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변화를 준 한 권의 책]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기사입력 2016-09-19 09:06 기사수정 2016-09-19 09:06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표지. (박미령 동년기자)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표지. (박미령 동년기자)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마음속의 감정이 메말라가는 과정이 아닌가 한다. 젊은 날 책을 붙들고 밤을 새우며 때로는 눈물짓던 감동의 기억이 세월에 바래 아스라한 것도 가을 낙엽처럼 건조해진 감정 탓이리라. 그래서 그런지 갈수록 감동을 자아내는 일이 가물에 콩 나듯 한다. 어쩌면 설레는 미래보다 색 바랜 과거가 늘어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또 하나는 나를 둘러싼 환경과 세상에 대한 대응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사람 만나는 일도 줄고 되도록 관계가 복잡해지는 것을 피한다. 그것은 어쩌면 세상의 주인공 자리를 넘겨준 자의 공허함 때문인지 모른다. 문제는 그 이후다. 익숙한 삶에서 점차 멀어지고 경험해 보지 못한 안갯속 삶 앞에서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때 만난 책이 김정운의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이다. 코믹한 외모에 해학적인 강의로 재미있는 사람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책으로 접한 그의 내면과 지식은 매우 단단했다. 보통 사회학이나 경제학 쪽으로 고령화와 노년의 삶을 분석한 글은 많지만, 그 긴(?) 기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심리학적으로 풀어 안내한 책은 이 책이 처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읽기 힘든 학술 이론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므로 읽기 편하다. 게다가 타고난 입심으로 매 장마다 웃음을 참기 힘들 정도로 재미있다. 그러면서 우리 생각의 의표를 찌른다. 그는 우리의 삶이 성공이라는 허상을 좇으며 심신이 망가져 있다고 진단한다. 돈과 권력이 많을수록 그걸 감추다가 “한 방에 훅 간다”고 경고한다.

“격하게 외로운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외로움이 ‘존재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바쁘고 정신없을수록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도 좀 적게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바쁘게들 삽니다. 그렇게 사는 게 성공적인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꾸 모임을 만듭니다. 착각입니다. 절대 그런 거 아닙니다. 바쁠수록 마음은 공허해집니다.” 위로가 되는 말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독자를 계몽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는 50세가 되는 2012년 1월 1일 일기장 첫머리에 ‘난 이제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한다.’라고 적었고, 그 즉시 교수직을 버리고 일본으로 떠나 자신이 하고 싶었던 그림 공부에 나선다. 그리고 이 책은 그가 일본 생활을 하면서 보고, 느끼고, 깨달은 이야기를 쓴 것이다.

인상 깊은 그의 고백은 “방구석에 앉아 결심은 원대하게 세웠지만, 정작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나는 스스로에게 크게 절망했습니다. 주체적으로 살라고 떠들고 다녔지만, 정작 자신은 그런 삶을 위한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었던 겁니다.” 그의 선택도 그리 영웅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우리 모두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는 요즘 그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며 부러워하는 사람에게 꼭 묻는단다. “그대는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다들 당황한다.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모르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세계여행이란다. 이 대목에서 잠깐 움찔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자문 때문이었다. 고령화의 기나긴 시간을 채워줄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과연 무엇인가.

이 책은 ‘불안하면 숲이 안 보인다.’ ‘남에 의해 바뀌면 참 힘들다.’ ‘금지를 금지하라.’ ‘의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등 네 개의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글은 분야와 장르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한다. 그나 그릴 수 있는 외설적인 그림과 함께 재미나는 글을 읽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어느새 우리가 모르고 있던 우리의 심리를 알게 되고 자신의 미래가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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