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대선주자들의 토론회를 보고 나면 각 후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제한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올림픽 경기나 각종 스포츠 경기에서 시간을 정해놓고 우열을 가리는 종목이 많다. 점수를 많이 딴 사람은 그대로 시간만 가면 이기게 되어 있는 것이다. 태권도, 레슬링, 복싱이 그렇고 펜싱과 각종 구기 종목 등이 그렇다. 축구 경기에서 중동 국가 팀들이 침대 축구를 하면서 시간을 끄는 것도 시간제한을 이용하는 작전이다.
이번 대선주자들의 토론회에서도 후보 5명이 나와 중구난방식으로 상대를 공격하고 자신은 방어하려고 했다. 그러나 시간제한이 있다는 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듯했다. 여론조사 1위 후보는 시간이 그대로 흘러가면 이기게 되어 있다. 당연히 공격 대상은 1위 후보여야 하는데 2위 이하 후보들이 서로 치고받으며 시간을 낭비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 3위 이하의 후보들은 지지율이 10%도 안 된다. 이 상황에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한다. 애초에 이런 시간 낭비를 없애려면 1, 2위 후보만 붙여 놓고 토론을 벌이도록 해야 하는데 선거관리위원회법상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어 있단다. 그래서 5명의 후보 모두가 매번 나오는 것이다. 물론 후보자들끼리 합의하면 민영방송에서는 지지율 10% 이하의 후보자들은 배제하고 양강구도에서 끝장토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1위 후보가 이를 수용할 리 없다. 가만히 있으면 시간은 자기편인데 굳이 그런 위험부담을 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결과 하위권 후보자들이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여론조사 결과는 요지부동이었다. 직장에서 일 잘하는 것과 승진 결과가 다른 것과 비슷한 일이다. 이럴 때 2위 이하 후보들끼리 서로 물고 뜯으며 시간 낭비를 하면 손해다. 선거에서 승리를 못해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그렇게 하는 거라면 몰라도 말이다. 물론 1위 후보는 그냥 느긋하게 시간의 흐름을 즐기면 된다.
물론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여론조사 하위권 후보들의 입담이 양념처럼 즐겁다. 오히려 톡톡 튀는 화법이 재미를 배가시켜준다. 재미가 좀 더 있으려면 2위 후보가 분전해야 한다. 그러나 토론회가 거듭될수록 지지율 격차는 더 벌어졌다. 전략의 미스인 셈이다. 시간은 1위 후보의 편이다. 모두 머리 좋고 쟁쟁한 보좌진들을 데리고 있는데 당연하다. 그런데도 후보들이 시간제한의 룰을 아직도 제대로 이해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답답하다. 승패를 좌우하는 시간의 룰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번 대선주자들이 토론회를 통해 알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