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칼럼] 5월에 생각하고 싶은 것

기사입력 2017-04-26 12:49 기사수정 2017-04-26 12:49

달력에 빨간 글자로 적힌 쉬는 날들이 많으면 사람들이 모두 좋아합니다. 놀 수 있으니까요. 자칫 질식할 것 같았는데 ‘숨통이 트인다’는 사람도 있으니 그 좋음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됩니다.

그런데 저는 가끔 정말 누구나 그렇게 좋아할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사사로운 것이긴 합니다만 저는 젊었을 때부터 명절을 포함한 쉬는 날이 두려웠습니다. 현실적으로 잘 감당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돈도, 시간도,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의 긴장도 그랬습니다. 게다가 후유증마저 없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쳇바퀴 돌듯하는 일상이 오히려 편했습니다.

다시 5월입니다. 5월에는 ‘날’이 많습니다. 모두가 반드시 쉬는 날은 아니어도 마음 쓰게 하는 날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한번 제가 아는 대로 짚어보겠습니다. 1일은 근로자의 날입니다. 음력 4월 8일인 3일은 석가탄신일이고, 5일은 어린이날입니다. 8일은 어버이날, 14일은 입양의 날입니다. 15일은 스승의 날인데 그날이 5월 셋째 월요일이어서 성년의 날과 겹칩니다. 18일은 민주화운동의 날, 다음 날인 19일은 발명의 날, 20일은 세계인의 날, 21일은 부부의 날, 25일은 방재의 날이면서 실종아동의 날이기도 합니다. 30일은 음력 5월 5일이니까 단오절이고, 31일은 바다의 날이자 금연의 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올해에만 끼어든, 그런데 어느 날보다 중요한 날이 있습니다. 9일인 대통령 선거일입니다. 그러고 보니 유권자의 날인 10일을 앞에서 빠트렸군요.

살면서 자칫 놓치거나 잊기 쉬운 귀한 가치를 ‘날로 정해’ 새삼 간직하려는 노력은 어색한 표현이지만 ‘기특한 문화’라고 일컫고 싶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사람답기를 기하는 모습이 참 대견스럽습니다. 새삼 사람다움의 긍지를 확인하게 해주니까요.

그런데 그렇다 할지라도 5월은 날이 너무 많습니다. 예부터 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過猶不及] 했는데 이 또한 오랜 경험을 통해 터득한 지혜라 생각하면 우리가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바로 5월은 그 말을 떠오르게 합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5월의 날들은 대체로 봄의 상징성과 이어져 있습니다. 겨울에 수박을 먹으면서도 계절의 흐름을 못내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삶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단순화해보면 ‘어린이로부터 어른에 이르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이 다 날로 정해져 있는 것이 5월입니다. 그렇다면 아예 그 여러 날들을 하나하나 떼어 지내기보다 이를 한 다발로 묶어 ‘5월을 한번 5월답게’ 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연세 지긋한 분들이 이 달을 어떻게 지내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우리는 모두 어른인데 참으로 어른일까?’ 하는 물음을 묻는 달, 그러니까 5월을 ‘어른임을 반추하는 달’로 삼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까닭인즉 분명합니다. 어른이 젊은이보다 많아진 이른바 고령사회가 되었는데도 ‘나이 많은 어른’은 넘쳐도 ‘나이 든’ 어른들은 그리 많지 않아 우리의 가정이, 사회가, 국가가 온통 유치한 모습만을 부끄러움도 없이 다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제가 공부하는 종교학에서는 종교문화의 특징을 기술하면서 이른바 성년식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줄여 말하면 종교란 모름지기 ‘어른 만들기의 문화’라고 해도 좋을 거라고 할 만큼의 비중을 가집니다.

문제는 이른바 ‘어른다움’이란 어떻게 기술될 수 있나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유교 전통의례인 관례(冠禮)나 계례(笄禮)를 들어 설명해도 좋겠습니다만 두루 성년의례의 보편적인 특성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서술해보겠습니다.

우선 어른은 자기의 정체성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여러 문화권에서는 그 공동체의 전래 신화를 읊곤 합니다. 어리지 않다는 것은 내가 누군지, 내가 왜 사는지, 내 존재 의미가 무엇인지를 자신 있게 천명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이름과 직업과 누구의 자식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만으로는 한참 모자랍니다.

다음으로 어른이란 삶이 물 흐르듯 그렇게 졸졸거리는 것이 아님을 아는 사람을 뜻합니다. 곤경, 좌절, 절망 등의 구비들을 한없이 거쳐야 하는 그런 것이 삶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을 회피하려는 것은 아직 어른의 삶의 태도는 아닙니다. 그 모든 부정적인 삶의 정황과 당당하게 직면하면서 마침내 ‘고통에 의미 있다’고 선언할 수 있어야 그가 비로소 유치하지 않은 어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른은 생명의 어버이가 된다는 것과 대체로 함께합니다. 생명을 낳는 존재가 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생명의 신비에 대해 언제나 외경의 염(念)을 지니고 사는 사람, 생명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 그가 곧 어른입니다.

만약 어른 됨의 이러한 서술에 우리가 동의할 수 있다면 5월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어린이날이면, 아이들을 즐겁게 하고 좋은 선물을 사주는 것도 좋지만, 아이들을 내가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 ‘어른이 되도록’ 키우고 있는지 아니면 ‘어린이로 머물게’ 키우고 있지는 않은지를 되살펴야 합니다. 스승의 날이면 내가 어떤 스승의 모습으로 학생들에게 어떤 가치를 가르치면서 그들을 어른으로 키우고 있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스스로 설 수 있는 어떤 기회도 주지 않으면서 순응만을 강요하지는 않는지, 나 자신의 어른 모습을 단단히 해체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부의 날도 다르지 않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따로 함께’ 살고 있는지, 아니면 ‘함께의 구실’로 상대방을 자신의 영토 안에 철저하게 예속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의 어른 됨을 분석해보아야 합니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그런 자식들로 이루어진 가정은 희망이 없습니다. 편하게, 쉬운 일만 찾아 살다 조금만 어려워도 주저앉고, 그러다 나이를 먹어 아비 어미가 되긴 하지만 아이가 아이를 낳은 ‘아이의 연쇄’만이 이어질 것이 빤한데, 그 가정이 제대로 된 가정일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유치함의 지속일 뿐입니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의식이 없는 시민들로만 우리의 공동체가 이루어질 때, 그 모습이 어떠할지도 그대로 보입니다. 공직에 들어서면 그것을 곧 내 사적 공간의 확장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유치하고 철딱서니 없는 공인들을 보면 짐작이 됩니다. 그런데 공직 아닌 자리가 삶의 자리에서 있기나 한 것인지요. 나이 먹어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래서 어른이 되어 산다는 것은,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내 삶의 사적 영역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인데, 이를 모르는, 아예 알고 싶지도 않은, 그런 물음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어른들이 이른바 온갖 ‘책임 있는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을 때, 그 공동체의 내일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예견 못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진정한 문제가 아닐는지요.

5월에는 새삼 ‘어른 부재의 문화’에 대한 감각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네처럼 나이 들 만큼 든 사람들이 조용히 내 안에서부터 이런 감각을 싹트게 하여 내가 있는 자리에서부터 새로운 5월의 색깔이 채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개칠인들 어떻습니까?

너무 구태의연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만 5월. 참 싱그러운 달입니다. 날에 맞추어, 누구나 즐겁고 환하게 행복하게, 그리고 유치하지 않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저도 그렇게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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