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은퇴 강의를 할 때 빼놓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강의를 들을 때 다들 웃어넘기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찬바람이 부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바로 ‘우리나라 중·장년들의 세 가지 오해’ 때문이다. ‘나는 100세까지 못 살 거야, 내 자식은 다른 집 자식과 다를 거야, 내 배우자는 다른 배우자와 다를 거야’라는 생각은 오해 또는 착각일 수 있다.
위의 세 가지 오해가 정말 오해로만 끝난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인생도 없을 것이다. 80세를 건강하게 훌쩍 넘기고 자녀(손자 손녀 포함)들이 자주 찾아와 안부를 물어주고 배우자와 오순도순 살다 죽으면 더 이상 바랄 게 뭐가 있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한두 가지 또는 세 가지 모두가 오해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이다. 100세까지 살지 못할 거라면서 허랑하게(?) 살다가 병들어 누워보라. 자식도 배우자도 없이 썰렁한 방에 혼자 누운 인생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일본에서 시작된 고독사(孤獨死)는 결코 남의 나라, 남의 일이 아니다.
어쩌면 중·장년들이 자주 하는 세 가지 오해에서 비롯된 일일 수도 있다. 그 오해들을 좀 더 살펴보자. 첫 번째, 나는 과연 100세가 되기 전에 죽을 것인가? 기대수명(期待壽命, 2014년 기준)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지만 평균 82.4세로 남자는 79.0세, 여자는 85.5세다. 혹자들은 그런데 왜 100세까지 살 거라고 협박(?)을 하냐고 따질 수 있다. 기대수명은 0세의 출생자가 향후 몇 년을 더 생존할 것인가를 통계적으로 추정한 기대치를 말한다. 같은 연장선상에서 60세 남자가 향후 몇 년을 더 생존할 것인가를 통계적으로 추정한 기대치는 기대여명(期待餘命)이다.
통계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성별로 각 나이의 기대여명을 구할 수 있다. 60세의 기대여명은 몇 년일까. 남자는 22.4년, 여자는 27.4년이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평균적으로 보면 현재 60세의 남자는 앞으로 22.4년을 더 살다가 82.4세경에, 60세의 여자는 27.4년을 더 살다가 87.4세경에 생을 마감할 것이라는 얘기다. 현재 70세의 기대여명은 남자와 여자가 각각 14.5년과 18.3년이므로 남자는 84.5세, 여자는 88.3세까지 산다는 추정치다. 의학발전 등을 감안하면 앞으로 기대여명이 더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60대 남자들은 85세 안팎까지, 60대 여자들은 90세 안팎까지 살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이 추산도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100세까지 사는 이들도 적잖을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11월 현재 우리나라의 100세 이상 고령자는 3159명으로 남자가 428명, 여자가 2731명에 달하고 있다. 인구 5000만 명 중 3159명이면 그리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문제는 늘어나는 속도에 있다. 2010년의 1835명과 비교할 경우 5년 만에 1324명, 72.2%나 증가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인구 10만명당 100세 이상 고령자는 6.6명으로 2010년 3.8명에 비해 2.8명이나 늘어났다.
일본의 경우 100세 이상 인구가 6만5692명으로 인구 10만 명당 51.7명이나 된다. 일본 정부는 장수사회를 기념하는 취지로 1963년부터 100세 노인에게 기념 은잔을 선물해왔다. 당시만 해도 153명에 불과했던 100세 고령자가 53년이 지나면서 무려 420배로 늘어난 것이다. 작년까지 순은(純銀)으로 만든 잔을 선물했지만 올해부터는 도금한 은잔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2050년에는 100세 인구가 100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추산이 나오는 가운데 은잔에 들어가는 예산을 감당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두 번째, 내 자식은 과연 다른 자식과 다를 것인가? 오해가 아니면 얼마나 좋을까. 효자 효녀를 둔 부모들은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해서 복 받았다 생각하며 고마워하면서 살면 된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다. “이번에 얼마만 해주시면 부모님을 평생 잘 모시겠습니다.” 물론 이런 약속을 잘 지키고 부모를 잘 모시는 자식도 있다. 하지만 재산 다 털어주자 찾아오지도 않는 자식 때문에 후회하는 부모들도 적지 않다. 자식에 대해서라면 유난스러운 우리나라 부모들 아닌가. 최악은 재산을 다 넘겨준 부모도, 넘겨받은 자식도 생활이 어려운 경우다. 처음부터 부모에게 불효하고 싶은 자식은 없을 것이다. 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불효자가 되는 것이다. 자식은 젊기라도 하지만 부모는 나이가 들어 회복 가능성이 전혀 없는 막다른 골목 앞 상황일 수 있다. 재산을 다 주고 나서 후회하는 기간이 이전처럼 10년 안팎이라면 그나마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30~40년 동안 가난 속에서 후회하며 살아야 한다.
세 번째, 내 배우자는 다른 배우자와 다를 것인가? 물론 믿고 사는 게 편하다. 그러나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자. 남편이 90세, 아내가 87세인데 남편이 병들어 눕게 되었다. 지금까지 남편에게 지극정성이었던 아내는 당연히 수발도 직접 들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87세의 여자가 90세 남자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 마음이 있어도 신체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배우자를 끝까지 지켜주고 싶어도 현실적으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무리하다가는 건강한 아내가 먼저 세상을 뜰 수도 있다. 극단적인 사례라고 생각하겠지만 곧 중·장년들에게 다가올 미래임은 틀림없다.
이쯤에서 내려야 할 결론은 긴 말 필요 없이 ‘거안사위와 각자도생’이다. 거안사위(居安思危)는 ‘편안할 때 위기를 대비하라’는 뜻으로 유비무환(有備無患)과 같은 말이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은 제각기 살길을 찾으라는 말이다. 중·장년들은 이제 100세 인생을 예상하고 은퇴 후 60대, 70대, 80대, 90대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계획해야 한다. 가족, 친구들과 어울리며 건강하고 재미있게 살려면 필자가 늘 강조하는 5F를 챙겨야 한다. 즉 ‘Finance(돈), Field(할 일), Friend(가족과 친구), Fun(재미), Fitness(건강)’를 연령대별로 설계하고 챙겨놔야 한다.
누구든 배우자 혹은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내고 혼자 남는다. 그게 인생이다. 오해와 착각은 자유이지만 그 결과는 내가 지고 가야 할 무거운 짐이다. 그래서 끝까지 믿어야 할 존재는 자식과 배우자가 아닌 내 자신인 것이다. ‘9988 234’라는 말이 있지만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3일 앓다가 세상 뜨는 일이 마음대로 될까. 내가 먼저 갈 때 혼자 남은 배우자가 끝까지 품위를 지키며 살다 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다. 특히 남편이 아내보다 3~4세 정도 더 많을 때 남편이 가고 난 뒤에도 아내는 10년 정도 더 살아야 한다. 남아 있는 아내가 고충 없이 잘 살다가 뒤따라오도록 자산을 남겨둬야 하는 것이다. 이때 먹고 사는 것뿐 아니라 치료비와 간병비도 충분히 챙겨야 하는 것 잊지 마시라.
>> 최성환(崔聖煥)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한국은행 과장, 조선일보 경제전문기자, 고려대 국제전문대학원·경영대학원 겸임교수, 한화생명 경제연구원 상무, 은퇴연구소장 등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