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남녀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지난 8월 말부터 매주 금요일 모여 난타 연습과 스포츠 댄스를 배운다. 강남시니어플라자 대표 싱글 모임인 회원 중 8명. 11월 말에 있을 플라자 내 교육 프로그램 발표회에서 난타 공연을 할 예정이다. 싱글들의 모임이라 그럴까? 생기가 넘친다. 왠지 모를 자연스러움에 나이까지 잊게 만든다. 그렇지만 속내는 알 수 없다. 탐색을 하고 있는지, 정말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지 말이다. 격 있는 싱글들이 모인 김에 솔직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당신들의 속내, 지금 연애가 하고 싶습니까?
난타와 댄스스포츠를 가르치는 이복자씨 속사정
난타 소모임의 반장격인 이복자씨를 제일 먼저 만나 살아온 얘기를 들어봤다. 초등교사로 은퇴한 이복자씨는 부유한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한국무용을 공부했고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면서도 무용학교 입시 안무가로 젊은 시절 제법 잘나갔다. 스포츠 댄서로서도 한 획을 그었다고 자부하는 이복자씨. 그랬던 그녀는 재작년 황혼이혼을 했다. 작년 9월부터는 싱글의 몸으로 봄빛클럽 회원이 됐다. 지금은 나름의 재능을 살려 회원들에게 난타와 댄스스포츠를 가르친다.
이복자 황혼이혼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였어요. 남편의 술버릇 때문이었죠. 젊을 때는 교사라서 못하고, 아들 결혼식에 빈자리를 만들기 싫었습니다. 결국 이혼했어요. 아들이 결혼하고 나서 호주로 떠났는데 제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혼자 있다 보니 외로웠어요. 자존심상 주위에 혼자된 사실을 알리고 싶지도 않고요. 그러다가 봄빛클럽을 알게 됐습니다. 법적으로 혼자라는 것을 증명하고 상담도 받은 뒤 회원이 되면 싱글들끼리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들었어요. 건전하고 나 또한 싱글이니까 마음놓고 얘기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봄빛클럽 안에 최근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지만 말 그대로 탐색 중이다. 그녀에게는 분명한 것 하나가 있다.
이복자 남자 경제력은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과 연금으로도 두 명 충분히 살 수 있거든요. 마음이 맞고 편한 상대를 만나고 싶어요. 사실 제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분에게 당신이 편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뭐 어때요? 여자라도 마음에 들면 말하는 게 맞죠. 말 못할 이유가 없잖아요(웃음)?
하나, 둘 회원들이 모이고 왁자하게 웃음꽃이 폈다
난타 모임은 발표회를 위해 급조된 모임이다. 이곳에 모인 회원들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매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사진 촬영을 위해 테이블 주위에 회원들이 오순도순 모였다. 봄빛클럽 단장이었던 이활주씨와 난타를 가르치는 이복자씨, 이영조·최연서·현정원·김순섬씨. 그리고 이복자씨의 댄스스포츠 파트너인 박노용씨도 나오지 않은 회원을 대신에 자리를 채웠다. 이날 모인 사람 중 유일하게 가정이 있는 남자다.
본격적으로 싱글 남녀와 대화를 열다
싱글이신데 젊었을 때와 지금 이성을 만나는 느낌은 어떻게 다른가요?
이영조젊을 때는 좀 화끈하잖아요. 그런데 나이든 사람들의 만남은 하루하루 만나면서 즐거운 상태를 유지하는 거죠. 서로가 함께 있으면서 취미를 공유하고 같이 모이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봐요.
이복자 모여서 떠들면서 스트레스도 날리고 외로움도 해소하는 거죠.
최연서 젊었을 때의 연애는 쓰나미 같은 것이고, 지금의 연애는 밀물 같아요. 이 나이에는 쓰나미처럼 사랑할 수 없어요.
Q.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요?
최연서 우리 생각은 시시때때로 바뀌어야 맞잖아요? 다른 사람 보면 또 바뀌고 그래야죠. 우린 싱글이니까요. 어떻게 사람이 같은 사람만 좋아할 수가 있어요(웃음)?
이복자 취미활동을 하다 보면 마음이 맞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고 그러다가 개인적으로 만남을 갖는 사람들도 생기지 않을까요?
Q. 주로 어디서 만나시나요?
이영조사람이 그리울 때 저는 주로 저희 집으로 오라고 합니다. 집에 볼 만한 영화도 많고, 노래방 기계도 있어요. 그런데 전부 다 모여 먹고 마시다 보면 같이 영화 보고, 노래 부를 사람이 없더라고요. 다음에 영화 볼 때는 몇 사람만 와서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때 갑자기 최연서씨가 이영조씨와 이복자씨가 함께 영화 을 봤다는 얘기를 꺼낸다. 야한 장면이 나오는데 둘이 괜찮았냐며 소녀처럼 묻는다.
이복자 문제는 그런 거를 같이 봐도 아무 감각이 없었다는 거 아냐? 이제 완전히 고목이 됐나봐. 지금 연서씨가 얘기하니까 그런 게 있었나보다 하지. 이제는 그런 장면을 봐도 감정이 막 생기고 그런 게 없더라고요.
Q.댄스스포츠 같은 거 하다 보면 찌릿한 느낌 없나요?
최연서 그럴 만한 사람을 만나면 그렇겠죠. 그런데 친구 사이로 생각하는데다가 배우는 데 집중해서 그런지 잘 몰라요, 그런 거.
이복자 지금은 댄스스포츠를 배우고들 있으니까 배우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라도 더 배워서 안 잃어버리려고 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잘하나 못하나 그거에만 신경을 쓰지 남녀라는 느낌이 없어요.
이영조 지금 자꾸 내용을 그런 쪽으로 몰고 가는 거 아닌가요?
수줍어서인지 즐거워서인지 다들 박장대소한다. 격조 있는 싱글들이 만났으니 뭔가 있을 거 같다고 느꼈다.
이활주 우리가 만나봐야 한 달에 번개까지 해서 한두 번 만나요. 좀 얘기하다가 식사하고 노래방 가고, 끝나면 집에 가기 바쁘니까 따로 시간 내서 한잔 더, 혹은 차라도 한잔 이런 걸 못 해요. 지금 그것을 파악하는 중이지요. 그래도 처음보다는 서로를 많이 알게 됐어요.
Q.솔직히 말해보셔요, 다들 연애는 하고 싶으세요?
최연서 좋은 친구는 만들고 싶죠.
김순섬 마음 통하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어요.
Q. 얘기가 잘 통할 때 연애가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으신가요?
이영조 희망사항이죠. 문제는 생각하는 이성이 없는 건 아니에요. 솔직히 말해서 이곳에서 혹시 남녀가 불이 붙으면 이 모임에 나올까요(웃음)? 관둡니다. 그건 분명해요.
이복자 자기들끼리 만나야 하니까.
이영조 맞아요. 남들과 어울리지 않고 둘이 만나니까 안 나오더라고요.
Q. 혹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면 헤어졌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김순섬 다시 들어오지는 않겠지. 자존심이 있는데 헤어졌다고 들어오나?
이활주 사실 예를 들어 “나 누구하고 만난다”고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존심이고 뭐고 없어요. 시치미 떼고 다시 오면 오는 거죠. 아무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모임 회원 중 많게는 몇 사람 혹은 한두 사람은 서로 신상 탐색을 위해 밖에서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Q. 이 모임은 싱글 모임인데 다른 모임과 차이가 있다면 얘기해주세요.
이복자 제 친구들 중에는 싱글이 많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친구들하고 모임을 하다가도 시간이 되면 바삐 집으로 가요. 남편 밥 챙겨주러요. 집안일이 그렇게 딱 걸리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같은 싱글들은 집에 빨리 가야 하는 부담이 없어서 좋아요. 여기는 싱글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위화감은 없어요.
Q. 싱글 모임을 하면서 좋은 점이 있다면요?
김순섬 다른 내 친구들은 싱글이 아니니까 내가 만나고 싶을 때 못 만나요. 그런데 여기는 내가 전화하면 만날 수 있어요. 요즘 다른 친구들한테 자랑해요. 너희들 없어도 요새 나는 잘 놀고 있다고요(웃음).
Q. 같이 갔던 장소 중에 좋았거나 기억에 남는 곳이 있었나요?
현정원 춘천 갔을 때도 재밌었고, 대하도 먹으러 갔었어요. 11월에는 충남 태안에 천리포수목원으로 2박 3일 계획하고 있어요. 봄빛클럽에서 희망하는 사람들만 갑니다.
솔직하지 못한 싱글 남녀들의 머뭇거림에 이날 객원 멤버로 참여한 무용실 원장 박노용씨가 한마디한다.
박노용 너무 생각이 깊어요. 만나는 거 자체는 흥미롭고 좋은데 열지 못하는 거죠. 가정이 있는 제가 느끼기에도 몇 가지 장단점이 느껴집니다. 자유로운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 좋아 보이기도 하네요. 각자에게 주는 감정이 참 세밀합니다. 그런데 젊음이 떠나서 그런가 들이대는 게 부족해요(웃음).
이활주 그 말이 맞을 거예요. 다른 사람 눈치를 보게 돼요. 가족의 눈 등 일단 다른 사람들의 눈이요. 좋아하는 상대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알아가면서 좋은 감정을 만들 수도 있으련만.
최연서 자신에게도 신중해야 하고 남들도 생각해야 하고 젊었을 때랑은 다를 수밖에 없죠.
이복자 나이 들어보니 감정은 뒷전이고 이성적으로 이것저것 가리게 되니까 빨리 뭐가 안 이뤄지는 거죠.
박노용 남녀 간의 사랑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따뜻한 친구는 얻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이런 싱글 모임이 좋은 거 같아요.
최연서 누군가 말하기를, 이성 친구는 딱 보고 1분 내로 결정하라더군요. 단 지성과 양심 중에 양심 쪽을 택하라고 하더군요. 나이 많은 사람과 젊은 사람은 만남이 달라요.
시니어 싱글 남녀. 이들도 결국은 진짜 사랑을 만나고 싶고, 지금까지의 삶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젊은 사람들처럼 사랑을 표현하고 내세울 수 없다. 삶에 대한 책임감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보다 클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마음이 시니어들이 사랑을 생각하는 방식이 아닐까.
‘The Duchess’는 공작부인을 뜻한다. 이 영화의 원제는 영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휘트브래드상’을 수상한 아만다 포멘이 쓴 베스트셀러 소설 이다. 18세기 영국 실화라고 해서 더 화제가 되었다.
감독은 영국의 사울 딥이다. 주연에는 공작부인 조지아나 역에 키이라 나이틀리, 데본셔 공작 역에 랄프 파인즈가 나온다. 무대는 18세기 영국의 상류사회다. 17세의 소녀 조지아나는 최고의 부와 권력을 가진 대본셔 공작과 결혼하면서 공작부인이 되고 미모와 지성, 패션으로 사교계의 여왕이 된다. 뭇 남성들은 화려한 그녀를 흠모한다. 그러나 남편 데본셔 공작은 끊임없이 바람을 피우며 조지아나의 속을 썩인다. 하녀와의 외도로 낳은 딸을 데려다 키우기도 한다. 심지어 조지아나가 믿고 있던 친구 베스와 외도하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딸에 이어 아들까지 낳았지만 희망이 안 보였다.
남편의 사랑에 굶주린 조지아나는 젊고 야망 있는 젊은이 찰스 그레이와 사랑에 빠진다. 결국 그의 아이까지 낳는다. 세기의 스캔들 감이다. 그러나 대본셔 공작은 이혼하지 않고 조지아나에게 돌아오라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찰스의 앞날을 망가뜨리고 아이들과도 떼어놓겠다고 말한다. 결국 체면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조지아나는 사랑을 택하지만 아이들이 보내온 편지에 마음이 돌아선다. 그리고 남편과 같이 살다가 죽었다. 찰스 그레이는 다른 여자와 결혼하고 원했던 대로 영국의 수상이 된다.
조지아나는 실존 인물이다. 비운의 황태자비 다이애나의 4대 선조가 조지아나란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다른 남자와 스캔들을 만든 두 사람의 운명이 묘하게 비슷하다. 이 영화가 볼 만한 것은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지만, 18세기 영국의 상류사회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가발을 쓰고 스카프를 목에 둘렀다. 27벌의 화려한 의상을 입고 등장한 키이라 나이틀리는 귀부인의 강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상류사회의 파티도 재미있다. 이들의 파티는 배우자 외에 다른 이성과 춤을 출 수 있는 기회다. 그래서 모두들 즐거워하고 재미있어 한다. 조지아나 같은 아름다운 공작부인과 춤을 추거나 얘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이슈가 된다. 그녀에게 자기 아이까지 잉태시켰던 찰스 그레이는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 듯했지만 결국은 야망을 택한다.
주 촬영지는 데본셔 공작의 전원저택인 체스워드(Chatsworth House)로, 키이라 나이틀리가 출연한 을 찍었던 장소라고 한다. 현재 데본셔 가의 후손들이 살고 있고 300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저택 전체가 개방되어 있단다. 하루에 6000명의 관광객들이 출입할 수 있고 집 안에서 보유하고 있는 렘브란트 작품 등 박물관을 방불케 하는 유물들을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런던에 가면 유명 관광지보다 이런 곳을 찾아 이 영화를 떠올리며 둘러봐도 좋을 듯하다.
“장모 사랑은 사위”라는 말이 있다. 필자는 이 말이 세계 어느 곳에서도 통한다고 생각해왔다. 가족관계에서도 이성을 대할 때는 요상한 매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고추당추보다 맵다는 시집살이 전통이 살아 있을 때도 시아버지의 며느리 사랑에 대한 멋진 이야기들은 흔했다.
그런 필자가 미국에서 만난 사위들이 장모를 꺼리고 고깝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꼭 장모같이 말하네.” “장모 아니랄까봐.” “장모도 아니면서 왜 그래?” 하는 말들도 듣곤 했다. 어느 날 필자와의 거래에서 만족하지 못하자 손님은 “장모같이 눈속임하려고 하지 마”라고 말했다 사회적 언어가 이렇게 다르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레이디퍼스트 문화를 만들어낸 사회이고 남녀동등의 정서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만나게 된 색다른 의식이라 호기심이 생겼고 관찰하고 싶었다.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여권신장으로 도장지처럼 뻗어난 장모의 이기적인 행위들이 만들어낸 사회 언어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간식이 다양하지 않았다. 공산품이 아닌 엄마표 간식이라 다 건강식이었다. 기껏해야 철따라 삶은 고구마, 감자, 옥수수 등이다. 지금은 먹지 않는 배추 뿌리도 먹었다. 필자는 군것질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도 단맛은 별로이고 짜고 신맛을 좋아하다 보니 군것질을 잘 안 한다. 어렸을 때도 그랬다. 그런데도 간혹 아주 드물게 간식을 먹으면 어머니는 필자를 닦달했다 그러면 필자는 심통을 부렸다. “엄마는 왜 남의 아들 걱정만 하셔요? 남의 아들 등골 빼먹을까봐 딸이 군것질 조금 하는 것도 못하게 하시네요. 남의 아들이 일 많이 해서 엄마 딸한테 먹을 거 많이 사주라고 하면 되지” 하며 반박했던 기억이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의 군것질은 성장기 아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영양보충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필자가 군것질을 좋아하면 결혼해서 혹시라도 시어머니에게 구박을 받을까봐 미리 훈련 차원에서 잔소리를 하셨던 것이다. 군것질 좋아하는 며느리 좋아할 시어머니는 없다는 판단도 있었을 테고 가정을 이루었을 때 가정경제에 미칠 좋지 않은 영향도 생각했으리라. 어쨌거나 절제와 근검의 모범은 내 딸부터 보여야 한다는 어머니의 가치관은 분명했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를 듣는다. 어느 해의 제주도에서는 결혼한 쌍의 반수가 이혼을 했다고 했다. 가정의 위기가 심상찮다. 요즘은 시집가는 딸에게 친정 부모가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너를 위한 문은 활짝 열어둘게. 언제라도 환영한다.” 이혼에 한몫하는 사람도 장모란다. 딸은 절대로 자기처럼 살게 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엄마들도 많다. “내가 어떻게 길렀는데, 내 딸이 부당한 대접받고 고생하면서 살게 할 수 없다.” 이런 계산이 이혼을 고민하는 딸들에게 결단력을 준다. 하늘처럼 믿음이 가는 부모의 힘을 느끼는데 뭐가 무서우랴. 남편이야 등골이 빠지든 말든 누려야 할 것은 누려야겠다는 것이 삶의 기본이다. 이 시대야말로 아들딸 구별하지 말고 “배우자 등골 빼먹지 말라”는 부모의 교훈이 필요해 보인다.
사람이 얼마나 잘났으면 세계적인 노벨상이 시큰둥할까? 그것도 소설, 수필, 시, 희곡 이외의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사람은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하는데 말이다. 필자는 노벨문학상이 다른 분야, 즉 의학상이나 물리학상 같은 과학 분야와 달리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와 가치를 담고 있어 특히 그 명예가 높다고 생각한다.
노벨문학상은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는 상이다. 그런데 그 상이 시큰둥하다? 아직은 모든 것이 미지수이지만 보통 사람들처럼 노벨문학상이 그를 기쁘게 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아니면 그만의 방법으로 기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둔해서인지 보이지 않는 그 마음을 읽어보려니 머리가 어지럽다.
경쟁은 발전을 가져오는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인간은 경쟁할 때 늘 유혹을 받는다. 아무리 그 목적이 좋은 것이라 해도 경쟁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성 파괴는 현대에 와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문제다. 특히 우리 사회는 다른 어떤 가치보다 먼저 받아들이는 것이 경쟁이었다. 이러한 경쟁 구도 속에서 부작용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을 때 필자는 우리나라 교육 환경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조금씩 고려하기 시작했고 결국 필자 아이들을 영국 학교에서 공부를 시켰다.
그런데 어느 날 학기말도 아닌데 선생님은 아이들이 배운 것들을 총정리해서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몇 명 안 되는 아이들이 상을 받았다. 첫 번째 상을 받는 아니는 필자의 아이였다 필자는 하마터면 큰 소리를 지르며 펄쩍 뛸 뻔했다. 다행히 빠르게 작동한 이성이 막아줘서 창피함은 면했다. 영어도 잘 못하는데 다른 아이들을 제치고 1등을 한 거라고 순간 착각한 것이다.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걸 아는 데 걸린 시간은 채 1분도 안 됐다. 선생님은 계속해서 아이들 이름을 불렀고 상은 반 아이들 모두가 골고루 받았다. 좀 부끄럽기도 해서 필자는 내 아이가 받은 상이 제일 값지고 좋은 상이라고 생각했다.
무안한 마음은 오래갔다. 아이가 상을 받는다고 좋아하고 흥분한 것은 평소 필자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필자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상을 주면서 과도하게 경쟁하도록 만든다고 비판해왔던 것이다. 게다가 반 전체 아이들이 골고루 상을 받았다는 사실과 상 받는 순서에까지 예민하게 반응했던 필자의 모습은 평소의 생각과는 너무 동떨어진 행동이었다.
필자에게 노벨상은 분명하게 관계가 없는 상이다. 다만 기대가 있다면 우리나라 사람이 받았으면 하는 희망뿐이다. 내 가족도, 내 동문도, 내 친지도 아닌 오로지 대한민국 국민이 수상자이기를 바라는 큰 상이다. 과학이나 의학이라면 우리가 뒤떨어져 있어 양보도 가능하지만 유서 깊은 역사와 고도의 정신문화를 지닌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쯤은 하나 받아도 되는 게 아닐까 한다. 슬프게도 우리나라는 피정복의 역사를 안고 있는 나라라서 내적인 아픔이 많다. 기나긴 떠돌이 생활을 한 유태인 못지않게 서로의 손을 형제의 피로 물들인 뼈저린 역사적 경험이 있는 나라다. 그래서인지 해마다 문학상을 누가 받을까 관심이 많다. 그 상을 받았는데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 밥 딜런이라는 사람은 어떤 인간일까. 무척 궁금해지는 하루다.
요즘 카톡에서도 ‘행복하세요’라는 말이 ‘건강하세요’,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을 제치고 단연 1위에 올라선 것으로 짐작됩니다. ‘행복’이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국어사전에서는 행복을 ‘복된 좋은 운수’라고 설명합니다. 복, 운수라는 말이 자신의 노력과 상관없는 것 같은 말이어서 정답이 아닌 것 같습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와 ‘행복하세요’가 같은 의미의 말이라니 더더욱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듭니다.
백과사전에는 ‘행복(幸福, happiness)’을 자신이 원하는 욕구와 욕망이 충족되어 만족하거나 즐거움을 느끼는 상태,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안심하거나 또는 희망을 그리는 상태에서의 좋은 감정으로 심리적 상태 및 이성적 경지를 의미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다분히 주관적이라는 느낌이지만 욕심을 줄여서 만족하고 즐거운 감정을 느끼면 행복이라고 정의합니다.
석천 박재희 교수에 의하면 ‘행복’이라는 단어는 동양에서 사용되던 말이 아니고 영어의 ‘happiness’를 직역한 말이라고 합니다. 고전에는 행복을 대신하는 말로 지금의 내 마음상태가 상쾌하고 만족스럽다는 뜻을 담고 있는 ‘쾌족(快足)’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의 출처는 ‘대학장구’의 ‘성의’장에 나오는데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성기의 무자기(誠基意 毋自欺) 차지위자겸 겸쾌족(此之謂自慊 慊快足): 내 뜻을 성실하게 갖는 것은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스스로 만족스런 상태라고 한다, 겸은 쾌족한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살다 보면 운이 좋을 때도 있고, 길가다 똥 밟는 일처럼 본의 아니게 안 좋은 일에 엮일 때도 있습니다. 인간지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좋은 운이 끝까지 이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성공의 잣대와 관계없이 자신을 속이지 않고 스스로 만족스러운 쾌족의 삶을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면 행복이 가까운 느낌입니다.
유트브에 인기 동영상으로 사랑을 받는 법륜스님의 ‘즉문즉답’은 고민이 있는 사람들의 카운슬러 이야기입니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도 많습니다. 하지만 답은 한결같습니다. 남을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남을 고치려 하지 말고 자신을 고치라고 합니다. 또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부족해도 감사한 마음으로 만족해하고 모든 문제는 남이 아니고 내게 있다는 생각을 할 수만 있다면 저절로 행복해지리라 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행복해지길 희망합니다.
천재 피아니스트와 괴짜 음악교수의 소통과 우정을 그린 음악극이다. 과장된 유쾌함 속에 비극의 역사를 묻고 살아가는 주인공 마슈칸 교수 역을 맡은 배우 이호성을 만나봤다.
작품을 선택하게 된 계기
"욕심이죠. 좋은 작품을 해보고 싶은 욕망은 모든 배우에게 다 해당할 거예요. 특히 이 작품이 2인극이라는 데 더 매력을 느꼈어요. 모노드라마나 2인극의 경우, 무대에서 더 많은 연기와 주장을 하고, 나를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니까요. 스케줄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버거운 점이 있지만, 그 과정이 고통스럽더라도 한편으로는 그 고통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왜 소화를 못 할까?’ 고민하면서 그 생각을 화두 삼아서 인물에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갈피를 잡기도 하거든요. 힘들어도 그런 짜릿한 맛이 있어요."
가장 염려스러운 부분
2인극이기 때문에 외워야 할 대사 분량이 많아서 부담스럽긴 하죠. 내가 실수를 해서 상대역을 하는 젊은 배우가 당황하면 결국 무대를 제대로 형성화하지 못하잖아요. 파트너나, 연출, 관객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겠다는 게 목표예요. 그래서 지금은 욕심을 많이 줄였어요. 대사를 정확히 외워서 적어도 민폐는 끼치지 말아야죠. 사실 제가 박치고, 목소리가 저음인데 우리 음악극에서 불러야 하는 노래가 굉장히 고음이거든요. 고음을 내는 두려움이나 호흡이 부족하긴 하지만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다는 것, 젊은 배우 못지않게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런 오기를 부리지 않으면 살아 있다는 존재감을 느끼기 어려울 것 같아요.
주인공과 닮은 점이 있다면
먼저 똑같이 홀아비라는 거죠(웃음). 그리고 고독하다는 것. 사람의 살결도 그립지만 나와 접촉하거나 부딪히는 사람의 마음을 그리워한다는 게 닮은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들 하잖아요. 연애해라 그래도 외로울 것이다, 연애하지 마라 그래도 외로울 것이다. 결국 이렇든 저렇든 인간은 외로운 존재라는 거죠. 그런 점에서 관객도 공감할 부분이 있을 거예요.
작품 속 사제관계에 대해
두 인물 다 보편적인 캐릭터는 아니죠. 젊은 괴짜 학생과 늙은 괴짜 교수가 부딪히고 언쟁도 하지만 자연스럽게 대화도 하며 서로를 이해해요. 알고 보면 두 사람 모두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죠. 상처나 외로움 때문에 자기방어를 하기 위해 거만한 척 소리를 내는 것이지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가는 관계입니다.
고독을 다스리는 방법
사람들과 모여 웃고 떠들 때는 즐겁지만, 막상 자리에서 나와 헤어지고 나면 다들 홀로 집에 가잖아요. 죽음도 마찬가지고요. 아무리 사랑하는 부부라도 함께 세상을 떠날 수 있나요. 인간은 누구나 다 외롭고 고독한 존재예요. 그러니 오히려 즐기는 게 낫다는 거죠. 그렇다고 항상 고독한 건 아니잖아요. 사람을 만나면 이성 동성을 떠나 그이를 사랑하고요. 그렇게 따로 또 같이 고독을 친구처럼 여기며 아가야겠죠.
>>배우 이호성
뮤지컬 , 연극 , 외 다수, 영화 , 드라마 , 등 출연.1988 백상예술대상 신인상, 1993 제30회 동아연극상 남우주연상 등 수상.
>>음악극
일정 9월 21~10월 23일
장소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연출 김지호
출연 이호성, 안석환, 이현욱, 강영석
손성동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 ssdks@naver.com
몇 년 전 모 대학 교수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평생교육원에 다니고 있는 남성에게 가장 인기 있는 여성은 누구일까? 옷 잘 입는 여성? 돈 많은 여성? 요리 잘 하는 여성? 셋 다 아니다. 가장 인기 있는 여성은 단연코 ‘예쁜 여성’이었다. 젊으나 늙으나 남자에게는 예쁜 여성이 최고다. 남자는 참 단순하다. 사람마다 미의 기준이 다른 게 그나마 다행일 정도다.
그럼 평생교육원에 다니는 여성에게 가장 인기 있는 남성은 어떤 사람일까? 잘 생긴 남자? 돈 많은 남자? 근육질 남자? 모두 아니다. 여성이 가장 좋아하는 남성은 ‘연금 많이 받는 남자’다. 잘 생기거나 근육질 남성은 온전한 내 남자가 되기 힘들고, 돈 많은 남자는 자식들 차지이거나 분란의 소지가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정경제를 꾸려온 사람들답게 여성들은 참 현실적이다.
상대적으로 이성을 지배하는 좌뇌가 발달한 남성은 감성에 휘둘리고, 감성을 지배하는 우뇌가 발달한 여성은 이성에 좌우되는, 남녀관계는 정말로 모를 일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실버파산, 노후파산이라는 단어가 사회적 화두로 등장했다. 노후에 생계를 꾸려갈 만큼 수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파산이라는 달갑지 않은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현실적인 여성들이 미리 냄새를 맡고 연금에 손을 들어 준 이유를 알 만하다.
연금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노후에 일정한 주기로 일정액의 현금이 내 통장에 꽂히는 것. 일정한 주기는 매달일 수도, 분기일 수도, 매년일 수도 있다. 물론 매달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연금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지만 사람마다 연금에 부여하는 의미는 다를 수 있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세계적으로 유명인사인 오 노레드 발자크(1799~1850), 한스 안데르센(1805~1875), 오토 폰 비스마르크(1815~1878)를 통해 연금의 다양한 의미를 에이브러햄 매슬로(1908~1970)의 욕구 5단계설에 비춰 살펴보도록 하자.
오 노레드 발자크 : 절대적 생존 수단으로서의 연금
19세기 전반의 프랑스 소설가로 사실주의 선구자로 알려진 인물, 나폴레옹이 칼로 시작한 일을 자신은 펜으로 완성하겠다는 포부를 지닌 나폴레옹 숭배자, 이라는 90여 편의 소설로 구성된 소설 위의 소설을 구상한 혁신자, 짓누르는 눈꺼풀을 커피로 녹여 낸 커피 중독자…. 오노레 드 발자크를 지칭하는 말들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에서 발자크를 ‘현대 문학의 가장 위대한 노동자’ ‘환상적인 작업 기계’로 묘사한다. 사흘에 잉크병 하나를 비우고 펜 10개를 닳아 없앨 정도로 많은 글을 썼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기에 색다른 별명을 하나 더 붙이고 싶다. 바로 ‘연금 애호가 발자크’다.
발자크의 소설에는 유독 ‘연금’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언어학에서는 작가가 특정 주제에 관련된 어휘를 집중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면 그것이 곧 그 작품의 중심 테마일 확률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본다. 발자크가 그의 소설에 ‘연금’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곧 ‘연금’이 소설의 중심 테마임을 의미한다.
발자크가 연금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잠시 엿보기로 하자. 에서 발자크는 연금을 ‘열심히 일한 사람들의 한가로움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묘사한다. 에서는 딸의 사교 비용을 대느라 연금증서까지 팔아 치운 나머지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는 고리오 영감의 마지막 절규를 숨 막힐 정도로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 연금에 대한 발자크의 생각이 가장 잘 녹아 있는 대목은 에 나오는 하녀 나농의 이야기다.
“160㎝가 넘는 큰 키 때문에 키다리 나농이라 불리게 된 그녀는 35년 전부터 그랑데 집에 살고 있었다. 1년에 60리브르밖에 받지 못하지만 그녀는 소뮈르 지방에서 제일 부유한 하녀로 통했다. 35년 동안 60리브르를 차곡차곡 모은 결과 최근에 크뤼쇼 집에 4000리브르를 종신연금으로 맡길 수 있게 되었다. 오랫동안 이루어진 나농의 끈질긴 저축의 결과는 어마어마한 것으로 보였다. 하녀들은 그것이 고된 노역의 대가라는 사실은 생각지 않고 60대의 노파가 마련해 놓은 노후자금에 질투심을 드러내곤 했다.”
위 구절을 보면 연금에 대한 발자크의 생각과 당시 프랑스 사회를 읽어낼 수 있다. ①노후에 연금을 받으려면 오랜 기간 동안 차곡차곡 돈을 모아야 한다. ②연금은 고된 노역의 대가다. ③연금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④유력 집안이 금융회사를 대신해 연금을 지급한다. ⑤여자가 160㎝만 넘으면 큰 키로 인정받는다. ④와 ⑤번을 제외하면 요즘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발자크가 그의 소설 속에 연금을 자주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집안 내력과 극도의 경제적 궁핍을 겪은 경험에서 자연스레 나온 것이지 않을까. 츠바이크의 에는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다른 누구보다도 오래 살려는 그의 의지는, 가입자가 죽으면 남은 사람에게 연금이 덧붙여지는 이른바 톤틴식 연금에 들었다는 사정을 통해서 더욱 강화되었다.”
발자크는 자라면서 아버지로부터 연금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발자크는 젊었을 때 인쇄업과 활자제조업에서의 연이은 사업실패로 평생 빚더미에 짓눌려 살았다. 다시 츠바이크의 말이다. “3년 동안의 사업가 활동에서 얻게 된 10만프랑의 빚은 그에게 ‘시시포스의 돌’이 되었다. 그는 평생 근육을 거의 망가뜨리면서 이 돌을 꼭대기로 굴려 올리곤 했지만, 언제나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생애 최초의 이 잘못은 그를 언제까지나 채무자로 남도록 운명지었다. 자유롭게 창작하고 종속 없이 산다는 어린 시절의 꿈은 절대로 실현되지 않을 것이었다.”
발자크에게 연금은 생존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딱 생존의 문제였다. 빚의 노예로 노동자처럼 소설을 써야 했던 그이기에 같은 사회성 짙은 소설이든 같은 연애소설에도 어김없이 연금이 등장한다. 매슬로의 욕구 5단계설에 접목하면 1단계인 ‘생리적 욕구’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안데르센 : 복합적 의미로서의 연금
한스 안데르센은 소개가 필요 없을 만큼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덴마크의 동화작가다. 하지만 안데르센과 관련하여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야기도 있다. 바로 안데르센이 그렇게도 연금 받기를 원했다는 점이다. 안데르센은 젊은 시절 엄청난 고통과 각고의 노력 끝에 정상에 오른 인물이다. 그가 정상에 오르고 나서도 마음 한구석에 빈 곳이 있었으니 바로 연금이다. 그의 경쟁자이면서 자신보다 역량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는 사람은 연금을 받고 있는데, 국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자신은 연금을 받지 못하는 사실에 꽤 자존심도 상했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안데르센의 에 매료된 덴마크 총리가 그의 거처를 방문한다. 물론 안데르센은 그가 총리인지 모른다. 방문 목적과 자신의 신분을 밝힌 총리는 안데르센에게 어려운 점이 없는지 묻는다. 이에 안데르센은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연금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국왕 면담을 주선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인 총리는 돌아가 덴마크의 유명한 물리학자인 외르스테드를 통해 국왕 면담을 주선한다. 국왕과 면담 후 안데르센은 그렇게도 원하던 연금을 받게 되었는데, 그 장면과 감정을 자신의 자서전인 에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프레데릭 6세 때 이미 몇 년 전부터, 문학청년이나 예술가들을 해마다 선발해 여행 경비를 주는 제도 외에도, 이들 가운데서 이렇다 할 소득이 없는 사람들을 골라 많지 않은 돈이지만 연금을 주는 제도가 있었다. 대부분의 유명한 시인들이 모두 이 보조를 받고 있었다. 욀렌슐레게르, 잉게만, 하이베르그, 카를 빈터 등이 그런 사람들이었다. 헤르츠도 얼마 전부터 이걸 받고 있어, 그의 미래는 생계가 탄탄하게 보장되어 있었다. 나도 그럴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이 내 희망이자 소원이었다. 그 꿈이 이루어졌다. 프레데릭 6세는 내가 1년에 200릭스달러를 받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 나는 기쁘고 고마운 나머지 펄쩍펄쩍 뛰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단지 살기 위해서 억지로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 몸이 아프거나 병에 걸려도 마음 놓고 기댈 수 있는 확실한 버팀목이 생긴 것이다. 늘 신세를 지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바야흐로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이 시작되었다.”
안데르센이 연금을 받고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던 장면을 상상하면 웃음이 나온다. 안데르센이 연금에 집착한 이유는 뭘까? 하나는 안정적으로 창작활동에 몰두하기 위한 경제적 토대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안데르센은 여행을 매우 좋아했다. 당시 여행비용은 꽤 비쌌다. 여행을 통해 자신의 정신과 사상을 깊게 하고 넓혀 나갔던 안데르센은 여행을 포기할 수 없었다. 영국 여행에서는 찰스 디킨스를, 프랑스 여행에서는 빅토르 위고와 발자크 등 세계적 작가들을 만나고 교류했다. 결국 안데르센에게 연금은 더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경제적 안정 수단이었던 셈이다. 매슬로의 욕구5단계설의 두 번째 욕망인 ‘안전욕구’였다.
“여행은 마법의 물약처럼 마음을 정화하고 육체에 원기와 젊음을 불어넣는다. … 나의 내면에 보석 같은 소재들이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이 보석들을 제대로 다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이 보석들을 정력적으로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다듬어 종이에 옮겨 놓기 위해서는, 정신을 신선하게 재충전할 필요가 있다. 내게 있어서 여행은 정신을 정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나는 늘 더 젊어졌고 더 강해졌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연금을 통해 국왕으로부터 인정받는 명실상부한 명사의 반열에 오르고 싶은 욕구이지 않을까. 국왕과의 연결선이 없어 자신보다 못한 경쟁자가 연금받는 것을 부러워하고 시샘하던 안데르센이 드디어 자신도 그들의 리그에 속하게 된 것이다. 매슬로의 욕구5단계 중 3단계인 ‘사랑과 소속 욕구’를 쟁취한 셈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확실한 기반을 구축하는 덤까지 얻었다. 5단계 욕구 중 4단계인 ‘존경 욕구’를 충족하는 기쁨까지 누리게 된 것이다. 이처럼 안데르센에게 연금은 매우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 도구였던 것이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 : 정치 도구로서의 연금
비스마르크는 우리에게 독일의 철혈재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비스마르크가 철혈재상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당근과 채찍을 효율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리라. 그는 항상 한 손에는 채찍을, 다른 한 손에는 당근을 들고 다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78년 10월 9일 공산주의 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사회주의자법’ 제정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여지없이 다음과 같은 당근책을 제시한다.
“나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적극적으로 개선하며, 노동자들에게 기업 이윤의 배당을 보장하고, 기업의 경쟁력과 시장상황을 고려한 범위 내에서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는 모든 계획들을 후원할 예정입니다. … 만약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이성적인 방법으로 미래를 내다 보면서 노동자들의 운명을 개선하기 위한 긍정적인 방안을 제안한다면 나는 국가부조라는 이념을 염두에 두면서 자구책을 강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방안을 호의적으로 검토할 것입니다.”
1881년 3월 8일 산재보험법을 제안하면서는 “국가란 오직 유복한 사회계급의 보호를 위해서만 창안된 것이 아니다. 무산계급의 요구와 이익에도 봉사하는 복지기구”라고까지 강조했다. 1881년 11월 17일 자신이 직접 작성한 황제교서에서는 “사회적 폐단을 단지 사회민주주의의 과격행위를 탄압함으로써만이 아니라, 노동자 복지를 적극적으로 도모함으로써 척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4대 사회보장제도인 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은 사회주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비스마르크의 당근책의 일환으로 도입된 것이다. 비스마르크에게 연금은 5단계 욕구 중 가장 높은 단계인 ‘자아실현 욕구’의 실현 수단의 한 방편이었던 셈이다.
>> 손성동(孫盛東)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
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 역임. 현재는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로 있으면서 1인기업가를 꿈꾸고 있다. 공식블로그 ‘꿈꾸는 은퇴와 연금’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부산 동아대와 동서대에 출강하고 있다.
가족용 어드벤처 판타지 영화이다. 영국, 스페인, 벨기에가 무대로 나오고 조나단 뉴먼 감독이 만들었다. 주연에 아뉴린 바나드(머라이어 역), 마이클 쉰(채리티 역), 레나 헤디(모니카 역), 샘 닐(루거 역)이 나온다
무엇이든지 손에 닿기만 하면 금이 된다는 신화처럼, 무엇이든 상자 안에 담기만 하면 황금으로 만든다는 전설의 마이더스 박스를 찾아 모험한다는 줄거리이다. 원제는 '마이더스 상자의 저주'라고 번역된다.
이 상자가 악당의 손에 들어가면 단순히 그 악당만 부자가 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무제한으로 금을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에 경제학적으로 금의 희소가치가 떨어지면 전 세계 금융 질서가 무너져 대 혼란이 온다. 각국 은행이 보유한 금이 무용지물이 되어 금 본위 경제 질서가 무너지는 것이다. 금을 보유한 것에 바탕을 두고 화폐를 찍어내야 화폐 가치가 유지되는데 금 보유 없이 화폐를 찍어 내면 화폐 가치를 잃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상자는 공신력 아래 엄격히 통제 되어야 한다.
희소 광물인 금은 희소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용도도 많다. 광물에서 채취해야 하지만, 만들어낸다면 그야말로 대박이다. 그것도 화수분처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면 당사자에게는 엄청난 복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금을 만들어 내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금은 희소 광물이다. 금을 만들어 내는 방법이 없으니 이렇게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악당 루거는 박스를 열 열쇠를 차지하기 위해 머라이어의 부모와 동생을 납치한다. 부모님의 오랜 친구 채리티 대위가 부모와 동생이 있는 곳에 가려면 배를 타고 섬에 있는 호화 호텔에 잠입하여 박스를 찾아내야 한다며 머라이어가 가라고 한다. 머라이어는 섬에 도달하자마자 호텔 짐꾼으로 취업한다. 호텔은 온천이 여러 가지 질병에 효험이 있다 하여 손님들로 북적인다. 일손이 부족한 것이다. 머라이어는 호텔 짐꾼으로 일하면서 호텔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한다. 머리이어의 제복을 만들어준 여자 모니카에게 협조를 요청하지만, 일자리를 잃고 싶지 않다며 거절한다. 그러나 결국 머라이어의 요청을 들어 준다. 부모를 찾겠다는 절실함도 읽었지만, 머라이어에게 호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은 이성간에 끌리는 힘이 있어 그 사람이 좋으면 조건 없이 같은 편이 된다.
그렇게 시작한 모험은 머라이어가 가진 부적으로 문이 열리고 비밀 통로 등이 나타난다. 비밀의 방을 뒤지다 보니 호텔 전 주인이 살해당했다는 사실도 알아낸다. 지하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는 동생 펠릭스도 찾아낸다. 드디어 마이더스의 상자도 발견한다. 악당 루거는 머라이어를 추적하고 아버지 친구 채리티가 나타나 이들을 구해 낸다. 호텔에 오래 전부터 잠입해 있던 왕실 비밀요원들도 합세하여 드디어 악당 루거 일행을 처단한다. 마이더스 상자는 왕실에 바친다. 장차 원하면 왕실 비밀요원 자리는 추천해준다고 한다. 머라이어를 도왔던 여자 모니카는 아버지를 잃었지만 머라이어가 같이 살자고 권한다. 사랑으로 결실을 맺는 것이다.
마이더스 상자를 찾았으니 머라이어도 부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장면은 없다. 돈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돈은 오히려 충분하기보다는 알맞게 관리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마이더스 상자를 들춘 순간 재앙이 시작된다.
요즘 추세로 볼 때 이 영화는 유치하다. 스토리 전개가 뻔하다. 거대한 기계실, 비밀의 방, 마이더스의 상자 등이 등장하지만, 다른 데서 그 이상의 자극적인 소재를 많이 접하다 보니 그 정도는 만화 수준이다. 그러나 가족이 같이 보는 영화로는 그런대로 볼 만하다. 가족애가 있다. 상상이 있고 모험이 있다. 그리고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금의 가치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도 아이들 교육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청소년기는 필자의 영혼이 가장 순수하던 시절이었다. 그보다 어린 시절은 철이 없었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서는 힘들게 거센 파도와 싸워야 했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처자식을 위해 밤낮없이 뛰고 또 뛰었다. 이제 흰 머리 희끗희끗한 이순의 나이가 되어 생각해 본다. 그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맑은 영혼의 시기에 습득했던 한권의 책이 아니었나 싶다
⃟ 전율을 느끼며 보았던 한 권의 책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손때 묻은 책 한권, 그것은 다름아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썼다는 “명상록‘이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로마제국의 오현제 중 한 사람으로서 로마제국의 번성기를 누렸던 시대에 마지막 황제였다. 재임 기간의 거의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보낸 그는 전쟁터에서 틈틈이 자신에게 보내는 내용의 글을 써서 후대에 ’명상록‘이라는 책을 남겼다. 우리나라 이순신 장군도 전쟁하는 전쟁터에서 일기를 쓰셔서 ’난중일기‘라는 책으로 귀중한 자료로 남겨졌듯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총 12권의 책을 남겼다. 평범한 사람도 책 한 권 쓰기가 어려운데 그것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이러한 글을 남겼다는 자체가 범상치 않음을 느낀다.
⃟ 12권의 책 속에 인생의 길이 담겨 있어.
12권의 책은 배움, 인생, 운명, 죽음, 인간의 본성, 자연의 원리와 법칙, 우주의 지배적 이성, 선과 악, 자연에 순응하는 생활, 사회적 존재 영혼에 대하여, 도덕적 삶에 대하여 등 인생을 살아가는 지침서요 나침판의 역할을 하는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필자가 감명을 받았던 수많은 글들이 있지만, 그중 몇 문장만 요약해 본다
제4장 죽음에 대하여
출생과 마찬가지로 죽음 또한 자연의 신비이다. 출생은 원소의 결합이며, 죽음은 바로 원소의 분해인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죽음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질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며, 육체 구성의 논리에도 어긋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의 영혼이 죽은 후에도 모두 소멸하지 않는다면 대기는 태초 이래의 그 엄청난 영혼들을 어떻게 수용해 왔을까? - 중략- 그 영혼들은 대기 속에서 잠깐 머문 후에 불로 변하여 우주의 창조적 본원(本源)으로 돌아가, 다른 영혼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이다
죽어가는 환자들을 눈살을 찌푸린 채 진찰하곤 했던 많은 의사들 역시 죽어갔음를 기억하라.
당신과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도 하나씩 죽어갔음을 기억하라. 한 사람이 다음 사람을 묻어 주었고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 의해 파묻혔으며 그 사람도 또 다른 사람에 의해 무덤에 묻힌다. 요컨대 인생이 얼마다 허망하고 보잘것없는 것인가. 어제까지만 해도 피가 돌았는데 내일이면 미라나 한 줌의 재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얼마 안 되는 지상에서의 시간을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편안한 마음으로 당신의 여정을 마치도록 하라.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저 원헤정 옮긴 ‘청소년 명상록’ 글에서 >
⃟ 황제가 전해준 감동
동양의 진시황은 영생불멸하고자 온 신하를 세상에 보내어 ‘불로초’를 구해오도록 했다고 배웠다. 원래 사람이란 삶에 대한 욕구가 있어 일찍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어떠한 약을 구해 먹든지 더 건강하게 더 오래 살고 싶어 한다. 평범한 범인들의 모습이 이럴진대 높은 권력을 소유한 권력자들은 어땠을까? 진시황처럼 그 오랜 권력과 삶을 간구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 텐데 로마제국의 황제는 우리의 그런 편견을 깨어 버렸다. 그리고 죽음을 자연의 한 일부로 받아들이고 순응하라 말한다. 순응하며 자신의 여생을 편안하게 마치라고 한다. 어디 황제가 할 수 있는 말인가? 필자에게 감명을 주었고 지금껏 설렘을 주었던 이 12권의 책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필자뿐 아니라 수 많은 사람에게도 인생에 지침서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말한다. 자연에 순응하며 편안하게 여정을 끝 마치라고 .....
드물디드문 ‘90대 철학 교수’이자 글로써 1960~1970년대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김형석(金亨錫) 연세대 명예교수는 요즘 활발한 강연과 집필 활동을 통해 그야말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최근에 100세를 바라보며 만든 책 (덴스토리 펴냄)를 출간한 김 교수는 오랜 세월 동안 겪은 다양한 경험과 깨달음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담담하게 펼쳐놨다. 결코 흔치 않은 100년 동안의 시간을 경험한 노교수의 삶과 지혜를 살펴보자.
한 시절 젊은이들은 1960년대 등과 같은 그의 수필을 읽으면서 밤을 지새웠다. 김 교수의 수필을 읽던 청년들이 어느덧 50, 60대가 됐지만 지금도 그는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며 세상과 만나고 있다. 연세대 명예교수인 김형석 교수의 이야기다. 시대를 뛰어넘고 있는 김 교수는 최근 출판가에서 가장 ‘묵직한’ 저자다. 90살을 넘어 100살에 가까워진 김 교수지만 작년 한 해 동안 활발한 외부 활동으로 그 이름을 다시금 각인시키더니 와 의 두 저서가 베스트셀러에 오름으로써 스스로 현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작가임을 증명했다. 그런 그가 그동안 강연했던 내용을 묶어 사랑과 희망이 있는 이야기가 담긴 책 를 내놨다.
90대에 다시 맞이한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즐거움
“를 작년에 내놨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내놨던 와 를 개정하여 다시 출간했죠. 는 워낙 오래된 책이라 처음에는 출간이 어렵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출판사 사장이 직접 찾아와서, 자기 할아버지가 그 책을 꺼내 주면서 꼭 내라고 했다는 거예요.”
김 교수는 사람들이 예수를 객관적으로 알아야 하는데, 교회가 감싸니 예수가 어떤 화두를 가진 사람인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예수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찾아보자는 문제의식을 갖고 만든 책이 바로 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시대를 앞선 책이기도 했다.
“과거에 책이 나왔을 때는 호응이 없었는데, 지금 읽히기 시작하니 교회 안 사람이나 밖에 있는 사람이나 호응이 있고 반응이 좋아요. 젊었을 때 써서 지금보다 문장도 좋고. 내가 봐도 훌륭해(웃음).”
김 교수는 백 살이 가까운 지금도 200자 원고지에 친필로 글을 쓴다. 타자기는 안 쓰고 스마트폰도 안 쓴다. 그는 지난 1년 반 동안 조금 무리했다고 말했다.
“이라는 계간지에 1년에 200자 원고지 400장을 쓰는 게 있어요. 그런데 3개월 후에 쓰는 걸 반복하는 것보다는 원고를 미리 써놓는 게 좋겠다 싶어 한꺼번에 쓴 거죠. 그게 좀 무리가 됐어요. 그래서 금년에는 안 써요(웃음). 할 때 하자 싶어서 한 일인데, 그렇게 무리했던 게 나은 거 같아요.”
가족이 떠나니 집이 비고 친구가 떠나니 세상이 비었다
“우리 어머니가 100세에 돌아가셨습니다. 죽음을 담담한 운명으로 받아들이셨어요. 그분은 더 오래 사는 게 걱정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직계 중에 먼저 돌아가신 사람이 없는데 자신이 그보다 늦게 갈까 봐 그랬던 거예요.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한 달쯤 전에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면서 ‘내가 먼저 갈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그런데 나는 가면 되고, 네 처가 가게 되면 집이 빌 텐데 집이 비면 어떡하지?’라고 말씀하시데요. 어머니가 가시고 아내도 가고 그러니 정말 집이 빈 거예요. 외국 여행하고 돌아올 때 오고 싶지 않고 공항에 내려도 ‘빈 집에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있고 아침에 잠에서 깨면 아무도 없다는 걸 알게 됐죠. 어머니와 아내가 집이었어요.”
를 보면 김 교수의 절친한 친구인 김태길 교수와 안병욱 교수의 이야기가 나온다. 무엇보다 그의 인생에서 소중한 인연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두 친구, 서울대의 김태길 교수, 숭실대 안병욱 교수였다. ‘철학계의 삼총사’로 불렸던 이들은 반세기 동안 사랑이 있는 경쟁을 벌인 ‘축복받은 관계’였다. 도산 안창호 선생과 인촌 김성수 선생 다음으로 자신에게 가장 많은 가르침과 도움을 준 사람은 바로 이 두 친구였다고 그는 고백한다.
80대 중반쯤의 어느 날, 안 교수가 “더 늙기 전에 셋이서 1년에 네 번쯤 만나자”고 제안한다. 김태길 교수의 대답은 거절이었다. 이유는 “우리 셋이 다 80대 중반인데, 누군가 한 사람씩 먼저 떠나가야 할 테고, 그러면 다 보내고 남은 사람은 얼마나 힘들겠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이들은 멀리서 마음을 같이하면서 지냈고 김태길 교수는 2009년, 안병욱 교수는 2013년에 세상을 떠났다. 김 교수는 두 친구의 죽음을 겪으며 “집 식구가 떠나니까 집이 텅 빈 거 같은데 친구가 떠나니 세상이 빈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께서 떠나고 5년쯤 지나고 나니 친구들이 가기 시작하는데 둘이 비슷한 때 가더라고. 세상이 비는 거 같았어요. 남들은 잘 몰라요, 나는 그걸 왜 느끼느냐 하면 친구다운 친구를 가졌기 때문이었죠. 독일의 괴테가 임종할 때 의식이 흐려져서 환상 비슷한 걸 보게 되는데 바람에 종이가 날아가는 걸 보더니 저거 쉴러의 편지인데 날아가는 거 아니냐며 걱정했다고 해요, 야스퍼스는 막스 베버가 세상을 떠나자 한 1년 동안 아무것도 못했다고 하고.”
그는 자신도 ‘이젠 인생 마감을 어떻게 할까를 더 많이 생각한다’며 “죽음을 생각하지만 두렵지는 않다”고 말했다.
“뭔가 남길 수 있는 사람은 감사한 거죠. 내가 있어서 행복한 사람이 있었고, 내가 있어서 인생을 아름답게 산 사람도 있었고, 내가 있어서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 나눈 사람이 있었다면 그게 저한텐 남는 것이지요.”
행복은 인격에서부터 시작
나이 들어서 행복을 맛본다는 건 쉽지 않다. 김 교수는 나이 들어 경험할 수 있는 행복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철학자 가운데 가장 원로 철학자가 아리스토텔레스거든요. 그가 윤리학을 가장 처음 쓴 사람인데 윤리학에서 하는 말이 ‘행복은 누구나 원한다. 그리고 인격이 최고의 행복이다’라는 말이에요. 내 인격이 행복을 만들어서 줄 수 있고 다른 사람이 행복을 내게 주고 행복이란 그렇게 나눠서 쌓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행복을 만드는 인격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죠. 윤리학자가 문제를 제기하고 결론을 내놓은 셈이에요.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이 들면서 행복도 커지는 거죠. 나이 들면서 행복해지는 게 인생인 겁니다.”
인격이 최고의 행복이라면, 그 인격이란 무엇일까? 김 교수는 철학자들이나 윤리학자들은 인격을 두 가지로 나눠서 본다고 설명했다.
“인격이란 나에게 있어서 성실하게 사는 것, 그리고 이웃에 대해선 사랑을 가지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성실과 사랑이에요. 성실한 사람은 항상 노력하고 성장하는 사람입니다. 성실한 사람은 자기를 알기 때문에 겸손합니다. 성실한 사람에게는 진실이 있고, 성실보다 더 귀한 인격은 자신에게 있어선 없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문제의식을 가짐으로써 철학자가 된다
김 교수의 친구 안병욱 교수는 가장 성실하게 산 사람을 공자로 봤다고 한다. 공자는 성실했기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았다는 것이다. 석가나 예수는 공자가 한계로 느낀 걸 종교로 해결하고자 했다. 그래서 예수는 성실에 경건이 더해진 철학을 만들었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성실만 갖고 있으면 종교로 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호수에 바람이 불거나 파도가 치면 달그림자가 안 뜹니다. 그런데 조용해지면 달그림자, 별 그림자를 볼 수 있죠. 경건하다는 건 이성이 작용을 멈췄을 때 모든 걸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호수가 조용해졌을 때 별 그림자가 뜨는 것 같은 상태죠. 그때 종교가 오게 됩니다.”
김 교수는 철학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철학이 있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
“아마 이렇게 보면 좋을 거예요.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중고등학교 교사로 있는 제자를 만난 적이 있어요. 그가 나 보고 4년 동안 대학을 다니고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학교에서 배운 건 다 잊어버렸다고 했습니다. 나도 그런 현상을 잘 알죠. 인상은 남아 있는데 기억을 못하는 것. 알지만 이상하죠? 난 대학 다닐 때 강의 들었던 것, 읽었던 책을 다 기억하는데. 나는 기억력이 좋은 게 아니라 문제의식이 있었던 겁니다. 강의 듣는 것, 책을 읽는 것 다 문제의식이 그릇이 되어 거기에 담았습니다. 그러니 잊을 수 없게 된 겁니다. 철학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습니다. 일류 대학을 나와서도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졸업하면 평범해집니다. 반면 일류 대학이 아니더라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살면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즉 철학적 사유를 가진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평생 동안, 나에게는 두 별이 있었다
김 교수의 아우라는 긍정적이다. 불안한 요인이 섞여 있지 않다. 아흔을 넘어 백세로 가는 이에게 그러한 긍정의 힘은 놀랍고 희귀한 사례다. 그에게도 하지 않으면 후회될 게 있을까?
“93세 때 밤에 자다가 ‘지금까지 살아온 동안을 정리하면 뭐가 될까?’ 싶었어요. 그래서 일어나서 메모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잤어요. 메모는 세 문장이었습니다. ‘나에게는 두 별이 있었다. 진리를 찾아가는 그리움과 겨레를 위한 마음이었다. 그 짐은 무거웠으나 사랑이 있었기에 행복했다.’ 철학자로서의 나는 진리를 추구했고 사회적으로는 겨레들이 좀 더 잘 살았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우리 시대는 일제강점기, 공산 치하를 겪어야 했으니. 못해서 아쉽겠다는 건 그 두 가지를 위해서 좀 더 일했으면 좋았겠다는 겁니다. 가끔씩 인터뷰를 하면 기자들이 ‘젊었을 때 낭만이 있었느냐, 연애는 했느냐, 연애 결혼했느냐 중매 결혼했느냐 같은 걸 묻는데 속으론 ‘그건 왜 물어봐. 관심 밖이야’라고 말하곤 해요(웃음).”
김 교수는 자신이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나와 우리를 위해 마음 써줬는데 고마운 사람이다.’
“를 쓰고 나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거 같아서 홀가분해요. 아쉽냐고요? 그런 건 생각 안 나요. 이 책 한 권만 쓰고 끝나는 게 아니라 또 쓸 거니까.”
지혜가 묻어나오는 그의 저서에는 ‘성실’을 표현해내는 인격이 반짝인다. 그래서 김 교수의 책은 그리울 수밖에 없다.
>> 김형석 교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민주화 운동기를 거쳤고,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연을 듣고 성장했으며 윤동주 시인과 같은 반에서 공부했다. 또 김수환 추기경은 후배로, 인촌 김성수 선생은 멘토로 많은 가르침을 준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60세에 뇌출혈로 쓰러져 20년간 투병 한 아내를 떠나보낸 후 연희동 주택에서 10여 년째 홀로 살고 있다. 4녀 2남의 자녀들에게도 “나를 위해 마음 쓰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며 고독을 견디기 위해 글을 썼고, 책을 읽고, 강연을 하는 삶이 무르익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