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신을 가장 잘 알아주는 친구를 일컬어 ‘지음(知音)’이라 부른다. 중국 춘추시대 금(琴)의 명인인 백아(伯牙)가 자신의 음악을 가장 잘 알아주던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죽고 나자 ‘파금절현(破琴絶絃)’, 즉 자신의 음악을 더는 이해해줄 마음의 친구가 사라져 버렸으므로 금을 부수고 줄을 끊어버린 뒤 다시는 금을 잡지 않았다는 고사이다.
이 고사에
몇 시간을 달려왔는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부모님을 따라 청량리역에 내린 시각은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이었다. 청량리역을 나서면서 필자 입에서 나온 일성은 ‘아부지! 하늘에 호롱불이 좍 걸려 삣네요’였다. 그때가 필자 나이 9세이던 1966년 가을이었다.
필자는 경주 인근 작은 산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곳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이었다. 초등
우리나라 화폐 속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세종대왕이다. 현 화폐 모델 중 원에서 환으로, 100원에서 1만원으로 화폐단위와 액면을 자유롭게 넘나든 유일한 인물이다. 특히 세종대왕은 1960년 제2 공화국의 출범과 함께 당시 1000환권의 모델이던 이승만 대통령과 자리바꿈을 하였고 그 이듬해인 1961년에는 500환의 주인공이 되었다. 1973년에는 1만원
박정희 혜담(慧潭) 인상코칭 연구원장 ilise08@naver.com
돈은 ‘돈다’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한곳에 머물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진다.
돈의 힘을 나타내는 말로 ‘돈이 장사’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 등이 있다. 돈은 상상 이상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돈을 버는 방법이 우리의 주요 관심사가 된
필자가 기억하는 첫 탱고는 마릴린 먼로가 주연한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1959)’에서 여자로 변장한 잭 레먼이 코미디언 조 E. 브라운과 함께 입에 물고 있는 꽃을 바꾸어 물어가며 춤추던 불후의 명곡 ‘라 쿰파르시타’이다. 그 후 카테리나 발렌테가 부르는 ‘불의 키스(Kiss of Fire/El Choclo)’에 매료되어 여러 장의 탱고 판을 사서 듣
1970년대를 살았던 국민이라면 밤 12시에 울리는 사이렌 소리를 기억한다. 24년 전인
1982년 1월 5일, 광복 후 줄곧 갇혀 있었던 대한민국의 밤이 세상에 풀려났다. 밤 12시~새벽 4시의 야간 통행금지(통금)가 해제된 날이다. 전국 도시의 거리에 사람이 오가게 된 것도, 새벽까지 마셔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의 술자리 습관도 모두 이때 시작됐다.
2015년 을미년(乙未年)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올해에도 적지 않은 대중문화 스타들이 대중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 특히 신중년들의 젊은 시절을 수놓았고 수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던 중견 스타들이 활동 무대를 하늘나라로 옮겼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의 김광한입니다!”매력적인 저음으로 팝음악 프로그램의 오프닝 멘트를 한 뒤 다양한 팝 음악과 정보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참 많은 나라들을 다녔다. 그 장소들을 정리할 일이 생겨 그 동안 다녔던 지역 이름을 적어 내려가다가 이름이 가물가물해 지역 지도로 들어가게 되었다. 내친김에 아예 지도를 펼쳐 연도에 맞춰 촬영지역을 시간 별로 한 점 한 지역 표시하다보니 가히 세계전도가 그려진다. 그런데 대부분 머문 지역은 유명한 큰 도시가 아니라 모두 변방 오지들이
어느 민족에게나 영웅은 있다. 다만 양상은 제각각이다. 국민성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저마다 다른 시선으로 영웅들을 규정하고 파악한다. 때로는 어떤 민족에게 영웅인 인물이 다른 민족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그들이 어떤 영웅을 어떻게 떠받드는지 살펴보면 국민성의 일단을 검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글 김유준 프리랜서 dongbackproject@gm
우리나라 액션 스타의 계보는 곧 홍콩 스타의 계보다. 액션 영화가 ‘다치마와리’ ‘으악새’ 등으로 폄하되던 한국 영화계에서 토종 액션이 만들어지기는 쉽지 않았다. 홍콩 영화계는 달랐다. 그곳 영화인들은 중국 무술을 떠받들었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으려 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이어진 그들의 창의적이고 효과적인 노력은 자국뿐 아니라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