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디지털 뉴딜’ 시행으로 IT, 인공지능, IoT 등을 접목한 다양한 신직업이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친환경 이슈가 떠오르며 ‘그린 뉴딜’ 관련 일자리도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중장년의 일자리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숙련된 경험을 살린다면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일자리 시장 대전망’을 주제로 펼친 ‘50+일자리 특별포럼’의 두 번째 세션 토론 내용을 Q&A로 정리해봤다.
토론자
김태은 고용노동부 고령사회인력정책과 서기관(이하 ‘김’)
남경아 서울시50플러스재단 일자리사업본부장(이하 ‘남’)
박가열 한국고용정보원 미래직업연구팀 부연구위원(이하 ‘박’)
Q1. 디지털·탈탄소 사회, 중장년 일자리의 미래는?
(남) 디지털 뉴딜 분야에서도 틈새나 사각지대를 찾으면 중장년의 일자리는 충분하다. 지난 10년은 노동절약형을 강조한 기술혁신하에 일자리를 줄여왔다. 그러나 대전환 시대에는 그 반대여야 한다. 더 노동집약적이고 자원이 절감되는 방식의 혁신이 필요하다. 아울러 한국판 뉴딜의 핵심은 주민의 삶이 중심이 되는 ‘로컬 뉴딜’과 병행돼야 한다. 최근 로컬 모빌리티의 한 사례로 전국 지자체의 공유 자전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가령 서울시의 ‘따릉이’ 누적 회원은 171만 명이 넘고, 대여도 300만 건에 이른다. 이에 따라 공유 자전거 수리공이나 거치대 설치·관리자, 마을 단위 자전거 교육 강사나 수송 인력도 확대될 것이다. 이렇듯 공공의료 분야나 마을 돌봄, 그린 리모델링, 재생에너지 설치·관리, 건강한 먹거리 산업 등의 영역에서 50+세대의 일자리가 다양하게 만들어질 수 있다.
(박) 디지털 시대에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들이 사라진다. 일찍이 육체노동은 자동화 로봇이 대체했고, 최근에는 인지 업무도 인공지능을 활용한다. 이를 일자리의 위협으로 볼 필요는 없다. 역설적으로 새로운 일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큰 오해는 이러한 디지털 시대에 일하려면 데이터 분석가나 코딩 전문가 등이 돼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보다는 자신이 해오던 일을 어떻게 디지털화할 수 있는지, 또는 얼마나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일로 만들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최근 MIT에서 인공지능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했다. 그 내용에는 우리가 꺼리고 불편했던 일들을 신기술이 대체하고, 인간은 그 기술을 활용해 더 창의적이고 삶의 가치를 높이는 일자리로 확대해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들어 있다. 결국 새로운 일자리는 자신의 현업에서 출발하되, 그에 대해 중장년이 창의적으로 고민할 기회를 주는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Q2. 한국판 뉴딜, 정부 및 기관의 50+ 일자리 계획은?
(김) 고용 관련 한국판 뉴딜의 주요 안은 ‘고용안전망의 확대’와 ‘사람 투자’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인구구조 변화 등에 대응해 신중년 적합직무 고용장려금 지원대상 확대 및 미래적응형 직업훈련 개편, 재취업지원서비스 내실화, 전국민고용보험·국민취업제도 시행 등 고용안전망을 강화할 방침이다. 아울러 50+세대 지원을 위해 디지털 리터러시 해소, 돌봄 능력 강화, 기본 소득 도입 및 중장년 연금 확대, 공동체 일자리 제안 등을 계획 중이다. 사람 투자 측면에서는 자신의 분야에 숙련된 신중년이 그동안의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하는 동시에 디지털 역량을 학습해 이를 활용하도록 교육과 지원이 이뤄질 예정이다.
(남)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도 그린 뉴딜이 본격화되면 도시재생이나 그린스마트 분야 일자리가 많아질 것이라 예견하고, 이에 발맞춰나갈 계획이다. 2020년에는 스마트시티와 관련해 파일럿 사업을 진행했다. 40명의 참여자를 17개의 스마트시티 관련 기업에 파견했고, 공공 스마트시티의 기획과 운영, 에너지 절감 컨설팅 영역 등에 50+세대의 경험과 역량을 투입했다. 2021년에는 그 규모를 확장할 예정이다. 또 플랫폼 일자리와 관련해 ‘중소기업 공유고용 모델’을 실험했는데, 성과가 좋았다. 중소기업은 전문 인력에 대한 수요는 있으나 막상 채용하려면 인건비 부담이 크다. 이에 같은 고민을 가진 중소기업이 모여 전문가 1인의 인건비를 나누는 방식을 시도해봤다. 50+세대 20명과 협력 기업 5곳이 참여했고, 이후 약 70%가 실제 고용으로 연결됐다. 이를 체계적으로 보완해 질 높은 새로운 노동 모델을 모색할 계획이다. 이 밖에 전국 지자체와 협력해 유휴지를 활용하는 ‘세대 융합 귀촌 모델’이나, 산업안전·돌봄 분야의 ‘50+건설안전감시단’, 취약계층 노인 대상의 ‘HF행복돌보미’ 등도 더욱 확대할 방침이다.
Q3. 50+의 활약이 기대되는 일자리 분야는?
(남) 최근 지표들을 보면, 50+세대는 디지털 시대 전환에 비교적 빠르게 적응 중이다. 지난해 시니어 1인 미디어 생태계 창출을 위해 ‘50+ 유튜버 스쿨’을 열었다. 10팀을 선발해 집중적인 실습과 교육을 해보니 그중 40%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 두 달간 구독자가 4배 증가했고, 수익은 10배를 창출했다. 이는 관련 전문가들도 놀라움을 표할 만큼, 50+세대의 디지털 잠재력을 보여준 사례다. 아울러 청년과 노년을 잇는 세대로서 노노케어, 멘토링 등의 분야에도 적극적인 참여가 기대된다. 퇴직 후 5~10년 정도 지역에 내려가 ‘세대융합 귀촌모델’을 만들거나 지방 정부와 연계한 ‘귀촌 인턴십’ 참여도 가능하다. 나아가 국제무대에도 중장년이 활동할 기회는 충분하다. 가령 코이카(KOICA)가 가진 개도국 경제성장을 위한 조달기금은 연간 약 1조8000억 원이다. 이러한 자원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나누고 지원하느냐에 따라 50+세대가 진입할 통로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박) 디지털 기술 발전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경제, 생태 환경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모색해볼 수 있다. 먼저 저출산·고령사회로의 인구구조 변화와 여성의 사회 참여 확대로 질 높은 돌봄 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확대될 전망이다. 디지털 기술을 업종별 비즈니스 요구에 맞춰 개발하는 과정에서 경력을 겸비한 50+세대의 조율자 역할에 대한 기대도 높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뿐만 아니라 세대 간 융합을 도모하는 사회·문화적 포용력이 요구된다. 더불어 저탄소·친환경 사회로의 변화 속 도시재생 사업, 스마트팜 구축, 신재생 관련 제품 서비스 개발에도 도전해볼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된 바처럼 1980~90년대의 경제성장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도상국과 상호 호혜적으로 발전 가능한 국제무대에서의 일자리 창출도 꾀할 수 있다.
민간·공공기관 퇴직자로 구성된 ‘월드프렌즈 NIPA 자문단’(이하 NIPA 자문단)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서 운영하는 해외봉사단 사업으로, 개도국 정부 및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전공 분야의 기술 및 산업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전수하고 있다. 정보통신, 산업기술, 에너지자원, 무역투자, 지역발전 등의 자문을 통해 파견국의 경제, 사회 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퇴직 후 자신의 경력을 나눈다는 보람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성장에 일조했다는 자긍심까지 느낀다는 그들. NIPA 자문단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미래를 여는 사람 ‘퓨처 오프너’(future opener). NIPA 자문단원 유기열(73) 씨가 직접 지은 닉네임이다. 1970년 전북 순창북중고등학교 교사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1976년 제12회 농림기술고시에 합격, 이후 30년 넘게 농림수산부 본부와 산하기관에서 근무하다 국립종자원 서부지원장으로 정년을 맞았다. 자신의 닉네임에 걸맞게 퇴직 후에도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한 그의 도전은 계속됐다.
“현직을 겸하며 전북대학교 외 3개 대학에서 20년간 초빙강사로 활동했습니다. 정년 후에도 강의를 이어가면서 숲해설사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2009년부터 국립수목원에서 숲해설사로 활동하다가, 2012년 말 KOICA 자문관 겸 르완다대학교 농대 교수직을 맡게 돼 르완다로 떠났습니다. 좀 더 머물 수 있었는데 집에 일이 생겨 빨리 귀국했죠.”
그는 르완다에서의 경험을 담은 글을 SNS에 올렸고 모인 글들은 ‘아프리카의 심장 르완다’와 ‘눈에 밟혀 그곳에 다시 가고 싶다’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그래도 못내 아쉬움이 남았던 것일까. 그는 NIPA 자문단의 이름으로 다시 개도국 쪽에 발길을 돌렸다. 이번엔 베트남이었다.
베트남에서 마주한 과거의 ‘나’
그는 이미 르완다에서 NIPA 자문단에 대한 정보는 물론, 실제 활동하는 이들까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곳이 나타나길 기다리던 차, 베트남에서 농산업기술과 관련한 자문을 원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그렇게 막힘없이 지원했고, NIPA 자문단이 되어 한국-베트남 인큐베이터 파크(KVIP)로 향했다.
“베트남을 비롯한 개도국들은 경제 및 과학기술 등이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합니다. 제가 근무했던 곳 역시 역사가 짧고 기술력이 좋지 않았죠. 젊은 인력이 대부분이었고요. 그래서일까요? 타임캡슐이라도 발견한 듯 젊은 시절이 떠오르더군요. 저와 한국이 발전했던 것처럼, 그들도 제대로 된 교육과 훈련을 거치면 충분히 성장 가능하리라 판단했죠.”
시간을 거슬러 ‘청년 유기열’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그는 베트남 청년들에게 물심양면으로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했다. 그 밖에도 그에겐 3가지의 목표가 주어졌다. 첫째, 벼 가공시설을 포함한 농수산식품 가공장비의 정상화. 둘째, KVIP 창업입주회사에 대한 자문. 셋째, 메콩 델타지역 농수산업, 특히 쌀 생산, 가공, 저장 및 유통에 대한 자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당초 요구했던 것들을 거의 100% 수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수십 년간 전문 분야의 이론과 현장을 모두 경험한 덕분인 것 같아요. 개인적인 보람과 즐거움도 있지만, 제 성과로 두 나라가 더욱 가까워진 것 같아 자긍심이 생기더군요.”
겸손한 마음이 보람을 키운다
정책 자문 이외에도 기술이전, 교육, 세미나 발표, 학회 기고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으며 스스로 많은 일들을 찾아 하고자 했다. 덕분에 성취감과 만족감 또한 높았다고. 그는 “말보다는 행동이 중요하다”며 NIPA 자문단을 희망하는 이들을 위한 몇 가지 조언을 들려줬다.
“파견 전 준비할 건 크게 3가지가 있어요. 우선 건강, 그리고 자기 분야의 전문 지식, 마지막으로 그 나라의 언어입니다. 그렇게 잘 준비해서 갔다면, 이제 필요한 건 겸손한 마음이에요. 개도국이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해서 무시하거나 대접받으려 하면 안 됩니다. 그 나라에도 유능한 전문가가 있는데 나만 잘났다고 위세를 부려서도 안 되고요. 겸손하고 경청하는 자세로 다가가야 그들도 마음을 열고 자문 내용을 잘 수용하려 노력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의견 충돌이 일어나 업무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죠. 그만큼 보람도 적을 테고요.”
그는 봉사하는 마음으로 많은 것을 주고 오려 했지만, 정작 자신이 받은 게 더 많았다고 말했다. 더불어 NIPA 자문단으로 활동하며 얻은 보람과 자신감, 즐거움 등은 그에게 새로운 미래를 열어줄 열쇠 꾸러미 역할을 했다.
“정년은 지났지만 퇴직은 아직 하지 않았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벌써 2021년이 다가오네요. 현재 활동 중인 GLG 그룹 컨설턴트 일을 계속하며, 조만간 르완다처럼 베트남에서의 이야기로 책을 내려고요. 또 최근 고경력과학기술인 자격을 얻었는데, 그에 관한 활동도 해나갈 예정입니다. 독서코칭에도 관심이 생겨 그쪽으로도 활동 범위를 넓혀보려 해요. 그걸 다 해내려면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하니, 매일 ‘만 보 걷기’도 해나갈 계획입니다.”
△ 유기열 자문관
ㆍ파견 국가 베트남
ㆍ파견 기간 2017년 8월 14일~2019년 8월 13일
ㆍ파견 분야 산업기술
ㆍ파견 직종 농산업기술
ㆍ파견 기관 한-베 인큐베이터 파크
ㆍ자문 내용 농수산물 가공 산업 자문 및 시설 정상화
민간·공공기관 퇴직자로 구성된 ‘월드프렌즈 NIPA 자문단’(이하 NIPA 자문단)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서 운영하는 해외봉사단 사업으로, 개도국 정부 및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전공 분야의 기술 및 산업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전수하고 있다. 정보통신, 산업기술, 에너지자원, 무역투자, 지역발전 등의 자문을 통해 파견국의 경제, 사회 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퇴직 후 자신의 경력을 나눈다는 보람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성장에 일조했다는 자긍심까지 느낀다는 그들. NIPA 자문단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해양수산부 근무 30년, 스스로를 ‘뼛속까지 공무원’이라 칭하는 채진규(72) 씨. 수산 관련 국제협력 업무를 보며 해양장관회의 유치, 자동선박위치정보시스템 구축 등에 힘썼고, 해양수산공무원 교육을 담당하면서 개도국의 수산 인력을 국내에 초청하는 일을 주관하기도 했다. 2007년 만 60세 나이로 퇴직한 후 그는 자신의 표현처럼 ‘뼛속까지 배인 경험’ 덕분에 포항시의 해양수산 자문위원으로 위촉돼 관련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미지의 세계로 눈을 돌려 한국국제협력단(이하 KOICA)의 개도국 자문관 파견에 지원하게 됐고, 2014년부터 동티모르 수산청에서 수산자문관으로 3년간 일하며 수산양식훈련센터 건립이라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잘 마치고 귀국했는데, 한편으론 수산양식인력 훈련만으로는 발전을 꾀하기 힘들 거라는 우려와 아쉬움이 남더군요. 그러던 차에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하 NIPA)의 NIPA 자문단으로 동티모르 수산청에서 다시 근무할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죠. 그길로 바로 동티모르로 향했습니다.”
채 씨가 NIPA 자문단이 되어 동티모르에 도착했을 때 그에겐 3년 치의 원대한 목표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모두 성사하지는 못했다. 신규 지원자의 파견 기회 확대를 위해 2019년부터 정책이 바뀌어 NIPA, KOICA, NRF 파견자 활동 기간이 통합 3년으로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KOICA 활동을 통해 그쪽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놨죠. 1년 차에 수산물 유통센터 부지 확보를 시작으로 2년 차, 3년 차에 따른 목표가 있었어요. 아쉽게 기간이 줄어 1차년도의 목표달성 후 귀국했습니다.”
한국 공무원 시절 경험이 노하우로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채 씨가 이룬 성과는 적지 않다. KOICA 활동 때부터 추진했던 수산훈련센터 건립 마무리를 비롯해, 딜리공항 내 홍보 TV 설치 및 투자유치 홍보 콘텐츠 방영, 딜리해변 수산물유통센터 건립을 위한 공공부지 확보 행정절차 진행(거의 마무리 단계까지) 등 현역 시절 못지않은 기량을 발휘했다.
“물론 한국과 동티모르의 업무 환경 차이는 있었지만, 공무원 시절의 경험이 값지게 쓰였어요. 동티모르는 한국에 비해 정부 예산이나 민간 자본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죠. 국내 해양수산부에서도 수산 정책을 직접 입안하고 담당했던 터라 관련 업무 흐름을 빨리 파악하고 합리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어요.”
NIPA 자문단 활동 이후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던 채 씨는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동티모르에 다시 가겠노라고. 비록 NIPA의 지원은 종료되었으나, 동티모르 수산청의 그를 향한 신뢰는 여전하고, 공공이익 추구를 통해 인생의 보람을 찾는다는 목표도 변함없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부터 삶의 목표를 금전보다는 보람에서 찾고자 했죠. 앞으로도 그것이 제가 추구하는 모토가 될 것입니다. 가족과 협의해 무보수 봉사를 감행하기로 했습니다. 퇴직 후의 연금 일부를 동티모르의 발전을 위해 투자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요. 물론 국내 봉사도 의미 있지만, 개도국에서 느끼는 보람이 남다르고 더 큽니다. 그러한 기대가 저를 다시 동티모르로 이끈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NIPA 자문단 재파견은 불가능해졌지만, 당초 목표로 했던 계획들은 모두 현재진행형입니다.”
노후의 행복, 자문단 활동으로 찾아보길
채 씨는 올해 초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WHF(World Harmony Foundation)과 접촉해, 현재 동 재단의 투자자들이 동티모르에 10억 달러 내외의 자본을 투자하는 건을 정부기관과 협의하고 있다. 이를 통해 수산 분야뿐 아니라 관광, 에너지, 수자원 등 다방면의 투자유치를 꾀해 동티모르 경제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계획이다. 소속은 달라졌지만, 자신의 소신대로 하나하나 사업을 추진해가며 본래의 목표를 달성해가는 모습이었다.
물론 다시 NIPA 자문단으로 활동할 수 있다면 한달음에 지원할 그다. 무엇보다 NIPA 자문단으로서 느꼈던 자부심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채 씨는 자신처럼 한 분야에서 한 우물만 파온 시니어라면 NIPA 자문단에 도전해보길 권했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그리고 자기 분야에 자신이 있다면 NIPA의 도움을 받아 자문단이 되어보십시오. 분명 기대했던 것보다 더 큰 보람을 인생 2막에 찾으실 겁니다. 노후에 비싼 경비 들여가며 해외 관광 가는 대신, 개도국봉사활동으로 좀 더 의미 있는 삶의 목표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가 평생을 투자해 쌓은 귀한 노하우를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는 행복을 꼭 경험해보길 바랍니다.”
△ 채진규 자문단원
ㆍ파견 국가 동티모르
ㆍ파견 기간 2018년 6월 22일~2019년 6월 21일
ㆍ파견 분야 무역투자
ㆍ파견 직종 무역투자 일반
ㆍ파견 기관 수산청
ㆍ자문 내용 수산물유통센터 설립 및 투자유치 홍보 자문
정부 대외무상원조 전담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는 11월 2일, 서울(잠실중학교)과 부산(부산컴퓨터과학고등학교), 전주(전주동중학교)에서 ‘제6회 ODA 일반자격시험’을 실시한다.
시행 6회째를 맞은 ‘ODA 일반자격시험’은 국제개발협력 관련 기본지식을 전반적으로 측정하는 시험으로, 국제개발협력 분야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해 시행되고 있다.
ODA 일반자격시험은 총 2개 과목(국제개발협력 이해, 국제개발협력의 이슈) 80문항(과목별 객관식 40문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합격 기준은 과목당 60점 이상, 전 과목 평균 70점 이상(100점 만점 기준)이다.
동 시험은 연령, 학력, 경력에 제한 없이 누구나 응시할 수 있으며 KOICA ODA 교육원이 엮은 ‘국제개발협력 입문편’, ‘국제개발협력 심화편’ 교재를 중심으로 시험을 준비할 수 있다.
특히 서울과 부산, 전주에서 동시에 진행하며 자격증 소지자 KOICA 지원 시 가점 혜택을 부여한다.
자격증 취득 시에는 ①KOICA 직원 채용 ②월드프렌즈코리아(WFK) 해외봉사단원, 해외사무소 및 국내 ODA 사업수행기관 Young Professional(인턴), 글로벌협력의료진 선발 ③KOICA 사업시행자 심사 시 가점이 부여된다.
오는 11월 2일 시행될 제6회 일반자격시험은 10월 20일(일)까지 KOICA ODA교육원 홈페이지(http://oda.koica.go.kr)를 통해 접수 가능하다.
한국전쟁 이후 70여 년간 대한민국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변화하는 경천동지의 사례를 만들어냈다. 그 시간에 아무것도 없었던 나라의 맨바닥을 일군 기반으로, 혹은 세계 곳곳의 산업 역군으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데 기여한 베이비부머들은 이제 새로운 삶의 시간을 맞이해 제2의 인생을 열고 있다. 바로 요즘 인기인 월드프렌즈 NIPA(정보통신산업진흥원) 자문단. 국내 퇴직 전문 인력 해외 파견 프로그램인 ‘월드프렌즈 NIPA 자문단’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대한민국 브랜드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한국 정부 파견 해외 봉사단인 ‘월드프렌즈코리아(World Friends Korea)’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월드프렌즈 NIPA 자문단’은 민간 혹은 공공기관 출신의 퇴직 전문가들을 위한 해외 봉사 프로그램이다. 시니어 전문가들이 가진 기술 경영 및 경제 개발 노하우들을 개발도상국에 자문 형태로 전수하여 경제와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이 프로그램은 2010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벌써 9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2010년 첫해 18개국 38명 파견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45개국 809명의 자문단을 파견해왔다. 지금도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등의 32개국에서 142명의 자문단이 활동하고 있다.
은퇴한 ICT 시니어들, 여기에 다 모여
‘월드프렌즈 NIPA 자문단’은 은퇴한 ICT 시니어가 인생 2막을 보낼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해준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퇴직 이후에도 지속적인 사회활동을 희망하는 시니어가 많기 때문이다.
자문단원이 된다는 것은 개도국에 대한 봉사적 지원과 대한민국 브랜드의 전파 의미가 우선이지만, 동시에 자문단원 개인 입장에서는 은퇴 후 임팩트한 제2의 인생을 열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베네피트 덕분에 자문단 지원은 경쟁률이 높다. 베트남, 네팔, 세네갈, 에콰도르, 우즈베키스탄 등 43개국 대상 65명의 자문단원을 선발하는 올해 상반기 설명회에는 100명이 넘는 지원자가 참석했다.
자문단원은 정보통신, 산업기술, 에너지, 무역투자, 지역발전 등 5대 산업자원정책 분야를 기준으로 선발한다. 파견기간은
1년이며 개도국의 요청 및 프로젝트 연속성을 고려하면 최대 3년까지 활동이 가능하다. 선발된 자문단원에게는 항공료(실비), 출·귀국 준비금 1000달러, 활동비 월 700달러, 현지 생활비가 국가별 차등 지급식으로 월 2300~5000달러가 지원된다. 자문단원 선발 시 각 수요국에서 요구하는 학위가 있지만 관련 학위가 없더라도 이에 상응하는 경력자는 지원이 가능하다. 특히 외국에서 생활하는 만큼 영어로 강의, 자문, 보고서 작성이 가능해야 한다.
새로운 활력 찾아 떠난 에콰도르
에콰도르에서 자문단 활동을 마치고 6월에 귀국한 양순애 씨를 만났다. 그녀는 이화여자대학교 컴퓨터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관 컴퓨터 사업부 근무, 영국 에든버러대학교 유학이라는 경력을 가진 베테랑 컴퓨터 연구자 출신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했는데 차별이 심했어요. 옛날에는 여자가 직장생활하기 되게 힘들었잖아요. 그러다 영국으로 유학을 갔죠. 박사 학위를 따고 돌아와 정부 산하기관에서 전자정부 쪽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자문단원에 지원했어요.”
자문단원 활동은 에콰도르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 전에 KOICA(한국국제협력단)를 통해 동티모르에서 자문단원으로 2년간 활동한 경력이 있었다.
“동티모르는 상당히 빈곤한 나라예요. 1인당 국민소득도 낮고 가게에 가면 물건도 별로 없죠. 그런데 그이들은 즐겁게 살더라고요. 가난해도 만족하며 사는 모습을 보면서 좀 겸손해졌다고나 할까요, 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죠. 그리고 제가 가진 지식과 경험이 개도국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큰 보람이었어요.”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다
동티모르에 갔다 온 후 1년 정도 휴식기간을 가진 그녀는 다시 해외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동남아시아는 갔다 왔으니, 다음은 아프리카나 중남미 쪽으로 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때마침 에콰도르에서 전자정부 구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력을 필요로 했다. 그 업무는 그녀의 전문 분야였다.
“에콰도르는 전자정부 수준이 아주 낮지는 않고 중간 정도예요. 우리나라의 정보통신부 역할을 하는 부처도 있고요. 그곳에 국립고등교육연구소가 있는데 사실상 국립대학원이라고 보면 돼요. 교수들이 연구도 하면서 정부의 자문기구 역할도 하죠. 저는 그 기관 행정 부서에서 일했어요.”
에콰도르에서 일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는지 궁금했다. 그녀는 높은 산지에 위치한 도시에서 생활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적응하는 데 5~6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가 지냈던 수도 키토는 해발 2850m에 위치해 있어, 충분히 먹어도 살이 빠지고 걷기만 해도 숨이 찼다. 치안 부재도 불편했다고.생활범죄가 늘어나 사람들이 휴대폰과 지갑을 잃어버리는 일이 잦았다. 이 두 가지만 빼면 살기 좋은 나라라고 그녀는 말했다.
자부심과 인내심 함께 가져야
그녀는 에콰도르의 전자정부 수준이 중간 단계 이상으로 올라가고 있어 1년 정도 더 있으면 가시적인 성과가 보일 것 같았는데 돌아오게 됐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자문단 선배’로서 자문단을 지원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팁들을 알려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우선 언어, 특히 영어가 중요해요. 소통은 중요하니까요. 그리고 건강이죠. 특히 남자들은 음식문화 때문에 고생해요. 부부가 함께 가면 좋은데 혼자 나가서 지내다 보면 몸이 부실해질 때가 있어요. 건강을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를 미리 배워서 가면 좋아요.”
자문단원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프라이드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녀는 그래서 더 봉사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지에 가면 대부분 공공기관에서 일하게 되는데 우리나라와는 직장 문화가 많이 달라 힘든 일이 종종 발생한다고 했다.
“인내심이 필요해요. 잘 들어줘야 하고 무작정 강요를 해서도 안 돼요.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지 않으면 소통이 어려워져요. 현장 교육을 받아도 실제로 부딪치는 부분은 달라요.”
60세까지는 당분간 푹 쉴 생각이다. 그림을배우며 짧은 휴식을 마친 뒤 인생의 다음 지점을 준비하게 될 그녀를 응원한다.
하반기 신청은 월드프렌즈NIPA자문단의 공식 홈페이지(senior.nipa.kr)에서 하면 된다. 만 50세 이상의 퇴직(예정)자로 정보통신, 산업기술, 에너지자원, 무역투자, 지역발전 등 5개 파견 분야에서 10년 이상 또는 이에 상응하는 경력이 있다면 지원이 가능하다. 서류 및 면접심사를 거쳐 선발하며, 개도국 정부나 공공기관에 파견돼 1년간 자문단원 활동을 하게 된다. 평가에 따라 최대 3년까지 활동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한국을 떠나기 전 문영섭(文榮燮·56)씨는 입시학원을 운영했다. 요즘의 모든 학원이 그렇듯 낮아지는 출산율로 인한 학원생의 감소는 그를 압박했고, 돌파구가 필요했다. 18년간 운영해 온 학원을 정리해야 한다면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가장이 된 아들이 ‘코이카’를 추천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평생 수학을 가르쳐 온 그에게 가르칠 대상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기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종의 도피일 수도 있었죠.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생각해서, 선택하는 데 주저함은 없었어요. 1999년 필리핀에서 8개월간 어학연수를 하며 지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거부감도 없었어요.”
그렇게 코이카 봉사단에 지원했다. 대학 때 전공은 농화학이었지만, 다행이 코이카에서 그의 입시학원 수학강사 경력을 인정해 줬다. 그가 이 곳에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은 내년 8월까지. 그가 지금 근무하고 있는 곳은 필리핀 네그로스 섬의 빅토리아스시(市) 국립 고등학교다. 네그로스 섬은 한국인에게 익숙한 보홀과 세부 섬의 서쪽에 위치한 섬이다. 그는 학교 규정상 정식 수업은 맡지 못하고, 수학에 소질이 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경시대회반을 구성해 지도하고 있다. 또 교사를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다른 문화나 사고에 대한 어려움은 크게 없다고 했다.
“당연히 다르죠.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사고 방식도 다르니까요. 하지만 왜 다를까 생각하기 보다는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니 그렇게 어렵진 않더라고요.”
그는 코이카는 은퇴 후 시니어들이 자신의 천직을 이어나갈 수 좋은 기회 중 하나라고 이야기 했다.
“평생 학원에서 돈을 위해 수학을 가르쳐 왔잖아요. 지금은 돈이 목적이 아니라 이곳의 아이들을 위해 수학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해요. 앞으로 코이카에 지원할 분들도 남을 도울 수 있는 마음이 가득하면 충분히 잘 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평생 39년을 농촌 지도사로 일한 이윤화(李允和·67)씨가 도미니카 공화국에 도착했을 땐 막막 그 자체였다. 입버릇처럼 정년퇴직 후를 대비하라고 후배들에게 잔소리 해 왔지만, 정작 자신을 위한 준비는 없었다. 그래서 막막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생각한 것이 코이카였다. 식량 증산과 농업기술 근대화를 위해 평생을 바쳐온 그였다. 상대가 외국 농토, 외국 농부라도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다시 막막한 현실이었다.
“완전히 답답하더라고요. 채소나 과수 생산을 돕기로 하고 출발했지만, 고산지대여서 다른 작물을 재배할 여지가 없었어요. 원래 수입의 70~80%를 커피 생산에 의존하던 곳이었는데, 기후와 환경 변화로 커피가 죽어 나가기 시작한 거죠. 제가 도착했을 땐 커피농사가 전멸 상태였어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죠.”
이씨가 도미니카 공화국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은 2013년 10월. 지구 반대편 산골 마을 산티아고로드리게스주(州) 라 레오놀(La Leonor)에서의 다사다난한 2년의 출발은 그렇게 시작됐다.
막막함도 잠시. 그는 어떻게 이들을 도울까 생각했다. 결국 열쇠는 커피였다. 다행이 지역 주민들도 정답을 알고 있었다. 라 레오놀에 잘 자랄만한 품종은 이미 그들도 알고 있었다. 다만 육묘 생산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부족했다. 이윤화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커피를 따먹는” 방법밖에는 몰랐다.
목표가 설정되자 할 일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작물이 벼에서 커피로 바뀌었을 뿐이지, 한국에서 했던 과정을 그대로 따르면 될 뿐이었다. 일종의 협동조합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이 일을 돕도록 만들고, 관계 부처의 협력도 얻었다. 훗날 이씨가 적용한 이 체계는 도미니카 정부의 지방개발 롤모델로 차용된다.
“느긋한 사람들이라 처음엔 다그치는 절 이해하지 못했어요. 어느 날 제가 커피 심는 법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데 누군가 묻더군요. 네가 살던 한국에선 커피가 얼마나 나느냐고. 그래서 전혀 나지 않는다 하니 황당해 하면서 웃더라고요. 저도 함께 따라 웃었어요. 하지만 점점 절 따라 줬고 모종을 키우기 위한 묘목장 설립도 이뤄냈죠.”
처음 이씨가 5년간 100만 그루라는 생산목표의 시작은 성공적이었다. 10만 그루의 모종이 자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돌아왔다. 이대로라면 이모작으로 목표치를 생산할 수 있다. 모종들에 대해 설명할 때 이씨 눈 주위는 붉은빛을 띠었다. 흔히 이야기하는 농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근무 기간을 연장하지 않았지만, 나빠진 건강을 추스르고 체력을 회복하면 다시 한 번 코이카를 통해 도전하고픈 희망이 있다.
“잘 노는 법도 모르고, 일하는 것이 제겐 놀이이자 휴식이에요.”
막연히 생각하는 은퇴 후 삶의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평소와 다른 환경에서 살아보고 싶고, 이왕이면 내 경험을 살리고 싶다. 여기에 남을 돕는 보람까지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불가능할 것 같지만, 그런 기회는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해 세계인을 돕는 코이카가 그것. 세계에서 활약한 다양한 시니어를 만나, 코이카를 통해 어떻게 보람 있는 삶을 찾을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한국국제협력단은 일반적으로 영문명의 약자인 코이카(KOICA,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91년 4월 정부출연기관으로 설립된 코이카는, 우리 정부의 대외무상원조 전담기관 역할을 담당해 왔다. 미국 정부가 1961년 설립한 평화봉사단(Peace Corps)과 일본의 일본국제협력기구(日本國際協力機構, JICA)가 이와 유사한 기관으로 볼 수 있다. 정부가 미국의 평화봉사단을 모델로 1989년 설립한 한국청년봉사단이 코이카의 전신이다.
역할은 말 그대로 개발도상국 원조사업이다. 봉사단은 개발도상국 주민과 함께 생활하며, 우리의 경험과 기술을 전수함으로써 경제적, 사회적 발전을 지원하는 것이다.
코이카에서 운영하는 봉사단은 크게 3가지로, 마이스터 고등학교나 특성화 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드림봉사단과 코이카 봉사단과 중장기 자문단이 있다. 드림봉사단을 제외하면, 자격조건에 ‘나이’라는 단어는 없다.
시니어 향한 문호 ‘활짝’ 열려 있어
하지만 구직난이 심해진 요즘 젊은이들이 취업을 대비하기 위한 ‘스펙 쌓기’용으로, 때로는 정부가 청년실업 문제 대책용으로 활용하면서 ‘청년들이 주인공인 사업’이란 색깔이 덧입혀졌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코이카는 시니어들에게 문호를 활짝 개방하고 있고, 실제로 전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단원 중 시니어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적지 않다. 2015년 12월 기준으로 전체 파견인원 1350명 중에서 50대 이상이 365명으로 27%를 차지한다. 적지 않은 수치다. 여기에 40대 113명을 더하면 중·장년층이 35%까지 증가한다. 70대도 5명이나 활동 중이다.
이에 대해 코이카 월드프렌즈 모집팀의 송희수 팀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최근 사회적으로 은퇴 후의 삶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코이카에서는 이런 분들의 도전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사회에서 쌓았던 지식과 경험을 개발도상국을 위해 베풀 수 있다면 가치 있는 일이 될 테니까요. 각국에서 요청하는 대부분의 자원도 이런 지식과 경험이 있는 인재들입니다.”
봉사단과 자문단 두 갈래 길
시니어가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코이카 봉사단, 다른 하나는 코이카 자문단이다. 봉사단은 쉽게 말해 실질적인 기술전수의 성격이 짙다. 교육과 보건, 공공행정, 산업에너지, 농림수산 5개 분야에서 세부 직종을 모집해 현장에서 교육이나 이와 관련한 사업을 실시한다. 5개로 나눠진 분야가 거창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산업에너지 분야는 자동차 정비나 용접, 전기 설비가 포함되어 있고, 농림수산에는 농업과 어업 인력을 모집한다. 대부분 특정 분야의 기술직이다. 최근 현대자동차에선 직원들의 퇴직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코이카와 협력 방안이 논의되고 있을 정도다. 대부분 전문직종이기 때문에 전문성 없이는 활동이 불가능해, 외국어 능력보다는 모집직종에 대한 전문성을 우선시한다. 기술이 먼저라는 이야기다.
이 중 만 50세 이상, 해당 직종 10년 이상 경력자는 시니어 단원으로 분류돼 배우자와 동반도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코이카 봉사단은 혼자 가는 것이 원칙이다. 봉사단의 임기는 2년이 기본. 현지에 파견되면 최대 3년까지 연장이 가능하고, 귀국 후 재지원도 할 수 있다. 재지원의 경우 횟수 제한은 없지만, 심사 과정에서 가산점이 없어 다른 지원자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해야 한다.
코이카 자문단은 봉사단과는 조금 다르다. 교육과 보건, 공공행정, 산업에너지, 농림수산이라는 5개 분야는 같지만, 정책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접근한다. 코이카 봉사단이 조직의 말단, 그러니까 각 도시의 읍면 단위에서 실무를 처리하는 역할이라면, 코이카 자문단은 각 국가의 정책 결정자들이 올바른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자문하는 역할을 한다. 임기는 6개월에서 1년이다.
당연히 자격요건도 다르다. 해당 직종에서 10년 이상 실무 경력이 있고, 영어나 현지어로 강의나 보고서 작성이 가능해야 한다. 행정적인 업무가 대부분인 탓이다.
때문에 지원자들도 차이가 있다. 코이카 자문단의 경우 대학교수나 대기업 임원, 공공기관이나 정부부처의 고위공무원 출신들이 많다. 오세훈 前 서울시장이 시장직에서 물러나자마자 르완다와 페루에서 6개월씩 자문단으로 활동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봉사활동이라는 책임감 있어야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경험자들은 코이카를 통해 다른 국가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국가를 대표하기 때문에 단순히 노후에 시간을 보낸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직업군인 출신으로 2013년부터 2년간 몽골에서 체육교육 활동과 지역개발 사업을 진행했던 류진현씨는 이렇게 조언한다.
“노후의 삶을 계획하는 방안 중 하나로 코이카를 고려할 때는 봉사활동임을 확실히 인식해야 해요. 국민의 세금으로 활동하는 것인 만큼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합니다. 노후를 해외에서 즐긴다는 생각으로 도전한다면 본인도 불행해지고, 예산도 낭비될 수 있어요.”
실제로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모집을 담당하는 코이카 월드프렌즈 모집팀의 김혜원씨는 많은 지원자들을 만나다 보면 다양한 사례를 접할 수 있다고 한다.
“코이카를 종교기관으로 착각하고 선교활동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이런 종교활동은 코이카에서 엄격하게 제한하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또 이민의 개념으로 가족과 함께 이주하려는 경우도 있는데 불가합니다.”
코이카 측에서 원하는 인재상도 류진현씨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문지식과 현지 적응력, 봉사정신 이 3가지를 가진 인물이 코이카가 바라는 인재의 모습이다.
해외체류 위한 생활비, 거주비 등 지원
코이카 봉사단이나 자문단의 파견은 기본적으로 해당 국가에서 필요한 분야에 대해 한국 외교부로 요청이 들어오면, 코이카에서 원조 인원이나 범위를 결정해 파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언제 어느 국가에 수요가 발생할 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코이카 봉사단이 횟수를 정해 놓지 않고 수시로 모집하는 것도, 특별한 희망국가가 있다고 해도 그 바람이 이뤄지기 힘든 것도 이러한 특성 때문이다. 자문단의 경우에는 1년에 두 차례 모집한다. 자세한 일정이나 모집분야, 자격을 알고 싶다면 홈페이지(kov.koica.go.kr)를 확인하는 것이 제일 확실하다.
경쟁률은 보통 3대1에서 5대1 수준. 그러나 봉사단에선 한국어 교육분야, 자문단에서 공공행정 중 경제분야는 10대1 이상을 기록하기도 한다. 농림수산 분야는 치열하지 않다.
이렇게 선발이 되면 한국과 현지에서 적응을 위한 별도의 교육을 받고, 전 세계 40여 개국으로 파견된다. 파견국은 주로 아시아 국가가 꾸준한 수요를 보였으나 최근에는 중남미나 아프리카에서 지원을 요청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한다.
봉사단원이 받는 금전적 지원은 얼마나 될까? 일단 많은 금액은 아니다. 코이카 봉사단의 경우 현지 생활비, 주거비 등이 지원되는데 각 국가의 물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실무자들의 설명으로는 시니어 단원들에게 대략 한화로 월 150만~200만원이 지원된다고 한다. 여기에 2년간의 활동을 마치면 귀국하면 국내 정착지원금을 지원하는데, 월 50만원씩 총 1200만원이 지급된다. 봉사단의 시니어 단원은 일반 단원에 비해 생활비는 2배, 주거비는 1.5배 더 받고 있다. 코이카 자문단의 경우에는 별도의 정착지원금이 없다. 대신 현지 정착비, 생활비 명목으로 월 4000달러 정도가 지급된다.
인생의 후반기 돌아보는 기회
아무래도 해외생활에서 걱정하는 부분은 건강과 안전이다. 특히 시니어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이는 코이카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현지에서 활동을 해야 할 단원들이기 때문에 건강관리 부분은 가장 신경 쓰는 부분 중 하나. 건강검진이나 의료비, 의료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안전도 마찬가지다. 최근 테러 위협이 증가하는 국가들이 많아지면서 문제가 되는 나라들은 아예 지원 대상 국가에서 제외하고 있다. 또한 현지에 파견되어 있는 코디네이터를 통해 단원들 안전관리를 위한 보호·철수 계획을 수립해 놓고 비상시를 대비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파견되는 국가는 기초적인 안전은 보장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코이카의 전신인 한국청년봉사단부터 각종 자문역할로 인연을 맺고 많은 봉사단을 만나 온 이태주 한성대 교수는 유의해야 할 점과 코이카 활동이 갖는 장점을 이렇게 이야기 한다.
“특히 시니어들은 정신적인 건강관리도 중요해요. 한국 남성들, 시니어들은 혼자 서기 힘든 존재인 경우가 많아요. 그랬던 사람들이 현지에선 밥 먹는 거, 양말 빠는 것까지 혼자 해결해야 하니까요. 그 과정에서 겪는 고독이나 정신적인 건강을 주의해야 해요. 하지만 시니어들이 그 난관을 딛고 다녀오면 다른 인생이 열리는 경우가 많아요. 뒤늦게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고, 시각도 열리고 유연해져요. 국가적으로도 기여할 수 있고요.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려는 시니어들을 보면 되레 제가 감동 받기도 해요.”
정부 무상원조 전담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ㆍKOICA)이 퇴임을 앞두고 사내에 1억원을 쾌척한 장현식(58) 이사의 기부금을 적극 활용키 위해 직원들이 주인이 되는 외부 자선재단을 설립하기로 했다.
28일 코이카에 따르면 이달 말 퇴임하는 장 이사는 여러 좋은 일에 써달라며 퇴직금과 사재를 털어 회사에 1억원을 기부하기로 했고, 코이카는 그의 뜻을 받아들여 기부금을 다양한 사회공헌 사업에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코이카는 직원들이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외부 재단을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다. 5월까지 재단 설립을 마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재단 발기인으로 직원들이 참여하는 만큼 재단 명칭도 코이카 직원들이 낸 아이디어 중에서 결정하기로 했다.
코이카는 내달 6일까지 직원들을 대상으로 재단 명칭과 관련된 아이디어를 접수한 뒤 사내 투표를 통해 명칭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당초 기부자 이름을 재단 명칭으로 사용하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 "한 개인의 단체가 아니다"라며 장 이사가 극구 사양한 것으로 전해졌다.
코이카 관계자는 "코이카가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외부 재단을 세워 장 이사 기부금을 활용하기로 했다"면서 "재단은 교육이든 사회사업이든 가능한 형태를 알아보고 있으며 기부자 뜻대로 장학사업도 재단 사업에 포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재단 발기인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코이카 직원은 10명이다.
코이카는 재단이 서고 활동에 들어가면 전직 코이카 직원 등 다양한 사람이 회원으로 참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장 이사가 낸 기부금은 다른 코이카 임직원들이 사회공헌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마중물'로 볼 수 있다"며 "개인적으로 다양한 기부를 하고 있는 코이카 직원들의 참여가 예상된다"고 전했다.
1991년 코이카 창립 멤버로 합류한 장 이사는 23년간 근무하면서 한국 정부의 공적개발원조(ODA) 업무를 주도했고, 2007년에는 국제 원조 분야에 관심 있는 학자들과 함께 '국제개발협력학회(KAIDEC)'를 발족한 바 있다.
“코이카에서 일하며 빚을 참 많이 졌어요. 개인적으로는 큰 돈이지만 이렇게라도 빚을 갚고 후배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정부 무상원조 전담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KOICA)의 임원이 회사를 떠나며 받는 퇴직금에다 사재까지 털어 1억원을 사내에 기부하기로 해 화제다.
주인공은 장현식(58?사진) 코이카 선임이사다.
ㅈ장 이사는 23년간 코이카에서 근무하며 과거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의 공적 개발원조(ODA) 사업을 크게 향상시켰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는 코이카에서 개발전문가로서 능력을 발휘하며 한국의 무상원조 현장에 서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거둔 성과를 내세우기보다는 코이카에서 묵묵히 일했던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운 시기라며 23년간의 회사 일을 되돌아봤다.
장 이사는 “코이카에 재직하는 동안 과분하게도 좋은 일을 할 시간, 좋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다. 코이카를 떠날 때는 반드시 무언가 되돌려주고픈 생각이 들어 기부를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 창립 23주년을 맞는 코이카에서 퇴임하며 ‘사내 기부’라는 의외의 선물을 선사하고 떠난 임직원은 없다.
그는 이번 일로 ‘코이카 퇴임 기부 1호’라는 기록을 쓰게 됐지만 오히려 동료 임원과 후배 직원들이 자신의 기부에 부담을 느낄까 봐 솔직히 걱정이 된다고 했다.
장 이사가 내기로 한 기부금은 그가 작년 한 해 코이카에서 받은 임원 연봉(8200여만원)을 크게 웃돈다. 그런 탓에 기부금 1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를 떠나며 받을 퇴직금에다 노후 대비용으로 들어뒀던 개인 펀드까지 해지해 돈을 보태기로 했다.그는 무엇보다 집에서 기부 의사를 밝혔을 때 자신의 생각을 선뜻 받아준 아내가 무척 고맙다고 했다.
한국외대 영어과를 졸업한 뒤 고려대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에서 각각 행정학과 정치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장 이사는 1991년 정부가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변신을 시도하며 만든 코이카 창립 멤버로 합류했다.
코이카는 오는 31일 오후 창립 23주년 기념식과 함께 이달 말 회사를 떠나는 장 이사의 정년 퇴임식을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