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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권추심원에서 금융복지상담사된 박미진 씨 “금융소외계층 돕는 삶 즐거워”
- 창과 방패의 구도에서 극적으로 역할이 바뀌는 인생을 우리는 가끔 목격한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실제 주인공으로, FBI를 속 태웠던 범죄자에서 보안 컨설턴트로 변신한 프랭크 애버그네일 2세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전라남도 순천에서 만난 박미진(朴美眞·43세) 씨가 풀어놓은 이야기도 극적인 반전을 연상케 했다. 채권추심원에서 빚으로 고통받는 채무자를 돕는 금융복지상담사로 제2인생을 살아가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실 채권추심하는 사람들도 다 보통 사람들이에요. 영화 속 모습처럼 우락부락하고 거친 말을 쏟아내지는 않아요.(웃음)” 박미진 씨는 신용정보회사를 통해 이뤄지는 채권추심 업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심지어 채권자들도 빚을 받아내는 과정은 무조건 집을 찾아가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는데, 다 그렇진 않아요. 저도 초보 시절엔 출장도 가고, 채무자와 만나려는 시도도 했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서류를 통해 안내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았죠. 채권추심 과정에서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상환 방법을 안내한다든가, 자산을 압류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하죠. 불법을 저지르지 않도록 가이드라인도 마련하고, 이를 교육하는 회사도 많아요.” 하소연과 욕설 비일비재 신용정보회사가 다루는 채권은 금융 업계에서도 ‘악성’으로 평가받는 것이 많다. 당연히 채무자는 빚을 갚을 형편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 빚 탕감을 독촉하는 이가 곱게 보일 리 만무하다. 그 만남의 과정이 고난할 수밖에 없다. “싫은 소리도 많이 듣죠. 빚이 한두 푼이 아니라는 하소연은 기본이에요. 왜 일 못하게 전화하느냐는 항의에서부터 욕설도 비일비재해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악에 받친 소리는 오래 가슴에 남아요. 이 일도 고충이 있는 감정노동이죠.” 그녀가 신용정보회사에서 근무한 것은 약 12년. 적성과 맞지 않아 중간에 쉰 적도 있다. 일을 하면서도 늘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했다. 2015년 남편이 직장을 순천으로 옮기면서 내친김에 추심과는 이별을 고했고, 남편의 소개로 알게 된 금융복지상담사 교육 과정에 지원했다. 당시에는 두 번째 직업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추심 업무를 볼 때 궁금했던 금융복지 분야의 전문지식을 쌓고 싶은 호기심이 컸다. 그러다 2016년 5월, 전라남도 금융복지상담센터가 개설될 때 창립 멤버로 참여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안 갚아도 되는 빚 걱정도 많아 “채권추심 업무를 오래하다 보니 빚 문제로 고생하는 분들의 마음을 알겠더라고요. 금융복지상담센터를 통해 도움을 청하는 분 중 상당수는 추심기관의 우편물만 보면 무조건 무서워하는 고령의 취약 계층, 저소득층이에요. 빚쟁이가 무서워 10년 넘게 밤에 전깃불도 못 켜고, 좋아하는 책도 이불 뒤집어쓰고 읽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막연히 이런 분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금융복지상담사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돼 참여하게 됐어요.” 전국에 개설된 금융복지상담센터는 이름 그대로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금융과 복지 관련 제도에 대해 상담해주는 일을 한다. 재무건강진단이나 수입·지출관리 상담, 서민금융지원 안내도 하지만 채무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개인파산 및 면책, 개인회생 등 해결 방법을 찾아 지원하는 게 주요 업무다. “간혹 채권추심 과정에서 불법 행위가 발생해도 채무자들은 대부분 무엇이 문제인지 몰라요. 기존 빚을 해결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도 신용불량자로 사시는 분도 많고요. 흔히 상상하는 수천, 수억 원의 큰돈이 아닌데도 말이죠. 심지어 소멸시효가 지나 갚지 않아도 되는 채무 때문에 비정상적인 삶을 지속하는 경우도 있어요.” 무양심으로 몰아선 안 돼 입장 자체는 공수(攻守)가 전환된 상태이지만, 채권추심 과정을 속속들이 아는 만큼 박 씨는 채무자를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채권추심원은 채무자의 기초생활수급자 여부 같은 상황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추심을 진행하죠. 이럴 땐 제가 대신 연락해서 추심정지 요청 등의 대처를 합니다. 이외에도 그들의 업무처리 방식을 잘 알아 유리한 점이 있어요. 예상되는 피해를 방지할 수 있으니까요. 추심 담당자의 입장을 알기 때문에 전화로 대신 채권 협상을 하기도 해요. 때로는 상담을 받으러 온 분이 들고 오는 서류에서 옛 동료의 이름을 발견하기도 하죠.(웃음)” 박 씨는 채무자들이 빚을 갚지 못하는 것을 자신의 도덕적 결함과 동일시하는 것이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원인이 제도나 사회에 있는 경우도 있는데, 모든 화살이 개인에게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고. 심한 경우 그 과정에서 삶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했다. “저희를 만나 빚이라는 짐을 덜게 되면서 삶이 극적으로 변하는 분도 많아요. 압류로 인해 정상적인 금융활동이나 사회생활이 어려워지면서 경제활동을 포기할 만큼 힘들게 살아온 분들이 채무가 해결되면 옷차림이나 삶의 태도가 180도 바뀌면서 새사람이 되기도 해요. 그때 제가 하는 일에 대해 보람을 느끼죠.” 비슷한 업무이기는 하지만 입장이 반전된 상황.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박 씨는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상담을 하다 보면 우울한 가정사, 무서운 경험담에 동화되기 쉬워요. 드라마나 영화보다 현실이 더 잔혹한 경우도 있죠. 채무자의 이야기를 듣다 문득 평범한 제 삶에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이제 아이에게 제 직업을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어서 좋아요. 지난해에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현재 방송통신대학교 교육학과에 재학 중인데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서 남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 2019-04-0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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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문화캘린더
- 기분 좋은 봄바람이 불어오는 4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클래식) 2019 교향악축제 일정 4월 2~21일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출연 17개 국내 교향악단, 중국 국가대극원 오케스트라 이번 공연의 부제는 ‘제너레이션(Generation)’으로 우리 클래식 음악을 세계에 알릴 젊은 협연자들이 교향악단과 동행한다. 또한 국내에서 초연되는 블로흐의 교향곡 ‘C#단조’도 감상할 수 있다. (연극) 패왕별희 일정 4월 5~14일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 출연 국립창극단 국립창극단과 대만 배우이자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 우싱궈(吳興國)가 중국의 대표 경극 희곡 ‘패왕별희’를 창극화했다. 동명의 영화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패왕별희’는 초나라의 패왕 항우와 그의 연인 우희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판소리와 다양한 음악의 결합으로 재탄생한 ‘패왕별희’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를 모은다. (공연) 이사오 사사키 벚꽃 낭만 일정 4월 6일 장소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출연 이사오 사사키, 마사츠구 시노자키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이사오 사사키가 내한 2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연다. 이번 공연에서는 지브리 영화 OST 등 다방면으로 활약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마사츠구 시노자키와 함께 따뜻한 봄에 어울리는 연주를 들려줄 예정이다. (전시) 그림책NOW 일정 4월 12일~7월 7일 장소 서울숲 갤러리아포레 더 서울라이티움 5관 그림책 작가들의 일러스트레이션 작품과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상, 미디어아트, 조형물을 감상할 수 있다. 현대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의 다양한 표현과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8년 안데르센상 수상자 이고르 올레니코프의 원화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공개되며, 98개국 1844개 작품이 응모한 2019 나미콩쿠르의 수상작도 처음으로 선보인다. (축제) 태안 세계튤립축제 일정 4월 13일~5월 12일 장소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꽃지해안로 400 코리아플라워파크 태안 세계튤립축제에서는 튤립뿐만 아니라 수선화, 히아신스, 겹벚꽃 등 다양한 봄꽃을 만나볼 수 있다. 곳곳에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어 3만5000평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꽃을 배경으로 사진도 남길 수 있다. LED 빛이 반짝이는 야간 축제장은 낮과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축제) 고양국제꽃박람회 2019 일정 4월 26일~5월 12일 장소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호수로 595 고양국제꽃박람회는 국내 최대 규모의 꽃 축제이자 국내 유일의 화훼 전문 박람회다. 실내정원과 야외 테마정원, 문화 공연 프로그램, 화훼 직판장 등이 운영된다. 특히 올해는 ‘원당화훼단지’와 이원 개최된다. 박람회장에서 화훼 단지까지는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으며 농가 견학, 체험 프로그램 등에 참여할 수 있다.
- 2019-03-29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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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문화캘린더
- 따뜻한 봄 내음이 물씬 풍기는 3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 일시 3월 5~17일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출연 박영수, 신상언, 김도빈 등 서울예술단의 대표작 ‘윤동주, 달을 쏘다.’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며 완성도 높은 무대로 돌아온다. 시인 윤동주의 치열했던 삶과 예술을 담아낸 뮤지컬로 비극의 시대에 써내려간 그의 시(詩)들이 노래와 춤으로 어우러져 감동을 선사한다. (행사) 2019 광양매화축제 일시 3월 8~17일 장소 전남 광양시 다압면 섬진강 매화마을 일원 전라남도 섬진강변 매화마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광양매화축제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꽃축제다. 새하얀 눈처럼 만발한 매화와 아름다운 섬진강이 함께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산책로를 걸으며 백(白)매화뿐만 아니라 홍(紅)색, 청(靑)색 다양한 매화의 색과 향기에 취해보자. 인근 청매실농원에서 광양의 특산품인 새콤달콤한 매실도 맛볼 수 있다. (클래식) 송영훈의 클래식 큐레이터, 낭만에 대하여 일시 3월 10일 장소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출연 해설가 및 첼리스트 송영훈, 비올리스트 이신규 등 클래식 음악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인 공연이다. 음악과 미술사의 숨은 이야기들을 대한민국 대표 첼리스트 송영훈이 이해하기 쉬운 해설과 수준 높은 연주로 풀어낸다. 차세대 클래식 아티스트들의 연주로 낭만시대와 인상주의 음악뿐만 아니라 미술작품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 일시 3월 15일~5월 12일 장소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 출연 이순재, 신구, 권유리, 채수빈 등 까칠한 성격의 고집불통 할아버지 ‘앙리’와 꿈을 찾아 방황하는 대학생 ‘콘스탄스’가 특별한 우정을 쌓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연극이다. 세대 간의 갈등을 소통으로 풀어가는 주인공들은 보는 이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2017년 초연에 이어 이번에도 내공을 자랑하는 배우 이순재와 신구가 ‘앙리’ 역을 맡았다. ‘콘스탄스’ 역에는 권유리, 채수빈이 더블 캐스팅되어 색다른 분위기가 기대된다. (행사) 제20회 구례산수유꽃축제 일시 3월 16~24일 장소 전남 구례군 산동면 지리산온천관광지 일원 산수유꽃이 만발하는 지리산에서 봄의 정취와 시원한 고로쇠 약수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꽃축제다. 행사장에서 산수유꽃으로 만든 먹거리를 맛볼 수 있으며, 산수유떡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행사와 공연도 펼쳐진다. (오케스트라) 노다메 칸타빌레 인 클래식 일시 3월 24일 장소 롯데콘서트홀 일본과 한국에서 클래식 음악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 이 드라마 속 정통 클래식이 오케스트라로 찾아온다. ‘한국판 노다메 칸타빌레’인 KBS ‘내일도 칸타빌레’의 연주 대역을 맡은 피아니스트 이현진과 풀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로 클래식 음악을 새롭게 즐길 수 있다.
- 2019-03-04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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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운동 100주년, 발자취를 따라 '이곳'으로
- 1919년 3월 1일 일어난 3·1운동은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을 선언한 사건으로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특히 올해는 3·1운동 발발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다. 현재의 우리나라를 있게 한 커다란 밑거름이 되었던 3·1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장소를 소개한다. 탑골공원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2가 38-1 우리나라 최초의 도심 공원인 탑골공원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던 곳이다. 3·1운동 당시 시민들과 학생들이 모여 만세를 외쳤으며 학생 대표가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팔각정이 남아 있다. 3·1운동 기념탑, 3·1운동을 기록한 부조, 의암 손병희 선생의 동상과 한용운 시비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위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10월 21일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개소되어 1945년 해방까지 한국의 국권을 되찾기 위해 싸운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었다. 현재는 과거의 아픔과 역사를 교훈으로 삼고자 1998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개관하여 교육의 현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3·1운동 직후 유관순 열사가 투옥되어 숨을 거둔 지하 옥사와 감시탑, 고문실, 사형장, 옥사 7개동, 역사전시관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위치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5가 471-2 소월로91 1909년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기념관이다. 전시관 안에는 안중근 의사의 동상과 혈서로 직접 써낸 ‘大韓獨立(대한독립)’이라 쓰여진 대형 태극기가 걸려있다. 이외에도 단지동맹 엽서 만들기, 안중근 의사에게 편지 쓰기 등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독립기념관 위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삼방로 95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헌신한 조상들이 남긴 자취와 자료를 수집, 전시했다. 독립기념관의 상징적 건축물인 ‘겨레의 집’을 지나면 3·1문화마당이 나온다. 제4전시관에선 독립운동의 정신, 실천, 과제, 계승이라는 4가지 주제를 통해 독립운동의 의미와 가치를 전달한다.
- 2019-02-2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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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진이 삶을 꿈꾸는 전직 광고쟁이 신강균
- 오래전 재미있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시험에서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은?”이란 질문에 많은 아이들이 ‘침대’라고 답한 것. ‘침대가 가구가 아닌 과학’이라고 강조했던 인기 광고 영향이었다. 아이들의 이유 있는 오답에 어른들 또한 웃으면서 수긍하고 말았다는 미담이었다. 이 희대의 사건(?)을 빚어낸 주인공을 만났다. 걸어온 길이 한국 광고계의 역사였다고 말해도 아깝지 않은 이 사람, 신강균(申橿均·67). 은퇴했다는데 매일 시간을 쪼개야 하는 연예인급 스케줄에 인터뷰 시간 맞추느라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속내 먼저 털고 인터뷰로 들어갔다. 60대 과즙미가 뿜뿜 터지는 사람 사진에서 느껴지는 저 중후함을 보라. 이제 막 은퇴 3년 차에 접어든 사람. 산책을 하고 조용히 커피를 마시고 사색을 즐길 것만 같은가? 오산이다. 인생 뭐 있나. 생기발랄 여기저기 안 걸친 데가 없다. 그래서 별명이 걸침이다. 시낭송은 기본이요, 판소리도 모자라 남도와 경기민요를 오간 지도 7, 8년쯤. 요리하는 요시남(요리하는 시니어 남자), 가야금, 대금, 피리, 댄스, 캘리그래피 등이 취미이자 요즘 하는 일이다. 카카오톡 프로필은 자화상, 배경화면은 길게 뻗은 고속도로 중앙선에서 발랄하게(?) 뛰어오른 모습이다. ‘지금이 좋다’는 문구도 함께 적혀 있기에 물었다. 그래서 지금이 좋으십니까? “벨기에 학자 말에 인생의 행복 곡선이 U자 모양으로 됐답디다. U자에서 제일 밑이 30, 40대래요. 밥벌이도 해야 하고 자식들도 키워야 하니까. 행복감이 다시 회복되는 게 60대 이후라던데 김형석 교수님도 ‘백년을 살아보니’에 쓰셨더군요. 나도 지나고 보니까 지금이 딱 좋아요. 왜? 일의 터널에 있다가 빠져나와 나만의 시절을 사니까요. 지금 내 시간이 온전하게 딱 생긴 겁니다. 그렇죠?” 거절 받을 용기, No는 Yes의 신호 신강균 씨의 공식적인 이력은 광고대행사 오리콤에 입사해 기획이사까지 지낸 22년, 그리고 한세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생활 18년이 전부다. 얘기를 듣다 보니 번외 이력 하나가 더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힘들다는, 영어로 된 백과사전 영업사원을 했어요. 경영대학원 다닐 때 스스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다짜고짜 팔아야 했다. 당시 영업지역장이 웅진그룹의 윤석금 회장. 그가 지역을 정해주면 청계천이든 탄광촌이든 사람이 있는 곳이면 달려가 영업을 했다. “무조건 일대일이었어요. 영어 새카맣게 모르는 노동자들에게도 팔았어요.(웃음) 영어로 된 명함 주고 가면 ‘뭐야 이게?’ 하는 반응이었죠. 열 번째 가면 ‘고생하쇼’, 스무 번째 가면 ‘물이나 한잔 들고 가슈’ 했죠. 거절당하는 훈련을 했던 거예요. 세일즈의 기본은 거절. 그러나 ‘노’는 ‘예스’의 또 다른 신호입니다.” 못 팔면 버스비가 없어 영등포에서 청량리까지 걸어서 귀가했다. 두 군데만 더 가보자 하고 약국에 들렀다가 백과사전을 팔기도 했다. 그때의 경험이 광고계에 입문해서도 큰 자산이 됐단다. 어떻게 하면 상대가 지갑을 열 것인가 고민하고 설득의 방법을 배우던 시간이었다. 광고계를 들었다 놨다 하던 시절 “광고회사도 내 발로 찾아 들어갔어요. 그때 광고계 대가이셨던 신인섭 씨를 찾아가 광고일을 하고 싶은데 어디가 좋겠냐고 물었죠. 학구적인 곳이라면서 오리콤을 추천해주시더군요. 그래서 오리콤으로 갔죠. 안내데스크에서 내가 여기 들어와야 하는데 누구를 만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차장급을 만나게 해줬어요. 결국 국장까지 대면했습니다. 마침 두 달 후에 경력 사원을 뽑는다기에 응시했죠. 대학원 졸업을 경력으로 인정해주던 때였거든요.” 광고계에 발을 들인 신강균은 신나고 강렬하게, 균형 잡힌 광고를 쏟아냈다. 유한킴벌리의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OB라거의 ‘라라라’, 대우전자 ‘봉세탁기’ CF 등 한국 광고계에 길이 남을 작업을 했다. 특히 침대를 가구의 영역을 넘어 과학과 건강으로 해석해낸 에이스침대 광고는 사회적 인식 전환에 크나큰 기여를 했다. “당시 가구회사에서 침대를 생산하다 보니 침대 전문회사가 하향세를 타고 있었습니다. 이사할 때 가구 바꾸면서 침대를 세트로 바꾸는 거지. 침대 회사에서 봤을 때 환장할 일이죠.” 에이스의 침대공학연구소에 가보니 엄청난 무게가 나가는 쇠공을 침대 스프링 위에 8만 번 떨어뜨리며 연구를 하고 있었다. 매트리스 스프링이 몇 mm가 줄어도 폐기처분했다. 이 모습을 보고 난 뒤 ‘침대는 과학이다’라는 광고 카피가 탄생했다. 말 그대로 광고계를 휘젓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칸 광고제 동사자상을 받은 것은 물론 런던광고페스티벌에서도 그의 이름이 불렸다. 한국광고대상은 안방 드나들 듯하며 받았다. 인생은 3·7제다 지금도 광고주 앞에서 발표한 뒤 깨지는 꿈을 종종 꾼다는 신강균. 일에만 미쳐 살았으니 어디 소홀한 데도 있지 않았을까? “내 신조가 3·7제입니다. 인생의 70%는 열심히 일하면서 조직에 충실하고 30%는 자기계발하자. 회사로 치면 자기만의 기획실이 필요한 겁니다. 그런 사람이 조직이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되는 겁니다.” 출근 전 시간을 활용해 영어학원에도 다녔다. 전날 술을 새벽까지 마셨어도 어김없이 일어나 영어학원에서 공부하고 회사에 갔다. “8시 반에 시간 맞춰 출근하면 끌려가는 기분인데 내가 하고 싶은 걸 앞서 하고 가면 자발적으로 나가는 거죠. 아침에 일어나는 게 다를 수밖에 없어요. 오늘 가서 뭔가 배워야지. 설득에 있어서도 자발성이 중요하거든요. 자발성 욕구를 자극하는 거요. 저를 위한 취미도 많이 했어요. 사물놀이도 하고 말이죠.” 주말이 되면 회사 일은 접고 무조건 가족들과 함께하는 아빠였다. 텐트를 가지고 홍도로 선유도로 해외로 이곳저곳 참 많이도 다녔다. 대학교수 시절에도 제자들과 각종 연수를 함께하면서 눈높이 교육을 했다. 취업률 성과 말고 제대로 성장하고 자생할 수 있는 제자 양성에 집중했다. 가르쳤던 학생의 70%는 광고계에서 일하고 있을 정도이니 나름 제자 농사는 잘 지은 셈. “제자들이 지금도 술 사달라며 연락하는데 내가 바빠서 스케줄을 못 잡아요.(웃음)” 맞벌이 부부의 진정한 은퇴식 세계일주 작년 2월 교직에서 물러난 아내와 7개월여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온 신강균. 정년퇴임한 아내가 쓸쓸해하지는 않을까 걱정돼 먼저 퇴임한 신강균이 다양한 취미생활에 매진하면서도 여행 준비를 해놓았다. “작년 3월 9일에 딱 출발했어요. 캠핑 텐트 가지고요. 프랑스 파리에서 120일 정도 차를 빌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전역을 돌았어요. 그다음엔 배로 건너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스위스에서 트레킹하고요. 주로 산으로 들로 걸어 다녔어요.” 매일 5시간 이상 산을 오르고 캠핑장에서 텐트치고 밥 해먹어가며 여행했다. “호텔에서 거의 자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호텔은 100달러 이상 비용이 드는데 캠핑장은 20달러면 샤워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호텔에 가면 손님인데 캠핑장에서는 우리가 주인입니다. 왜 비싼 돈 주고 손님 노릇을 해요.” 인생 목표는 황진이처럼 살기 신강균이 부부 세계일주 여행을 마치고 도전한 것은 바로 영화다. 서울대학교 총연극회 후배인 배우 정진영이 직접 쓰고 연출한 독립영화에 캐스팅돼 꽤 많은 분량을 소화하며 영화 연기에 도전했다. 이번 기회에 영화판에도 기웃거려볼까 생각한다며 호탕하게 웃는다. “황진이가 제 목표예요. 시·서·화·창(詩·書·畵·唱) 그리고 악기, 무용까지 다 하는 것이죠. 인생은 한 번뿐이고 아침에 눈을 뜨는 자체가 늘 고마운 일이죠. 그런데 까닥 잘못하면 너무 오래 살 수도 있어요.(웃음) 일본에서 100세 노인한테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게 뭔지 물었대요. ‘이렇게 오래 살 줄 알았다면 일흔 살에 30년 계획을 세웠을 텐데’라고 했답니다. 저는요, 30년 계획은 욕심인 것 같고 20년 계획은 세워뒀습니다.”
- 2019-01-1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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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새 날다, 주남저수지
- 날씨가 추워지면서 겨울 철새들이 제철을 만났다. 우리나라에도 철새도래지가 몇 군데 있어서 일몰 무렵이면 새들의 화려한 군무를 보기 위해서 찾아가는 탐조객들이 많아졌다. 불그스레 빛나는 석양을 배경으로 날아오르는 엄청난 철새들이 산하를 휘젓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경남 창원의 주남저수지는 남쪽 지역의 특성대로 겨울에도 따뜻한 기후를 유지하고 있어서 겨울 무렵이면 철새들이 이동해오고 있다. 또한, 지자체에서도 겨울 철새들의 서식환경을 보호하고 조성하느라 시책을 준비한다. 어둠이 풀리지 않은 어두운 새벽에 도착한 12월의 주남저수지는 생각만큼 춥지는 않다. 저수지 주변과 둘레길을 천천히 걷다 보니 새벽 공기의 싸늘함이 기분 좋다. 길가의 채소밭과 풀잎에는 빳빳한 서릿발이 새하얗다. 서리꽃으로 보여주는 자연의 멋을 볼 수 있는 겨울 아침은 상쾌함 그 이상이다. 물 논에 큰기러기들이 먹이를 쪼며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간간이 두루미가 살짝 날갯짓한다. 큰 고니의 도움닫기도 구경하고 휴식을 취하던 쇠기러기는 가끔 고개 숙여 물속에서 먹이를 찾는 모습이다. 노을 무렵 떼 지어 날아가는 웅장하고 거대한 모습은 볼 수 없으나 군데군데 다정하게 무리 지어 있는 아침 풍경이 평화롭다. 건너편 산등성이 너머로 하늘에 조금씩 붉은빛이 번진다. 그리고 빠르게 해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붉은 하늘에 무리 지어 나는 철새들의 비행이 여유롭다. 물 논에서 노닐던 원앙과 백로가 아침 해를 받아 붉은 반영 속에 잠겨있다. 온 산하가 일출의 붉은 기운을 받아 설렘을 준다. 한바탕 일출의 잔치를 즐기고 나면 행복해진다. 몽골 북부와 시베리아에서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온 철새는 월동한 뒤 다음 해 3월이면 다시 시베리아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겨울이 되면 해마다 3만여 마리가 찾아와 겨울을 난다. 철새들이 월동하기 좋은 환경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 몫이다. 이제는 주남저수지 탐방 둘레길을 따라 억새를 보며 걸어볼 수 있다. 둘레길은 전체 7.5km 코스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척박한 땅에 소박하게 피어나 가을을 멋지게 보내고 겨울 길을 지키는 억새 길은 지루하지 않다. 요즘 걷기 열풍에 힘입어 주남저수지 탐방 둘레길이 10월의 추천 길로 선정되기도 한 걷기 좋은 길이다. 한참을 걷다 보면 주남 돌다리가 나온다. 800여 년 전 강 양쪽의 주민들이 힘을 합쳐 만든 돌다리인데 자연 속에 그대로 스며드는 아련한 풍경이다. 걸으며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이다.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225호다. 주남저수지는 철새들이 연출하는 날갯짓과 군무뿐 아니라 돌아볼 것들이 많다. 입구의 람사르 문화관과 주남 생태관이 있어서 습지 보전의 중요성과 주변 생태 환경을 자세히 이해할 기회다. 자전거 대여도 하고 마라톤 코스도 있어서 골라서 즐겨볼 만하다. 새벽부터 주남저수지의 아침 공기 속에서 사진 촬영도 하고 둘레길 걷기도 하면서 보낸 시간은 일상을 벗어나 여유를 누리게 해 주었다. 일출과 일몰 속에서 화려하게 비상하는 철새들의 군무는 겨울에 더욱 즐길만한 풍경이다.
- 2018-12-2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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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끝별 시인 "크리스마스에 엄마가 생각난다면, 나이가 들었다는 것"
- 오래전부터 ‘나이 듦’을 주제로 책을 엮고 싶었다는 정끝별(54) 시인·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컴퓨터 바탕화면 속 ‘늙음’이라는 폴더에는 그 날것의 이름에 어울림직한 시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리고 50대 중반이 되었을 즈음, ‘지금이야말로 나이 듦을 이야기할 최적기’라 느꼈다. 청년기엔 늙음을 막연히 멀리 볼 것만 같았고, 노년엔 너무 자신의 늙음에 매몰돼 객관적인 시선을 가질 수 없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젊음과 늙음의 경계인 중년을 사는 현재, 그는 ‘삶은 소금처럼 그대 앞에 하얗게 쌓인다’를 통해 나이 듦에 대한 오래된 생각들을 꺼내보려 한다. 단번에 주제가 연상되지는 않았지만 분명 인상적인 책 제목이었다. 그리고 정 시인의 입에서 함축된 의미가 하나씩 풀렸을 때, 나이 듦을 이야기하기에 더없이 좋은 표현이라는 걸 알았다. “흔히 삶을 ‘고해(苦海)’, 고통의 바다라고 하죠. 바닷물을 사나흘 햇빛에 말려야 소금이 얻어져요. 그렇게 비유해본다면, 우리는 바다처럼 넓고 막막한 삶 속에서, 내리쬐는 햇빛 같은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만, 소금처럼 귀한 삶의 결정체를 남길 수 있어요. 소금은 음식의 맛도 더해주지만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 역할도 하죠. 살면서 어떠한 경험을 통해 얻은 산물은 인생을 살맛나게 하고, 부패하지 않도록 해줘요. 나이가 들수록 백발처럼 하얀 소금은 계속 쌓일 테고요. 또한 그 삶은 혼자가 아니기에 ‘그대’라고 호명함으로써 관계 속에서 더불어 산다는 것을 의미해요.” 책을 읽으면서 ‘시로 말하는 웰다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가 큰 축을 이루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웰다잉도 웰빙처럼 젊은 시절부터 해나갈 것을 조언한다. 정 시인 역시 같은 맥락에서 “노인만을 위한 도서가 아니다”라며 세대를 불문하고 함께 읽으며 나이 듦을 고민해보길 바랐다. “늙음과 죽음은 이미 받아놓은 밥상 같은 거예요. 나이 듦을 성찰할 때 젊은이는 노년을 이해하고, 노인은 늙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젊은 세대를 인정하게 되죠. 무엇보다 나부터 그런 나이 듦에 대해 익숙해지고 싶었고요.” 정 시인은 늙음과 죽음이 주는 슬픔을 인정하면서도, ‘늙은 꽃’이 존재하지 않듯 살아 있다면 여전히 꽃임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노년의 부정적인 면이 있지만 긍정적으로 여길 부분도 분명 있다는 얘기. 현재 중년인 그가 느끼는 삶은 어느 쪽에 가까울까? “나름은 ‘나는 꽃이야’라고 생각하려 해요. 그러나 그건 관념적이고, 그냥 그렇게 인식하고 싶은 거죠. 현실은 부정적이에요. 늙음이란 결코 아름답지 않고, 짐스러운 거구나, 고집이 생기고 과거에 몰입되는 거구나, 그리고 그걸 모르는 거구나! 그렇게 자신을 모르고 살 때 늙었다고 생각해요. 내가 꽃이라고 여기는 주관과 진짜 꽃을 달고 나가는 건 다르잖아요. 마음은 늘 꽃이지만, 어떤 상황에 따라서는 ‘늙은 꽃’인 척해야 하거나, 더 이상 꽃이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죠. 잘 늙으려면 유연성을 갖고 품이 넉넉해져야 할 것 같아요.” 나의 늙음을 자각하는 순간들 20대 두 딸의 엄마로서, 그리고 대학교수로서 그는 젊은 세대와의 소통 기회가 잦은 편이다. 거울을 보는 것보단 오히려 마냥 예쁜 그 아이들을 볼 때 자신의 늙음을 체감한다고. 싱싱했던 과일이 말라도 형태만 달라질 뿐 본질에는 변함없듯, 노화로 인한 외모 변화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단다. 그러나 소통에서 느끼는 세대 차이는 내면의 나이 듦을 절절히 자각하게 했다. “딸들이랑 대화하다 보면 ‘나는 항상 열려 있는데 저들은 왜 나한테 쉴드를 치지?’, ‘왜 나를 꼰대라고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젊음을 이해할 수 없거나, 그들과의 벽이 느껴질 때 늙음을 인식하죠. 딸이 언젠가 ‘엄마는 자기가 다 옳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라고 하더군요. 그때 깨달았어요. 과거 20대였던 30여 년 전 나의 가치관으로 현재의 20대에게 조언하는 건 옳지 않구나. 나이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말처럼, 과거인 나의 말은 적게 하고, 현재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겠다 싶었죠.” 정 시인은 책에서 ‘크리스마스에 어머니가 생각난다면 철이 들었다는 거다. 늙었다는 거다’라며 늙음을 자각하는 또 다른 사례를 들었다. 젊은 기자로서는 그 심정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가 표현하려는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젊을 때는 크리스마스에 뭔가를 채우고 싶어 하죠. 애인과 사랑을 하거나 친구들과 파티를 하며 들뜨고 설레고. 그러다 자식을 낳으면, 그 아이를 채워주려고 해요. 저도 딸들이 어릴 때는 트리 만들고 선물 사느라 바빴으니까요. 그러고 나면 어느 순간에는 그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시점이 와요. 뭔가 할 일이 있어야 할 것만 같은 크리스마스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비로소 엄마 생각이 나는 거죠. 늘 소중하게 여기지만, 자칫 다른 것들에 밀려나기 쉬운 짠한 존재잖아요. ‘내 영순위를 너무 미뤄놨구나’, ‘엄마도 쓸쓸했겠구나’ 깨달으며 철이 들고, 자신도 그때의 부모처럼 늙었음을 인식하는 거죠.” 인터뷰 동안 정 시인에게서 들은 노년의 감정은 슬프고 측은했다. 나이 듦에 대해 논하며 다소 식상한 질문이지만 늙어서 좋은 것은 없는지 물었다. “그럴싸한 얘기를 해줘야 하는데(웃음) 과연 좋은 게 있을까요? 애써 ‘나는 꽃이야’ 하는 격인데, 솔직한 생각은 뭐든 젊음이 좋아요. 더 많은 미래의 시간을 확보한 것만큼 멋진 일이 어디 있어요. 희망이고 가능성이잖아요. 그렇다고 ‘다시 20대로 돌아갈래?’라고 물으면 안 갈 것 같아요. 젊은 시절 느꼈던 미래에 대한 불안과 멀미, 그건 공포였어요. 나이 들어 좋은 건 안정감일 듯해요. 내가 살아온 만큼의 규모에 맞게 내 삶이 세팅됐고, 크게 바뀔 것 같지 않거든요. 풍족하면 풍족한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평온함을 느끼죠.” 내가 꿈꾸는 ‘강원남도 두천’ 그는 나이 들어 얻는 평안함은 그만큼의 대가를 치른다고 했다. 외모는 무너지고, 정신은 둔해지고, 관계는 줄어들고. 그러나 그 시간을 고독하게 느끼기보다는 오롯이 자연인으로서의 삶을 즐기길 권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강원남도 두천’을 꿈꾸며 말이다. “강원남도 두천은 지도에는 없는 지명이에요. 누구나 삶이 너무 힘들 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잖아요. 저에게 강원남도 두천은 오로지 시인으로 사는 곳이었어요. 딸들이 성인이 되고 엄마로서 어느 정도 의무는 덜었고, 더 지나면 교수직도 물러나야죠. 그쯤엔 꿈꾸던 것처럼 시를 써도 재미없거나 그 끝이 보일지도 몰라요. 그러다 어느 시점엔 시인의 삶도 아닌, 그저 날것의 인간으로 사는 삶, 정끝별이라는 이름도 없이, 성별도 없이… 어쩌면 그것이 죽음에 가까운 상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정 시인은 “몸소 감소, 축소, 청소하지 않으면 늙음의 시간은 소굴이 되기 십상”이라 말한다. 다가오는 2019년, 그는 ‘말’을 줄여가고 싶다고 소망했다. “젊어서는 철없이 얘기해도 주변에서 귀엽게 듣지만, 늙으면 딱 두 가지로 받아들여요. 권력이 들어갔을 때는 ‘폭력적인 언어’로, 그렇지 않으면 ‘잔소리’에 그치죠. 그런데 둘 다 의미 없는 말이잖아요. 특히 내가 권위가 있을수록 의도치 않더라도 그 말이 상대에게 강요가 되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줄이고 싶은 것이 한 가지 더 있다는 정 시인. 바로 ‘나답지 않은 것’이란다. “내가 많이 컸구나, 힘이 생겼구나 느꼈던 순간이 ‘안 할래요’라고 거절했을 때예요. 나에게 주어진 역할들 때문에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많았거든요. 계속 가면을 바꿔가면서 말이죠. 가끔은 지하철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는 무표정한 낯선 얼굴이 내 본질이 아닐까 해요. 나다운 게 뭔지는 모르지만, 그런 가면들을 벗겨내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살아가면 좋겠어요.”
- 2018-12-17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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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릉 5백년 답사 ⑤
- 젊은 청년 장수 이성계 이성계의 아버지 자춘은 큰 형이 갑자기 병사(病死)하자 조카 대신 형의 벼슬을 물려받았다. 때마침 반원(反元) 정책을 펼치던 공민왕을 만나 쌍성총관부를 되찾기 위한 전투에 협력하기로 했다. 이를 성사시킴으로써 고려에 큰 공을 세우게 된다. 이때가 1356년(공민왕 5)으로 무려 99년 만에 원나라의 지배하에 있던 쌍성총관부를 되찾은 것이다. 이자춘은 그 공로로 대중대부사복경(大中大夫司僕卿)이 되고 저택을 하사 받아 개경(開京)에 머물렀다. 이후 동북면 삭방도만호 겸 병마사(朔方道萬戶兼兵馬使)로 임명되어 영흥(永興)으로 돌아갔으나 4년 뒤 병사(病死)한다. 이성계는 1335년 함경남도 영흥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자춘이 고려에 협력하여 쌍성총관부를 되찾는 공을 세울 때에 약관 20세의 청년 장수로 함께 참전하였다. 이후 크고 작은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고려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아버지 이자춘의 벼슬을 물려받은 이성계는 동북면 지역의 실세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1361년 10월에 독로강 만호 박의가 일으킨 반란을 평정하여 공민왕의 신임을 얻게 되었다. 그해 겨울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온 홍건적의 침략에 공민왕이 개경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르게 되자 수하의 사병을 동원, 수도 탈환작전에 참가하여 선두로 입성하는 개가를 올리게 된다. 또한 쌍성총관부를 빼앗긴 원나라에서 여진족 나하추에게 수만의 군사를 주어 이를 되찾게 하였는다. 이들과 맞선 고려군이 패배하자 조정에서는 이성계를 동북면병마사로 임명하여 대적케 하였다. 이성계는 나하추 주력부대를 격멸, 격퇴시킴으로써 저물어가는 고려국의 새로운 별로 떠오르게 된다. 이후 30여 년 넘게 전쟁터를 누비며 승승장구하는 불패의 명장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1364년 반원 정책을 밀어붙이며 기황후의 오빠 기철 등 부원(附元) 세력을 제거한 공민왕을 폐위시키고 덕흥군을 새 왕으로 임명하면서 군사를 동원하여 쳐들어온 원나라 군사들을 최영 장군과 합동으로 물리친 이성계를 이제 고려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된다. 고려말 당시 경상도, 전라도 등 남쪽으로는 왜구가 공공연히 침략하여 분탕질을 치고 있었다. 북으로는 여진족들이 심심찮게 건너와 노략질을 일삼았다. 이성계는 남으로 달려가 왜구를 물리치고 북으로 올라가 여진을 격퇴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보인다. 특히 1380년 5월에 침략한 왜구들은 500척이 넘는 대선단으로 쳐들어왔으니 결코 도적떼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진포(鎭浦:지금의 군산) 부근에 배를 묶어놓고 상륙한 왜구들은 근처의 전라, 충청은 물론 멀리 경상도 내륙까지 약탈, 방화, 살육을 일삼았다. 정부에서는 진압군을 내려보내니 이때 최무선의 화약과 화통을 이용하여 적의 배를 모두 불살라 버렸다. 배를 잃은 왜구는 내륙으로 이동하면서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조정에서 보낸 진압군과 크고 작은 전투를 벌였다. 9월에 이르러 남원 운봉과 인월 지역에 주둔하면서 곧 북상하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이때 이들을 격파한 것이 이성계이다. 이키섬 출신 소년장수 아지발도(阿只拔都)를 포함한 왜구들은 전멸하다시피 하였으니 이 전투를 황산(荒山) 대첩이라 부른다. 이 황산대첩을 기념하여 1577년(선조 10)에 황산대첩비를 운봉에 세웠으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이후 파편만 남은 것을 1977년에 복원하였다. 일제는 강점기간 중 조선 팔도에 세워진 일본 관련 승전비나 석물들, 예를 들면 이순신 장군 관련 비석과 김시민 장군 관련 비석 등을 비밀리에 파괴하는 등 역사를 숨기려는 짓을 서슴지 않았다. 이곳 황산대첩비 파괴도 그 일환으로 저질러진 만행이다. 이렇게 고려말 크게 이름을 떨친 청년장수 이성계는 나하추를 물리친 1362년에는 동북면 병마사가 되었다가 밀직부사에 제수되었다. 1382년에는 동북면도지휘사, 1384년에는 동북면 도원수문화찬성사가 되었다. 1388년에는 문하시중의 바로 아래인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까지 오르게 되며 마침내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역성혁명을 이루게 된다.
- 2018-12-07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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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릉 5백년 답사
- ‘덕을 베풀고 의로써 행했다’ 하여 이성계가 목조(穆祖)로 추존한 4대조 이안사(李安社). 이안사는 전주에서 삼척으로 옮기면서 부모의 묘도 이장해 모셨다. 부친 양무장군의 묘가 준경묘(濬慶墓), 모친의 묘가 영경묘(永慶墓)이다. 이곳은 5대손 안에 군왕이 나온다는 왕조 창건 전설이 시작된 곳이다. 한 도승이 개토제(開土祭)때 소 백(百牛)마리를 잡아 올리라고 일러준 것으나 흰소(白牛)로 대신해 천년 사직이 반으로 줄어 오백년이 됐다거나, 준경묘 사방 다섯 봉우리의 수명이 각각 1백 년이라 도합 조선왕조 수명이 오백년이 되었다는 말이 전해온다. 어렵사리 전주에서 삼척으로 옮겨갔지만 악연의 뿌리는 모질고 질겼다. 전주에서 충돌했던 산성별감이 강원도 안렴사로 부임해 온다하여 짐을 꾸려 더 북쪽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동북면의 원산(元山) 북쪽 덕원(德源)으로 1236년(고려 고종 23))의 일이다. 몽고군의 침략이 수차례 이어지던 때로 고려는 목조대왕을 의주병마사(宜州兵馬使)로 삼아서 원나라가 점령하고 있는 쌍성(雙城: 永興 · 和州) 바로 남쪽인 고원(高原)을 지키게 하였다. 그 당시 함경도는 원나라의 속령이었다. 원나라가 이안사에게 여러 차례 항복을 요구하니 세(勢) 부족의 현실을 감안하여 수하의 족벌을 거느리고 항복하였다. 이후 경흥(慶興) 바로 아래 원나라 점령하의 여진(女眞) 땅인 오동(斡東)까지 북상하여 구역 내 수천호(首千戶)를 다스리는 원나라 관직 다루카치(達魯花赤)를 겸하게 된다. 이성계의 고조부인 이안사는 1274년(고려 원종 15) 3월 10일에 별세하였다. 경흥(慶興) 남쪽에 장사 지냈다가 그 후 1410년(태종 10) 경인년에 함흥 서북쪽으로 이장했다. 이른바 덕릉(德陵)이다. 목조대왕 이안사의 후계는 4남 행리(行里)로 원나라 조정으로부터 천호(千戶) 벼슬을 이어받았다. 여몽연합군의 일본 정벌에 함께 나아갔다가 충렬왕을 만났을 때 선친 때의 이주가 배반이 아니라 위험을 벗어나기 위함이었음을 아뢰고 의심을 벗었다고 한다. 이후 원나라의 이민족 배척과 여진족의 적대행위가 계속되는바 그들의 영향력을 벗어나기 위하여 오동(斡東)에서 덕원(德源)으로 돌아와 쌍성 지역을 계속 관할하고 지내다 승하했다. 태조 이성계은 익왕(翼王)이라 칭했고 태종 때에 익조(翼祖)로 추존하니 능은 지릉(智陵)이다. 부인 정숙왕후 최 씨의 능은 숙릉(淑陵)으로 남편과 떨어져 모셨다. 최 씨의 상여가 출발하여 지릉으로 향하는 도중에 한 고개에 이르자 상여가 갑자기 저절로 부서져 더 갈 수가 없어 근처에 장례를 모신 탓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지릉과 숙릉의 사진이나 자료가 없다. 익조 이행리의 후계 역시 4남 춘(春)으로 부친의 벼슬을 이어받았다. 관할지역에 대농장을 유지하며 풍부한 재력으로 사병 2천 명을 관리할 수 있었다. 개경으로 올라가 충숙왕으로부터 하사품도 받아오는 등 왕실과의 관계도 유지하며 지내다가 돌아가니 각각 의릉(義陵)과 순릉(純陵)에 모셨다. 이렇게 고조부 이안사로부터 증조부 이행리를 거쳐 조부 이춘까지 벼슬을 세습하며 영흥, 함흥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조부 이춘의 후계는 장자 자흥에게 이어졌으나 두 달만에 되돌아 갔다. 그 아들 교주(咬住)는 나이가 어려 계모의 흉계를 물리치고 이성계의 아버지 자춘(子春)이 임시로 이어받았다. 조카 교주가 성장함에 따라 관직을 돌려주려 했으나 받지 않았다. 고려 공민왕 때로 반원(反元) 정책에 따라 원나라가 차지하고 있던 쌍성총관부를 되찾기로 했다. 공민왕과 이자춘이 협약해 1356년, 99년 만에 옛 땅을 회복했다. 큰 공을 세운 이자춘은 대중대부(大中大夫) 사복경(司僕卿) 벼슬을 하사 받는 등 고려국 중앙에 등장했다. 개경으로 올라온 이자춘은 아들 이성계와 함께 크고 작은 전투에 참여했다. 승승장구함과 아울러 벼슬이 높아지게 되는데 천호(千戶) 관직에서 만호(萬戶) 관직으로 높아져 함경도로 떠난 그해 승하하여 함흥에 장사 지내니 환조대왕의 정릉(定陵)이다. 이렇게 이성계의 4대 선조 왕릉은 모두 북한의 함경남도 를 모셔져 있다. 2기는 쌍릉으로 함께, 2기는 각각 모시다 보니 여섯 지역에 나뉘어져 있는데 현재 어떤 상태인지는 알 수 없다. 세계유산에도 포함되지 않은 채 말이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답사꾼들이 찾아가볼 날을 기대해본다.
- 2018-11-26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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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의 문화행사
- (연극) 어둠상자 일정 11월 7일~12월 2일 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출연 송흥진, 신안진, 백익남 등 이강백 작가의 신작 ‘어둠상자’. 고종의 마지막 어진을 찍은 황실 사진사 4대의 고난에 찬 분투극이다. 극중 인물들의 여정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함축적이고 흥미롭게 표현했다. (영화) 언더 더 트리 개봉 11월 8일 장르 드라마 출연 시구르더 시거르존슨, 토르스테인 바흐만 등 층간소음, 주차문제 등 요즘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이웃 간의 갈등을 다뤘다. 나무 한 그루 때문에 이웃과 돌이킬 수 없는 다툼을 벌이는 영화 ‘언더 더 트리’는 제74회 베니스영화제와 제42회 토론토국제영화제 등 전 세계 11개 영화제에 초청되어 9개의 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축제) 여수동동북축제 일정 11월 10~11일 장소 전라남도 여수시 용기공원 및 선소일원 올해 여수에서 처음 선보이는 동동북축제에서는 전문 아티스트와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초대형 북 퍼레이드를 비롯해 ‘북·드럼 전시’, ‘북·드럼 경연대회’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전시) 러빙빈센트展 일정 11월 16일~2019년 3월 3일 장소 M컨템포러리 2017년 11월 개봉해 4주간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차지한 영화 ‘러빙 빈센트’에서 사용된 원화와 제작 과정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아티스트들이 반 고흐의 기법으로 캔버스 위에 유화로 재현한 6만5000여 장의 프레임 중 엄선된 120점을 공개한다. 또 영화 ‘러빙 빈센트’의 비하인드 영상 클립과 소품으로 사용된 코스튬, 고흐의 방을 만나볼 수 있다. (국악) 다시 만난 아리랑-엇갈린 운명, 새로운 시작 일정 11월 22일 장소 롯데콘서트홀 분단 이후 잃어버렸거나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북한 작곡가들의 관현악곡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바이올린 협주곡 ‘옹헤야’, 단소 협주곡 ‘긴 아리랑’, 북한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관현악 ‘경축’ 등 총 5개 작품이 소개된다. (전시) 황금인간의 땅, 카자흐스탄 일정 11월 27일~2019년 2월 24일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유라시아의 중심에서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보여주는 전시로 총3부에 걸쳐 구성했다. 동물 모양 금판과 관모 장식, 누금기법을 사용한 드리개, 문자가 새겨진 잔 등을 통해 당시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초원에서 이룩한 물질문명과 삶을 엿볼 수 있다.
- 2018-10-24 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