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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된 귀촌이 성공한 귀농인이 된다
- 귀농·귀촌은 시대적 화두다. 그러나 막상 도시인이 귀농·귀촌을 하려고 하면 막연하기 그지없는 게 현실이다. 어디서 정보를 얻고 어떻게 준비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막막하다. 당연히 지역과 지자체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평창군은 귀농·귀촌 인구를 위한 다양하고 실제적인 준비들을 진행하고 있다. 평창군농업기술센터 김상래 기술지원과장과 황창윤 귀농·귀촌 담당과의 인터뷰를 통해 평창 귀농·귀촌의 현재, 그리고 귀농·귀촌 인구를 위한 조언을 듣고 준비된 상황을 짚어봤다. 2015년 6월 평창군으로 귀농해 여름 딸기를 재배하고 있는 이철성 ‘아빠랑 딸기랑 아이랑’ 대표는 11브릭스 이상의 당도를 자랑하는 고품질 딸기를 연간 60여 톤 생산하고 있다. 6월부터 국내 유명 백화점에 독점 공급을 시작한 그는 해외 수출도 준비하고 있다. 그 외에도 태아와 임신부, 출산부를 위한 여름 딸기 비영리 공급 사업을 통해 대한민국 여름 딸기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또한 비영리 교육기관인 ‘미션 코리아 스쿨’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을 위한 영어, 수학, 과학 및 예체능 활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등 사회 공헌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는 호주에서 평창군으로 귀농했다. 거리로 따지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거리에서 귀농·귀촌한 사람으로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잘 준비된 계획과 나눔의 마음으로 성공적 귀농·귀촌을 이루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귀농·귀촌의 딜레마 최근 일선에서 본격적인 은퇴를 시작한 베이비붐 세대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고향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또한 고도화된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낀 도시인도 삶의 대안으로 귀농·귀촌을 눈여겨보고 있다. 귀농·귀촌에 관한 TV 프로그램은 일정 시청률 이상을 보장하는 분명한 트렌드가 됐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흐름에도 불구하고 귀농·귀촌은 여전히 큰 틀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지기보다는 개인들 각자가 온갖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치르는 복마전에 가깝다. 그래서 고향으로 내려갔다가 빈약한 인프라와 텃세에 실망해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평생을 한자리에서 산 고향 사람들은 고향 사람들대로 도시인들의 ‘뜨내기 기질’에 질려서 스트레스받는 게 현실이다. 귀농·귀촌이 이뤄지는 지역 단체의 적극적인 중개자적, 중재자적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평창의 사례는 눈여겨볼 만하다. 평창군이 사람들에게 각인된 것은 무엇보다도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공이 컸다. KTX도 개통되어 예비 귀농·귀촌인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지역인 평창은 2017년 기준 귀농 가구가 114가구로 강원도 전체 1074가구의 약 10.6% 정도다. 그중 약 75%인 86가구가 1인 가구로 구성되어 있다. 통계를 보면 지난 5년간 귀농인구는 100여 가구 내외, 귀촌 인구는 1200가구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귀농인구의 경우 2016년 대비 2017년 귀농 가구 수가 27% 증가했고, 귀농 가구원 수도 9.5% 증가하는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였다. 정착 지원을 위한 금융 프로그램 제공 평창군도 다른 지역 지자체와 비슷하게 저출산과 초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 확보와 귀농인의 안정적인 정착이 절실한 상황. 그를 지원하기 위해 평창군은 여러 가지 금전적인 지원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우선 ‘귀농 농업 창업 및 주택 구입 지원사업’이 있다. 귀농인이 안정적으로 농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농업 창업 및 주거공간 마련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농지 구입이나 농업용 시설 설치 등의 농업 창업에 3억 원, 주택 구입이나 신축에 7500만 원을 연리 2%, 5년 거치 10년 원금균등 분할상환 조건으로 융자받을 수 있는 사업이다. 지역을 젊게 만들기 위한 ‘귀농인 정착지원금 지원사업’도 시행하고 있다. 이는 청·장년층을 귀농인으로 적극 유치해 미래 농업인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으로 20세 이상 45세 이하의 귀농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1년 차 농업인에게는 월 80만 원, 2년 차에게는 월 50만 원의 정착지원금이 지원된다. 또한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 1개소당 500만 원의 주택 수리비가 지원되고 농업기계, 농업용 시설, 농업 자재 등의 구입비 50% 지원하고 있다. 교육과 창업으로 귀농·귀촌 성공 유도 평창군은 귀농인 정착 지원이 때로는 인구 늘리기 정책의 일부가 되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고 소모적인 경쟁 사례가 발생하는 것을 문제로 보고 있었다. 이 점을 유념해 실제적인 귀농인 정착 지원이 될 수 있도록 정책을 펼쳐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그 핵심은 교육과 창업이었다. 김상래 과장은 “귀농·귀촌은 생활의 거주지가 도시에서 농촌으로 변동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귀농·귀촌은 삶의 큰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이다. 어쩌면 귀농·귀촌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정도로 나이를 먹은 상당수의 사람들은 세상을 알 만큼 아는 사람들이기에 오히려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 과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농에 대한 관심이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고, 더불어 우리 사회의 거대한 ‘트렌드’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귀농인 스스로의 철저한 준비다. 새로운 곳에 둥지를 트는 만큼 극복해야 할 현실의 벽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귀농·귀촌에 대한 기본정보 숙지하라 김 과장은 개인의 귀농·귀촌 준비를 위해 우선 귀농·귀촌 종합센터(www.returnfarm.com)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정보를 확인하도록 권했다. 귀농·귀촌종합센터 홈페이지에서는 온라인 교육은 물론 민간기관 공모교육, 현장실습 교육장, 귀농·귀촌과 관련한 기본 공통교육, 청년교육, 소그룹 강의 등 귀농·귀촌과 관련한 교육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귀농인이 선택한 품목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싶다면 강원도 농업기술원에서 제공하는 교육을 받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물론 평창군도 준비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평창군은 농업·농촌에 대한 이해 증진과 농업경영 마인드를 함양하고 성공적인 농촌 정착을 돕기 위한 취지로 ‘신규 농업인 기초영농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귀농인의 농촌 정착 환경 조성뿐 아니라 귀농·귀촌인들이 소통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이 되고 있으며, 농촌 정착에 필수적인 인적 네트워크 형성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게 김 과장의 설명이다. 여기서는 소득작목선정 방법, 미래형 농업 마케팅 전략,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관리와 소통 등 다양한 영농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귀농인 현장실습교육’을 마련해 신규 농업인과 지역 선도 농업인이 함께하는 영농 실습 교육 프로그램으로 실질적인 영농 방법과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평창군에서는 현장실습에 소요되는 교육훈련비 귀농인 월 80만 원, 선도농가 월 4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귀농 창업 지원 사업’은 귀농인의 귀농 창업 우수 아이템 발굴 및 소자본 창업 지원으로 귀농인의 소득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사업이다. 귀농 창업 아이디어 발굴과 지적재산권 확보, 농업 기반 조성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귀농 교육 우수 수료자를 대상으로 10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는 중이다. 공유하고 나누다 보면 지혜 터득 귀농·귀촌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지역민의 텃세다. 도시인은 특히 타인에 대한 믿음에 익숙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평창군은 매년 ‘평창군 귀농·귀촌 페스티벌’을 진행하고 있다. 1박 2일 코스로 진행되는 귀농·귀촌 페스티벌은 예비 귀농·귀촌인을 초정해 정책 안내, 영농 체험, 선도농가 방문, 평창군 투어 등으로 이뤄진다. 이는 예비 귀농·귀촌인이 지역 주민과 교류할 수 있는 계기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귀농·귀촌인과 지역 주민이 함께하는 공동체 문화 조성을 위해, 귀농·귀촌 화합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귀농·귀촌 화합 프로그램은 귀농·귀촌에 관심이 있는 마을을 대상으로 귀농·귀촌인과 마을주민 간 갈등 해소 및 소통을 위한 갈등 해소 교육을 실시하고 화합 행사를 개최하는 등 마을 여건에 맞는 세부 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귀농해 농촌생활을 꿈꾸는 개개인이 처한 상황과 여건이 다르더라도 자신에게 맞는 농촌형 삶을 선택하고 준비한다면 자연에 몸을 맡기려는 도시민들의 어깨는 한결 가벼워질 것”이라고 말하는 김 과장은 더욱 알차고 다양한 귀농·귀촌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 귀농·귀촌인의 안정적인 정착 기반 마련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2018-09-1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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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장년 미래 고민 해결” 신중년 인생3모작 박람회 개최
- 고용노동부가 주최하고 노사발전재단이 주관하는 ‘2018 신중년 인생3모작 박람회’가 9월 11일(화) SETEC에서 개최됐다. 개막식에는 이목희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과 김경선 고용노동부 고령사회인력정책관, 이정식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 등 내외빈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환영사에서 이정식 사무총장은 “지금의 신중년은 과거보다 교육수준도 높고, 건강상태가 양호하며, 근로에 대한 의욕도 뛰어나 평생 현역 시대에 준비가 되어있는 세대”라며, “이번 박람회가 신중년의 다양한 인생 3모작을 위한 디딤돌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목희 부위원장은 “신중년을 위한 일자리 정책 확대는 국가 사회 경제 활력에 필수”라고 평가하고, “이를 위해 정부는 지난해 신중년 인생3모작 기반구축 계획을 발표했고, 앞으로도 신중년의 행복한 인생2막을 위해 지원을 지속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박람회에서 신중년들은 인생3모작 지원관을 통해 전문지식을 갖춘 전문 수석컨설턴트로부터 제2의 인생설계를 위한 1:1 맞춤 컨설팅을 받고, 창업, 귀농, 기술교육, 사회공헌활동 등 다양한 인생3모작 경로에 대한 정보제공과 상담 서비스를 받았다. 또한 금융 업종과 자동차 산업 퇴직자와 예정자를 비롯한 베이비붐 세대 퇴직자, 예정자의 공적인 전직 지원을 위해 전직멘토관이 운영됐다. 전직멘토관에서는 전직·재취업을 위한 멘토링에 더해 신중년의 전직·재취업 진로설정을 지원하기 위해 직업흥미검사를 실시됐다. 이 밖에도 헤어·메이크업 컨설팅, 이력서 사진 촬영, 건강관리 등 구직자들의 취업지원을 위한 다양한 부대행사가 진행됐다 또한 신중년들의 채용을 위해 교보생명, NICE신용정보, 한솥 등 현장채용 71개사, 구인공고 50개사 총 120여개 구인기업이 참여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노사발전재단은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40세 이상 중장년을 대상으로 생애설계, 재취업 지원 등 종합적인 전직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를 운영 중이다. 김경선 고령사회인력정책관은 “고학력에 일경험이 풍부하고 일할 의욕도 높으며, 인구 구조상으로도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신중년 세대가 향후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역할을 하느냐에 우리 사회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며, “지난달 관계부처 합동으로 신중년 일자리 확충방안을 마련했고, 신중년의 역할 강화를 위해 힘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 2018-09-11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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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케스트라와 단체 경기의 닮은 점
- 결론부터 얘기하면 오케스트라와 스포츠의 단체경기는 여러 사람이 함께 힘을 합쳐야만 완성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는 하모니가 중요하다. 좋은 하모니를 위해서는 가지고 있는 개인기도 중요하지만 각자 실력의 힘 조절이 필요하다. 단원들이 함께 모여 계속 연습하고 맞춰보는 것은 이 연습을 하기 위함이다. 단체경기는 한 위치에 배치된 선수가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다른 선수와 호흡을 맞춰야 한다. 감독과 코치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팀 동료 간의 조화가 중요하다. 남들과 어울릴 수 있는 능력은 확대해 보면 오케스트라와 단체경기뿐만 아니라 인생이나 사회생활 전면에서도 필요하다. 미국 동부의 8개의 사립대학으로 구성된 스포츠 연맹을 ‘아이비리그’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들이 벌이는 미식축구게임을 일컫는 명칭이기도 하다. 1600년경부터 존재했던 전통 사립대학들은 이 경기를 통해서 우열을 가리기도 했고 즐기기도 했지만, 전통과 경기 실력을 뽐내면서 팀 경기의 중요성을 확인해 갔다. 신입생 선발기준에는 팀 경기 활동 여부가 포함된다. 이를 기준으로 협업할 수 있는 능력을 보기 때문이다. ‘책상 공부 실력의 점수가 아무리 높다 해도 협업하는 기능이 모자란 사람이 사회에 얼마나 이바지할 수 있는가?’를 채점하는 것은 협업과 소통이 사회공헌의 중요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지구촌 뜨겁게 했던 2018 월드컵 경기에서 우리나라는 아쉽게도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축구 강팀 독일을 이겼다고 많은 국민이 환호했다. 시합에서는 항상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지만, 경기장을 누빈 선수들이 팀워크를 위해 흘렸던 땀이나 노력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 2018-08-01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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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소자에게 새로운 삶을 이어주는 브릿지 역할
- 법무부 2017년 통계자료를 보면 일반 교도소에서 출소한 6만 2624명 중 3년 이내에 24.7%가 재복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해 법무부 교정본부 통계에 따르면 출소 후 창업, 취업에 성공한 출소자 1670명의 재범률은 일반 출소자와 비교할 때 현저히 낮은 수치를 보였다. 이는 대부분 출소자들이 가장 시급한 해결 과제로 생계 문제를 꼽는 만큼 출소자의 취업이 재범을 방지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실에 맞춰 일반 비영리법인 사회적기업에서 출소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영위해나갈 수 있도록 실질적으로 큰 도움을 주는 업체가 있어 화제다. 바로 일반기업으로는 최초로 법무부 인가를 받은 한울배터리 사회적협동조합 이명원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출소자들에게 취업은 사회와 출소자를 잇는 가장 효과적인 가교(架橋) 역할이 되고 있다. 이 업체는 갱생보호대상자와 사회취약계층 채용에 중점을 두고 사회 공익을 실천하는 비영리법인 사회적협동조합이며 예비 사회적기업이기도 하다. 이명원 대표는 “전문기술 습득을 위한 직업훈련이 출소자 취업의 질적 향상과 더불어 재범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배터리를 판매하거나 출장 교체 서비스 및 갱생보호대상자와 사회 취약계층을 고용해 기술교육을 제공하고 있다”며 “갱생보호대상자 및 사회 취약계층의 안정된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교정본부의 구인·구직 만남의 행사에 참여하고, 직업 훈련을 통한 창업을 지원하고, 매출 수익금을 갱생보호대상자와 사회 취약계층, 결손가정 청년 등의 사회 진출과 복귀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명원 대표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사업체를 운영하던 중에 부도를 막기 위해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빚을 갚지 못해 결국 1년 형을 선고받는다. 가족을 생각하며 그 절실함에 절망을 딛고 교육을 통하여 기술을 습득하였고, 모범수가 되어 가석방되었다. 출소 후 유통 분야 10여 년, 배터리 분야 9년 등 20여 년에 걸친 사업 경험을 토대로 서울시에서 3000만 원을 지원받고 무담보대출은행에서 1000만 원을 빌려 그 당시 받은 기술교육의 중요성을 전파하고 확대하기 위하여 사업자 20여 명을 모아 힘을 합쳤다. 이로 인해 배터리업체를 열어 전국 30여 곳에 지점을 내면서 한울배터리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이명원 대표는 “나 자신이 전과자였기에 재소자 내면에 엄습하는 현실적 불안감과 두려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재소자들의 성공적인 사회 복귀를 위한 일자리 창출이 재범률을 낮추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 일을 하게 된 동기는 갱생보호대상자들은 출소 후에도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다시 방황하며 결국 재범을 하게 되는 상황이 무척 안타까웠고, 당장 먹고살 걱정 때문에, 사회에서의 삶보다 오히려 수감생활이 더 마음이 편하다는 재소자들의 말에 충격을 받아 이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자립을 위한 다양한 지원으로 재범을 줄여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설립을 추진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한울배터리사회적협동조합은 취약계층과 출소자들의 주요사업 특징과 그중 배터리사업을 대표사업으로 적극 지원하고 있다. 또 출소자의 생계를 위한 일자리 창출, 창업지원, 기술교육 등은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한 것이 중요하기에 그 일환으로 자동차정비 기술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운영 리스크가 적고, 기술습득이 용이한 차량 및 배터리 사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주요 사업 분야는 차량용 배터리, 산업용 배터리, 정류기반 배터리, UPS 배터리 설치 및 유지보수로, 조합원 모두가 다년간의 차량 및 배터리 분야의 사업 노하우를 지닌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차량에 관한 모든 상담과 업무가 가능하다. 한울배터리 서울 본점을 비롯해 전국 30여 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으며, 조합원 모두 개인사업자를 갖고 있어 분류상 사업자 협동조합인 것이 특징이다. 운영비를 제외한 모든 수익금은 사회복지사업에 환원되고, 갱생보호대상자 및 취약계층 결손가정 청년 등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업 다각화와 고용 인원 증대에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한울배터리사회적협동조합은 배터리사업을 위주로 하는 시스템분야에서 2017년에 법무부 고용 실적 1위를 기록했다. 또 한울배터리사회적협동조합은 법무부, 교정본부,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과 연대하여 갱생보호대상자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사업을 펼쳐오고 있으며, 교정본부와 법무보호복지공단과의 유기적인 연대로 많은 공공단체들이 사업에 동참하고 있다. 법무부 사회적협동조합의 인가를 최초로 받은 취지와 공로를 인정받아 ‘2016 대한민국 인물대상(사회공헌부문)’ ‘2018 이노베이션 기업 &브랜드대상’ ‘2018 대한민국 미래를 여는 인물대상’ 등을 수상했다. 이명원 대표는 “회사 운영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시 하는 것은 업무 시 직원들의 안전”이라며 “안전한 작업을 통해 생산성 향상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사회적 적응 능력 배양과 더불어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나 개인적인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사소한 것이라도 함께 고민하고 들어주며 소통의 시간을 갖는 직장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전한다. 한울배터리사회적협동조합은 향후 출소자들 모두가 건전한 사회인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기여하는 데 중점을 둘 예정이다. 올해부터 사업 영역을 확장해 갱생보호대상자들을 위해 기숙사를 설립하여 편안한 환경을 제공할 예정이다. 아울러 정비소 개설, 여성 출소자를 위한 크리닝사업부 신설 등을 계획하고 있고, 조합원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해 출소자들의 경제 자립 프로세스 마련을 위한 방안도 꾸준히 마련할 계획이다. 향후 갱생보호대상자들에게 문턱이 높은 일자리, 기업 외면의 본질적 문제점을 분석·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고 기술교육을 병행·고용을 확대함으로써 일자리 창출에서 나아가 창업을 위한 단계적인 서비스를 펼쳐나간다는 방침이다. 경사이신(敬事而信)의 마음으로 ‘함께 나눔, 함께 행복, 함께 발전’을 위한 건강한 사회 만들기에 노력하는 이명원 대표는 “갱생보호대상자의 창업교육과 기술교육, 각 구치소 및 교도소 교정본부 산하기관의 구인·구직 만남의 날 행사에 지속적으로 적극 노력할 예정”이라 밝혔다.
- 2018-06-07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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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담숲 힐링
- 2018년 5월 14일, 곤지암에 있는 화담숲으로 그이와 함께 봄나들이를 갔다. 2016년 10월에 블로거협회 벗들과 가을 단풍을 즐긴 곳이다. 그때 단풍이 너무 고와서 봄에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었다. 동백꽃은 으레 탐스런 모양의 붉은색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처음 본 쪽동백나무는 꽃송이가 작으며 하얀색이었다. 필자가 좋아하는 은방울꽃은 오월에 피어난다. 혹시나 하고 초록 이파리를 살펴보니 귀여운 얼굴을 살포시 내밀고 있다. 야호! 정말 반가웠다. 타원형의 선명한 초록색 잎에 만든 듯이 예쁜 하얀색 꽃이 얼마나 앙증맞은지 모른다. 무리 져서 피어난 하얀 조팝나무도 환상적이었다. 너무 아름다워 필자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화담숲은 나무 데크로 완만하게 산책길을 만들어놓았다. 어린이나 다리 힘이 부족한 시니어도 안전하고 여유롭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가족, 연인 등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장소가 아닌가 싶다. 오래전 한택식물원에 갔을 때였다 바위틈에 피어 있는 체리 빛 패랭이꽃이 얼마나 예쁘던지 눈물이 다 났다. 그런데 3년 전에 갔을 때는 나무에 벌레들이 많아서 벤치에 앉기가 곤란할 정도였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느껴져 실망스러웠다. "살아있는 것들은 늘 관심과 사랑을 주며 보살펴야만 한다." 아마도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의 삶에 영원한 것은 없다. 결국은 자금력이다. 다른 곳에 편의성, 볼거리 등 더 좋은 환경의 식물원이 생기니 경쟁력이 떨어져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을 것이다. 화담숲은 자연과 기획한 사람의 작가정신이 잘 어우러진 곳이다. 오밀조밀 만들어진 여러 곳의 폭포와 계곡에서 쉬지 않고 물이 흘렀다. 청아한 물소리가 계속 이어지며 귀와 마음을 씻어줬다. 사람만 이름이 있는 게 아니라 꽃들도 제각각 이름이 있다. 뭉뚱그려 꽃이라고 하지 말고 제 이름을 불러보자. 쪽동백나무, 하늘으아리, 매발톱꽃, 금낭화, 미쓰 김 라일락 등 토종꽃들과 은방울꽃, 조팝나무, 아이리스, 양달개비, 마거리트 등 서양의 다채로운 꽃들이 고유의 빛깔과 향내를 내뿜고 있었다. 나무에 달려 있는 꽃만 꽃이더냐! 떨어져 누운 꽃잎 또한 예술이었다. 화담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의미로 구본무 회장의 아호다. 화담숲의 운영비는 연간 150억 원이나 드는데 입장 수입은 80여 억 원정도라서 매년 적자운영을 하고 있지만 구본무 회장은 사회공헌 차원에서 운영한다고 했다. 화담숲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구 회장의 철학이 녹아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화담숲의 기획력이 돋보인 것은 옛것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풍경 때문이다. 출구 쪽에 조성해놓은 야트막한 기와담장과 장독대가 정겨웠다. 화담숲 중간쯤에서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물레방아는 옛이야기를 도란도란 들려주는 듯싶었다.몇십 년이 된 분재에 영양제를 주는 방식도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튼실한 자금력으로 소소한 부분까지 신경을 쓴 게 눈에 보였다. 걷는 내내 '정말 좋은 곳이다.' '조경을 정말 잘해놓았구나' 하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 " 와아! 은방울꽃이다!" "정말 너무너무 예쁘다!" 꽃들에게 반해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필자에게 그이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꼭 유치원 애 같아!" 기꺼이 전속 사진기사가 되어준 자상한 그이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힐링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 2018-05-2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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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후 직업으로 요양보호사 어떨까?
- OECD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의 노인부양률은 100명당 19.6명으로, 생산가능인구 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세계 32위 수준이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2050년엔 100명당 71.5명, 2075년엔 80.1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돈을 버는 사람이면 무조건 어르신 한 명을 봉양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사회 변화 속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직업 중 하나는 요양보호사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이 직업에 대한 평가는 천차만별이다. 대체 어떤 일을 하길래 그런 것일까. 지난 4월 18일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은 24회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을 통해 4만909명의 요양보호사가 탄생했다고 밝혔다. 전체 4만5510명이 응시해 응시자 중 89.9%가 합격했다. 응시자는 23회 시험에 비해 6891명이 늘어났다. 많은 숫자가 배출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사정을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 ‘2016년 노인장기요양보험 통계연보’에 따르면, 현직 요양보호사는 31만3013명에 그쳤다. 그간 배출인원이 151만 명 이상임을 감안하면 적은 숫자다. 이에 반해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인정받은 대상자는 2012년 34만1788명에서 2016년 51만9850명으로 증가했다. 한 명의 요양보호사가 약 2명의 노인을 돌봐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자격 취득자 많지만 일손은 부족 요양보호사는 노인복지시설에서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노인 등의 신체활동 또는 가사활동지원 등의 업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고용해야 하는 인력을 말한다. 요양보호사는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을 통해 자격시험이 관리되는 국가자격제도로,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되면서 도입됐다. 초기에는 일정 교육 과정만 이수하면 취득이 가능했지만, 2010년부터는 자격시험제도가 시행됐다. 요양보호사 자격증 시험은 정해진 교육기관에서 이론과 실기, 실습 교육을 각 80시간씩 총 240시간을 이수해야 응시할 수 있다. 이후 시험에선 각 60점 이상을 취득해야 합격이 된다. 요양보호사 자격 취득을 위한 교육기관은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인정된 요양보호사교육원은 2017년 기준 전국 1725개소에 달한다. 교육비는 기관마다 제각각이지만 대략 60만 원 전후로 ‘시세’가 형성되어 있다. 무료로 교육받을 수 있는 기관도 일부 있다. 요양보호사 수급에 비상이 걸린 지자체들이 대표적이다. 지난 4월 경기도 안산시는 요양보호사 자격증 무료 교육생을 모집했다. 충청북도 음성군도 비슷한 시기에 무료 교육생을 모집했다. 부산시 수영구는 일부 교육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교육 희망자를 접수했다. 가족 돌봄에도 유리해 관심 늘어 요양보호사는 시니어의 관심을 받고 있는 직업 중 하나다. 은퇴 시기가 되면 배우자나 부모가 치매 등 질병으로 인해 보호가 필요한 상황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요양보호사 교육 과정이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데다, 가족을 돌보는 실질적인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가족요양비의 존재도 가족을 돌봐야 하는 이들에겐 매력적이다. 장기요양보험 수급자가 요양보호사 자격을 가진 가족 등으로부터 방문요양에 상당하는 장기요양급여를 받을 때 등급과 관계없이 월 15만 원을 지원하는 제도다. 정부는 올 초 가족요양비와 가족인요양보호사제도도 개선해 가정에서 부모를 돌볼 수 있도록 해 시설 수요를 줄일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학력 제한이나 자격 획득이 어렵지 않은 것도 장점이다. 수요가 많아 눈높이를 낮추면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다. 때문에 조선족이나 고령자의 지원도 적지 않다. 거동이 어려운 노인을 돕는다는 직업적 자긍심이나 보람도 요양보호사로 활동하는 데 힘이 된다. 근로환경 열악, 수입 좇으면 못해 그렇다면 실제 근무 환경은 어떨까. 현장에선 요양보호사가 전문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녹록지 않다고 말한다. 요양보호사의 근무 방식은 크게 두 가지. 집으로 찾아가 돌봄서비스를 실시하는 재가요양보호사가 전체의 약 70%에 이른다. 시설요양보호사는 나머지 30%에 해당한다. 상당수의 재가요양보호사는 단시간 비정규직, 시설요양보호사는 기간제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일자리의 불안정성이 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근무 방식도 쉽지 않다. 비교적 수입이 좋은 입주요양보호사는 부가적인 요구사항이 많아 힘들다고 한다. 한 요양보호사는 “기본적으로 어르신에 대한 가사 지원이 업무 영역에 포함되지만 실제로는 5~6인 가족 전체 살림을 도맡아주기를 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부적절한 성적 요구가 성희롱으로 번지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한다. 수입이 좋은 입주 자리는 많지 않기 때문에 요양보호사 입장에선 ‘을’이 될 수밖에 없다. 근무 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매주 토요일에 퇴근했다가 일요일에 출근하는 입주요양보호사는 월 급여를 200만~250만 원 수준으로 받는다. 그러나 주 3회 몇 시간씩 들리는 재가요양보호사의 수입은 몇십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 시설에 근무하는 요양보호사들이라고 해서 근무 환경이 속편한 건 아니다. ‘퐁당퐁당’과 ‘주주야야휴휴’가 대표적이다. 퐁당퐁당은 24시간 근무와 휴일이 반복되는 방식이고, 주주야야휴휴는 주간근무 2일, 야간근무 2일, 휴일 2일을 번갈아 반복하는 방식이다. 요양원에서 주간근무만 고집하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실질소득은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경우가 상당수다. 야간근무 시간 중 4~6시간을 수면을 위한 휴게시간으로 지정해 임금을 줄이는 방식은 요양보호사들이 악습으로 지적하지만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요양보호시설의 한 관계자는 “노인장기요양보험으로부터 수가를 지원받기 때문에 설립 요건부터 운영에까지 제약은 많고 수익성이 낮은 편”이라고 설명하고 “때문에 일부 시설에서는 인건비나 식비 등 절약이 가능한 부분에서 이윤을 남기려는 경향이 있다. 운영에 가족 참여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열악한 조건을 반영하듯 서울시에서는 어른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를 설립해 이들을 위한 노동상담 등 노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임금이나 퇴직금 문제뿐만 아니라 성희롱 등도 주된 상담 분야다. 따라서 요양보호사들은 돈이 목적이 아닌, 사회에 공헌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나쁜 태도로 근무하게 되면 비인간적으로 변할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의사표현이 어려운 환자들을 상대하다 보면 종종 그런 일도 생긴다. 병원에 비해 보는 눈이나 관리자도 적은 사각지대에서의 근무가 잦은 만큼 스스로의 자긍심이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이 현장 경험자들의 조언이다.
- 2018-05-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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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흔 잔치는 시작됐다
- 새봄잔치는 시작됐다. 일흔 잔치다. 69세로 10년을 그냥 살고 싶다. 돌이켜보니 10년 전에도 그렇게 생각했다. 학생시절에 읽은 어느 여류작가의 ‘29세 10년’이라는 글귀가 실감나게 다가왔다. ‘25세부터 노숙미를 자랑하려고 29세 행세하였으나, 막상 그 때가 되니 불효하는 노처녀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부터는 나이가 겁나서 35세까지 29세로 10년을 살았다’는 줄거리다. 샛별보고 출근하고 초승달을 벗 삼아 집을 찾으면서 열심히 살았다. 날마다 삶은 희망이 있었다. 사회은퇴 후에 생활이 안락하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장년생활의 문제점을 제일 많이 안고 있다. 아들세대 청년들과는 취업전선에서 맞서야 하는 기막힌 처지에 놓였다. 사회에서 조기은퇴가 시작되지만, 국민연금 지급은 오히려 늦춰지는 어려움에 처했다. 평균수명은 매년 늘어나 세계 최고수준이지만 지공거사 65세, 사회에서 은퇴한 이때부터 생각이 깊어졌다. 새로운 세상을 배우고 있는가. 대답이 쉽지 않다. 경제문제가 해결되면 행복하다고 모두가 입을 모은다. 친구가 있고 자원봉사활동을 하면 더욱 좋다. 희망사항은 많은데 해결방법이 쉽지 않다. 빛의 속도로 변하는 세상사에 정신 차리기 어렵다. 머리 싸매고 배우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사회평생교육기관에서 열심히 공부하여야 한다. 헌데 문제가 생겼다. 몇 해 전까지 없던 나이제한이 보편화 되었다. 고령자는 수강이 제한되고 젊은이 위주의 취업과 창업이 성행하고 있다. 지하철을 타면 어느새 경로석 앞에서 서성인다. 그 자리에 앉는 것이 젊은 세대에 대한 배려라는 이야기에 공감한다. 곤란하지 않게 알아서 처신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얼굴에는 주름이 깊어가고 행동은 굼떠졌다. 나이를 속일 수 없는 증표가 되었다. 사회은퇴 전에는 현업에 파묻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사회은퇴 후에는 자원봉사와 사회교육에 참여하면서 보람차게 살고 있다. 도시락으로 점심을 들면서 즐겁게 자원 봉사하는 분들도 만났다. 그들에게 숭고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평생사회교육에 참여하여 사회에 공헌하는 방법을 익혔다. 이제는 사회에서 터득한 귀중한 경험을 사회에 되돌려야 할 때가 되었다. 사회교육 참여는 스스로를 발전시킨다. 사회평생교육도 그동안 많이 변했다. 얼마 전까지는 취미·여가 활용 등 장년의 사회은퇴 후 생활교육이 주를 이루었다. 어느 틈에 일자리 창출·창업 위주로 청장년 교육처럼 교육과정이 변하고 있다. 장년도 새 삶을 부지런히 찾아야 한다. 사회은퇴가 엊그제인데 눈 깜작 할 사이에 5년이 지나 70대로 훅 뛰어 넘었다. 멈추고 싶은 지점이다. 관악문화원에서 글쓰기 공부를 하고 신문원고 작성을 하면서 날 새는 줄 모르고 지낸다. 아침마다 아내와 함께 손주 돌보기를 한다. 나이 먹기를 멈추고 젊은 오빠인양 10년을 살아 갈 터이다. 두려워하지 않고 새 삶을 떳떳이 맞이할 것이다. 안락한 은퇴생활만 기대하기는 너무 젊었다. 나이가 들수록 행동이 나태해지기 쉽다. 이를 방지하려면 일과표를 작성하고 꾸준히 실행하여야 한다. 휴일 이른 아침, 몇 번이나 창밖을 살피고 나서야 친구들과 산행하려고 집을 나섰다. 창문을 내다보면서 비가 올지 걱정하지말자. 비가 오면 우산 들고, 눈이 오면 방한복 하나 더 입고 아침부터 집을 나서자. 망설이면 하루를 헛되게 보내고 만다. 은퇴 전보다 더 엄격한 일정관리를 하여야 한다. 69세 10년! 자식을 기르면서 한 세대를 다시 살고, 환갑동갑 손주를 돌보면서 또 한 세대를 다시 산다. 절묘한 자연의 순환이다.
- 2018-03-1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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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지가 (篤志家)’
- 독지가란 ‘사회사업 따위의 비영리사업이나 뜻있는 일에 특별히 마음을 써서 협력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연말이면 신문에 종종 독지가 얘기가 실린다. 이름도 알리지 않고 좋은 일에 써달라며 큰돈을 기부하는 사람들이다. 영수증도 안 받아갔으니 세금 감면을 받기 위한 회사 차원의 기부도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했었다. 필자가 이끄는 KDB 시니어브리지아카데미 동문회는 회원 상호간의 친목과 사회 공헌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기본적인 재원은 연회비로 하고 있으나 자발적인 참여의 열기가 약해 기금 모음이 어려운 실정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상계동 연탄 배달 봉사에 참여했던 한 회원이 100만원을 기부했다. 총동문회가 사회 공헌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기부를 결심했다는 것이었다. 그간 여러 가지 행사에서 본 기부나 후원은 금액도 크지 않았고 마지못해 내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렇게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내며 용도를 묻지 않겠다고 하니 고마운 일이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인지 만나보고 싶었다. 어떤 마음으로 기부를 쾌척하는지도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돈이 많으냐고 물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한때는 잘 벌었지만, 그때는 그만큼 기부를 많이 했고 지금은 무직 상태라서 수입도 없다는 것이었다. 독지가라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보고 싶어 과거사를 물었다. 너무나 가난해서 공장에 다니고 있을 때 외국 기관의 후원으로 야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보험회사에 취직해서 보험 왕까지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 때 그 사람들의 후원이 없었다면 학교 진학은 꿈도 못 꾸고 공장 생활을 이어갔을 것이라고 했다. 그 사람들 덕분에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 은혜를 갚고 싶다는 것이었다. 기부는 중독성이 있다고 했다. 잘 나갈 때는 1억 원이 넘는 돈도 기부한 적이 있고 크고 작은 기부를 많이 했다는 것이었다. 기부하고 나면 기분이 날아갈 것 같고 희한하게도 그 만큼의 수입이 따라 오더라는 것이다. 혹시 종교가 있느냐고 물었다. 아니란다. 종교계의 기부 풍토와 완전히 다른 것이다. 필자도 시각장애인 파트너를 처음 만났을 때 기부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당시 60대 후반부터 70대 후반 사람들인데 현역에서 물러난 상태라서 수입이 없으니 대부분 생활이 어려웠다. 어차피 이 세상 떠날 때 빈손을 갈 것인데 자녀들은 이미 자립했으니 더 이상 필자 도움이 없어도 되고, 이런 사람들을 위해 돈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막연하게 얼굴도 모르는 불우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돈을 기부하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분들은 곧 은퇴를 했고 30대~40대 시각장애인들이 들어왔다. 대부분 현역에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라 오히려 필자보다 나은 사람도 많았다. 그 바람에 흐지부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번에 만난 독지가와 얘기해보면서 기부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부는 특별한 사람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2018-01-26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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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동계올림픽은 제가 꾸던 꿈이었습니다. 前 강원도국제스포츠지원단장 박종흔 씨
- 눈보라 속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닦아야만 했으니까. 희망이 보이는가 싶더니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망연자실 고개를 떨어뜨렸지만 초석이 다져졌고 단단한 징검다리가 놓였다. 노력은, 꿈은, 그렇게 현실이 됐다. 한 달여 남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은 ‘삼수(三修) 만에 이뤄낸 쾌거’라고 말한다. 세 번의 도전 동안 수많은 사람의 헌신과 노력, 열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올림픽 또한 없을 것이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위해 발 벗고 나섰던 노장을 기억해냈다. 前 강원도국제스포츠지원단장이자 現 아라웰다잉연구회 회장인 박종흔(朴鍾昕·69) 씨. 꿈이 이뤄진 지금,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평창동계올림픽의 백전노장을 만나다 강원도 동해시 천곡동에 있는 한 사무실에서 박종흔 씨를 만났다. 이미 10년도 더 된 올림픽 유치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는 기자의 말에 해드릴 대단한 얘기가 없다며 멋쩍게 웃는다. 박종흔 씨는 올림픽 관련 업적 외에도 공직자로서 명망 높고 존경받던 인물. 지금도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삶을 살고 있다. 2009년 강원도청 지방부이사관으로 공직을 내려놓기 전까지 지방과 중앙정부 요직을 비롯해 2014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업무까지 두루 섭렵한 박종흔 씨는 나랏일(?) 전문가였다. 현역 시절 인생을 걸고 몰두했던 일은 단연 ‘올림픽’이었다. 평창동계올림픽 재수 시절인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머릿속에는 오로지 올림픽 유치 생각밖에 없었다. “2004년도에 국무총리실에서 재난관리과장을 하고 있다가 강원도로 내려와서 받은 첫 보직이 ‘강원도 국제 스포츠위원회 홍보부장’이었어요. 첫 번째 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하고 난 뒤에도 강원도가 재도전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올림픽 유치에 관한 업무를 하는 조직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국제스포츠위원회가 구성되자마자 올림픽 유치를 위한 준비를 틈틈이 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올림픽 유치 신청 뒤 후보 도시가 되기까지 각 도시 간 보이지 않는 경쟁은 치열하다. 홍보 담당자로서 어깨가 당연히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경쟁 도시와 비교해 최대한 좋은 인상과 올림픽 정신에 입각한 행동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밝힌 ‘드림프로그램’ 국제스포츠위원회 홍보부장을 하면서 단연 보람되고 뿌듯했던 것이 드림프로그램이었다. 올림픽 유치활동을 하는 중 가장 정열적으로 힘을 다하고 관심을 가졌던 프로젝트였다. “가장 보람 있게 생각하고 있고, 성과가 이번 올림픽에 직접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드림프로그램입니다. 제가 오기 전부터 기획된 것이었어요. 눈이 내리지 않고 얼음이 얼지 않는 나라의 청소년을 강원도로 초정해 동계스포츠를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이었죠. 스노보드도 타고 스키도 가르쳐주고 스케이팅도 가르쳐줬습니다.” 한편으로는 IOC 위원에게 한 표를 호소하겠다는 전략도 깔려 있었다. “아프리카 지역은 동계올림픽에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에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동기를 주고 싶었습니다. 드림프로그램에 왔던 참가자들을 통해 우리의 뜻을 알리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론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에는 실패했지만 끊임없이 이어진 드림프로그램은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열매를 거두었다. 2009년 드림프로그램에 참가했던 말레이시아 피겨스케이트 선수 줄리안 지 지에 이(21)는 말레이시아 동계스포츠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동계올림픽 출전 기회를 얻었다. 박종흔 씨가 한창 활동하던 2005년 참가했던 남아프리가공화국의 전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타마라 제이콥스는 2월 초 성화 봉송 주자로 뛸 예정이다. 동계스포츠를 널리 알리고 올림픽정신을 실현한 소중한 프로그램이 시간이 지나 빛을 발하고 있다. “그땐 정말 용평스키장에서 살았습니다. 드림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과 같이 지내고요. 인솔해온 지도자들에게는 당신네 나라로 돌아가면 평창이 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도록 IOC 위원들에게 말해 달라고 막후활동을 했습니다. 제가 돌아다니면서 다 한 거죠. 지금 생각해도 드림프로그램은 정말 잘된 프로그램입니다.” 겨울 스포츠의 장, 평창으로 오세요! 강원도청에서 홍보부장 업무를 보다가 국제부장직을 맡아 서울로 근무지를 옮겼다. 이번에는 평창이 동계스포츠 경기를 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인상을 전 세계에 심어주는 일이 관건이었다. “예를 들어서 스노보드 세계 챔피언십 대회를 한다고 하면, 다음 대회를 우리가 유치해오는 것이었어요. 프레젠테이션도 많이 했고 또 큰 대회도 여러 번 강원도에서 유치했습니다. 동계올림픽에는 국제스키연맹, 스케이팅연맹, 바이애슬론 등이 쭉 있잖아요. 산하 연맹들이요. 거기서 다 호응을 또 해줘야 합니다. 대회를 유치하려고 많이 다녔고 유치도 꽤 했어요.” 국제부장에 이어 올림픽 업무를 총괄하는 국제스포츠지원단장이 되면서 밤낮 없이 일에 매달렸다. 홍보부장 때 용평스키장이 집이었다면 이후에는 전 세계가 올림픽 유치를 위한 영업장이었다. 세계를 돌며 평창에 한 표를 호소했고 열정을 쏟았다. 유리하고 좋은 결과를 기대하면서 열심히 뛰었다.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앞두고 러시아의 소치와 대한민국의 평창이 근소한 차이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때 개최지 결정은 남아메리카의 과테말라에서 이뤄졌다. “우리나라는 전세기 한 대로 날아갔는데 러시아는 초대형 화물기 7대를 가지고 날아왔어요. 시내 곳곳에다가 공연장 만들고 엄청난 오일 머니를 갖다 부은 거죠.” 뭔가 전세가 밀리는 기운이었지만 우리 측도 표결이 있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발로 뛰고 평창을 알렸다. “권양숙 여사님이 마침 저희를 도와주셨습니다. 드림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과테말라의 어린이들을 만나서 미팅도 하고 애써주셨죠. 나름대로 전략을 세웠습니다만 소치를 감당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4표 차이로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러시아 소치에 내주고 말았다. 2007년 7월 3일. 뼈아픈 그날이었다. “평창은 벌써 2차 도전이었고 유치를 확신했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더 이상 올림픽 업무를 보기가 싫어지더라고요.(웃음)” 쏟았던 정열에 비해서 얻은 게 없었다. 박탈감이 없었다면 세 번째 도전 때도 뭔가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물었다. “만약 있었으면 조직위원회에서 활동을 했겠죠. 그런데 한 3년 그렇게 하고 나니까 올림픽은 조금….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정년을 2년 남긴 상황이었거든요. 좀 더 유능하고 젊은 친구들이 새롭게 유치 업무를 맡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올림픽 유치가 물거품으로 돌아간 뒤 박종흔 씨는 올림픽 업무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며 강원도지사였던 김진선 전 지사에게 학교로 보내달라고 청했다. 이후 주문진에 있는 강원도립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9년 정년퇴직했다. 못다 이룬 평창의 꿈은 후배들에게 넘겨주었고, 올해 마침내 결실의 그날을 맞게된 것이다. 후배들이 선배님으로서 박종흔 씨를 좀 챙기고 있는지 물었다. “안 그래도 후배한테 우스갯소리로 나를 잊은 게 아니냐며 중요한 행사가 있으면 나를 기억하라고 했더니 알았다 하더라고요.(웃음)” 후배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그들이 동계올림픽의 꿈을 실현시켰기에 자신의 노고가 헛되지 않았음을 알기 때문이다. “올림픽 유치 과정 속에서 상당 기간 근무한 것에 새삼 보람을 느낍니다. 이게 끝내 무산됐더라면 우리의 노력도 물밑으로 가라앉았을 거예요. 우리가 못 이룬 일을 후배들이 이뤄낸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죠. 제 나름대로 훗날 기여할 일이 있다면 물론 당연히 해야겠죠.” 박종흔 씨는 지금도 눈이 내리면 ‘이 눈은 설상경기에 좋을 눈이구나, 아니구나’를 생각한다. 오랜 시간 올림픽과 함께했던 삶이 여전히 몸에도 생각에도 배어 있다. 나랏일 전문가, 웰다잉 전문가 되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일궈낸 백전노장은 지금 그럼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의 제2인생도 궁금했다. 최근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웰다잉’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마침 기자와 마주한 곳은 현재 회장으로 활동 중인 아라웰다잉연구회의 공간이었다. 은퇴 뒤 인생에 대해 고민하다 인생을 잘 마무리하는 것, 즉 ‘웰다잉’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과거에는 퇴직 공무원이 길가에서 쓰레기를 줍거나 산불 감시, 교통질서 캠페인 같은 단순노동으로 봉사를 했습니다. 물론 그런 것도 필요하죠. 저는 30~40년 공직에 있었던 노하우를 접목해서 전문 재능을 기부하는 것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생각했습니다. 퇴직 무렵 웰다잉에 대한 인식이 조심스럽게 사회에 퍼져나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박종흔 씨는 2013년 웰다잉 전문가로 거듭났다. 그때 당시 *각당복지재단이 강원도의 동해가정법률상담소를 포함, 다섯 군데를 선정해 웰다잉교육전문지도강사양성교육을 실시했다. 이때 16주 교육을 이수한 뒤 웰다잉 지도강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현재는 비영리 민간단체인 아라웰다잉연구회를 만들어 자체적으로 웰다잉 전문가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경로당과 노인복지원을 찾아다니면서 무료로 강의도 하고 봉사도 한다. 예전에는 아름다운 인생 마무리에 관해 주로 다뤘지만 최근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관해 집중적으로 교육하고 있다. 혹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 물었다. 또 봉사 이야기를 꺼낸다. 평생 공직생활에 국민들 염원을 담아 발에 땀나도록 뛰어온 사람이 지치지도 않나보다. “퇴직 전부터 악기로 봉사하고 싶어서 한 10년 색소폰을 배워뒀습니다. 그래서 심심치 않게 어르신들을 위해 연주하고 있습니다.” 남을 돕는 것도 좋지만 지금껏 헌신하며 살아온 자신과 더불어 가족과 행복한 인생을 많이 즐기시길 바란다. 2월, 평창 밤하늘에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알리는 폭죽이 터지면 손자에게 꼭 말하시라. “저게 다 할아버지 덕분이었다”고 말이다. *각당복지재단 1986년 설립된 각당복지재단은 인류애 정신에 입각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고 죽음준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말기환자를 보살피는 호스피스 운동 등을 전개하고 있다.
- 2017-12-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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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뜰하게 기부하는 사람들
- 브라보 앙코르 라이프 우리는 잘 늙고 잘 죽기 위해 잘 살려고 한다. 그래서 인생 후반기 여러 필수교양 지침 가운데서도 비우기, 내려놓기, 나누기를 배우고 훈련하고 싶어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시니어 세대는 일밖에 모르고 살았다고들 이야기한다. 돈을 벌어야 하고 모아야 하고 자녀들에게 해주어야 하는 강박 속에서 성실하게 노력하고 희생하며 살았다고 하는 그 공로를 돌이켜보면 사실 나와 가족을 위한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하다. 다른 사람 또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재능이나 금전을 기부하고 자원봉사를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우리는 ‘기부’문화에 익숙지 않았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배운 적이 없다. 미국의 워런 버핏,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같은 사람들은 미국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치고, 삼성 같은 대기업도 사회공헌 차원에서 기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만, 개인이 기부를 하는 일은 아주 드믄 일이다. 기부 DNA가 아예 없는 사람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보통의 사람들도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기부는 자신과 상관없는 일로 여기기 쉽다. 퇴직을 하고 일정한 가처분소득 없이 사는 마당에 기부하고 싶어도 형편이 그렇다. 대부분 이런 생각일 것이다. 퇴직 후 지속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든지, 연금이나 일정 자산소득이 있든지 간에 어느 정도의 기간이 될지 불투명한 자신의 노후를 생각하면 불안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향후 30~40년을 위한 준비를 충분히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보통의 시니어라면 말이다. 얼마가 있어야 안심이 될까? 준비가 되어 있다 해도 소유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면 행복하지 않다. 단언컨대. 인생 후반기 시니어의 차이 나는 경영 노하우는 빼기와 나누기다. 인생 후반기야말로 기부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다. ‘소득의 일정 부분을 기부한다’는 말 대신 소비하는 금액의 일정 부분을 줄이고 빼서 기부금 명목으로 지출할 수 있다. 무엇을 위해 얼마큼씩 빼기를 할 것인가. 물질적으로 나를 비워가는 과정 또한 나를 내려놓는 일 이상으로 중요하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 매달 생활비에서 10퍼센트 혹은 13퍼센트는 떼어서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나 공익을 위해 애쓰는 단체에 기꺼이 기부하고 나누어 쓰겠다고 마음을 먹고 행동에 옮기는 순간 삶의 가치는 고양된다.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긍심은 물론, 줌으로써 누리는 행복감은 나만을 위한 소비가 주는 행복감보다 훨씬 큰 의미를 준다. 신기하게도 기부는 투자의 효과로 내게 어떤 형태로든 돌아온다는 것이다. 기부하는 일에 어린이, 어른, 노인을 구분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에게 기부문화가 그리 친숙하지 않다는 점에서 각 세대에 맞는 기부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공감할 만한 동기부여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몇 달 전에 지인들 몇몇과 다음과 같은 궁리를 해봤다. 당신이 누구이든 기부할 돈도 재능도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시라. 우리나라 국민은 만 65세가 되면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을 받는다. 필자도 2년 내에 소위 지공족에 편입된다. 웃음도 나고 머쓱한 기분도 드는 게 사실이다. 이런저런 대화 중에 지하철 무임승차로 한 달에 적어도 4만여 원의 지하철 교통비가 절약된다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외출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도 2만원 정도는 절약될 것으로 짐작된다. 이거야말로 공돈인데 이럴 때 과감하게 월 2만원을 기부해보라. 이름하여 지공펀딩 캠페인을 벌여보자고 5명의 예비 지공족이 모여 논의했다. 지하철이 공짜라는 희화적 의미의 ‘지공’을 ‘지공(至公)’이라 표기하고 공익을 위해 기금조성을 하기로 한 것이다. 열 명, 스무 명, 백 명, 천 명, 그 이상으로 지공족이 참여한다면 그야말로 지공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될 것이고 시니어 문화가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시금석이 될 만하다. 성실하게 일하고 절약하며 살아온 세월은 어디로 가고 무임승차족, 사회비용부담 세대로 비하되고 있는 지금의 시니어에게 비타민 같은 기회로서 기꺼이 동참하고 싶은 제안으로 받아들여지길 기대하고 있다. 공개하기도 전에 벌써 동참의 뜻을 보내온 사람이 30여 명이다. ‘기부한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지만 기부해 달라고 요청하는 이도 없는데 누구한테 기부하라는 거냐’ 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이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감할 만한 명분이 있고 믿을 만한 단체라면 나도 기꺼이 지공 멤버가 되어 기부자가 되겠다는 의미다. 본격적으로 이런 운동을 전개하면 ‘나도 기부를 한다’는 자부심과 즐거움에 행복해하는 시니어가 많아지리라 본다. 이 운동의 목적이나 목표를 구체적으로 소개하기에는 적합한 지면이 아니어서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 단, 기부의 마음만 있으면 기부할 돈과 재능이 없어서 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설사 기부를 하고자 해도 누굴 믿고 기부를 하겠는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작금의 사회 분위기가 기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만든 것도 사실이다. 어금니아빠 사건, 새희망의 씨앗 전화사기 사건, 미르재단에 이르기까지 최근 1년 사이에 부패한 재단, 기부금 횡령사건이 줄을 이어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그래서 진정 목적에 잘 쓰이고 있는지 믿을 수 없어 더 이상 기부하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부정적 대응이 해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세먼지가 가득하고 탄소 배출이 증가해도 우리는 숨을 쉰다. 숨쉬기에 필요한 산소는 여전히 공기 중에 존재한다. 기부는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사회를 더 좋게 변화시키는 데 기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기부문화가 성숙해가면서 스스로 사회의 자정 장치까지도 만들어낼 것으로 믿는다. 후반기, 다시 시작하되 자장격지(自將擊之)의 자세로 한다. 과식하지 않을 줄도 알고 내 몸의 상태에 맞춰 행동을 조심할 줄도 안다. 그러지 않으면 탈이 나니까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이 과히 나쁘지 않다. ‘스스로 가지려고만 하지 않고 주려고 한다. 더하기, 곱하기보다 빼기, 나누기를 좋아한다.’ 이런 현상은 연륜의 지혜가 주는 자정기능이고 자기균형 효과라 생각한다. 나이에 걸맞게 노쇠해가는 것이 노익장을 과시하고 노욕을 부리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보기에 자연스럽다. 몸도 마음도 물질도 스스로 비워야 하고 빼야 하는 줄 알게 되니 기쁘다. 나와 내 자녀에게만 주는 것보다 이 사회의 더 많은 사람, 더 필요로 하는 곳에 주면 내가 실제로 준 것보다 더 큰 몫으로 가치가 증대된다. 기부는 소비가 아니라 투자이고 생산이다. 기부하는 사람은 투자자이고 보람과 기쁨이라는 배당을 받는다. 우리 사회의 명예로운 주주가 되는 것이다. 사회를 더 좋게 변화시키는 일에 시니어가 동참하는 것이다. 평범한 당신이 죽기 전에 기부의 즐거움을 누리고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으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축복이 어디에 있을까.
- 2017-12-11 1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