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중심의 사회, 그들만의 세계

기사입력 2016-11-08 15:00 기사수정 2016-11-08 17:56

▲엘리트 중심의 사회, 그들만의 세계(강신영 동년기자)
▲엘리트 중심의 사회, 그들만의 세계(강신영 동년기자)
아버지는 필자를 서울 사람으로 만들어놓았다. 농촌에서 태어난 필자가 그냥 그곳에서 자랐으면 농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한 사람의 인생 여정이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도 귀농 귀촌을 꿈꾸고 있는 걸 보면 농촌을 좋아하는 건 분명해 보인다. 힘도 좋고 원래 작물 가꾸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농부가 되었어도 별 불만이 없었을 것 같다. 그러나 필자는 서울로 올라와 공부를 했고 직장생활 후에도 여전히 퇴직 노인으로 서울에 살고 있다. 아버지는 필자를 시골 사람에서 서울 사람으로 만들어놓았으니 필자의 자식들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해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방법 중 하나는 미국 이민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싫다고 했다. 자식들을 위해 타국에서 주류 사회로 진입하는 일이 과연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특히 미국 사회는 백인 중심의 엘리트가 주류인 나라다. 물론 자식들의 능력에 달려 있기는 했지만 필자는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필자가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경험한 일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현장에서는 필자가 특진 대상이라며 인사고과 담당자에게 언질까지 받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면 필자는 밀리고 엉뚱한 사람이 특진자로 발표되곤 했다. 그래서 인사고과가 발표된 후에 실망해서 회사를 나가는 사람들도 많다. 처음에는 일 년 동안은 어떻게든 참아보고 다음 해를 기대해보지만 다음 해에도 그런 일은 반복되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인사고과에 작용했던 것이다. 대기업이든 사기업이든 일가친척을 중시할 것이다. 소위 로열패밀리다. 그것도 아니면 그들과 학연, 지연이라도 있어야 한다.

필자는 한 고인의 회고록을 대필해준 적이 있다. 중소기업을 탄탄하게 운영하다가 안타깝게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분이었다. 고인의 주변 사람들을 만나 고인과 생전에 겪었던 일들을 인터뷰했다. 고인은 지방의 명문고를 나왔지만 소위 일류대학에는 못 들어가고 중류 정도의 대학에 들어갔다. 졸업 후 직장에 들어간 고인은 일 잘한다는 칭찬에도 불구하고 승진 대상에서 번번이 명문대 출신들에게 밀렸다. 어디에나 명문대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끼어들 틈이 없었던 그는 절망하고 직장을 박차고 나와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다행히 사업은 잘 되었고 재경 총동창회장으로 추대되어 눈부신 업적도 많이 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랑스런 모교 졸업자 수상자 추천에서 또 번번이 떨어졌다. 정치가 또는 공직자가 아니어서 지명도가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자랑스런 모교 졸업자는 늘 유명인이 선정되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공사다망해서 수상식 자리에도 못 올 정도로 바빴다. 수상 이후에도 그에 걸맞은 행적을 찾기 어려웠다. 지독한 엘리트 중심의 사회였던 것이다. 법관이나 공기업 사장 정도 되어야 엘리트라고 인정이 되는 사회였고 그들만의 세계는 하도 탄탄해서 감히 누구도 끼어들지 못했다. 오직 그들끼리만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줬다. 이런 계층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철저히 비주류였다.

우리 사회에는 주류, 비주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비주류 사람들은 당연히 콤플렉스와 허탈감에 시달린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에서 더 이상의 어떤 동력을 받을 수 있겠는가. 사회가 좀 변화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전히 사농공상의 뿌리 깊은 잔재는 남아 있다. 그래서 신분상승을 위해 고시에 목매달고 온갖 무리를 통해서라도 정치계나 공직계로 나서는 모양이다. 참 씁쓸한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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