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티까지 벗어야 합니까?”
20년 전 5월, 여의도 백화점 4층에 있는 헬스클럽 탈의실에서 필자가 윤 사장에게 한 말이다. 당시 필자는 몸무게가 90Kg을 막 넘어서고 있었다. 필자의 사업 파트너였던 윤 사장이 갑자기 어디 좀 가자고 하더니 데리고 간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이 대표님, 몸이 망가지고 있습니다. 운동 좀 하셔야겠네요, 제가 6개월 끊어드릴 테니까 운동 열심히 하세요”
IMF 이후 사회, 경제에 혼란이 왔듯이 필자의 생활에도 큰 변화가 왔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거친 광야에 홀로 서게 되었다. 앞날에 대한 불안, 가장으로서의 무게감과 책임감이 양어깨를 눌렀다. 이런 것들로 인해 필자는 방황의 길로 들어섰다. 불규칙한 생활, 폭음과 폭식 그리고 엄청난 흡연으로 몸이 갈수록 망가져갔다. 허벅지 양쪽이 쓸리면서 앉았다 일어나기도 힘들었고 낮은 층수를 걸어서 올라가는데도 헉헉거렸다. 이에 보다 못한 윤 사장이 운동을 권한 것이다. 처음에는 무슨 운동이냐고 완강하게 거부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권유에 못 이기는 척하고 따라온 것이다.
어릴 때 동네 아이들하고 뛰어논 것 외에는 운동이라고는 전혀 한 적이 없는 필자에게 운동은 매우 낯선 것이었다. 처음 헬스장에 온 사람들이 가장 당황하는 것은 시설에 대한 불편함이다.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어 사용법을 몰랐다. 모든 것이 익숙해지기까지는 불편함의 연속이다. 탈의실에 들어갔을 때 팬티까지 벗고 운동복을 입어야 하는지, 팬티는 입고 운동복을 입어야 하는지를 고민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날 이후 필자는 운동 마니아가 되었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서 러닝머신에서 30분 아니 15분 걷기도 힘들었는데 모 일간지에서 40분을 쉬지 않고 꾸준히 뛰면 몸이 제2의 탄생을 하는 것이라는 내용을 읽고 목표를 세웠다.
‘나도 40분을 쉬지 않고 뛸 수 있는 몸을 만들겠어.’
일단 주별 계획을 세웠다. 1주일은 9분 걷고 1분 뛰고, 다음 주는 8분 걷고 2분 뛰고 하는 식으로 자신과 약속하고 결국에는 1분 걷고 9분을 뛰게 되었다. 그러고는 마침내 40분을 쉬지 않고 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날의 감동과 환희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야말로 어매이징 스토리였다.
인간은 끝없이 욕심을 내는 동물이라고 한다. 40분을 뛰고 나니 이제 1시간을 뛰고 싶어졌다. 열심히 노력해 그것도 이루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필자의 모습을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어졌다. 방법을 찾았다.
‘그래,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완주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필자는 우리나라에 그렇게 많은 마라톤대회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극한의 날씨만 빼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열리고 있었다. 주말이면 온 가족과 함께 여행 겸 대회 참가를 위해 전국을 누볐다. 가족들에게도 필자에게도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갈수록 탄력을 받아 하프마라톤까지 뛰었다. 처음 도전했던 조일 마라톤 코스는 예술 그 자체였다. 가을의 아름다운 호수 풍경이 지금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 마다의 사연을 갖고 목표를 향해 뛰었다.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모습인가?
“이 대표님, 더 이상 몸무게 줄지 않죠? 운동만으로는 이제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식단을 조절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웨이트도 병행해야 합니다.”
트레이너가 그해 12월 필자에게 한 말이다. 이제 몸무게는 70kg 위에서 놀고 있다. 60kg대로는 절대 내려가지 않는다. 7개월 사이에 약 20kg을 감량한 것이다. 솔직히 먹을 것 다 먹고 할 것 다해가면서 말이다. 필자의 욕심은 또 60kg을 꿈꾸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결과 그 목표도 다음 해 2월에 이루었다.
“이 회장님 운동가시죠.”
2017년 7월 현재 필자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