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수명과 생물학적 수명의 간극은 시니어들을 가장 고민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직업은 단지 경제적 자원을 얻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인생의 보람, 즐거움 심지어는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자격증을 선택하는 시니어들이 늘고 있다. 결국 취업이든 창업이든 기술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니어들을 위
동네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공기업 헬스장에서 70세 이상은 출입을 금지한다는 팻말을 붙였다. 지금까지 함께 운동해오던 건강한 70대의 할아버지가 나이제한에 힘없이 되돌아가는 뒷모습이 안타까움을 넘어 불쌍해 보였다. 공기업이 동네주민을 위해 무료 운영을 하는 헬스장이니 경비절감을 이유로 코치도 없고 자율적으로 스스로 알아서 운동하는 체제이다. 코치나 관리인이
미국에도 우리나라 주민등록증 같은 것으로, 소셜 넘버라는 것이 있다. 그것이 있어야만 운전면허증을 딸 수도 있고, 은행구좌 및 생활 모든 곳에 자기 신분을 증명할 수가 있다.
예전에는 비자가 없어도 그나마 쉽게 발행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로는 아주 어려운 과제 중의 하나였다. 첫 번째로 적법하게 비자를 만들었다면, 그다음으로 행
미국에도 우리나라 주민등록증 같은 것으로, 소셜 넘버라는 것이 있다. 그것이 있어야만 운전면허증을 딸 수도 있고, 은행구좌 및 생활 모든 곳에 자기 신분을 증명할 수가 있다.
예전에는 비자가 없어도 그나마 쉽게 발행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로는 아주 어려운 과제 중의 하나였다. 첫 번째로 적법하게 비자를 만들었다면, 그다음으로 행하
미국 내에 전쟁이 났다. 현대 미국사의 가장 충격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인종차별이 심하다는 나라에 종교적 갈등까지 겹친 것이다. 그 이후 미국은 서서히 변화를 몰아오고 있었다.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아침이다. 아침부터 돌아가는 세탁소 기계 소리에 정신이 없었다. 필자는 출근하면 제일 먼저 한국 라디오 방송을 틀었다.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여권이 몇 개나 된다. 예전에는 5년마다 새로 갱신을 해야 했다. 이제는 두툼해진 10년짜리 여권이 몇십 년은 쓸 것 같다. 미국에 입국하려면 반드시 비자가 필요했다. 더구나 그곳에 거주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신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신분 유지란 하늘의 별 따기이다.
10년짜리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해 미국 대사관 앞에는 언제나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필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에서 차는 발이나 다름없다. 차가 없으면 누구나 꼼짝도 할 수가 없다. 이민 가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운전 면허증을 따는 일이었다. 그리고 차를 구입해야 하는데 그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낯선 땅에 천지가 어리둥절하고, 가난한 이민살림에 비싼 새 차를 산다는 것은 엄청난 사치였다.
필자는 두 번에 걸쳐서야 겨우 캘리포니아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이민 가방을 챙겼다. 큰딸이 학교에 휴학계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필자를 설득하기 위한 수단이었나 보다. 아이는 엄마가 하루라도 빨리 동생과 아빠 곁인 미국으로 가기를 원했고, 카이스트가 어떻게 들어간 학교인데 필자의 허락도 없이 일을 저질렀다. 드디어 왔다 갔다 이산가족 생활 3년 만에 한국의 모든 생활들을 말끔히 정리했다. 물
그날도 광화문 시내로 가기 위해 성북동 뒷길을 통해 삼청터널을 향하고 있었다.
이 길은 솔직히 초보운전자나 초행길인 사람에게는 좀 힘들 수 있는 코스이다. 경사가 급한 언덕길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오르내리는 길도 많으며 급커브 길도 심심치 않게 만난다. 그렇지만 이 길을 수십 년째 다니고 있는 나에겐 참으로 편리하고 쾌적하게 달릴 수 있는 친숙한 길이다.
2500년 전 공자의 말씀이 현대인들에게도 공감을 사는 이유는 뭘까? “그거야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으니까 그렇지.” 오종남(吳鍾南·63)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는 ‘세상에서 나만 힘들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을 권한다. 왜냐, 기원전에 살았던 공자도, 21세기를 사는 우리도 인생이 고달픈 것은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글 이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