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39년을 농촌 지도사로 일한 이윤화(李允和·67)씨가 도미니카 공화국에 도착했을 땐 막막 그 자체였다. 입버릇처럼 정년퇴직 후를 대비하라고 후배들에게 잔소리 해 왔지만, 정작 자신을 위한 준비는 없었다. 그래서 막막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생각한 것이 코이카였다. 식량 증산과 농업기술 근대화를 위해 평생을 바쳐온 그였다. 상대가 외국 농토, 외국 농부라도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다시 막막한 현실이었다.
“완전히 답답하더라고요. 채소나 과수 생산을 돕기로 하고 출발했지만, 고산지대여서 다른 작물을 재배할 여지가 없었어요. 원래 수입의 70~80%를 커피 생산에 의존하던 곳이었는데, 기후와 환경 변화로 커피가 죽어 나가기 시작한 거죠. 제가 도착했을 땐 커피농사가 전멸 상태였어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죠.”
이씨가 도미니카 공화국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은 2013년 10월. 지구 반대편 산골 마을 산티아고로드리게스주(州) 라 레오놀(La Leonor)에서의 다사다난한 2년의 출발은 그렇게 시작됐다.
막막함도 잠시. 그는 어떻게 이들을 도울까 생각했다. 결국 열쇠는 커피였다. 다행이 지역 주민들도 정답을 알고 있었다. 라 레오놀에 잘 자랄만한 품종은 이미 그들도 알고 있었다. 다만 육묘 생산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부족했다. 이윤화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커피를 따먹는” 방법밖에는 몰랐다.
목표가 설정되자 할 일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작물이 벼에서 커피로 바뀌었을 뿐이지, 한국에서 했던 과정을 그대로 따르면 될 뿐이었다. 일종의 협동조합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이 일을 돕도록 만들고, 관계 부처의 협력도 얻었다. 훗날 이씨가 적용한 이 체계는 도미니카 정부의 지방개발 롤모델로 차용된다.
“느긋한 사람들이라 처음엔 다그치는 절 이해하지 못했어요. 어느 날 제가 커피 심는 법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데 누군가 묻더군요. 네가 살던 한국에선 커피가 얼마나 나느냐고. 그래서 전혀 나지 않는다 하니 황당해 하면서 웃더라고요. 저도 함께 따라 웃었어요. 하지만 점점 절 따라 줬고 모종을 키우기 위한 묘목장 설립도 이뤄냈죠.”
처음 이씨가 5년간 100만 그루라는 생산목표의 시작은 성공적이었다. 10만 그루의 모종이 자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돌아왔다. 이대로라면 이모작으로 목표치를 생산할 수 있다. 모종들에 대해 설명할 때 이씨 눈 주위는 붉은빛을 띠었다. 흔히 이야기하는 농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근무 기간을 연장하지 않았지만, 나빠진 건강을 추스르고 체력을 회복하면 다시 한 번 코이카를 통해 도전하고픈 희망이 있다.
“잘 노는 법도 모르고, 일하는 것이 제겐 놀이이자 휴식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