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 가상현실에 살고 있다

기사입력 2017-02-16 17:35 기사수정 2017-02-17 08:45

▲우리는 이미 가상현실에 살고 있다(박미령 동년기자)
▲우리는 이미 가상현실에 살고 있다(박미령 동년기자)
현실 속 인간의 삶은 찌질하다. 대부분 공들여 화장하고 멋진 옷 입고 외출하여 유행하는 브랜드 커피숍에서 온갖 있는 지식 없는 지식 다 동원해 그럴듯한 수다 떨고 귀가하는 순간 곧 무료한 삶을 마주한다. 집에 오면 아무거나 입고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끝나면 TV 앞에 앉아 졸다가 침대에 올라 잔다. 간혹 ‘이러려고 태어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삶은 지루하다.

최근 미래 기술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다. 새로운 영상기술로 가상현실기기를 쓰면 눈앞에 다른 세계가 생생하게 펼쳐지는 기술이다. 사실 이런 기술은 오래전부터 영화를 통해 익히 보아왔기 때문에 그리 새로울 것은 없다. 우선 기억에 남는 <매트릭스>를 보면 황당하기는 하지만 알약 한 개를 먹으면 가상의 세계로 들어간다.

오래전 영화로는 <토털 리콜>이 생각난다. 그 영화에는 가상현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억을 이식해주는 사업이 번창하고 있다. 영화 속 상상으로 시작해 현실이 된 것이 하나둘이 아닌데, 가상현실도 인간의 상상력으로 시작해 어느덧 현실 속에 실현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간혹 세상살이가 갑갑할 때 들어가 보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가 지루하다고 느끼는 현실은 과연 사실일까?

TV를 보고 있자면 가짜 상황을 만들고 즐기는 프로가 제법 많다. 대표적으로 ‘우리 결혼했어요’는 가상의 결혼 생활을 보여준다. 물론 이미 가짜라는 것을 알고 보니까 속는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솔로에게는 감정이입을 통해 가상현실을 즐기는 셈이다. 보이지 않는 가상현실도 있다. 넘쳐나는 ‘먹방’ 프로그램들은 1인 가구가 30%를 넘어서는 현실에서 외로운 인간들의 대리 체험을 만족시키는 가상현실이 아닌가.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악마의 편집’이 된다. 편집은 선택의 기술이다. 확보된 영상 중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을 둘러싼 정반대의 스토리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현장을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짧은 인터뷰를 위해 보통 그의 열 배 정도의 인터뷰를 찍고 그중 편집자의 구미에 맞는 서너 개의 문장이 임의로 선택되어 방송에 나간다고 한다. 항의해도 어쩔 수 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가상현실이 아닌가.

역사는 또 어떤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알고 보면 승자들이 편집한 기록을 당시의 사실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탈북한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한결같이 남쪽에서 배운 새로운 역사에 충격을 받는단다. 김일성 삼부자가 역사의 전부인 줄 아는 가상현실 속에 살다가 새로운 현실을 접하며 받는 충격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현실도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차원의 가상현실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인가. 이미 진실은 다양한 주관적 시각에 의해 다층적으로 왜곡되어 있다. 우리는 주관적으로 왜곡된 현실을 진실로 착각하면서 살고 있다. 설사 진실을 알고 있다 한들 우리가 그 누추한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있을까. 이미 진실에서 멀리 떠나온 인간은 차라리 가공된 세계 속에서 마음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지 모른다.

우울한 다큐멘터리보다 막장 드라마를 좋아하듯 이미 우리는 윤색된 가상현실에 중독되어 있는지 모른다. 지루한 삶이 진짜인가 아니면 달콤하게 각색된 세상이 진실인가. 지금도 TV 속 프로그램이 편집되듯 우리 삶도 어쩔 수 없이 끊임없이 스스로 편집하고 있는 가상현실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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