하고, 기다리던 시험이어서 도전장을 내밀기로 했다. 이왕이면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하기 위해 퇴근 후 사무실에서 실기시험 준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필기시험 준비를 내실 있게 진행했다. 그 결과 무난히 필기 및 실기 시험에 합격하는 쾌거를 얻게 됐다.

컴퓨터를 공부하면 할수록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이 하루자고 나면 새로운 용어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고, 어제 알고 있는 정보는 구식이 돼 버리는 것이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은 지장이 없었으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이해하기가 너무 힘들어 컴퓨터에 깔려 있는 프로그램부터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어느 정도 이해됐을 때 이제까지 익혀온 지식을 활용해 개인 홈페이지 만들기에 도전하기로 하고 나모웹에디터 프로그램 공부와 실습을 같이 해 본 결과 무난히 홈페이지가 완성됐다.

이제까지 배운 지식으로 한수원 최초 전자결재시스템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기본계획을 수립해 관련 부서에 협조를 받는 과정에서 어려움에 직면했다. 모두가 필자와 같이 변화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컴퓨터에 대한 상식이 없는 선배와 상사들이 변화가 두려워서 “이제까지 모든 업무가 아무 문제없이 잘되어 가는데 쓸데 없이 골치 아픈 시스템을 만들어 누구를 골탕 먹이려고 하느냐” 등 핀잔을 들엇다. 그래서 중도에서 포기할까도 했으나 이왕 시작 한거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초심과 같이 최고 결재권자에게 보고했ㄷ. 그런데 최고결재권자가 거부는커녕 정말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진행하다 문제가 발생하면 직접 대면보고를 하라고 칭찬해주기도 했다.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두러움도 있었다. 꼭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안 되면 어떻게 하지 불안감이 시간이 갈수록 쌓여 갔다. 이렇게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드디어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나 전자결재가 다음 결재자로 전달되지 않아 또 한 번 실의에 빠졌다. 그러나 하면 된다는 신념과 끈기로 밀어붙인 결과 6개월 만에 시스템 가동에 성공했다. 그리고 3개월 간 기존시스템과 같이 사용 후 전자결재시스템으로 바꾸게 됐다. 그 당시 만들어 놓은 시스템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아주 만족하게 잘 사용돼 후배들로부터 문서관리 일등공신이란 평가를 받는다. 필자는 후배들에게도 이 시스템에 안주하지 말고 더 좋은 아이디어와 시스템이 있으면 언제든지 바꾸라고 조언도 해주고 앞으로도 후배들을 위해서 힘 닿는 데까지 도울 생각이다. 브라보 시니어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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