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식 번역가( 저자)
나이를 먹긴 먹었는지, 요즘 들어 내 인생을 자주 되돌아보게 됩니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다 할 수 있을까? 만년에 이르러서야 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너무 소박해서 성공적인 삶이라 주장하긴 낯간지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1) 나보다 나은 삶을 사는 자식을 지켜보는 것
2)손주들과 즐겁게 노는 것
3)
사주나 점을 믿지는 않지만, 매번 '무난’, ‘평탄’ 같은 단어가 튀어 나온다. 전반적으로 필자 삶을 돌아 볼 때 과연 맞는 말인 것 같다.
인생 전반의 삶
인생의 여러 중대사가 결정되는 1970년대가 필자 20대 나이였다. 그 시기 대학교에 입학하고 군대에 갔다 오고 취직해서 결혼했으니 말이다. 아들딸까지 낳았으니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운이 좋았는지
필자는 1944년 2월 16일 태어났다. 당시는 각박한 삶의 시대이기도 하지만 여명이 바로 문밖인 시기이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2차 세계대전 막바지로 일제가 최악의 모습을 보였던 시기라 민간의 식량이 부족할 대로 부족했기 때문에 산모가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했다. 애를 낳았는데 자라지 못하여 큰 쥐만 하더라”는 말을 곧잘 했다. 좋은 점이라면 출산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만 3년1개월의 종지부를 찍고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되었으나 전쟁의 후유증으로 피폐해진 농촌은 더욱 먹고살기가 어려워졌다. 필자는 휴전이 끝난 직후인 53년 8월 14일 경기 부천시 영종면 중산리 1385(현 인천 중구 중산동)에서 5남 3녀의 일곱 번째로 태어났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채
가난은 나의 스승
지난 세월에 살아온 길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니 나이가 들었다는 걸 실감한다. 한편으로는 살아온 길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전쟁 직후 태어나 1960년대 중고등학교에 다녔고, 70년대 초에 대학을 다녔다. 이후 80~90년대 비약적인 경제 발전으로 이제는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었다. 가장 빈곤한 나라에서 태어나 가장 급속한 발전으로
첫번째 오남매가족사진, 1번 임산부필자 3번 40대의필자 4번 빛바랜 가족사진들 6번 두딸과 필자모습
카네이션 꽃들이 만발하는 5월이 되면 유년 시절의 필자는 그리움 반 미움 반으로 시들어진 꽃다발을 가슴에 품고 엄마를 그리다 잠이 들곤 했다. 어린 마음속에서 흘린 눈물은 차곡차곡 쌓여 강하고 모진 모성애를 잉태하기 시작했다.
눈물 속의
최성환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4년여 전 필자가 은퇴연구소 소장이 되었을 당시만 해도 은퇴연구소라는 곳이 생소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주위의 친구와 동료, 후배들뿐 아니라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은퇴를 하신 선배님들께서도 많은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셨다. 몇몇 분은 도대체 은퇴연구소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
이봉규 시사평론가
중년이 돼서도 예쁜 여자나 ‘쭉쭉빵빵’한 몸매의 여인들을 보면 눈이 자동으로 돌아간다.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품고 싶은 욕망을 느끼지만 어쩔 수 없이 눈요기만 한다. 수컷 본능이다. 암컷들은 수컷에 비해 소극적이기 때문에 멋진 남성을 대놓고 쳐다보지 못하고 드라마를 보면서 눈요기를 즐기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한다.
드라마
밥만 해 먹는 여자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폐업 하고나서 꼭, 10년! 집에서 밥만 해먹고 사회활동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밥만 해 먹으면서 가정 살림만 한다고 하면 누구든지 한심하게 본다. 그것도 그럴 것이, 사회활동을 해야만 훌륭하고 대단하게 여겨 주는 것이 요즘 사회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집에만 있다. 그렇다고 살림살이
어여쁜 자연과 이국적인 풍광으로 여행객의 마음을 흠뻑 사로잡는 땅이다. 그러나 제주를 동경하는 ‘이상’과 제주에 이주하는 ‘현실’은 다르다. 자신의 취향, 소통 문제, 경제적 득실 등 충분한 고려하지 않으면 제주이주는 온갖 고통만 양산할 수 있다.
사람들은 여행 중에 대개 “아! 아름답다. 또 와야지”라고 생각한다. 휴가철이나 휴일에 있는 틈 없는 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