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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는 평생 오늘이십니다”
-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오후 2시. 약속시간을 부득이하게 미뤄야겠다고 알려왔다. 겨우 10분 늦는다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색을 표하는 이만의 전 장관은 근처 회의에 참석했다가 점심도 못 먹고 걸어오느라 늦은 것이었다. 그는 공공연하게 ‘BMW(Bus&Bicycle, Metro, Walk) 예찬론자’라고 말한다. 장관 재임 시절에도 전용차량 ‘에쿠스’를 반납하고 ‘아반떼 하이브리드’를 타고 다닌 것으로도 유명하다. 물질적 가치보다 사람을 아끼고 환경을 사랑해야 한다는 그다. 높은 직함을 갖고 있다고 해도 더욱 더 겸손해야 한다
- 2015-07-20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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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를 속여 죄송합니다”
- 나른한 봄볕 아래 어머니를 생각하는 조창화(趙昌化·78) 대한언론인회 고문을 만나 담소를 나눴다. 그는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어머니의 값진 추억을 생생하게 그렸다. 흡사 계절마다 살아 돌아오는 장미꽃의 슬픈 아름다움처럼, 어머니의 모습은 그렇게 조 고문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etoday.co.kr 사진 이태인기자 teinny@etoday.co.kr “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을 오직 1남 2녀 세 자식을 위해 헌신하셨죠. 그중에서도 아들인 제게 몰두하셨어요. 그래서 저에게 어머니는 늘
- 2015-06-0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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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가 앗아간 조선의 여인
- 그녀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자 어머니 생각을 하며 3일 동안 고심하며 쓴 A4용지 4장 분량의 원고를 보내왔다. 어머니에 대한 내용이었다. 영락없는 조선시대 어머니의 모습이다. 한 남자를 위해 헌신하는 아내, 시부모님께 효도하는 며느리, 그리고 자애로운 어머니. 그래서 안영의 어머니는 신사임당을 닮았다. 이 글은 안 씨가 보낸 글을 바탕으로 했는데, 기자와의 인터뷰도 더해졌다. 그녀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밤, 어머니의 숨소리가 더 거칠어진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아침이 되자
- 2015-06-02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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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아, 너도 사랑을 누려라”
- ‘내 엄마의 이름은 김정숙. 고향은 평북 선천군 선천면 일신동. 이십대 중반에 남편 신하철을 만나 신식 결혼식을 올렸다. 슬하에 아들 하나, 딸 셋을 두었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이남에서 살아왔어도 늘 꿋꿋했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 38년 야당투쟁을 했고 민주화의 대부로 국회의원직을 지냈던 남편이 서울대총학생회장을 숨겼다가 잡혀 고문 받고 시달릴 때도 경찰들에게 고함을 팍팍 지를 정도로 용감했다. 연약했지만 단단했다.’ 어머니가 숨을 거두셨을 때, 시인 신현림 (申鉉林·54)과 자매는 약소하나마 장례식장에 어머니의 일대기를
- 2015-03-10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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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예술가의 초상' 故 박완서 작가의 맏딸 호원숙씨
- ‘예술가란 아름다운 것들을 창조하는 자다. 예술을 나타내고 예술가를 감추는 것이 예술의 목적이다.’ 글을 시작하기 전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의 아름다운 구절은 꼭 인용하고 싶었다. 아주 오래전 어머니가 글을 쓰기 전 그 빛바랜 책을 들고 있으면 정말 빛이 난다고 느꼈다. 어린 마음에도 언젠가는 어머니가 아름다움을 창조할 날이 올 거라고 믿었고 그 믿음은 이루어졌다. 어머니에 관한 글을 쓰면서 ‘행복한 예술가’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어머니에 대한 최상의 찬사라고 생각했다.
- 2015-01-16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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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는 평생 외로운 여자였어요”
- ‘총체적 예인.’ 박윤초 명장을 칭하는 문화예술계의 표현이다. 세기의 명창이었던 만정 김소희 선생의 딸로,그녀의 예술적 기질을 모두 가진 듯한 박 명창은 판소리, 가야금 병창, 전통 춤 등 많은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TV 출연과 같은 요란한 활동과는 철저하게 담을 쌓은 채 자신의 예술 세계를 더욱 공고하게 다듬으면서 후학들을 길러내고 있는 박 명창의 열정은 어머니를 향한 사무침을 시대의 소리꾼답게 불사르고 있는 데서 나오는 것일까? 그녀가 말하는 어머니와 자신의 이야기. 사진 장세영 기자 photothink@
- 2015-01-0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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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매 어머니와 사는 남자
- 우리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치매 판정을 받는다면? 아무리 효자라도 악몽이라는 생각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여기 7년 동안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산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치매로 말미암아 가족 모두를 변화시킨 어머니도 있다.그 사연은 무엇일까? “아빠는 책상 앞에서 하루 종일 책 읽고 일하면 중간에 허리도 좀 펴고, 스트레칭도 좀 하지 지금 죽으려고 작심한 거야?” 일주일에 20권의 책을 읽고, 수도 없이 많은 원고를 쓰며 책상 앞에서 일을 놓지 않았던 한 소장에게 그의 딸이 언성을 높인다
- 2015-11-05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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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자야, 네는 꼭 될 끼다”
- ‘일생 단 한 번/ 내게 주신 편지 한 장/ 삐뚤빼뚤한 글씨로/ 삐뚤빼뚤 살지 말라고/ 삐뚤빼뚤한 못으로/ 내 가슴을 박으셨다/ 이미 삐뚤빼뚤한 길로/ 들어선/ 이 딸의/ 삐뚤빼뚤한 인생을/ 어머니/ 제 죽음으로나 지울 수 있을까요.’ 신달자의 시 다. 신달자 시인의 어머니 故 김복련씨가 남긴 삐뚤빼뚤한 글씨 세 문장에는 그녀가 인생에서 이루지 못한 소망이 담겨 있다. 시인 신달자가 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던 날. 아버지에게서 하얀 봉투를 건네받는다. “네 애미가 널 위해 쓴 편
- 2015-10-06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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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챔피언 홍수환(洪秀煥·66)이 말하는 ‘엄마’ 황농선
- “엄마, 엄마야 나 챔피언 먹었어.” 2015년 홍수환이 어머니 황농선씨를 기억하며 부르는 호칭은 40여년 전 그대로 ‘엄마’다. 왜 어머니가 아닌 엄마라는 호칭을 쓰냐는 질문에 “그냥 엄마는 엄마가 좋다”고 대답한다. 그렇다. 그의 마음속에 아직까지 어머니는 따뜻하고 인자한 그런 ‘엄마’로 남아 있는 게 분명하다. “수환아, 대한민국 만세다”라고 외쳤지만, 그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故황농선씨. 챔피언 홍수환의 ‘엄마’. 홍수환의 어머니는 그에게 어떤 의미였기에 챔피언이 된 후 엄마를 찾은 것일까?
- 2015-04-27 1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