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년인데 안식을 못하고 있어요. 일이 많아서(웃음).”
주빌리은행장이자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인 유종일(柳鍾一·59) 교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근황을 얘기했다. 그러나 그 인간미 넘치는 모습은 한국사의 거친 부침 속에서 단련된 표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경제민주화 개념을 적극적으로 현실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오피니언
1883년 개항을 계기로 외래의 근대문화를 받아들인 인천은 근대도시로 성장했다. 이에 의미를 둔 인천광역시와 인천문화재단은 개항장에 한국근대문학관을 세워 한국 근대문학을 수집, 보존하고 있다. 근대계몽기(1894~1910)에서 해방기(1945~1948)까지의 문학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한국근대문학관을 소개한다.
근대문학관으로 변신한 창고
한때 막걸리 열풍이 일었던 적이 있다. 유산균이 많아 건강에 좋다는 이유였다. 우리나라 전국은 물론 이웃 일본에 수출 물량 대기도 바빴었다. 여러 기업에서 고급 막걸리를 출시하기 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막걸리 열풍이 많이 식었다.
필자는 주로 막걸리를 마신다. 워낙 막걸리만 고집하기 때문에 회식자리에 참석하면 필자를 위해 막걸리 두 병을 따로 주문해
‘닭님에게 손수 밥을 만들어서 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하는 시인이 있다. 흔히 우둔함의 대명사로 꼽는 닭을 ‘닭님’이라고 부른다는 것 자체가 비범하다. 경기도 여주군 도리마을 외딴집에서 700여 마리의 닭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홍일선(洪一善·67) 시인이 바로 그 사람이다. 1980년 여름호를 통해 등단해 , 등의 시집을 낸 중견시인인 홍
일본의 군함도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섬이 군함처럼 생겼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사진으로 볼 때는 거대한 군함처럼 삼엄한 느낌을 준다. 2015년 일본이 군함도를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의 역사 현장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다고 했을 때 이곳 군함도가 하시마 탄광과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군함도에 조선인 800여 명이 끌
정유년인 올해는 정유재란(1597.1~1598.12) 발발 420주년이다. 임진왜란으로부터는 427주년.
임진왜란이 치욕의 역사였다면, 정유재란은 왜군이 충남 이북에 발도 못 붙인 구국승전의 역사다. 그 전적지는 진주, 남원, 직산 등 삼남지방 곳곳에 있지만 옛 자취는 찾기 어렵다. 뚜렷한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왜군이 남해안을 중심으로 농성하던 성터들이
성긴 마대로 캔버스를 만들고 물감을 뒷면에서 앞으로 밀어내어, 마대 올 사이로 자연스럽게 흐르게 한 뒤, 앞면에서 최소한의 붓질만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사용하는 물감도 회색이나 검정, 청회색 등 단색으로 단조로우나, 보는 이들에게 고요한 명상에 잠기게 한다.
화가 하종현(河鍾賢, 1935~)은 1960년대 우리나라 앵포르멜(informal, 비정형) 추상
수유리 419 묘지 옆 한신대학교 정문 입구에는 문익환 목사의 시비가 있다. 네모의 유리 상자 속에 본인의 작품인 ‘잠꼬대 아닌 잠꼬대’라는 세로줄 시가 금관의 나비문양처럼 빛을 발하며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지 잠꼬대 하듯 소리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비록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둘레를 돌아가며 빽빽하게 새겨진 뜻을 모은 지인들의 이름을 읽으니 금싸라기
지난 5월 익산 관광 때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 유적을 둘러본 적이 있다. 그러나 발굴 중이라 땅만 파놓았지 막상 볼 것이 없어 실망했다. 제대로 보려면 익산까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함께 지정된 공주 부여를 돌아봐야 한다고 들었다. 검색으로 공주는 볼 것이 그리 많지 않고 부여에 유적지가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부여로 향했다.
폭염
목욕탕에서 웃고 떠드는 한패의 젊은이들의 팔뚝에 전부 입을 벌리고 있는 물고기 잉어의 문신이 있다. 순전히 문신 때문에 이들로부터 조폭의 냄새를 맡는다. 요즘 들어 부쩍 문신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과시용으로 또는 남들과 차별화된 멋으로 한다. 예전에는 문신한 사람을 경찰에서 불신검문 하기도 하고 문신이 지나치면 군대에도 가지 못했는데 요즘은 민주화 바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