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제품이 허투루 보이지 않는 이유

기사입력 2018-06-07 12:35 기사수정 2018-06-07 12:35

옷값이 싸다 보니 옷을 하찮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는 멀쩡한 옷도 집안 정리한다는 명분으로 내다 버린다. 그런데 옷 만드는 과정을 보면 옷을 허투루 대할 수 없다.

옷은 먼저 디자인이 있어야 한다. 디자인에 맞는 옷감도 골라야 한다. 원단 직조, 염색, 디자인 과정을 거친 후 패턴을 뜬다. 본을 뜬다고도 한다. 그 패턴대로 옷감을 자른다. 재단된 옷감은 재봉틀로 봉제한다. 그다음 주머니, 단추, 지퍼 등을 달아준다. 마지막으로 다리미질을 하면 옷이 완성된다.

지금은 봉제 산업도 많이 기계화되었다. 재단도 컴퓨터가 하고 복잡한 장식품은 컴퓨터가 알아서 자수를 놔준다. 그래도 봉제 산업은 대표적인 노동 집약적 산업이다. 사람 손이 많이 가는 업종인 것이다. 그렇게 많은 수공을 거쳐 만든다. 임금이 싼 나라에서 옷을 만들어 수입하고 있기 때문에 옷값이 싼 것이다. 그렇다고 옷을 허투루 대하는 것은 만든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한때 ‘섬유 왕국’이라는 칭호가 있었다. 수출산업으로 주목받던 시대였다. 그러나 창신동 봉제 골목에 가 보니 이제는 봉제 산업도 대가 끊어지는 듯했다. 이미 나이든 작업자와 외국인 근로자들에 의해 명맥을 간신히 잇고 있다.

88 서울올림픽 시절이었던 1980년도, 그때만 해도 해외 공장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손으로 옷이나 장갑 등 봉제품을 만들던 시절이었다. ‘메이드 인 코리아’인 것이다. 제대로 된 상품을 만들기 위해 각 공정을 꼼꼼하게 관리했다. 납기를 맞추기 위해 밤일도 마다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숙련공이 되려면 보조공부터 시작해서 인고의 세월을 견뎌내야 한다. 그렇게 애써서 만든 제품을 볼 때마다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겨울철이면 전철 안에서 불법으로 상인들이 장갑을 1,000원~2,000원에 팔곤 했다. 필자가 직접 장갑을 만들어 보니 재료비에도 못 미치는 가격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가격에 팔 수 있을까? 정상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소요량을 더 받아 재료비가 제로가 되거나 정책적으로 지원을 받아야 재료비가 내려간다. 그리고 대량 생산이다. 원가는 재료비 50% 인건비 20~30%, 나머지가 관리비와 이익이다.

요즘 전철 역사에 많이 보이는 빈티지 의류도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5,000원부터 10,000원이 가장 많고 비싸 봐야 20,000원 정도이다. 이런 상인들은 옷을 주로 일본에서 가져온다고 한다. 이월상품이나 재고, 중고의류 등이다. 무게로 옷값을 치르고 가져와서는 세탁, 다리미질해서 판다. 찜찜해서 남이 입던 옷을 어떻게 입느냐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 숙련공이 되어 눈을 비비며 애써서 만든 제품이다. 만든 사람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면 값이 싸더라도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이탈리아 ‘볼자노’라고 북부 알프스산맥이 보이는 휴양 도시에 출장 간 일이 있다. 여분의 양말을 챙기지 못한 것을 뒤늦게 알고 어지간하면 현지에서 사서 신으려고 했다. 그러나 명품 양말만 팔고 있었다. 가격이 최하 8만 원이었다. 한국에서는 몇천 원이면 살 수 있는 양말인데 아무리 명품이라지만 제정신에 살 수는 없었다. 매일 밤 양말을 빨아 신어야 했다. 한국은 아직도 섬유 왕국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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