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도 할 말은 하자

기사입력 2019-01-25 10:40 기사수정 2019-01-25 10:40

꿀맛은 아무리 풍족하게 표현해도 뭔가 부족해 보인다. 꿀을 한 숟가락 푹 떠서 입에 넣어주고 “옜다! 이게 꿀맛이다” 해야 그 맛을 진정으로 알 수 있다. 늙음도 마찬가지다 늙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늙어본 사람만이 늙음을 말할 수 있다. ‘마흔과 일흔이 함께 쓰는 인생노트’라는 책을 낸 저자는 어머니의 노년을 지켜보면서 노인 관련 책을 썼다. 저자가 60대였을 때 90대 어머니는 “넌 늙은이를 몰라도 참 모른다. 하긴 늙는 게 뭔지 알지 못하니!”라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 저자는 70대가 되어 어머니 말씀을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면서 늙음이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책을 냈다는 걸 자인했다. 살아보지 않는 한 노년의 훗날은 아무도 모른다. 그때까지 가봐야 안다. 100세를 바라보는 김형석 교수는 “100세를 살아보니 이러저러하더라” 하고 말씀하셨다. ‘아하 그렇구나!’ 하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지표가 되어준다. 이런 말을 해주는 분이 있어 고맙다.

아버지를 모시던 형님이 60대 때 80대의 아버지를 모시고 용인 민속촌에 간 적이 있다. 아버지가 옛날을 회상할 수 있도록 풍경들을 많이 보여주려고 “아버지 빨리 걸으세요” 하고 채근했다고 한다. 형님은 세월이 더 지난 뒤에야 그때 아버지가 빨리 안 걸은 게 아니라 다리가 아파서 못 걸었다는 걸 알게 됐단다. 그 당시에는 몰랐다고 고백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육십이나 먹은 놈이 그것도 모르고 재촉만 했으니…” 하고 후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지는 다리가 아팠지만 당신을 위해 시간을 내준 아들이 고마워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며 허리를 억지로 꼿꼿이 세웠을 것이다. 빨리 걷지 못하는 아버지를 답답해하는 아들에게 “이놈아! 다리가 아파서 그렇다”라고 불호령이라도 내리셨다면 형님의 후회는 줄어들었을 것이다.

아들 며느리가 정답게 사는 모습을 보면 기쁘다. 며느리가 아들에게 먹고 싶은 걸 사다 달라고 하면 아들은 달랑 며느리 몫만 사온다. 시어머니 몫이 없어 섭섭하기도 하지만 어른 체면에 그런 마음을 표현하기가 그렇다. 가끔은 속으로 삭이려니 천불도 난다. 아들은 어머니가 사 달라는 요구를 안 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늙은이를 몰라도 한참 모른다. 꼭 말을 해야 알아듣는 젊은것들이 미울 때가 있다.

도서관에 가보면 어린이를 위한 공간이 따로 있지만 노인을 위한 자리는 없다. 노인 관련 책도 귀하다. 젊은 사서가 책을 구매하니 노인이 읽을 만한 책을 들일 리가 없다. 노인에게 유익한 책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으니 출판도 점점 더 어려워진다. 백번 양보해도 ‘노인을 위한 정책’은 불만이다. 젊은이의 눈높이로 노인을 보는 ‘젊은이를 위한 노인의 처분’만 있다.

몸이 늙으면 치아도 빠지고 변비도 생기고 고혈압, 당뇨 위험에도 노출된다. 소화력도 떨어지고 비뇨기 계통에도 이상이 생긴다. 시력, 청력도 약해지고 기억력도 둔해진다. 우울한 날이 많고 치매에 걸릴까봐 불안에 떨기도 한다. 오래 살아서 생기는 병이라고 단정하면서 아파도 참고 그렇게 살다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하는 동년배 노인을 보면 답답하다. 현대 의술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웬만한 노인병은 다 고칠 수 있고 진통제가 통증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다. 그러니 아플 때는 아프다 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은 치료하며 살아야 한다. 늙음을 한탄만 하며 억지로 참지 말자.

아이가 아프면 한밤중에도 병원으로 달려가지만 부모가 아프면 당연한 걸로 여기며 그것도 못 참느냐며 눈살을 찌푸린다. 젊은것들이 헤아려주겠지 하는 마음은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떨어지는 홍시를 기다리는 것처럼 헛되다. 내 몸은 내가 지키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고칠 때까지 고쳐보자. 늙었다는 것은 젊음을 가족과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는 의미이고 얼굴의 주름살은 그 시간들의 자랑스러운 훈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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