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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로 본 불안의 심리학
- 공포 영화가 무서운 이유 중의 하나는 괴롭히는 적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해치는 적이 눈앞에 있는데 그자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증권가의 오래된 말에는 ‘소문에 사고 사실에 판다’는 게 있다. 인간의 불안 심리를 잘 표현한 말로 들린다. 실제와 상관없이 사실이 아닌, 혹은 사실 이전에 세상에 떠도는 안개와 같은 불안이라는 심리는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 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기도 한다. 위정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불안 심리는 안정을 해치는 매우 위험한 사태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불안한 심리와 사실을 잘 관리하지 못해 나라를 위험에 빠뜨린 일은 역사 속에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것이 임진왜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온 정사와 부사의 보고가 달라 온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정사 황윤길은 전쟁이 난다는 견해였고 부사 김성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을 벌일 위인이 못 된다고 했다. 김성일이 그런 잘못된 보고를 하게 된 이유로, 당파 간 대립 관계도 작용했지만, 백성들이 불안해 할 것이란 명분도 있었다. 불안을 다스린답시고 사실을 외면한 판단이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은 사례다. 그만큼 불안과 공포는 안정을 해치는 위험한 것이고 국가의 흥망성쇠까지 가르는 것이니 정서를 잘 관리하는 것이 정치의 요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때로는 사실을 은폐하면서까지 공포를 억누르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중국의 흔한 사례처럼 언론을 통제하면서까지 진실을 감추고 위험은 끝났다고 강변하는 경우다. 정치적으로 혼란을 없앴으니 일시적으로는 잘하는 통치로 포장할 수 있겠으나 막대한 희생은 언젠가 치러야 한다. 실체가 없는 불안은 얼마 안가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근거 있는 대부분의 불안은, 지진을 앞두고 부산한 동물들의 움직임처럼 그것이 일어나고야 말리라는 것을 감지하는 본능적인 움직임이다. 그런 느낌을 인위적으로 차단하려 하거나 선의로 포장된 안이함은 참극을 불러온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그러한 정책 실패를 낱낱이 기록한 현장 보고서다. 결국, 많은 재난은 인재라는 결론에 귀결된다. 불안은 사실의 여부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의 소통이 막힐 때 감염된다. 수백 년간의 페스트 공포가 과학으로 극복되었듯이 과학적 진실의 햇빛만이 ‘코로나 불안’의 안개를 물리칠 것이다.
- 2020-03-17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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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시장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영등포 전통시장
- 설을 앞두고 영등포 전통시장을 찾아갔다. 설 대목이라서 시장 전체가 깨끗하게 정리됐다. 옛날 상품들이 거의 모두 갖춰져 있는 게 영등포 전통시장의 특징이다. 상인들은 영등포 전통시장을 “서민들의 쉼터와 같은 곳” 또는 “옛 시골 시장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곳”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시장 골목이 오래되기도 하고 아직 리모델링도 안 돼 허름하고 다소 복잡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정감을 느끼게 하는 시장이다. 현장에서 느낀 영등포 전통시장의 특징을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해 본다. 첫째 다른 곳에서 팔지 않는 독특한 물건을 판다. 옛날 제주도에서 목욕할 때 발뒷꿈치의 각질을 제거하는 데 쓰던 귀중한 돌을 팔고 있었다. 현무암으로 작은 구멍이 나 있고 바다에서 볼 수 있는 가벼운 돌이다. 197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그 돌로 발뒷꿈치의 굳은살을 없애는 데 쓰곤 했다. 지금도 찾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과거 제사를 지내던 제사용 도구도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옛날 모습 그대로 제작을 해서 팔고 있었다. 나무로 만든 옛날 촛대, 잔, 그릇 등이 보였다. 둘째 물건 대부분이 싸다. 서민들이 찾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옷 종류, 신발, 가구, 주방용품, 음식 등이 모두 싼 값에 팔리고 있다. 콩국수 2000원, 고급부추 5000원, 대형머플러 3000원, 고급장갑 3900원, 티셔츠 5000원, 이발 5000원, 염색 5000원, 세발(머리를 감고 다듬는 것) 2000원 등이었다. 셋째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상품 종류가 다양했다. 다른 곳에서 구하기 힘든 것도 영등포 전통시장에 가면 구할 수 있다. 각종 약초, 옛날 방한복, 군 전용 잠바, 세계 주류 할인점, 옛날 술, 개량 한복, 각종 털실, 만물상회, 올갱이 해장국, 인삼, 옛날 고향 순댓국집 등을 볼 수 있었다. 넷째 우리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한 물건들이 많았다. 옷을 짜던 편물짜집기, 이름 짓는 곳, 모시 전문, 자수, 옛 방앗간, 메밀가루, 전통식품 등등.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사람들이 많이 찾는 시장이다. 그러나 시장 건물이 너무 오래돼 안전문제 등이 염려된다. 리모델링이라도 해서 전통시장으로 맥을 이어가게 했으면 좋겠다.
- 2020-01-14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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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라언덕 넘어 김광석골목까지, 시간을 거슬러 걷는 길
- 대구 청라언덕으로 가는 길에 가곡 ‘동무생각’을 흥얼거렸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나리꽃 향내 맡으며….” 어릴 적 배운 노래인데도 노랫말이 또렷이 떠올랐다. 우리나라 근대 풍경을 묘사한 벽화 골목을 지나자 야트막한 언덕이 나타났다. 정원으로 가꾼 언덕 위에 붉은 벽돌로 지은 서양 주택 세 채가 그림처럼 자리했다. 청라언덕은 상상했던 것만큼 아름다웠다. 걷기 코스 동대구역▶ 버스▶동산 청라언덕▶ 3·1만세운동길 계단▶ 계산성당▶ 이상화고택▶ 서상돈고택▶ 마당깊은집▶ 교남YMCA▶ 대구기독교역사과(구 제일교회)▶ 약령시한의약박물관▶ 진골목(종로)▶ 화교협회(화교소학교)▶버스▶ 김광석골목 청라언덕에서 부르는 연가 1890년대 조선에 들어온 미국인 기독교 선교사들은 동산언덕을 사들여 주택, 교회, 병원을 지었다. 푸른 담쟁이넝쿨이 붉은 벽돌로 지은 주택을 휘감았다. 대구읍성 동쪽 언덕이었던 동산은 이때부터 푸를 靑(청)과 담쟁이 蘿(라) 자를 써 ‘청라언덕’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1910년경 선교사들이 지은 서양 주택 세 채가 남아 있다. 선교사 이름을 딴 스윗즈 주택, 챔니스 주택, 블레어 주택이 그것. 미국식 방갈로 형태로 지은 주택 둘레에 나무가 우거진 정원과 산책로를 조성해 이국적 정취를 더했다. 이 건물들은 각각 선교박물관, 의료박물관, 교육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900년대 전후의 서양 의료기기들과 외국인 선교사들의 선교 활동, 3·1운동 역사에 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챔니스 주택과 블레어 주택 사이에서 대구 출신 작곡가 박태준(1900~1986)이 곡을 붙인 ‘동무생각’ 노래비를 찾았다. 이 노래에 작곡가의 러브 스토리가 담겨 있을 줄이야. 박태준이 고교생 시절 한 여학생을 짝사랑했는데, 훗날 이 사연을 들은 이은상 시인이 노랫말을 써줬다고 한다. ‘동무생각’의 ‘동무’는 동성 친구가 아닌 이성이었던 것. 청라언덕에서 계산동으로 넘어가기 위해 3·1만세운동길 계단을 내려간다. 좁고 가파른 이 계단은 1919년 대구 3·1만세운동 당시 고교생들이 일본의 눈을 피해 집결지로 이동했던 통로였다. 계단 중간쯤에 멈춰 서니 가로수 위로 우뚝 솟은 계산성당 쌍탑이 보인다. 대구의 예술가를 만나는 골목길 계단을 내려와 큰길을 건너면 곧 계산성당 앞이다. 계산성당은 100여 년 동안 이 터를 수호하듯 하늘을 향해 뾰족한 쌍탑을 얹고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다. 외국인 여행자들 눈에도 멋있어 보이는지 성당을 배경 삼아 기념 촬영을 하느라 분주하다. 성당 뒤쪽에는 민족시인 이상화(1901~1943)와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던 민족운동가 서상돈(1850~1913)의 고택이 골목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이상화는 1934년부터 1943년 사망하기 전까지 이 집에 살면서 수많은 항일 시를 남겼다. 그가 해방된 조국을 보았다면 자신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 대한 답시를 짓지 않았을까. 두 고택 앞을 지나는 골목에는 시인 이상화, 소설가 현진건, 화가 이인성 등 대구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모여 살았다 하여 ‘예술가 골목’으로 불리기도 했다. 최근 이 골목에 한국전쟁 직후 대구를 배경으로 한, 한 소년의 성장소설 ‘마당 깊은 집’(1988)의 문학체험공간이 들어섰다. 이 소설은 김원일(1942~)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한데 드라마로도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다. 이곳에서 5분 정도 걸으면 3·1만세운동 때 주요 지도자들이 회의했던 대구 구 교남YMCA 회관과 1893년에 지은 대구기독교역사관(구 대구제일교회)을 만난다. 모두 문화재로 지정된 근대건축물이다. 한약재 향 머금은 약전골목 대구기독교역사관 옆에는 약령시한의약박물관이 자리했다. 2층에서는 사상체질 진단, 무료 한방차 시음, 족욕 체험, 한방비누 만들기 등의 다채로운 한방 체험을 할 수 있다. 한의약박물관 골목 일대는 한약재상이 밀집한 약전골목이다. 카페에서도 한방차를 판다. 이 골목에선 늘 한약재를 달이는 냄새가 달달하게 풍겨온다. 약전골목을 빠져나와 조선시대 영남지방 선비들이 과거 보러 한양 가던 길, 영남대로를 걷는다. 대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한약재 상점과 음식점, 카페 등이 모여 있는 좁은 골목길이다. 과거 보러 가는 선비에 얽힌 이야기를 그린 담장 벽화가 소소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벽화보다 눈길을 끈 것은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선 칼국수집이다. 대기하던 손님이 “이 집이 유명한 원조 칼국수집인데요, 빵게를 넣고 얼큰하게 끓여 맛이 기가 막혀요” 하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다. 김이 펄펄 솟는 칼국수 찜통을 아쉽게 바라보며 다음 대구 여행을 기약한다. 넓은 종로 긴 진골목 영남대로에서 한 블록 위로 올라가면 열십자 모양의 대로인 종로가 있다. 종로 인근에 부자 동네였던 진골목과 약전골목이 있어 요정, 권번 같은 유흥 시설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도 한약재상과 음식점, 전통시장, 백화점 등이 자리한 대형 상권을 이루고 있다. 종로에는 화교의 역사도 공존한다. 근대에 화교들이 정착해 요식업, 포목업 등을 하며 살았다. 이들은 대구 갑부 서병국의 저택을 매입해 화교협회 건물로 사용했고, 그 앞에 화교 소학교를 세웠다. 근대건축물인 화교협회 건물은 예약(053-255-0561)한 후 관람할 수 있다. 차와 사람이 뒤섞여 지나다니는 종로를 걷다 진골목으로 숨어든다. ‘진’은 ‘길다’의 경상도 사투리 ‘질다’에서 비롯됐다. 조선시대에도 있던 골목이며, 근대에는 재력가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진골목 명소인 정소아과의원은 1937년에 지은 서양식 주택으로 소설 ‘마당 깊은 집’에도 등장한다. 노인들과 예술가들이 즐겨 찾는 미도다방도 이곳 터줏대감이다. 한때 유학자가 많이 방문해 양반다방이라 불리기도 했다고. 골목이 긴 만큼 옛이야기도 끊이지 않는다. 또다시 김광석다시그리기길 진골목까지 둘러본 뒤 버스를 타고 방천시장 인근 김광석골목을 찾아간다. 대구에 오면 왠지 꼭 들러야 할 것 같다. 애잔한 그의 목소리와 어울리는 계절, 늦가을엔 더욱더 그렇다. 김광석(1964~1996)이 방천시장 골목에서 태어난 인연으로 이 골목이 조성됐다. 350m쯤 되는 골목 입구에서 김광석의 기타를 본뜬 대형 조형물이 반긴다. 골목 담벼락에는 한몸 같았던 기타를 품에 안고 하회탈처럼 웃음 짓던 김광석과 그의 노래들이 벽화로 되살아났다. 오토바이를 탄 김광석은 그림 속에서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 실감난다. 그가 포장마차에서 우동 한 그릇을 건네는 벽화 앞에 앉아 골목으로 흐르는 노래를 듣는다.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설 수 없어 지친 그대 곁에 머물고 싶지만 떠날 수밖에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오늘도 그의 노래에 위로받는다. 주변 명소 & 맛집 안지랑 곱창골목 안지랑 동네의 넓고 긴 골목 양옆으로는 곱창집이 늘어서 있다. 식당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상가 규모가 크다. 안지랑에서 곱창을 주문할 때는 1인분, 2인분 단위로 주문하지 않는다. 꼭 한 바가지, 두 바가지로 주문할 것. 한 바가지는 500g이다. 매운 양념을 한 불곱창과 곱창, 막창 등의 메뉴가 있는데 숯불에 한 번 더 구워 불맛을 더한 불곱창이 인기다. 메뉴를 고르기 어려울 땐 반반 주문을 해보자. 동인동 매운찜갈비 골목 대구 사람들은 매운 음식을 즐겨 먹는데, 그 이유는 여름에 너무 더워서란다. 이열치열로 더위를 이기겠다는 전략 음식인 셈이다. 서문시장에 매운양념어묵이 있다면, 동인동에는 매운찜갈비가 있다. 굵게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를 아낌없이 넣어 만든 새빨간 양념이 갈비를 뒤덮고 있다. 보기보다 맵진 않다. 매콤하고 짭조름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조화롭다. 양은이나 스테인리스로 만든 양푼에 찜갈비를 내놓는 것이 특징이다. 낙영찜갈비, 봉산찜갈비, 싱글벙글찜갈비 식당이 유명하다. 별난 먹을거리 천국 서문시장 대구 최대 시장인 서문시장에는 5000여 개의 점포가 성업 중이다. 대구가 패션 섬유 도시로 이름난 만큼 원단, 한복, 의류 관련 제품을 파는 매장이 많다. 먹을거리도 풍성하다. 납작만두, 칼제비, 삼겹살자장면, 매운양념어묵 등 타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독특한 음식을 판다. 납작만두는 당면으로 만든 엄지손톱 크기의 만두소를 얇은 만두피로 감싸 지진 것이다. 매운양념어묵은 맵게 조린 어묵 위에 콩나물을 수북이 올린 것인데 아귀찜과 흡사하다. 자장면에 노릇하게 구운 삼겹살 열 조각을 올려주는 삼겹살자장면이야말로 서문시장의 독보적 아이템이다. 여행 정보 걷기 Tip • 중구 도심의 근대문화유산을 탐방하는 걷기 코스 ‘근대로의 여행’은 총 5개 코스로 이뤄져 있다. 본문에 소개한 코스가 가장 인기 있는 2코스 ‘근대문화골목’이다. 매주 토요일 10:00, 14:00 두 차례 무료 정기해설을 진행한다. 신청은 대구시 공식 홈페이지에서 하면 된다. • 서문시장은 2코스 걷기 전후에 가면 좋다. 걷고 난 뒤 들를 경우 김광석골목을 먼저 둘러보고, 2코스 근대문화골목길을 역순으로 걸으면 된다. 청라언덕에서 서문시장까지는 도보 10분 거리다.
- 2019-11-28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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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하게 걷고 실비로 먹는 ‘Road & Food’
- 트레킹과 맛집 순례가 대세다, 방송과 각종 매체들이 국내는 물론 산티아고 순례길 등 해외 코스까지 샅샅이 소개하고 있다. 과장되고 억지스런 스토리가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경쟁적으로 취재에 나섰으니 뭔가 성과를 보여줘야겠고, 그러다 보니 무리한 소개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시니어 세대를 위한 길과 맛 소개는 소홀하다. 시청률이나 구매력 면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시니어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동년기자들을 통해 편하게 걸으면서 그 지역의 특별한 맛도 즐길 수 있는 ‘Road & Food’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탐라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제주는 유네스코가 2002년에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이어 2007년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으며, 2010년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받았다. 유네스코 3관왕인 셈이다. 문화유산이 아닌 자연유산이니 ‘자연’에 방점이 찍힌 지역이라는 얘기다. 그만한 가치를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었나? 동년기자들은 솔직히 제대로 몰랐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그 죗값(?)을 치를 겸 제주도를 상세히 돌아보고자 4박 5일간의 일정을 촘촘하게 짰다. 다소 무리해서 차도 빌리기로 했다. 렌트 비용은 생각보다 쌌다! 공항 바로 옆 ‘렌터카’ 업체에서 렌트하자마자 제주 출신 동년기자가 바로 근처에 제주 오일장이 있으니 가보잔다. 제주시 민속 오일장은 규모도 크고 전국에서 손꼽히는 장터라며 열을 올린다. 끌려가다시피 오일장이 열리는 곳으로 갔다. 가성비 좋은 제주 맛집 오일장이 서는 곳 바로 옆에 별도의 시장이 있다. 그 이름은 할망장터. 제주시가 할머니들을 위해 내준 장터로, 자리 사용료는 받지 않고 전기 사용료 명목으로 하루 1000원만 받는단다. 65세 이상 할망 200여 명이 산과 들, 텃밭에서 가져온 야채와 과일 등을 판다. 할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낸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다. 지방자치단체가 꽤 기특한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망장터 앞, 할망빙떡집에서 전병을 말고 있는 할망이 있다. 메밀빈대떡을 부쳐 그 속에 익힌 무채만을 넣어 만든 게 빙떡이란다. 메밀전병과 비슷하다. 제주에서는 제사상에도 올리고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만들어 먹는다. 간은 약간 싱겁다. 그래서 자꾸 손이 가게 되고 많이 먹어도 부담이 없다. 장터에서 가장 인기 높다는 ‘춘향이네 식당’으로 향했다. 직원이 카메라를 보더니 한사코 파전을 먹어보란다. 아침부터 웬 파전? 주위를 둘러보니 손님들이 국밥과 파전을 먹고 있다. 속는 셈치고 시켰다. 독특한 파전 맛, 괜찮다. 국밥 세 그릇 1만8000원, 파전 1만 원, 세 명이 배부르게 먹고 2만8000원을 냈다. 요즘 말로 가성비 괜찮은 식당이네! 제주 시내의 물회 식당 소개는 생략한다. 방송을 많이 타서 손님이 줄을 서 있는데, 가격대가 만만치 않고 차별화된 맛도 느낄 수 없었다. 곶자왈 휴양림에서 힐링 세계에서 유일하게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제주도의 독특한 숲 또는 지형을 일컫는 곶자왈은 나무·덩굴식물·암석 등이 뒤섞여 수풀처럼 우거져 있는 곳을 지칭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형성된 용암에 따라 크게 4지역에 걸쳐 분포한다. 이른바 한경-안덕 곶자왈 지대, 애월 곶자왈 지대, 조천-함덕 곶자왈 지대, 구좌-성산 곶자왈 지대다. 그중 조천-함덕 곶자왈 지대에 있는 교래자연휴양림을 찾았다. 제주의 걷는 길 대부분이 그렇듯 천천히 걷기 좋은 자연휴양림이다. 시니어를 위한 1시간짜리 산책 코스로, 제주 방문 첫날 몸 풀 장소로 제격이다. 휴양림에서 힐링을 한 후 현지에서 합류한 지인이 예정에 없던 제안을 했다. 1년 가까이 운영해오다 10월 27일 끝나게 될 ‘빛의 벙커:클림트’를 관람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시큰둥해했으나 ‘키스’ 작품으로 유명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을 주제로 한 전시란 말에 구미가 당겼다. 차를 타고 찾아간 ‘빛의 벙커’는 뜻하지 않은 첫날의 큰 행운이었다. 1시간 반가량 환상적인 음악과 미술이 조화를 이룬 빛의 향연을 즐겼다. 더 매혹적인 볼거리는 관람하는 젊은이들. 바닥 곳곳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앉아 힐링하는 모습이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의 순간에 충실하라는 의미의 라틴어)을 배운 세대들이라서? 제주에서의 첫날을 보내며 어쨌든 ‘낡은 세대들’로서는 꿈도 못 꾸던 자유분방한 모습의 젊은 영혼들을 바라보며 왠지 모르게 뿌듯해졌다. 덕분에 함께 힐링한 셈이 됐다. 저녁식사를 한 흑돼지구이식당 역시 소개를 생략한다. 이번 취재기간에 먹은 제주의 흑돼지 맛은 다 우수했다. 따라서 어느 식당을 특정하기보다는 코스에 맞춰 부근에 있는 흑돼지 식당을 찾기를 권한다. 주머니 사정은 좀 고려해야 할 듯. 둘째 날 취재에도 행운이 따라주기를 기대하며 숙소로 향했다. (12월호에 이어짐)
- 2019-11-1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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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도 크고 통은 더 큰 사람 백범, 그가 머문 숲
- 걷기 쉬운 둘레길이다. 산이 높지 않고 구간 거리도 짧은 편이니까. ‘백범 명상길’ 2코스(3km)를 걸을 경우 한 시간 반이 소요된다. 볼 것 많은 거찰, 마곡사 답사도 즐겁다. ‘정감록’은 마곡사 일대를 난리를 피할 수 있는 십승지의 하나로 꼽았다. 마곡사(麻谷寺) 들머리. 노보살의 허리가 기역자(子)로 휘었다. 향초가 들었을까? 야윈 등허리에서 작은 배낭이 대롱거린다. 그마저 무거워서겠지. 발걸음은 추를 매단 듯 더디다. 하지만 아랑곳없다. 안간힘을 다해 오르고 또 오른다. 노인은 오늘 불단 앞에 엎드려 알량한 아들놈의 복덕을 빌려나? 까마득한 고대에도 우리네 어머니들은 저렇게 절을 찾았을 게다. 부처 아니고선 기댈 언덕이 없어, 삶의 절박한 굽이를 만날 때마다 산을 올랐을 게다. 모든 어머니의 모든 기도는 시공을 초월해 애절하다. 불자들만 절을 찾는 건 아니다. 세상 쓴맛을 본 사람들도 곧잘 절집을 찾아든다. 백범 김구. 그도 마곡사에서 짧은 한때를 보냈다. 보리심(菩提心)에 이끌린 출가가 아니었다. 몸을 숨기려는 입산이었으니까. 간도 크고 통은 더 컸던 사람. 그의 행보엔 거침이 없어 파란도 많았다. 1896년, 백범 나이 스물하나 때엔 이른바 ‘치안포 사건’을 야기했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에 대한 분노가 들끓던 때였다. 혈기 방장했던 청년 백범은 일본군 특무장교 하나를 척살했다. 이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집행일 직전, 탈옥(고종의 형집행정지 명령으로 가출옥했다는 설도 있다)에 성공했다. 그 뒤 마곡사에 은신했던 거다. 마곡사는 태화산 품에 안긴 절이다. 마곡사로부터 산 곳곳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엔 ‘백범 명상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백범이 명상했던 길이란다. 세상의 명명(命名)들은 왜 이렇게 화려할까? 도망자 신세가 된 백범의 뒤엉킨 젊은 가슴에 명상이 고일 자리가 있기나 했을까. 억울하고 서러워 갈피없이 흔들리지 않았을까. 그저 백범을 명상하는 길이라 읽자. 백범의 굳센 기개를, 은신의 고독을, 시대에의 울분을 헤아리며 천천히 걷기에 좋은 둘레길. 산이 있으니 물이 흐르고, 절이 있으니 향내가 번진다. 마곡사 경내엔 진초록을 뿜는 향나무 한 그루가 있다. ‘백범 향나무’다. 광복 직후인 1946년, 어느덧 노경에 접어든 백범이 마곡사를 다시 찾아 심은 나무라지. 옹골차게도 자랐다. 거목은 아니지만 거목이다. 백범이라는 거인의 아우라 아롱져서. 그렇다면 저 고결한 향나무, 백범이 후세에 건넨 숭고한 봉헌이라 해두자. 변하지 않는 세상의 실없음과 누추함을 질책하는, 신랄한 역설의 봉헌. 산길을 오른다. 도회의 익숙한 길에서 빠져나온, 이 들썩이는 기분은 해방감? 상가와 차량으로 너절한 도시에서와 달리, 숲에서 둘러보면 모든 게 순도를 머금고 다가온다. 풀들은 낮은 바닥에서도 얼마나 태연한가. 나뭇가지를 툭 치며 세차게 날아오르는, 저 조막만 한 새의 생존은 얼마나 자립적인가. 어쩌면 산에 사는 것들이야말로 진실을 구현한 존재다. 사람만 부질없다. 진실을 캔다 하고서 제 무덤을 판다. 그게 사람만의 일도 아니지. 역사도 시대정신도 대개 진실과 거리가 멀다. 암살로 생을 마친 백범의 불행이라니. 어처구니없음이라니. 궁색한 잡념을 굴리다 백련암에 들어선다. 백범이 은거해 도를 닦았다는 암자다. 산중턱 작은 암자라 별안간 앞이 탁 트인다. 모든 별안간 탁 트이는 순간들은 희열을 가져다준다. 그마저도 말 그대로의 순간일 뿐이고, 이내 기갈(飢渴)이 몰려든다. 백범은 작은 암자에서 어떻게 견뎠을까. ‘백범일지’를 보면, 그는 ‘굴갓 쓰고 염주 걸고 바랑 지고’ 한동안 중 생활을 했다. 개울가에서 삭발례를 하고, 원종(圓宗)이라는 법명까지 얻었으니, 위장 은신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는 아무나 닦는 게 아니다. 절구통처럼 진득이 눌러앉는 취미가 있는 자여야 수행에 목을 걸 수 있다. 백범은 그런 개성이 아니다. 그가 한 마리 잉어라면, 자기 배만 채우고 마는 게 아니라, 강물을 통째 퍼다 모든 배들을 채워줘야 직성이 풀리는 잉어가 아니었을까. ‘백범일지’를 또 보면, 그는 ‘중놈’이 된 것을 ‘자소자탄’하며 마곡사의 날들을 견디었다. 한마디로 고(苦)라! 진통제를 삼키고 돌아가는 세상을 가만 두고 볼 수 없었으니. 승냥이 우는 산방에 홀로 머물며 소나기처럼 울고 난 뒤였을까? 백범은 어느 날 홀연히 절을 떠났다. 은사에겐 금강산에 공부하러 간다 했다. 그러곤 광복운동 복판으로 뛰어들었다. 숲길 군데군데, ‘백범 명상길’ 팻말이 걸려 있다. 명상은 오간 데 없으나, 마음엔 샘물이 고인다. 백범의 행장 한 자락 훔쳐보자니.
- 2019-10-0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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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히 보고 오래 봐야 예쁜, 공주 도심을 걷다
- 공주의 젖줄인 제민천을 따라 걸으면서 도심을 여행했다. 골목골목 걷는 내내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문장이 공주를 표현한 듯 느껴졌다. 공주는 풀꽃처럼 소박하고 소탈한 도시였다. 풍경도, 사람도, 음식마저도. 그래서 자세히 보고, 오래 봐야 진가를 알 수 있었다. 걷기 코스 공주시외버스 산성정류소(구터미널)▶ 공산성▶ 산성시장▶ 공주역사영상관(구읍사무소)▶ 풀꽃문학관▶ 충청감영 터(현 공주사 대부고)▶ 카페 ‘반죽동247’과 이미정갤러리▶ 하숙마을▶ 반죽동 당간지주(대통사 터)▶ 공주제일교회 (기독교박물관)▶ 루치아의뜰▶ 산성정류소 또는 공주역 금강 변 공산성과 산성 아래 산성시장 공주 산성정류소에 하차하면 공주의 자랑인 공산성이 코 닿을 거리에 있다. 터미널에서 5분 정도 걸으니 공산성 매표소에 닿는다. 공산성은 공주가 백제의 수도였을 때 금강 변 야산에 지은 산성이다. 산 능선에 조성한 성곽이 물결처럼 울렁울렁 춤춘다. 성곽의 등을 타고 공산성을 한 바퀴 돌 수 있으며, 90분 남짓 걸린다. 성곽길이 이끄는 대로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 공산성의 서문인 금서루를 통과해 성곽에 오르자마자 시원한 강바람이 반긴다. 바람을 얼싸안고, 발아래로 흘러내리는 성곽과 반짝이는 금강, 나지막한 공주 시가지를 여유롭게 굽어본다. 오랜만에 탁 트인 풍광을 마주하니 여행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공산성을 일주한 뒤, 다시 터미널 앞을 지나 산성시장으로 향한다. 공산성 아래에 있어 산성시장이라 불리는 이곳은 82년 역사를 지닌 공주 대표 시장이다. 그만큼 규모가 크다. 5개 구획마다 갖가지 생필품과 식자재, 식당들이 즐비하다. 특히 요기할 만한 먹을거리가 풍성하다. 맛 좋기로 전국에 소문난 ‘부자떡집’의 쫄깃한 떡, 줄 서서 먹는 ‘대박난찹쌀호떡’의 달달한 호떡, 가끔 생각나는 ‘단골닭강정’의 매콤달콤한 닭강정, ‘청양분식’의 잔치국수, ‘간식집’의 잡채만두 등이 있다. 대부분 소박한 음식이다. 맛도 그렇다. 공주 사람들은 어떤 음식을 좋아할까 궁금하다면 하나씩 맛보는 것도 좋겠다. 풀꽃 시인 나태주와 풀꽃문학관 시장통을 벗어나면 이내 공주역사영상관(등록문화재 제443호)에 닿는다. 1923년에 지어진 충남금융조합연합회관 건물로 붉은 벽돌과 화강암을 섞어 쌓아 올린 근대건축물이다. 백제시대부터 현재까지의 공주 역사를 담은 디지털 영상기록물을 전시해두었다. 공주역사영상관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이국적인 목조 건물 한 채가 보인다. 1930년대에 지은 적산가옥을 개조해 나태주 시인의 ‘풀꽃문학관’으로 조성한 곳이다. 야생화가 오종종히 피어 있는 뜰과 오래된 목조 건물의 조화가 멋스럽다. 나태주 시인은 금요일에만 문학관을 방문한다. 문학관 앞에 자신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를 세워놓아 문학관에 있음을 알린다. 문학관 내부는 다실과 강연 공간으로 구성돼 있으며, 모두 다다미방 형태다. 벽면 곳곳에 나태주 시인이 쓰고 그린 시화가 걸려 있다. 마침 나태주 시인이 다실에서 방문객들이 가져온 시집과 엽서에 정성껏 시를 써주고, 덕담을 건네는 중이다. 다실에서 웃음소리가 끓이지 않는다. 풀꽃문학관을 내려와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고등학교 정문이자 옛 충청감영의 정문이었던 포정사 문루 앞을 지난다. 으리으리한 문루를 통과해 등교하는 학생들의 기분은 어떨지 궁금하다. 제민천 방향으로 내려가다가 지인이 추천한 카페 ‘반죽동247’에 들른다. 평일인데도 손님이 꽤 많다. 소문대로 커피 맛이 좋다. 시원한 카페라테 한 잔을 홀짝 비우고, 카페 2층에 있는 이미정갤러리 구경에 나선다. 공주 출신 서양화가 이미정 대표가 지역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종종 기획전을 여는 공간이다. 방문할 때마다 수준 높은 작품들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유학생들의 제2의 고향, 제민천 변 하숙마을 제민천 대통교 앞에 이르자 ‘하숙마을’이 보인다. ‘하숙마을’은 옛 약국과 옆 건물 4채를 개조해 한옥 숙박시설 및 마을 안내센터 역할을 하는 곳이다. 공주와 하숙마을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공주는 예로부터 교육의 도시로 명성을 떨쳤다. 명문으로 알려진 공주대학교 사범대학과 공주사대 부속 고등학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1970~80년대에는 전국에서 학생들이 공주로 유학을 왔다고 한다. 자연스레 학교 주변에 하숙집이 많이 생겨났다.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하숙집 주인은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다고 한다. 선배가 후배에게 하숙집을 물려주거나 같은 하숙집에 산 인연으로 부부가 되어 부부 교사가 늘어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고. 단발머리 여고생과 까까머리 남고생들이 수없이 거쳐갔을 비좁은 하숙집 골목길을 거닐며 당시 풍경을 상상해본다. 하숙마을 옆, 사대부고 학생들이 참새방앗간처럼 들르는 중앙분식을 지나 반죽동 당간지주를 만나러 간다. 동네 한복판 작은 쉼터에 527년(백제 성왕 5년) 백제 최초로 지어진 대통사의 당간지주(보물 제150호)가 홀로 서 있다. 당간지주 옆에는 1903년에 설립된 공주제일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충청도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이었으며 독립운동을 지원한 곳으로 유명하다. 유관순 열사와 조병욱 박사가 이 교회에 다녔다. 지금은 기독교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후미진 뒷골목을 밝히는 등불들 다시 제민천으로 돌아와 대통교를 건넌다. ‘백성을 구제하다’라는 뜻을 지닌 제민천은 공주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담고 유유히 흐른다. 주민들이 대통교 그늘에 앉아 다리를 담그고 더위를 식힐 만큼 수질이 좋다. 제민천 변 건물 담벼락에는 옛 하숙마을 풍경 사진과 나태주 시인의 시, 하숙집 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벽화가 전시돼 있다. 담벼락을 구경하며 한옥 찻집 ‘루치아의뜰’로 향한다. ‘맛깔’식당과 ‘이안게스트하우스’ 사이의 터널 같은 골목 안으로 쑥 들어가야 발견할 수 있다. 파란 대문 너머로 야생화가 만발한 뜰과 한옥 한 채가 반긴다. ‘루치아의뜰’은 차 문화 전문 사범인 아내 루치아와 쇼콜라티에인 남편 요한이 운영하는 찻집이다. 보이차, 홍차, 커피, 디저트를 판다. 폐허나 다름없던 집과 골목을 부부가 살뜰히 가꾼 덕에 공주 명소로 거듭났다. 도시 재생 성공 사례로도 손꼽힌다. 공간 못지않게 루치아가 차려내는 찻상 또한 작품처럼 아름답다. 찻상을 바라보고, 차향을 맡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공주에서 루치아와 요한 부부처럼 이 도시를 사랑하는 이를 많이 만났다. 공주대학교 대학원에 재학 중인 김조연 씨도 그중 한 명이다. 서울에 사는 그는 공주 사랑이 대단하다. “공주는 관광객들을 끌거나 관광 트렌드에 발맞추기 위해 치장하지 않아서 좋아요. 다소 투박하고 촌스럽지만, 옛날 시골 동네 모습이 곳곳에 남아 있어 맘이 편안해져요. 이게 공주 원도심의 매력이죠.”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래 보고, 자세히 보면 그처럼 공주와 사랑에 빠지고 말 것 같다. 주변 명소 & 맛집 단골들이 추천하는 ‘중앙분식’ 제민천 대통교 앞에 있는 중앙분식은 즉석떡볶이, 쫄면, 비빔만두 등을 판다. 떡볶이 1인분을 주문해도 커다란 냄비에 2인분은 됨직한 양을 내놓는다. 쌀떡, 쫄면과 당면사리, 양배추, 어묵을 듬뿍 넣어준다. 국물이 자작자작해질 때까지 졸여 먹어야 제맛이 난다. 맛의 비결은 안주인장이 만든 특제 소스에 있다고. 학생 때부터 즐겨 찾던 단골, 소문 듣고 찾아온 관광객들로 늘 붐빈다. 올 8월 중순 공주우체국 옆으로 이전한다. 공주시 제민천1길 67, 041-856-1497, 10:30~19:00, 월요일 휴무 전국에서 소문난 ‘부자떡집’ 1982년 산성시장 안에 창업한 떡집이다.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당일 생산·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삼는다. 작업장이 공개돼 있어 제작 공정에 대한 신뢰감을 준다. 영양떡인 부자떡이 대표 메뉴이며, 헤이즐넛 호두설기는 이곳에서만 파는 제품이다. 공주의 특산품인 밤을 넣어 만든 알밤찹쌀떡 세트가 선물용으로 인기가 많다. 쫀득한 찹쌀떡 안에 밤이 통째로 들어 있다. 부자떡집의 떡은 달지 않아 부담 없다. 공주시 용당길 11, 041-854-5454, 08:00~19:00, 연중무휴 추억을 부르는 잡채만두집 ‘간식집’ 산성시장 내 분식집이다. 잡채만두, 김밥, 떡볶이를 판다. 대표 메뉴는 잡채만두. 통통한 만두 안에 당면이 가득 들어 있다. 대구 납작만두의 통통만두 버전 같다. 만두피와 당면만으로 이루어진 만두가 특별히 맛있는 줄은 모르겠으나, 공주 사람들이 한 봉지씩 사간다. 간장 대신 초장을 찍어 먹는 것이 독특하다. 만두 맛보다 만두를 구울 때 나는 자글자글 소리가 정겹다. 공주시 산성시장1길 46, 041-852-4812, 화요일 휴무(1, 6일 장날 제외) 담백한 육수가 일품 ‘고가네칼국수’ 공주는 예로부터 면 요리가 발달해 칼국수집이 많다. 고가네칼국수는 칼국수를 상에서 끓여 먹는 방식이다. 한우 사골, 양파, 무, 파, 닭발 등을 넣어 담백하게 끓인 육수에 각종 채소와 우리 밀 면을 넣어 익힌다. 직원이 우리 밀 면은 더디 익는다고 알려준다. 고가네칼국수는 저염식 식단을 추구해 칼국수 맛이 심심한 편이다. 배추겉절이와 섞박지로 간을 맞춰 먹는다. 1인분도 주문할 수 있다. 공주시 제민천3길 56, 041-856-6476, 10:00~21:30, 일요일 휴무 걷기 Tip ❶ 4월 5일부터 11월 30일까지 매주 금·토요일에 산성시장에서 공주 밤마실 야시장이 열린다. 오후 6시부터 밤 10시까지 운영한다. ❷ 5월부터 10월까지 매주 주말에 공산성에서 수문장 교대식을 진행한다.
- 2019-06-1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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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보양식
-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이런 의문에 대한, 스스로 미욱하게 풀어낸 해답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부족한 재주로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틀릴 수도 있다. 여러분의 올곧은 지적도 기대한다. 조금은 마뜩잖은 내용으로 글을 시작한다. 곧 여름철이다. 여기저기서 보양식을 찾는다. 주로 닭, 장어, 민어다. 답답하다. 여름을 앞두고 ‘보양식 원고 청탁’도 많다. 제법 긴 시간 동안 전화로 설득한다. “보양식은 없다. 제발 보양식 원고 청탁하지 말라”고. 보양식. 참 그럴 듯하지만, 우리 시대의 탐욕이자 꼼수다. 음식을 먹었는데 몸도 좋아진다? 더하여 ‘정력에 좋다’는 소문까지 돌면 그야말로 횡재한 기분이 든다. 동식물의 여러 부위가 보양의 재료로 등장하기도 한다. 식사를 했는데 갑자기 몸이 좋아진다니 싫어할 사람이 없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다. 식사하고 강장(强壯)도 된다는데 싫어할 이유가 없다. 음식점 주인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초복이면 오피스타운의 해물탕 전문점에서도 삼계탕을 내놓는다. 하루에 100그릇 이상 삼계탕을 판다. ‘초복 특수’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아무리, 누가 뭐라고 해도 보양식은 없다. 음식 먹고 몸도 튼튼, 강장, 강정(強精)까지 해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보양은 ‘保養’ 혹은 ‘補陽’이다. 전자의 보양은 ‘잘 보호해 양육한다’는 뜻이다. 보양식은 ‘보양(補陽)’의 의미를 갖는다. 몸의 ‘양기(陽氣)’를 잘 지키고 더하는 일이다. 우리 선조들은 늘 ‘평(平)’을 이루고자 노력했다. 정조 19년(1795년),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환갑을 맞았다. 그해 윤이월 9일부터 16일까지 수원 화성(華城)에서 환갑잔치가 열렸다. 이때 차린 밥상의 반찬 그릇 수가 모두 16기(器). 그중 음의 반찬이 8기, 양의 반찬이 8기로, 평을 맞추었다.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기록된 ‘혜경궁 홍씨 환갑날 밥상’은 한식 최고의 밥상이라도 해도 좋다. 이 밥상의 구성은 ‘보양’이 아니라 ‘평(平)’이다. ‘평’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남거나 모자라지 않음이다. 진정한 보양식은 음양이 조화를 이룬 ‘평(平)의 밥상’이다. 동지(冬至)는 깊은 겨울. 해가 가장 짧은 날이다. 황진이 시조의 한 구절,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낼 만큼 밤은 길다. 해는 양(陽)이다. 이날부터 해가 조금씩 길어진다. 음의 기운이 강하다. 양을 도와야 한다. 붉은색은 양이다. 음식 중 양의 성격을 지닌, 붉은 팥죽을 먹는다. ‘동짓날 팥죽’은 양을 돕는 소박한 식품이다. 우리 선조들은 ‘동짓날 팥죽’을 양을 보완하는, 보양식으로 여겼다. 그야말로 보양하는 음식이다. 반가의 보양식 중 으뜸은 민어다? 누가 이야기했는지 불확실하다. “반가의 보양식 중 으뜸은 민어, 두 번째는 삼계탕, 세 번째는 장어, 마지막이 개고기”라는 표현이 있다. 엉터리다. 추정컨대, 일제강점기에 등장한 표현일 것이다. 개장국[狗醬]은 특별한 보양식이 아니라, 상식(常食)이었다. 유교에서는 사람이 여섯 종류의 가축을 길러 먹도록 했다. 육축(六畜)으로 소, 말, 개, 돼지, 양, 닭이다. 소는 농경의 도구이니 함부로 도축하지 못했다. 금육(禁肉)이다. 말은 교통수단이다. 돼지는 하는 일 없이 인간의 곡물을 축낸다. 양은 한반도에서 잘 자라지 않는다. 개와 닭만 남는다. 닭은 개체가 작으니 주막 등에서 내놓기는 힘들다. 주막에서 개고기[狗]를 된장[醬] 푼 물에 넣고 끓이면 구장, 개장국이 된다. 조선시대 후기, 청나라 만주족의 습관을 따라 개고기를 피하는 이들이 생긴다. 개장국 대신 ‘쇠고기[肉]+개장국’, 육개장이 태어난다. 민어는 가장 흔한 생선이었다. “특별한 것이 없으니 별도로 기록하지 않는다”(허균의 ‘도문대작’)고 했던 생선이다. “큰 조기는 민어, 작은 것은 조기”라 했다. 별다를 것 없다. 조선시대 기록 어디에도 민어를 보신, 보양 음식으로 사용했다는 흔적은 없다. 삼계탕의 인삼은 1~2년 자란 수삼이다. 어떤 방식으로, 누가 길렀는지 알 수 없다. 약효? 알 수 없다. 농약은? 비료는? 알 수 없다. 닭은 20여 일 기른, 병아리 치고도 어린 것이다. 영양가? 짐작할 수 없다. 맛은 물론 엉망이다. 삼계탕에 견과류나 들깻가루를 듬뿍 얹는 이유다. 이걸 먹고 보양을 하겠다니 부끄럽다. 20여 일 자란 병아리를 먹고 보양을 할 만큼 우리 살림살이가 허망하지는 않다. 장어도 마찬가지. 일본인들의 ‘우나기’를 옮긴 것이다. 일본인들은 초여름 ‘우나기 동(민물장어 덮밥)’을 먹고, 우리는 화력 좋은 불에 구워 먹는다. 장어에 바르는 간장 양념? 일본과 비슷하다. 장어 뼈 곤 국물에 여러 가지 한약재(?)를 넣고 졸인다. 여기에 물엿, 조미료, 어설픈 효소를 넣는다. 보양? 알 수 없다. 우리 선조들의 최고 보양식은 ‘죽(粥)’과 ‘미음(米飮)’이었다. 몸이 아픈 대비전(大妃殿)에 죽을 올렸다는 기록은 여기저기 남아 있다. 지금보다 가난하던 시절이다. 왕실이라 해도 지금 서민들이 먹는 음식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래도 여전히 ‘음식 약’ ‘보양식’은 죽이었다. 인삼을 넣고 끓인 죽이 있는가 하면, 좁쌀을 넣고 끓인 것도 있었다. 왕대비께서 빈청에 언문(諺文)으로 하교하기를, “(중략) 나와 같은 병으로 연명하여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속미음(粟米飮)을 마셨기 때문인데 이것까지 들지 않고 날짜를 표시해놓고서 죄다 봉해서 놔두었다. 비록 미음을 든다고 대전(大殿)에 말하기는 하였으나 지금의 병세는 실로 부지하기 어렵다” 하였다. - ‘조선왕조실록’ 정조 10년(1786년) 12월 1일 왕대비는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다. 좁쌀 넣은 미음으로 연명하고 있는데 험한 일을 당하니, 이제 그것도 끊겠다고 한다. 비록 아들인 정조에게는 “먹고 있다”고 말하지만 먹지 않고 봉해두었다고 밝힌다. 이때도 보양식은 좁쌀을 넣은 미음이었다. 조선시대의 국왕 중, 가장 장수한 이는 영조대왕이다. 평생 스트레스도 심했다. 재위 52년, 83세까지 살았다. 장수의 비결? 간단하다. 소식(小食)이다. 영조는 입이 짧았다고 전해진다. 가려 먹되 자주, 조금씩 먹었다. 보양식은 소식이다. 황광해 맛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사학과 졸업, 경향신문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년간의 기자생활 동안 회삿돈으로 ‘공밥’을 엄청 많이 먹었다. 한때는 매년 전국을 한 바퀴씩 돌았고 2008년부터 음식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KBS2 ‘생생정보통’, MBC ‘찾아라! 맛있는 TV’, 채널A ‘먹거리 X파일’ 등에 출연했다. 저서로 ‘한국 맛집 579’, ‘줄서는 맛집’, ‘오래된 맛집’ 등이 있다.
- 2019-05-2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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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 악양면, 차향 머금은 봄바람 쐬러 갈까요?
- 4월의 찬란한 신록을 만나기 위해 하동으로 간다. 악양행 버스를 타고, 화개천 옆을 지난다. 간밤에 흩날렸을 벚꽃 잎을 상상하며 아름드리 벚나무 가로수 길을 달린다. 오른쪽 차창 밖으로 은빛 섬진강과 푸른 보리밭이 봄볕에 반짝거린다. 섬진강가 산비탈에는 야생차밭이 연둣빛 생기를 뽐낸다. 걷기 코스 화개시외버스터미널▶시내버스 타고 악양면으로 이동▶매암제다원(매암차박물관)▶하덕마을 담장 갤러리▶드라마 ‘토지’ 촬영지▶박경리문학관▶최참판댁▶시내버스 타고 화개장터 또는 화개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 산자락 아래 볕 좋은 동네 악양 화개시외버스터미널에 악양행 시내버스가 들어온다. 버스에서 내린 행복버스 안내 도우미가 연로한 승객들을 부축해 승하차를 돕는다. 기사도 승객이 승하차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한다. 안내 도우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악양(개치)정류장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도보 1분 거리에 매암제다원이 있다. 매암제다원은 3대에 걸쳐 40년 동안 친환경 자연농법으로 차밭을 가꾸고, 악양에 전해오는 전통 제다법으로 차를 만드는 곳이다. 다원 안으로 들어서 매암차박물관 옆을 지나자, 초록빛 야생차밭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다원에 따사로운 봄볕이 가득하다. 높을 岳(악), 볕 陽(양) 자를 쓰는 악양다운 풍광이다. 마침 매암차박물관의 장효은 학예실장과 이윤경 기획실장이 야외에서 차담을 나누고 있다. 매암제다원에서 파는 차가 녹차가 아닌 홍차인 이유를 묻자 장 실장이 “많은 사람이 녹차나무와 홍차나무가 다른 나무라고 생각하는데, 같은 나무예요. 찻잎을 발효하면 홍차 잎이 돼요. 악양 사람들은 옛날부터 홍차로 만들어 먹었어요. 서양 홍차는 우리나라 찻잎보다 크고, 맛과 향이 진하죠”라고 대답한다. 이 실장도 거든다. “이곳 할머니들은 찻잎을 잭살이라 불러요. 4월에 처음 딴 찻잎을 참새 雀(작), 혀 舌(설) 자를 써서 작설이라고 부르는데, 거기에서 유래한 것 같아요. 식구들이 감기나 배앓이를 하면 잭살을 한 움큼 넣고 푹푹 우려 약차로 만들어 먹였대요.” 1300여 년 전, 우리나라에 차가 처음 전래된 곳이 하동이다. 임금에게 차를 진상했던 곳도 하동이다. 악양과 화개 산비탈에 자리 잡은 대규모 야생차밭은 한없이 경이롭다. 하동 사람들의 차 사랑과 자부심이 대단할 만하다. 은은한 차 한 잔의 위로 2만여 평의 차밭이 굽어 보이는 매암제다원 마당에 매암다방이 있다. 나무꾼이 살 것 같은 아담한 오두막이다. 실내에 차밭이 보이는 벽마다 큰 창을 내어 자연을 담은 액자처럼 꾸몄다. 실내에 있기에는 아까운 계절. 찻그릇을 담은 차 쟁반을 들고 나가 차밭이 잘 보이는 감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는다. 간지러운 봄볕을 즐기며 찻잎을 우린다. 찻잎에 뜨거운 물을 붓고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발효된 홍차는 녹차보다 맛이 순하고 구수하다. 찻잔이 작으므로 마주앉은 이의 잔을 수시로 살펴야 한다. 서로 잔을 채워주며 따스한 차담을 나누라고 찻잔이 작은 것일까 생각해본다. 찻잔 위로 스치는 봄바람에 참새 혓바닥 같은 찻잎들이 쫑긋거린다. 연둣빛 여린 찻잎에서 천 년을 이어온 생명력을 느낀다. 다원 입구에 있는 매암차박물관은 일제강점기에 수목원 관사로 사용했던 적산가옥이다. 흰 목조 건물과 푸른 차밭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그려낸다. 차와 관련한 다양한 유물 130여 점을 전시한다. 차 문화사 강좌, 차 만들기 체험, 차 따기 체험, 하동 차문화 기행 등 문화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매암제다원(매암차문화박물관) 여름철 10:00~19:00, 겨울철 10:00~18:00, 월요일 휴무, 관람 무료, 매암다방(셀프) 찻값 3000원. 사계절 차꽃 피는 하덕마을 매암제다원을 나와, 시골길을 타박타박 20분쯤 걸어 하덕마을에 도착한다. 27명의 작가가 마을 주민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 사진, 조형물을 만들어 골목을 아름답게 꾸며놓았다. 벽화뿐만 아니라 나무, 철, 도자기를 활용한 다양한 작품이 담장에 전시돼 있다. 마을 입구 ‘팥이야기’ 카페에서 출발해, 발소리를 죽이고 고요한 돌담길을 스며들듯 거닌다.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하얀 차꽃이 흩날리는 그림 ‘차꽃’과 매화가 핀 찻잔과 보름달을 그린 ‘달 아래에서’, 장식장에 찻잔이 가득한 ‘찻잔’ 벽화가 눈길을 끈다. 기와지붕 처마에 거꾸로 매달린 차꽃 조형물은 이름도 어여쁜 ‘꽃비내림’이다. 담장 위에는 농악대를 형상화한 철 조형물이 곡예를 한다. 가만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난다.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공통된 정서는 ‘푸근함’이다. 시골 정취가 가득한 하덕마을과 정감 있는 예술작품이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낸다. 오랜만에 맘에 드는 골목길을 만나 가슴이 설렌다. 마을 중앙에 있는 ‘차꽃오미’ 한옥 민박집에도 잠시 들른다. 위엄 있는 솟을대문과 잔디가 깔린 앞마당과 100년 된 고택의 조화가 멋스럽다. 하동군 악양면 악양서로 227. 최참판댁에서 평사리 들판을 굽어보며 하덕마을을 뒤로하고, 박경리 소설 ‘토지’를 드라마화한 토지 촬영장으로 향한다. 찻길 옆 인도를 따라 걷는다. 구재봉 자락에 40만여 평에 달하는 악양면 평사리 들판이 펼쳐진다. 들판 한가운데에 깃대처럼 서 있는 부부송(夫婦松)이 옛 친구 만난 듯 반갑다. 하덕마을에서 약 15분 걸으면 오른쪽에 ‘토지’ 촬영장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나온다. 이곳이 평사리 상평마을 입구다. 여기서 ‘토지’ 촬영장까지 10분 정도 다시 오르막길을 오른다. ‘토지’ 촬영장에 용이네, 판술네, 두만네, 월선네, 김훈장댁, 송관수네가 살았던 초가와 읍내 장터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당에는 황소와 토끼가 살고, 곳간에는 장작이 그득하다. 사립문 옆에는 샛노란 산수유와 개나리, 목련이 탐스럽게 피었다. 텃밭에는 상추가 싱싱하게 자란다. 실제 사람이 사는 마을처럼 관리한다. 일부 한옥은 민박집으로도 사용한다. 촬영장 바로 위에 2016년에 개관한 박경리문학관이 있다. 박경리의 유품과 작품, 각 출판사가 발행한 소설 ‘토지’ 전질, 초상화 등이 전시돼 있다. 문학관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최참판댁 솟을대문에 이른다. 서희가 자란 별채와 최치수가 머물렀던 사랑채가 그 모습 그대로다. 최치수인 양 사랑채 마루에 올라서서 평사리 들판을 굽어본다. 아득한 섬진강에 봄 아지랑이가 아롱거린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09:00~18:00, 연중무휴. 주변 명소 & 맛집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화개장터’ 화개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화개장터다. 화개장터는 하동군과 전남 구례군과 광양시의 경계 지점에 있다. 한국전쟁 전만 해도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한데 모여 각 지방의 토산물들을 사고팔았던 곳이다. 원래 위치는 화개천의 화개교 아래였는데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상설시장이 됐다. 시골 오일장의 구수한 정취는 사라졌어도 파는 물건과 음식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지리산에서 채취한 산나물과 약초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동 향토음식 전문점 ‘은성식당’ 섬진강가에 자리한 은성식당은 하동 특산물인 재첩, 은어, 참게를 이용한 요리를 판다. 재첩국, 은어튀김, 참게탕이 인기가 많다. 섬진강에서 채취한 재첩을 넣고 맑게 끓인 재첩국은 하동에서 먹어야 제맛이다. 송송 썰어넣은 부추가 향긋함을 더한다. 집게다리에 털이 북슬북슬한 참게에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 푹 끓인 참게탕은 구수한 맛이 별미다. 밑반찬도 모두 맛깔나다. 창밖으로 보이는 섬진강과 차밭 풍광은 덤이다. 팥 전문 카페 ‘팥이야기’ 하덕마을 입구에 있다. 도시에서나 볼 법한 이층 양옥이어서 눈에 금세 띈다. 내부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고풍스럽다. 빈티지한 가구와 소품을 활용한 감각이 돋보인다. 대표 메뉴는 단팥죽과 팥빙수다. 작은 놋그릇에 담겨 나온다. 단팥죽의 당도가 적당하고, 팥의 풍미가 한껏 느껴진다. 식사 대용으로는 양이 부족하지만, 커피 한 잔 값에 맛있는 단팥죽을 맛볼 수 있으니 만족스럽다. 팥이야기에서 1분 정도 걸어가면 토속적인 분위기의 ‘타박네’ 카페(055-883-251)가 나온다. 팥소가 듬뿍 든 우리 밀 찐빵을 판다. 여행 정보 걷기 Tip -위에 소개한 코스는 수도권 기준, 당일 여행이 가능하다. 대중교통으로도 가능. -하동을 구석구석 여행하고 싶다면 주민공정여행 프로그램인 ‘놀루와’를 이용하면 된다. 하동 토박이가 여행 상담, 개별 맞춤 여행을 추천·진행한다.
- 2019-04-17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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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싸한 겨울 바다를 벗삼아 걷는 길 ‘외옹치 바다향기로’
- 겨울에는 왠지 속초에 가야 할 것 같다. 눈시리도록 푸른 바다와 갯배를 타고 건넜던 청초호, 눈에 파묻힌 아바이마을, 영금정에서 봤던 새해 일출, 이 딱딱 부딪혀가며 먹었던 물회의 추억이 겨울에 닿아 있어서일까. 이번에도 속초 바닷길과 마을길, 시장길을 구석구석 누비는 재미에 빠져 남쪽 외옹치항에서 북쪽 장사항까지 걷고 말았다. 걷기 코스 속초고속버스터미널▶외옹치 바다향기로(속초해수욕장~외옹치항 왕복)▶ 설악대교▶ 아바이마을▶갯배▶속초관광수산시장▶동명항▶영금정전망대▶해돋이전망대▶속초등대(택시)▶속초시외버스터미널 바다 위를 걷는 느낌 외옹치 바다향기로 속초 도보여행 첫 코스는 전국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외옹치 바다향기로’다. 속초해수욕장부터 외옹치해수욕장을 거쳐 외옹치항까지 이어진 바닷길을 걷는다. 길이가 약 1.74km이며, 속초해수욕장 850m 구간과 외옹치 해안데크산책로 890m 구간으로 나뉜다. 천천히 걸어도 편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속초고속버스터미널에서 속초해수욕장 정문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 금세 눈앞에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코끝이 찡한 날씨에도 겨울 바다를 찾은 이가 꽤 많다. 바닷가 포토존 너머로는 가마우지들이 모여 사는 조도(鳥島)가 보인다. 삿갓 모양의 조도와 철썩이는 파도를 감상하며 모래밭 옆 산책로를 거닌다. 속초해수욕장과 연결된 외옹치해수욕장에 다다르면 외옹치 해안데크산책로 입구가 나온다. 외옹치 해안은 1970년 무장공비가 침투한 이후부터 작년까지, 65년 동안 미개방 군사 작전 지역이었다. 작년 4월 외옹치 바다향기로를 개통하면서 개방됐다. 해안데크산책로는 암석관찰길, 안보체험길, 하늘데크길, 대나무명상길 등의 주제로 나뉘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해안 철책과 초소가 있는 안보체험길을 지나면 ㄷ자형 전망대가 나온다. 송혜교, 박보검 주연의 tvN 드라마 ‘남자친구’에서 두 주인공이 우연히 만나 사랑을 싹틔운 장소다. 바다 풍광이 가장 멋진 구간은 하늘데크길이다. 지네바위, 굴바위 등 이야기가 있는 갯바위와 은비늘처럼 반짝이는 바다를 마주 보며 걸을 수 있다. 겨울철 09:00~17:00, 여름철 09:00~19:00 개방. 아날로그 감성 갯배 그리고 아바이마을 외옹치항에서 속초해수욕장으로 되돌아올 때는 바닷가 산책로 옆 해송숲길을 선택한다. 숲 분위기가 그윽해 사색하며 걷기 좋다. 해송숲을 지나 방파제와 나란히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청호동 아바이마을을 만난다. 실향민 정착촌인 아바이마을은 한국전쟁 때 함경도에서 피란 온 실향민 다섯 가구가 백사장에 터를 잡으며 생겨났다. 마을 동쪽은 바다, 서쪽은 청초호와 접해 있다. 청초호와 바다를 연결하는 신수로를 건설하면서 마을이 남북으로 나뉜 것인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수로 위로 붉은 아치형의 설악대교를 세웠다. 설악대교를 건너기 전에 교각 아래의, 실향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아트플랫폼 갯배’에 들른다. 전시장과 카페로 꾸민 공간이다. 2층 창가에 앉아 신수로를 오가는 어선들을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긴다. 설악대교 교각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리 위로 올라가면, 진한 바다 냄새가 풍기는 아바이마을과 속초항의 풍경이 펼쳐진다. 수로를 건넌 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바로 북쪽 아바이마을에 도착한다. 주택가인 남쪽 아바이마을과 달리 이곳은 실향민들이 함경도 음식을 파는 식당가다. 좁은 골목에 아바이순대, 오징어순대, 명태순대, 가자미회냉면, 막국수 등을 파는 식당이 빼곡하다. 단천식당과 신다신식당이 함경도 음식 원조식당으로 알려져 있다. 신다신식당에서는 함경도식 육개장인 가리국밥을 판다. 아바이순대와 소고기, 대파 등을 듬뿍 넣고 얼큰하게 끓인 국인데, 소고기국밥과 맛이 비슷하다. 다음 코스인 속초관광수산시장으로 가기 위해 아바이마을 갯배 선착장으로 향한다. 갯배는 주민들이 청초호를 건널 때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무동력 운반선이므로 중앙동 선착장과 아바이마을 선착장 사이에 걸어놓은 쇠줄을 갈고리로 잡아당겨야 움직인다. 아바이마을 주민이 탑승해 줄을 끌어당기지만, 승객들도 눈치껏 힘을 보태야 한다. 갯배 요금은 편도 500원이며 운행시간은 3분이다. 시장 골목에서 발견한 헌책방 갯배에서 내려 생선구이 골목을 지나면 속초의 명동이라 불리는 로데오 거리에 자리한 속초관광수산시장이 코앞이다. 속초를 잘 아는 이에겐 중앙시장이란 이름이 더 익숙하다. 시장 안에 수산물 골목, 청과물 골목, 순대 골목, 잡화 골목 등 취급 품목별로 골목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시장 지하에는 활어회 센터가 있다. 가장 볼거리가 많은 곳은 제철 생선을 볼 수 있는 수산물 코너다. 가게마다 몸통이 물풍선처럼 빵빵한 곰치가 좌판을 차지하고 있다. 옛날에는 어부들이 잡은 즉시 바다에 버려서 물텀벙이라 불렸던 생선인데, 지금은 금값이다. 곰치로 국을 끓이면, 곰치 살이 입안으로 호로록 들어갈 만큼 부드러운 데다가, 국물 맛이 시원해 겨울 별미로 손꼽힌다. 시장 골목을 요리조리 구경하다가 대경중고서점을 발견한다면, 보물을 캔 것과 마찬가지다. 속초에 하나뿐인 귀한 헌책방이니 말이다. 책방 안에는 천장 턱밑까지 책이 꽂혀 있다. 책 무게 때문에 등이 휜 나무 선반에서 세월이 느껴진다. 헌책방 주인장은 소녀처럼 수줍음이 많은 전경화 씨. 속초 토박이인 전 씨는 “제가 헌책방을 인수해 장사한 지도 25년이나 됐네요. 이곳 역사가 50년은 됐을걸요. 영업 이익만 생각하면 문 닫아야죠. 많은 사람이 좋아해주셔서 그 보람으로 책방을 지켜요. 우리 책방은 A급 중고 책만 취급하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요”라고 말하며 속초 자랑도 빼놓지 않는다. 속초 사람들이 즐겨 찾는 식당과 좋아하는 음식들을 술술 풀어놓는다. 시장 안 작은 헌책방이 오래 자리를 지켜주길 바라며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속초등대에 올라 겨울 바다 마주하기 속초관광수산시장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동명항에 닿는다. 동명항 활어센터는 자연산 활어회만 취급하며 횟값이 저렴한 곳으로 유명하다. 건물 안에 횟감을 팔고, 손질하고, 매운탕을 끓여주는 구역이 따로 있다. 2층 상차림 식당에는 대게 철을 맞아 손님이 바글바글하다. 동명항 근처에는 속초등대, 영금정, 영금정전망대, 해맞이정자가 한자리에 모여 있다. 영금정은 속초등대와 동명항 사이 해안에 펼쳐져 있는 갯바위다. 갯바위 꼭대기에 올라앉은 영금정 전망대에 서면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 나간 해맞이정자가 발아래 굽어보인다. 겨울에는 해맞이정자 앞으로 해가 떠 일출 명소로 유명해졌다. 해맞이정자에서 빤히 보이는 속초등대 전망대에 오르면, 왼쪽으로 영금정과 동명항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속초 시가지와 설악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력이 있다면, 속초등대에서 등대해변 쪽으로 내려가도 좋다. 등대해변의 산홋빛 바다색이 아름다워, 입소문 난 횟집과 전망 좋은 카페가 바닷가에 속속 들어섰다. 호반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영랑호도 가까이 있다. 주변 명소 & 맛집 봉포머구리집 봉포머구리집은 잠수부였던 주인장이 작은 가게로 시작해 음식 맛 하나로 큰 빌딩을 세운 곳이다. 해삼, 비단멍게, 문어숙회, 광어회, 성게알, 백골뱅이 등을 소복하게 담아낸 해물 모둠물회를 보는 순간 입이 떡 벌어진다. 여덟 가지 찬과 소면 두 덩이가 밥상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새콤한 육수와 꼬들꼬들한 해산물과 아삭한 채소가 조화를 이뤄 엄지가 절로 척 올라간다. 속초시 영랑해안길 223, 033-631-2021, 09:30~21:30 칠성조선소 살롱 조선업이 쇠퇴해, 칠성조선소에서 배를 만들지 않게 되자, 칠성조선소의 3대 대표가 조선소 건물을 카페와 전시공간으로 개조했다. 배를 만들고 수리했던 허름한 조선소 건물은 전시장이 됐고, 만든 배를 바다에 띄우기 위해 설치했던 마당의 철 구조물들은 벤치 역할을 한다. 복고풍 분위기 덕에 인기 명소가 됐다. 조선소의 너른 부지에서는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린다. 속초시 중앙로46번길 45, 033-633-2309, 11:00~20:00(수요일 휴무) 문우당서림과 동아서점 문우당서림과 동아서림은 속초에서 오랫동안 뿌리를 내린 대표 서점이다. 책 파는 것을 넘어 작가와의 만남, 시 낭송회 등을 주최해 지역문화를 만들어가는 복합문화공간이라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1984년에 개점한 문우당서림은 부부와 귀향한 딸이 운영한다. 2층에 책 읽는 공간을 따로 두고, 독서 모임방을 무료 대관한다. 1956년에 개점한 동아서점은 3대가 운영하는 서점으로 유명하다. 세련된 서가 배치와 북큐레이션이 돋보인다. 대형 서점에선 볼 수 없는 독립출판물도 취급한다. 동아서림은 문우당서림 뒤쪽에 있다. 속초시 중앙로 45, 033-635-8055, 09:00~22:00 여행 정보 걷기 Tip ➊ 자가용을 이용할 때는, 외옹치항에 주차한 뒤 바다향기로를 걸으면 된다. ➋ 고속버스터미널 하차 후, 외옹치항 바다향기로 입구까지 택시로 이동하면 왕복하지 않아도 된다. 버스 이동은 추천하지 않는다.
- 2019-02-1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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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란수도 부산의 추억을 더듬는 길 ‘초량이바구길’
- 수도권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날, 부산역에 도착했다. 위쪽 지방보다 상대적으로 기온이 높은 부산은 아직 초겨울 같았다. 평소대로라면 부산역 옆 돼지국밥 골목에서 국밥 한 그릇 말아먹고 여행을 시작했을 것이다. 오늘은 초량이바구길에서 시래깃국을 먹기로 했다. 구수한 시래깃국을 호호 불어가며 먹을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걷기 코스 부산역 ▶ 옛 백제병원(브라운핸즈백제) ▶ 남선창고 터 ▶ 동구 인물사 담장 (초량초등학교) ▶ 이바구정거장 ▶ 168도시락국 ▶ 168계단과 168모노레일 ▶ 전망대 ▶ 이바구놀이터와 6·25막걸리 ▶ 이바구충전소 ▶ 당산 ▶ 이바구공작소 ▶ 장기려더나눔센터 ▶ 스카이웨이전망대 ▶ 유치환의 우체통 부산의 산동네와 산복도로 한국전쟁 발발 두 달 뒤, 최후 방어선이었던 부산이 피란수도가 되었다. 전국의 피란민이 부산으로 몰려왔다. 전쟁 전 40여 만 명이었던 부산 인구는 100만 명으로 늘었다. 전체 면적의 절반이 산지인 부산은 폭증한 인구를 수용할 만한 땅이 부족했다. 피란민들은 부산항과 부산역에서 가까운 산동네로 몰려들었다. 산비탈을 깎아 판잣집을 짓고 부두 노동자로, 자갈치 시장 일꾼으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은 산동네에 정착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형성된 동네가 지금의 감천문화마을, 아미동 비석마을, 영도 흰여울마을, 초량동 산복도로 마을 등이다. 부산에 산동네가 많다 보니 자연스레 산중턱을 지나는 산복도로(山腹道路)가 생겼다. 실핏줄처럼 산동네를 연결하며 부산의 상징이 되었다. 부산 동구에서 산복도로가 처음 개통된 초량동에 부산의 근대 역사를 담은 ‘초량이바구길’을 조성했다. ‘이바구’는 이야기를 뜻하는 경상도 방언이다. ‘까꼬막이 천지삐까리’ 초량이바구길 초량이바구길은 부산역에서 산복도로까지 걷는 길이다. 짧은 코스이지만, 부산말로 “까꼬막(오르막길)이 천지삐까리다(아주 많다).” 급경사 계단에는 모노레일이 있으니 앞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부산역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첫 목적지인 옛 백제병원에 도착한다. 백제병원은 1927년에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 종합병원이었다. 폐원된 이후 여러 용도로 사용되다가 현재 1층에 카페 브라운핸즈백제가 입점했다. 근대 건축물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 덕분에 인기를 끌고 있다. 1900년에 지은 부산 최초의 창고인 남선창고 터와 부산 동구의 근현대사와 인물을 소개한 초량초등학교(1937년 개교) 담장을 지나면, 이내 이바구정거장이 나타난다. 이바구정거장은 초량이바구길의 안내소로서 캐리어 보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바구정거장 옆에 있는 바람개비로 장식한 계단에서 본격적인 까꼬막 여행이 시작된다. 초량이바구길의 명물 168모노레일 바람개비계단 끝에서 분식집처럼 생긴 168도시락국 식당이 반긴다. 추억의 도시락을 주문하면, 달걀부침을 얹은 양철 도시락과 진한 멸치 육수 맛이 일품인 시래깃국을 맛볼 수 있다. 시래깃국을 들이마시다시피 하니, 주방을 지키던 할머니가 빈 국그릇을 가득 채워준다. 배불리 먹은 밥값은 단돈 5000원. 감사 인사가 절로 나온다. 168도시락국 식당을 비롯해, 이바구놀이터(영진어묵&공감카페), 6·25막걸리, 게스트하우스인 이바구충전소, 커뮤니티 센터인 이바구공작소 등에는 동구 지역 시니어가 근무한다. 168도시락국에서 조금 올라가면 경사 45˚의 168계단이 기다린다. 쳐다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다행히도 2016년, 계단 옆에 무료 모노레일이 생겼다. 운행거리는 약 60m. 모노레일에 함께 탄 아주머니가 168계단을 가리키더니 “이 계단이 부두 노동자들이 일하러 갈 때 다녔던 지름길이라. 계단 밑에 있는 우물도 봤지요? 할매들이 이 계단으로 물 뜨러 다녔는데, 한 계단 오르고 한 번 쉬고, 고생이 말도 몬했다꼬. 모노레일이 생겨서 얼매나 좋은지 몰라요. 여름에도 시원코. 저짝 아래 함 보소. 갱치가 울매나 좋은지”라며 추억 속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바구길 최고 전망은 이곳 모노레일에서 내리면 바로 전망대로 이어진다. 비탈에 층층이 자리 잡은 초량동 주택가와 멀리로는 황령산, 해운대 마린시티, 부산항과 부산항대교, 영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모노레일 승강장 옆에 있는 이바구놀이터도 전망대만큼 훌륭한 뷰를 자랑한다. 이곳은 야경 감상에 최적화된 장소다. 통통하고 쫄깃한 부산어묵으로 끓인 어묵탕을 먹으며 야경을 감상하노라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인정 넘치는 시니어 직원들이 동네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하면, 음식이 식을세라 살뜰히 살피기도 한다. 이바구놀이터 맞은편 6·25막걸리에서는 막걸리와 해물파전을 맛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갈 때는 모노레일 대신 계단을 추천한다. 걸어 내려가면서 빵집, 아트숍, 카페, 갤러리, 추억의 물건을 파는 다락방장난감BOX, 김민부 전망대에 들를 수 있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로 시작하는 가곡 ‘기다리는 마음’을 작사한 이가 바로 시인 김민부다. 전망대와 마주보고 있는 이바구충전소를 지나 마을 수호신을 모신 당산 쪽으로 올라가면 산복도로와 만난다. 부산에서만 가능한 산복도로 투어 산복도로 턱밑에 자리한 이바구공작소는 방문객 안내센터 겸 주민커뮤니티센터다. 이곳에 근무하는 시니어 문화해설사에게 초량의 근현대사를 들을 수 있다. 이바구공작소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장기려더나눔센터도 들러볼 만하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칭송받는 장기려 박사는 가난한 환자를 돌보는 데 일생을 헌신한 의사이며, 의료보험 창시자로도 유명하다. 장기려더나눔센터에서 유치환의 우체통으로 가는 길에 산복도로를 지나다 보면, 독특한 풍경이 눈에 띈다. 도로 폭이 좁아 건물 옥상을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한쪽 차바퀴를 들어 주차하는 ‘개구리 주차’를 볼 수 있다. 산복도로 가에 위치한 유치환의 우체통은 부산에서 세상을 떠난 시인 유치환을 기리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2층 시인의 방에서 엽서를 써 3층 전망대에 설치한 우체통에 넣으면 1년 뒤에 배달된다. 다음 목적지로 가려면 유치환의 우체통 앞에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주변 명소 & 맛집 초량차이나타운 1884년 초량에 청국 영사관이 설치된 뒤, 중국 상인들이 점포를 겸한 주택가를 형성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1993년 중국 상해시와 부산시가 자매결연을 해 상해문을 건립하는 등 상해 거리를 조성했다. 고기만둣집인 신발원이 유명하다. 차이나타운 일부 구역에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들어선 텍사스 거리가 있다. 두 곳이 한길로 이어져 있는데,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동구 중앙대로 196번길 8. 밀면과 돼지국밥 부산에 여행 와서 밀면과 돼지국밥을 먹지 않으면 서운하다. 부산역 근처에 있는 초량밀면과 본전돼지국밥이 소문난 식당이다. 밀면은 피란 온 이북 사람들이 원조 물자로 공급된 밀가루로 냉면을 대체할 음식을 만든 것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돼지국밥도 피란민들이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돼지 뼈를 이용해 국을 끓인 것이 시초라 한다. 밀면과 돼지국밥은 싼 재료로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을 수 있게 만든 피란 음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초량밀면 동구 중앙대로 225, 본전돼지국밥 동구 중앙대로214번길 3-8. 돼지갈비와 돼지불백거리 초량은 돼지갈비로 유명하다. 한국전쟁 직후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하는 부두 노동자들이 작업을 마친 뒤 초량시장에서 돼지갈비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1980년대에는 초량 육거리 부산고등학교 앞에 돼지불고기백반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검정 프라이팬에 달달 볶은 매콤한 돼지불고기가 없던 입맛도 살아나게 한다. 예나 지금이나 싼값에 푸짐한 한 상이 차려진다. 초량돼지갈비골목 은하갈비 동구 초량중로 86, 초량불백거리 원조불백 동구 초량로 36. 초량1941 초량1941은 초량동 산복도로 위에 자리한 우유 전문 카페다. 1941년 지어진 일본 적산가옥을 개조했다. 이색적인 분위기와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이 눈길을 끈다. 커피와 말차우유, 홍차우유, 커피바닐라우유, 동백우유 등 다양한 병우유를 판다. 고소하고 진한 우유와 쫀쫀한 생크림 속에 과일을 콕콕 박아 만든 과일 샌드위치를 함께 먹으면 한끼 식사로도 충분하다. 동구 망양로. 여행 정보 ➊ 찾아가는 길 전철 1호선 부산역 7번 출구에서 ‘백제병원(브라운핸즈백제)’ 또는 ‘이바구길모노레일’ 방면으로 이동 ➋ 이바구자전거 시니어 도슨트(문화재 해설사)가 운전하는 전동 자전거에 타고 초량이바구길을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 도슨트가 이바구길의 명소 소개와 숨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부산역 분수대 옆에서 출발/ 10시, 11시, 12시, 13시, 14시, 15시 출발. 예약 070-8224-0122/요금 어른 1만 원. 초등학생 7000원(미취학 아동 무료) 우천 시 운행하지 않음 ➌ 이바구버스투어 가이드와 동행하는 이바구버스 투어 상품도 있다. 요금 어른 1만6000원, 초등학생 9000원
- 2019-01-21 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