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애(高光愛·80) 작가는 1958년 대학 시절 한국일보에 공채 1호 여기자로 입사하는 동시에 이화여대 18대 메이퀸으로 선발되며 그녀의 이름 석 자를 알렸다. 그로부터 1년 뒤, 회사를 그만둔 그녀는 영화평론가 임영의 아내로, 또 영화감독 임상수의 어머니로 불리며 살아왔다. 그렇게 자신의 명성은 잠시 내려놓고 평범한 주부로서의 삶을 살던 그녀가 50세가
무거워진 몸으로 집을 나섰다. 퇴계원으로 이사온지 어느새 1년이 후딱 지나버렸다. 시골같은 마을이라 선택했고 어딘가 모르는 훈훈한 고향같아 터를 잡았다.
바로 집동네에 이렇게 좋은곳이 있었다. 자유롭게 달려있는 앙상한 가지들과 결코 쓸쓸하지 않다고 웃음짓는 계절의 적막함도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따스하게 녹아드는 겨울의 햇살은 온몸속으로 흠뻑 흘러들어왔다
“고등학교를 남보다 두 해 늦게, 고향 김천에 있는 농고(農高)로 들어갔지요. 그 무렵 구루병을 앓고 있는 사촌 누이동생과 문학을 교류하며 지냈는데, 그 누이가 이듬해 시름시름 앓다 사망했어요. 그 시절의 누이 모습이 잊히지 않아 ‘소녀’의 그림을 그려왔지요.”
창문이 열린 화실 밖, 밤나무에서 매미가 울었다. 박항률(朴沆律, 1950~ ) 화가는 창밖을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 이승연은 꽃 선물도 싫어하고 이벤트도 싫어해서 남편과 그 흔한 프러포즈도 없이 결혼했다. 결혼한 지 9년째인데 매일매일 연애하는 것같이 짜릿하고 즐겁단다.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억만금을 줘도 과거로 돌아가기 싫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걸 보면 분명 이승연은 행복하다. 나이 50에 해탈한 듯한 느낌이 든다는 그녀와의 털
고향에 둥지를 틀고 주말부부로 생활한 지도 어느덧 6개월로 접어든다. 아직도 마음은 반반이다. 사실 고향이라고는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만 달랑 보낸 시간은 불과 14년이지만 나머지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냈으니 어찌보면 내고향은 서울이라고 해도 잘못된 것은 없으련만 아직도 고향은 영종도라는 고정관념은 지워지지 않는다. 아마도 영원히 고향은 영종도일지도 모르겠다
언제 친구가 되었는가에 따라 서로간의 친밀도가 다릅니다. 초등학교 친구들과의 기억은 너무 멉니다. 그러나 몇몇 단편적인 상황은 의외로 또렷합니다. 예를 들자면 얘기를 나누던 표정과 쪼그려 앉아 있던 곳, 함께 맡던 공기 냄새와 햇살까지 분명합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갈라져야 했던 몇몇 아이의 이름과 얼굴도 또렷합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가며 친구들
‘동안(童顔)이란 생명력이 왕성해 노화의 증상이 전혀 없는 얼굴’이라는 정의를 내리고 칼을 대지 않는 시술로 본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래성형외과 김종환(66) 원장. 메디컬아티스트라고도 불릴 만큼 예술을 사랑하고, 행복을 사유하는 그는 스스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노라 자부한다. 철저한 시간 관리와 변치 않는 삶의 철학을 지녔기에 가능한 결과였다고.
승승장구, 탄탄대로 인생을 사는 이들이 있다. ‘천운을 타고났나?’, ‘사주팔자가 좋은가?’라며 그들의 성공을 진단해보기도 하지만, 뭐든 타고난 운만 가지고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만의 비법으로 성공운을 거머쥘 수 있었던 이들의 유형을 살펴봤다.
◇ 운명개척형
일본 최대 소프트웨어 유통회사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손 마사요시) 대표는 젊은 시절 자
유장휴(디지털습관경영연구소 소장/전략명함 코디네이터)
삶이 복잡해졌다면 재정비가 필요하다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계획을 세우거나 재정비하는 시기다. 시간이 지나면 무엇이든 쌓이기 마련이다. 물건도 쌓이고, 추억도 쌓이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쌓이면서 생활이 복잡해진다. 단순히 정리만 하면 가벼워지는 것도 있지만, 정리보다는 리셋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풍차의 고장, 네덜란드에서도 옛 모습 그대로의 ‘전통 풍차’ 마을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킨더다이크-엘샤우트(Kinderdijk-Elshout)는 ‘풍차’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풍차마을은 캘린더 속 그림처럼 아름답다. 또한 세계에서 손꼽히는 장수마을이기도 하다. 근교에 위치한 로테르담에서는 영화제가 한창이다. 이곳에서 건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