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는 인맥이 곧 스펙이다. 반면 불편한 인간관계는 걱정근심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인간관계는 채우기만큼 비우기도 중요하다. 인간관계를 효과적으로 정리하는 법, 그리고 소중한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법. 그 속에서 소중한 이들과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전화번호부나 카카오톡 메신저 친구 목록을 훑어보자. 정기적으로 연락하는 사람을 속으로 헤아려보자. 그중 술집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초대받지 않은 술자리를 함께해도 당혹스러워하지 않을 사이는 몇 명이나 되는가?
이는 영국 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가 제시한 개념 ‘던바의 수’(Dunbar’s Number)의 정의다.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진정한 사회적 관계의 최대치이며, 모르는 사람들과의 술자리에 동석할 수 있을 만큼 믿음직한 친구의 한계치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150명 중 5~15명은 가까운 친구, 3~5명이 절친한 사이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숫자는 더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오래된 친구가 좋은 친구다’, ‘인맥이 돈이다’ 식의 말이 통하는 세상이다. 연락이 뜸하다 못해 얼굴도 가물가물한 사이지만 막상 연락처를 지우기는 쉽지 않다. 껄끄러운 순간을 만들까봐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생각하며 소모적인 인간관계를 지속해나갈 수도 있다.
책 ‘관계 정리가 힘이다’의 저자 윤선현 베리굿정리컨설팅 대표는 “100명의 인맥을 맺는 동안 가장 소중한 한 명은 남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제시하는 관계 정리의 달인이 되기 위한 세 가지 훈련 방법 중 하나가 불편한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다. 집 정리의 순서가 정리에서 정돈, 청소이듯, 내 주변의 ‘검은 빨대’ 같은 사람들을 정리해야 한다. 검은 빨대란 시간, 사람, 평판, 돈,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불편한 관계를 정리하는 일은 곧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나 다름없다. 삶의 가치관이 맞지 않거나 타인의 시간과 돈, 감정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은 과감히 잘라내야 한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좋은 친구라고 으레 생각하지만 이 역시 마냥 맞는 말은 아니다.
윤 대표가 추천하는 가장 좋은 관계 정리법은 빛이 바래도록 자연스럽게 두기다. 관계의 끈이 서서히 옅어지게 두면 특별히 거절하거나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아도 관계를 정리할 수 있다. 어색하고 불편한 마음이 들더라도 이를 참아내야 비로소 자유와 평화를 만끽할 수 있다.
새해에는 연락처를 지울 용기도 가져보자. 윤 대표는 “일단 삭제할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환기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혹시 추후에 전화가 걸려왔을 때 누구인지 모르고 받게 될까봐 걱정이라면 휴대폰을 잃어버려 전화번호가 삭제됐다는 핑계를 대거나, 주소록 이름에 아예 받지 말라고 저장해두면 된다. 책 ‘1일 1정리’를 펴낸 정리 트레이너 심지은 씨는 책 말미에 정리 미션 53개를 소개했다. ‘불필요한 명함 버리기’, ‘내 장례식 참석자 명단 만들기’ 등의인간관계 정리 미션이 해봄직하다.
정리가 끝났다면 남은 소중한 인맥에 시간과 정성을 쏟을 차례다. ‘1일 1정리’에 따르면 소중한 인맥, VIP란 만나면 기분 좋고 설레는 사람이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관심 표현하는 일을 어려워해서는 안 된다. 정리 전문가들은 휴대폰 주소록에 VIP 인맥 리스트를 만들면 큰 노력 들이지 않고도 그들을 챙길 수 있다고 설명한다. 관심사를 기록해두고, 짬 날 때 안부 메시지를 보내거나 짧은 전화 통화를 하는 걸로도 충분하다.
정리 이후의 삶에 대해 심지은 씨는 “무엇이 나에게 소중하고 필요한지 숙고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이러한 과정은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했으며, 한층 더 나를 잘 이해하게 만들었다”고 적었다. 맺고 시작하기 좋은 시간이다. 오늘부터 나를 위한 인간관계 정리를 시작해보자.
동서고금을 망라하고 인류는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고, 공동체의 구성원이 사망하면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특정한 의례를 행함으로써 애도의 시간을 가져왔다. 이러한 죽음 의례에서 공통적으로 중요시 여긴 것이 시신을 정성스럽게 대하는 것이었다. 고인의 몸을 깨끗이 씻기고 깨끗한 옷을 입힌 후 장사지냈다.
이때 고인이 입는 옷을 우리는 수의(壽衣)라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중국산 면수의, 삼베수의, 인견수의, 명주수의, 한지수의 등 다양한 수의가 유통되고 있는데, 상조회사 등에서 제공하는 중국산 면수의(삼베처럼 보이는)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종류도 많고 가격도 천차만별인 수의 중에서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을 위해 어떤 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까?
삼베수의는 일제의 잔재다?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대체로 그렇다는 결론이다. 조선시대 만들어진 대표적인 예서인 ‘사례편람’(四禮便覽)을 보면 수의의 소재로 주(紬), 견(絹), 백(帛), 금(錦) 등이 제시된다. 다 비단의 종류다. 이러한 내용은 조선시대 분묘에서 나온 출토복식을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다. 문관과 무관은 관복이나 갑옷을 입었으며, 어떤 경우에는 매우 화려한 한복을 입기도 했고 천을 덧대어 꿰매 입은 수의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 일본은 의례준칙을 통해 삼베수의를 사용할 것을 명문화했다. 전쟁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토지를 시작으로 쌀, 비단, 면 등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수탈하던 시기였다. 그러니 수의에 비싼 비단 사용이 금지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하지만 1925년 김숙당이 편찬한 ‘조선재봉전서’에 ‘조선인들이 고인을 위해 준비하는 수의 소재는 고운 삼베였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증거로 삼베수의를 일제의 잔재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숙당의 ‘조선재봉전서’가 일제의 의례준칙보다 먼저 발표되었기 때문에 이미 조선 사회에서 삼베수의가 일반화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숙당은 조선총독부로부터 급여를 받는 사람이었고, ‘조선재봉전서’ 편찬 시기가 일제의 식민정책이 문화통치로 바뀌던 시점인 것을 감안한다면 ‘조선재봉전서’에 일제에 입김이 들어갔음을 유추할 수 있다.
비단한복은 전통 수의인가?
모 대학 전통복식연구소에서 조선시대 분묘의 출토복식을 연구해 ‘왜곡된 전통 삼베수의’의 대안으로 전통 수의 제품을 개발해 상품화했다. 누가 봐도 고급스러운 비단수의의 가격은 무려 6000만 원(가장 비싼 수의 세트)이다.
조선시대 ‘예서’에 언급된 수의 재료가 비단이었고, 출토된 복식의 대부분이 비단이었다고 해서 우리의 전통 수의가 비단한복이라 말할 수 있을까? ‘사례편람’을 비롯한 예서의 내용도, 분묘에서 나온 출토복식도 모두 양반과 사대부의 것이었다. 일반 서민의 것은 아니었다.
추측하건대 대다수 서민들은 비단수의는커녕 관조차 쓰지 못한 채 매장한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대다수를 제외한 특정 대상을 기준으로 한 것을 전통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수의 뭣이 중할까?
염습을 할 때 장례지도사는 고인의 모습을 최대한 아름답게 꾸며드린다. 지저분한 수염이나 코털도 정리하고 머리도 단정하게 빗는다. 여성의 경우 가볍게 색조화장을 한다. 고인의 입장에서 가족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멋지고 아름답길 바라는 마음일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의도 마찬가지다. 고인이 어떤 옷을 입고 가족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싶어 할지 생각한다면 어떤 수의를 입혀드려야 할지 쉽게 결정할 수 있다. ‘내가 죽어서 마지막으로 입고 가는 옷’으로 어울리지도 않는 삼베수의나 평생 구경해본 적도 없는 고급 비단한복을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어떤 옷을 입고 갈 때 가장 좋을지 고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입혀드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수의 문화가 아닐까. 소위 전통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와 맞물려가며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는 양식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죽고 나면 살아 있었을 때 입었던 옷을 벗고 ‘수의’(壽衣)라 불리는 옷을 입는다. 부자의 수의나 가난한 사람의 수의나 수의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주머니가 없다’는 것이다. 주머니가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넣어 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내 방, 우리 집, 내 업무 공간을 한번 살펴보자. 나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 이제 정리가 필요한 때다. 공간과 물건의 균형이 맞아야 삶의 질서가 잡힌다.
못 버리는 것도 병이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 물건을 구입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넘쳐나는 그 물건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된다. 물건에 부딪혀 다치고 쌓여 있는 잡동사니들을 보면서 서로에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낸다. 필요해서 구입한 물건은 어느새 잡동사니가 되고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버릴까? 말까? 고민하지만 갖고 있던 물건을 버리기는 그리 쉽지 않다. ‘정리정돈 좀 해라.’ 누구나 자랄 때 많이 들었던 말이다. 정리와 정돈은 어떻게 다를까? ‘정리’는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해서 필요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것이고, ‘정돈’은 필요한 물건을 사용하기 편리하게 제자리를 만들어주고 사용 후 그 자리에 놓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정리와 정돈 중 어느 것을 더 어려워할까? 물론 둘 다 어렵다고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정리수납 전문가라는 직업을 창직했고 약 12만 명의 정리수납 전문가를 양성했다. 가지고 있던 물건을 버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못 버리는 사람의 유형도 다양하다. 바빠서 정리할 시간이 없는 현실도피형, 옛 추억에 얽매여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과거집착형, 버리면 꼭 쓸 것 같은 미래불안형. 이유도 많고 핑계도 많다. 사람이 태어나 자라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하는 과정에서 시기별로 많은 물건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가지고 있던 물건 중 그 쓰임이 다 된 것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더 필요한 물건도 있다. 이제 이런 것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버림, 버림의 자유!
가지고 있는 물건과는 추억이라는 단단한 고리로 연결되어 있어 쉽게 끊어내기 어렵다. 하지만 음식을 먹기만 하고 배설하지 않으면 변비에 걸리듯, 우리 집도 물건이 들어오기만 하고 나가지 않는다면 악취가 나고 썩는 공간이 생길 것이다. 옷장, 신발장, 냉동실 등 모든 공간을 창고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버리고 건강한 공간을 만들어보자.
운동을 하기 전에 준비가 필요한 것처럼, 물건을 정리하는 것도 준비가 필요하다. 이것을 ‘노전 정리’라고 한다. 하루아침에 정리하는 습관이 길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매일 조금씩 운동으로 근육을 키우듯 정리 습관을 키워야 한다. 정리 습관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나에게 맞는, 실천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고 하나씩 실천해보자.
버리는 것도 전략과 습관이 필요하다
❶ 실천할 수 있는 나만의 기준 정하기 3년 동안 안 입은 옷 버리기, 사용하는 그릇의 양 정하기, 맞지 않는 신발(큰 것, 작은 것, 낡은 것), 소장 가치가 없거나 3년 동안 읽지 않은 책 버리기
❷ 가지고 있을 물건의 양 정하기 같은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은 2~3장만 남긴다. 비슷한 티셔츠는 5~6장으로 줄인다. 먹지 않는 음식과 식재료 나누기
❸ 매일 하나씩 버리기 비움 상자 만들기, 매일 하나씩 비움 상자에 넣기, 일주일 동안 사용하지 않은 비움 상자의 물건 버리기
채움, 바르게 채움!
아침에 일어나 칫솔을 찾지 못해 양치질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휴대폰이나 차키는 하루에도 몇 번씩 찾기 일쑤다. 잠결에도 칫솔은 찾는데 휴대폰이나 차키를 못 찾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놓는 장소가 정해져 있고 없고의 차이다. 이사를 가고 여행을 가고, 하물며 외국을 가도 우리는 칫솔을 찾는 데 어려움이 없다. 이제 물건을 어디에 놓았는지 기억하려 하지 말고 지정된 장소를 정해주면 된다. 그리고 정해진 장소에 이름표를 붙여줘 누구나 찾기 쉽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옷장 서랍, 주방 서랍, 냉동실 등 모든 공간은 채워져 있다. 너무 많이 채워 간혹 서랍이 열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모든 공간을 그냥 채우지 말고 바르게 채워보자.
나눔, 나눔의 행복!
읽지 않는 책과 입지 않는 옷은 결국 쓰레기와 같다. 하지만 그것을 집 밖으로 내놓기만 해도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물건이 되고 공유경제가 발생한다. 나에게는 가치 없는 물건이지만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준다면 그 가치는 높아진다. 나에게 가치 있는 물건인지 아니면 필요한 사람에게 더 가치 있는 물건인지 결정하기만 하면 된다. 아깝고, 다시 쓸 것 같고, 이런 생각보다 이 물건의 새로운 주인을 찾아줌으로써 물건에게 또 다른 생명을 불어넣는 보람 있는 일을 해보자. 빈 몸으로 태어나 수의 한 벌이면 우리 인생 족하지 않을까 싶다.
장소를 정하고 바르게 채우기
❶ 같거나 비슷한 것끼리 모아 장소를 정한다 손톱깎이 세트는 가족 모두가 사용하기 쉽게 거실 첫 번째 서랍
❷ 서랍에 이름표를 붙인다 건전지/구급약품 상자 등
❸ 서랍은 구획을 나누어 사용한다 큰 서랍은 통으로 사용하면 물건이 섞이기 쉽다. 바구니, 종이상자, 칸막이 등을 활용해 구획을 나눠 사용한다.
❹ 세로 수납하기 티셔츠와 같이 색깔, 크기, 디자인이 다른 경우 쌓지 말고 세로로 수납한다. 수건처럼 용도가 같은 것은 쌓기 수납을 해도 좋다. 크기와 디자인이 다른 접시는 접시꽂이를 이용해 세로로 수납한다.
❺ 수납의 기본 원칙 •원터치의 법칙 : 한 번에 꺼내고 넣을 수 있게 한다. •총량 규제의 법칙 : 보관하는 물건의 양이 80%를 넘지 않아야 한다. •라벨링의 원칙 : 이름표를 붙여 보관된 물건을 찾기 쉽게 한다.
자리 한번 잘 잡았다. 나지막한 야산이 품을 벌려 농장을 보듬은 형국이다. 둥지처럼 안온한 터다. 보이는 건 숲 아니면 하늘이다. 밤이면 부엉이가 악곡을 연주한단다.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의 변두리, 절묘하게 살짝 후미진 곳에 있는 자그만 농원이다. 정해정(62, ‘이레새싹삼’ 대표)은 이곳에서 새싹삼을 생산한다. 그의 귀농 이력은 특이하다. 이곳이 두 번째 귀농지니까. 첫 번째 귀농지에서는 거의 실패에 가까운 고난에 봉착해 ‘탈출’했다.
첫 번째 귀농은 2016년, 충남 천안의 산골짝으로 들어가 시작했다. 산 좋고 물 맑은 산촌이었던 모양이다. 거기서 그는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살았다고 한다. 내릴 것 내려놓고, 버릴 것 버리고 담백하게 살았다. 정직한 농사로 부부가 먹고살 만한 정도의 돈을 벌며 자족하고 싶었던 거다. 특별할 것 없는 이 계획과 희망은 차질 없이 실현되는 듯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빙벽을 만났다. 원주민의 횡포를 넘어서지 못했던 것이다.
원주민과 좋은 관계 맺기. 이는 흔히 귀농 생활 수칙 제1조에 꼽힌다. 불화가 깊어지면 마침내 짐을 싸 철수할 수밖에 없는 극단적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문제의 원인은 원주민의 말도 안 되는 텃세에 있는가 하면, 귀농인의 돌처럼 아둔한 처신에도 있다. 여하튼 귀농을 했다면 일단 원주민과의 우호적인 관계 형성에 공을 들이라는 충고는 비처럼 쏟아진다. 정해정도 이를 유념해 공을 들였다. 따라서 주민 대다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도시든 시골이든 사람 사는 곳 어디나 ‘삐딱이’들이 있는 법. 그는 몇몇 주민들이 은근히 행사하는 텃세에는 대범하게 자세를 낮춰 무마해나갔다. 그러나 도무지 기초상식이 통하지 않는 ‘강적’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트랙터를 몰고 마을 안길을 지나가다 어느 할아버지 댁의 헛간 모서리를 조금 망가뜨렸다. 당연하게도 수리를 해 원상복구를 해드렸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요구가 지나쳤다. 배상비를 별도로 내놓으라는 거였지. 옥신각신이 있었지만 결국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수리 비용은 50여만 원에 불과했지만 총 500만 원 정도 들어갔다.”
원상복구를 해주면 그만일 텐데 할아버지는 왜 배상비까지 요구했을까?
“평소에도 그분과 어려운 관계였다. 외지인을 배척하는 감정이 강한 할아버지였던 것 같다. 내가 원주민이었다면 배상비를 요구했겠나? 그렇다고 노인을 미워해서는 안 되지만 좋은 감정이 없어지더라. 귀농인을 불편한 이방인으로 여기는 일부 주민들의 심리를 확연히 깨닫게 된 계기였으며, 우리 부부가 인정받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엄습했다.”
주민과 어울리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던 면은 없었나?
“딴엔 최선을 다했다. 마을 발전기금을 냈고, 잔치를 벌여 신고식도 했다. 좋은 출발이었으며, 좋은 앞날을 예감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뭐든 나누며 살자는 평소의 신념으로 마을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한계를 깨달았다. 이곳은 우리가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 거지. 떠날 수밖에 없었다.”
산야의 풀로 잃었던 건강 되찾아
결국 귀농 1년 만에 그는 철수를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후 3년을 더 눌러앉아 살았다. 그러고자 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발이 묶였다. 이건 어인 일인가?
“집과 땅부터 서둘러 매물로 내놓았으나 도무지 팔리지 않더라.(웃음)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가격을 낮춰 내놓으면 되지 않나?
“애초 가격의 반으로 내려도 소용없더라고. 매물을 보러 드나든 사람들이 30여 명이나 됐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만 3년이 돼서야 어떤 회사 사장이 수련원을 짓겠다고 매수해 드디어 뜻을 이루었다. 떠날 수 있게 됐으니까.”
무슨 그런 요상한 일이 다 있나?(웃음) 감옥 생활 비슷하지 않았을까? 원치 않는 곳에 발목 잡혀 3년을 더 살다니….
“억울하진 않았다. 인생사, 나무를 보지 않고 숲을 보면 고통도 별거 아니다. 천안 산골에서의 4년여 동안 사실 큰 걸 얻었다.”
무엇을?
“건강을 얻었다. 도시에 살 때 부부의 상태가 아주 나빴다. 나에겐 심한 위장병과 비형간염이, 아내에겐 갑상선항진증과 빈혈, 가슴에 혹이 있었다. 우리는 산골로 귀농해서 건강을 회복하고 싶었다. 그게 귀농의 한 동기였는데 목적을 이루었다.”
자연이 유능한 의사였나? 산골에서 난치병을 고친 귀농인이 드물지 않더라.
“가령 봄이면 새벽부터 산에 올라 산야초를 배낭 한가득 얻어왔다. 산야초가 사람을 살린다는 말, 정말 맞다. 매우 빠른 속도로 부부의 건강이 좋아진 게 산야의 풀을 많이 먹은 덕인 거 같다.”
풀만 먹고 살 수는 없었을 테지. 돈은 무슨 수로 벌었나?
“귀농 전부터 공부하며 구상해둔 게 산약초 재배였다. 마을 주민들과 공동으로 산속에 ‘산약초 공원’을 만들어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길을 찾자는 계획이었지. 그래 명이나물, 땅두릅, 고사리, 도라지, 제충국 등 갖가지 약초와 나물류를 가꾸었다. 그러나 포기했다. 야생풀들을 제거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였다. 주민들이 뭉쳐지지 않아 공동사업도 무위로 돌아갔고.”
부부가 역할 분담해 마케팅 나서
정해정은 목사다. 정확하게 말하면 전직 목사다. 도시에서 20여 년간 개척교회를 이끌었던 그가 귀농을 결행한 건 ‘삶을 바꾸고 싶다’는 욕구에 추동되어서였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어라, 이건 아니잖아? 나, 이렇게 살고 싶었던 건 아니잖아? 그런 회의와 통찰이 방문해 나를 아프게 돌아보게 하는 게 인생이라는 드라마인데, 정해정은 하나의 반전을 연출했던 것이다. 목사로서 그는 일단 할 일을 할 만큼 했다고 결산했다. 20년간의 목회활동이면 졸업을 해도 무방하다 봤던 것 같다.
한편 졸업은커녕 자신에게 스스로 중퇴 명령서를 발부한 측면도 있다. 개척교회 목사란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차가운 광야에 몸과 마음을 쏟아 소명을 다하고자 하는 존재일 텐데, 그는 이 점에서 떳떳하지 못한 자신을 발견했다. 매양 궁하다 보니 돈에 관심이 쏠리더라는 것.
“교회와 목회자의 역할은 사회봉사에 있다. 그런데 자주 한계를 느꼈다. 심지어 성도들의 주머니에 관심을 갖게 되더군. 이런 나를 감히 목사라 할 수 있겠나? 과감하게 정리했다. 이젠 내가 하고 싶었던 걸 하자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예전부터 바랐던 건 시골 생활과 농사였다. 귀농이 대안이었던 거다.”
정직한 눈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용기로 삶의 방향을 쇄신했다. 중도에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지도를 놓고 가야 할 좌표를 읽어 새로운 항해에 나섰다. 교회 안의 예수에게 매달려 도움을 청하기보다 내 안의 예수를 돋우어 길을 나선 셈이겠다. 이 진취적인 사람은 임야를 사들여 개간하는 것으로 숙원이었던 귀농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첫 시도였던 산약초 재배에선 쓴맛을 봤다. 이후 주력한 작목은 새싹삼. 새싹삼이란 인삼의 새싹을 먹을 용도로 재배하는 아주 어린 인삼이다. 묘삼을 심어 보름 내지 한 달 만에 수확한다. 어린 삼 이파리엔 5, 6년생 인삼 뿌리보다 사포닌 성분이 6배 이상 함유됐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이에 힘입어 약초 시장의 신예로 데뷔한 게 새싹삼이다. 그는 천안 산촌에서 약 4년간 새싹삼에 매달렸다. 작년에 찾아든 두 번째 귀농지인 현재의 터에서도 새싹삼을 기른다. 그의 농사는 순항할까?
“내 생각에 새싹삼 재배는 상당히 이상적이다. 재배 과정이 수월해 가혹한 노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계절 내내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재배사 안에서 일하기 때문에 더위와 추위를 면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우리는 30평 규모의 재배사를 운영한다. 매우 작은 규모지만 연중 일정한 소득이 발생해 만족할 만하다.”
소득액은 얼마나 되나?
“지난 5년여 동안 연간 매출 6000만 원에서 8000만 원 정도를 올렸다. 이 농사엔 비용이 많이 드는 편인데, 순소득 비율은 40% 정도다.”
월평균 250만 원쯤? 귀농인들의 일반적인 현실에 비할 때 나쁘지 않은 실적인 것 같다. 내가 취재한 귀농인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태반이 적자 구조에 허덕였다. 귀농이야말로 고행 장정임에 놀라웠다.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해도 먹고살기 힘든 게 농사다. 귀농은 신중하게 고려해 선택해야 한다. 특히 시니어가 경솔하게 귀농을 했다가는 수렁에 빠질 확률이 높다.”
누가 귀농해 새싹삼 농사를 하겠다고 하면 어떤 충고를 하고 싶나?
“자주 상담 요청을 받는다. 이미 새싹삼 농사에 뛰어든 사람에겐 나의 경험에 바탕을 둔 컨설팅을 해준다. 그러나 이제 시작하려는 이에겐 하지 말라 말린다. 막차에 올라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새싹삼이 아니더라도 귀농은 실로 난해한 길이다. 돈벌이가 목적이라면 다른 방법을 찾는 게 현명하다.”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자족할 수 있는 귀농 생활의 관건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소소한 소득이나마 안정적으로 얻기 위해서는 부부가 분업을 하는 게 좋겠다. 어떤 작물이든 생산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판로다. 우리는 분업으로 길을 모색했다. 나는 오프라인에서, 아내는 온라인에서 마케팅 활동을 했다. 적은 소득에 만족할 수 있는 마음도 귀농 생활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지닌 것 없이 귀농한 나에겐 빚도 많다. 그러나 아내와 사랑을 키우며 불안감 없이 지낸다. 소득이야 부진하지만 마음의 여유는 가지고 산다.”
매사가 이상하게 돌아갈 수 있는 게 귀농이다. 작물의 비위를 맞추는 일만이 능사는 아니다. 농사에 현명한 최선을 다하되 날뛰는 욕망일랑 지그시 누르고 돌아오는 대가에 긍정하는 배짱, 순응. 이게 귀농으로 삶을 확장하는 방법이라는 게 정해정의 귀띔이다.
정해정 씨가 주는 귀촌 Tip
•TV 방송에 나오는 귀농 성공담을곧이곧대로 믿지 말자.
•부부 협력이 중요하다. 자리가 잡힐 때까지 한 사람은 농사를, 한 사람은 취업해 수입을 보충하는 방법도 슬기롭다.
•너무 외진 곳은 피하라. 나중에 팔고 나오기 힘들다.
•귀농 후보지를 정했다면 셋집을 얻어 1년 정도 미리 살아보자. 농사 경험도 익히고 마을의 풍토를 파악하기 위해.
•귀농인은 없고 원주민만 있는 마을은 피하는 게 좋다.
•가급적 마을 복판이 아닌 변두리에 터를 잡자.
•귀농 정책자금을 면밀히 파악해 적극 활용하자.
서울사이버대학교가 상반기 입시를 맞아 오는 8일과 15일 2회에 걸쳐 '문재인정부 부동산정책 총정리 및 2022년도 부동산시장 전망' 특강을 진행한다. 김용진 교수가 담당하는 특강은 서울사이버대학교 공식 유튜브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이번 특강은 서울사이버대 부동산학과 재학생 및 졸업생은 물론 타 학과 재학생, 타 대학 부동산학과 재학생 등 부동산에 관심있는 자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서울사이버대학교 부동산학과는 그동안 부동산공인중개사시험 준비과정, 부동산재개발, 도시정비사업실무 과정 등을 무료로 개설해 부동산에 관심이 있는 누구나 부담 없이 수강할 수 있도록 해왔다.
서울사이버대학 부동산학과는 이번 특강 외에도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 부동산 관련 세제 특강, 메타버스와 부동산산업의 미래 특강, 부동산 빅데이터 활용 및 스마트폰 200% 활용법에 대한 강좌, 부실채권(NPL)을 활용한 부동산투자기법과정, 부동산경매손자병법과정, 부동산공인중개사시험 준비과정, 부동산재개발, 재건축지역분석을 통한 투자손자병법과정, 부동산풍수, 도시정비사업 실무 과정 등을 무료로 선보였다.
한편 서울사이버대는 오는 12일까지 2022학년도 학부 신·편입생을 모집 중이다. 모집분야는 사회복지대학, 사회과학대학, 공과대학, 문화예술대학, 미래융합인재학부 등 9개 단과대학(학부)·41개 학과다. 이와 함께 2022년 전기 대학원 신입생도 모집하고 있다. 사회복지전공 석사과정과 상담및임상심리전공 석사과정을 모집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사이버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울사이버대는 교육부가 지금까지 실시한 세 차례의 원격대학, 사이버대 공식 평가에서 모두 최고 등급인 A등급을 획득한 바 있다.
지금은 방송 종료되었지만 '간이역'이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자그마한 소도심을 지나는 기차역의 아련함이 누구에게나 마음속의 추억처럼 자리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런 간이역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였다고 한다. 이제 간이역은 시간 속의 이야기가 켜켜이 스민 폐역이 되어 아날로그 감성을 소환한다. 오랜 시간 기차가 달리지 않아 녹슨 철길은 때론 사색의 장소가 되기도 하고 잔잔한 풍경 속에서 인생 샷을 담아내는 곳이 되었다.
남원의 구 서도역은 전라선 기차역이었다. 1934년에 역무원 배치를 시작해서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로 역사(驛舍)를 신축 이전했던 서도역이 차츰 간이역으로 격하되었다가 폐역이 된 것은 10여 년 전 일이다. 그 세월의 이야기를 간직한 자리에 봄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 그리고 겨울이 흐르고 있는 중이다.
1930년대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채 구 서도역 목조건물의 간이역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래서인지 근래 들어 영화 동주, 미스터 선샤인, 해어화 등의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로, 뮤직비디오 촬영과 유명 모델들의 화보 촬영으로 부쩍 재조명받고 있는 곳이다. 사실 서도역은 그 이전에 최명희의 소설 '혼불'이 시작되는 장면으로 더 알려져 있었다.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둔 채 그 자리를 지킨 덕에 문학적 공간이 되기도 하고 시대적 묘사에 무리 없이 잘 어울린다.
남원의 숨은 보석 10선 서도역이라는 하트 표지판을 지나 역 내부로 들어가 본다. 역 대합실에는 그 시절 삶의 애환을 함께 했던 기차역의 이야기를 필름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미스터 선샤인의 유진 초이 복장과 촬영장의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들여다보면서 드라마와 영화의 추억이 스멀스멀할 것이다. 대합실 밖으로 나가면 역시 드라마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고애신과 행랑아범, 함안댁이 걸어 나오고 철로 목조 위에 앉은 구동매가 아기씨와 나누던 대화, 이렇게 다시 뵙습니다. 아기씨. 이 새벽 기차역에서... 절에 다녀오는 길이네. 그들의 당당하거나 애잔했던 눈빛. 이곳이었구나... 드라마의 힘은 아주 세다.
그 옆 서도역 역사관의 옛 책을 한번 뒤적이고 풍금도 눌러보고 나오니 젊은 커플들의 사진 촬영이 한창이다. 그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방향을 돌렸다. 서도역이 소설 혼불의 첫 배경이다 보니 작품 속의 내용을 표현한 정크 아트 길이 이어져 있었다. 덕분에 잠깐 작품 속의 몇 줄씩을 읽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기차가 다니지 않아서 마음 놓고 이리저리 다닐 수 있어서 좋다. 오래전 기차가 멈춘 녹슨 기찻길은 직선과 곡선과 원형의 철길이 독특한 곳이다. 메타세쿼이아와 등나무의 짧은 터널 옆에는 흰색으로 잘 단장된 역무원 관사가 있다. 그 옆의 역장 관사는 영화 동주의 하숙집으로 촬영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1930년대의 고풍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살려 다다미가 깔린 일본식 가옥으로 영화 촬영은 물론이고 체험학습도 하는 곳이다.
요즘 들어 옛 모습에 손을 대어 때 빼고 광낸 모습으로 변신시키는 생경함에 종종 놀랄 때가 있다. 적어도 구 서도역의 겉모습은 약 90년 전 모습을 살려둔 듯해서 정겹다. 서도역은 전라선이 신설되어 이전할 때 철거계획이었다고 한다. 이때 남원시에서 서도역을 매입하고 보수하여 지금의 고즈넉한 아날로그 감성의 문화공원이 된 것이다. 옛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철도 관련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몫 역시 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기차역, 고요한 이른 아침 운해가 몽글몽글하면 간이역과 더 잘 어울린다. 철길을 둘러싸고 있는 나이 많은 고목은 전라선 완공 당시 심었던 벚나무들이다. 눈부신 봄날의 서도역이 미리 그려진다. 바삐 걷다가 잠깐 다리를 쉬는 곳처럼 구 서도역은 남도 여행길에 빠뜨리면 서운할 그런 곳이다.
☞Info 구 서도역
♤주소: 전북 남원시 사매면 서도길 32. 구 서도역영상촬영장.
♤문의처: ☎063-620-6165
♤교통: 남원역에서 523 버스가 하루 4회 운행. 대중교통 접근 불편. 택시나 자동차 이용이 편리하다.
♤휴무일 없이 연중무휴 방문 가능. 주변 1.4km 거리에 혼불문학관이 있다.
-최명희 작가의 숨결을 담다. 혼불 문학관
구 서도역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를 달리면 5분 거리에 혼불 문학관이 있다. '그다지 쾌청한 날은 아니었다'라고 시작되는 대하소설 ‘혼불’의 첫머리와는 달리 하늘은 푸르고 문학관은 평온하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1940년대 몰락해 가는 남원의 양반가 종부 3대(代)와 그들의 땅을 부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그린 최명희의 소설 '혼불'. 그 소설의 배경이 되는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에 문학관이 자리했다.
돌계단을 오르면 널찍한 잔디마당이 방문객들에게 쉼을 안긴다. 문학관 내부에는 작가의 생전의 모습이 군데군데서 맞는다. 작가의 집필실로 재현된 방에는 유품으로 작품 일지와 만년필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펼쳐진 육필원고를 들여다보노라니 작가의 숨결이 느껴지면서 숙연해진다. 실내를 빙 돌다 보면 소설 속의 장면들을 디테일한 사진이나 모형으로 전시된 작품 속으로 한 걸음 들여놓게 한다. 그리고 작가와 친분이 있는 주변 사람들과 주고받았던 편지도 어느덧 누렇게 색이 바래가는 채로 보여주고 있다.
방송작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글에는 작가의 면밀한 내면이 스친다.
"너는 노트북 컴퓨터를 배워 이제 글씨는 안 쓰겠는데...... 나는 경향신문에 만년필을 쓰는 기쁨, 이라는 글을 썼단다. 나는 참 더딘 사람이다. 지난번에 말한 책도 이제야 부치고 내 살아온 생에 대한 자각도 이제 생기니 장자의 말이 절감이 된다. 行年 五十而知 四十九非. 나이 오십에 이르러서야 마흔아홉 가지가 그릇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혹은 안다, 는 이 한 절, 요즘은 이 말을 정말 깊이 생각해, 나의 非들. 얼음장처럼 가슴이 서늘해지지. 하지만 오십에 새 눈(芽)이 트이지 않았다면 어찌 四十九非를 말할 수 있으며 새 눈(眼)이 뜨이지 않았다면 제 그릇됨을 볼 수 있으랴... 그 芽와 眼이 새 희망을 준다."
약 6,000평의 문학관 건너편의 꽃심관이라는 한옥 쉼터에는 사랑실과 누마루가 있다. 건물 모퉁이의 정자에 올라 혼불문학관을 바라보며 소설 속 삶의 한 자락을 느껴볼 만하다. 살아생전 우리말을 사랑하던 작가 최명희 작가의 혼불. 작품의 어휘 하나하나 직접 취재하고 토속어를 찾아서 우리 문화의 정신을 문학 속에서 형상화했다고 한다. 혼불 속의 청호저수지 주변으로 울타리처럼 둘러있는 솟대들은 길게 목을 빼고 노봉마을을 건너다보는 듯하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던 기억 속의 간이역을 찾아 사람들이 온다. 작가의 숨결이 담겨있는 문학관에 들어 이 땅에 서린 삶의 한 자락을 가슴에 품는다. 전라도 남원고을에 가면 이렇게 쉬엄쉬엄 산책하듯 둘러볼 곳들이 기다리고 있다.
☞Info 혼불문학관
♤주소: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노봉안길 52.(입장료 무료)
♤문의처 :☎ 063-620-5744~46
♤운영시간 평일 : 09:00~18:00(매년 1월1일, 매주 월요일 휴관) 하절기(7월~8월) 09:00~18:00 동절기(11월 ~ 2월) 09:00~17:00
배우 문희경(56)은 유난히 빨간색이 잘 어울린다. 그녀에게서는 나이를 잊은 사랑스러운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당차고 열정적이다. 문희경의 에너지는 강철 추위도 꺾지 못할 정도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동백꽃이 떠올랐다. 문희경의 고향인 제주도에서 이맘때쯤 활짝 피는 꽃. 지난해 ‘대세’로 떠오른 그녀는 올해도 기지개를 활짝 켰다.
문희경의 2021년은 찬란했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에 이어 채널A ‘쇼윈도 : 여왕의 집’(이하 ‘쇼윈도’)에 출연했고, 티빙(TVING) 웹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에도 특별출연했다. 연이은 화제작 출연으로 시청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녀는 2월에는 앨범을 발매하며 가수로서 못 다 이룬 꿈도 이뤘다. 문희경은 “운이 좋았다”고 말하며 행복한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재작년에도 바빴지만, 작년에도 정신없이 일들이 휘몰아쳤죠. 올해 더 많은 일을 할 것 같아요. 한마디로 2021년은 올해 더 열심히 하라고 준비한 해가 아니었나 싶어요. 저는 체력은 늘 유지하고 있고, 즐기면서 일을 하는 편이거든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에너지를 받는 게 좋아요. 현장 체질인가 봐요. 집에 있는 것보다 편안해요.”
‘쇼윈도’로 새로운 배역의 갈증 해소
회를 거듭할수록 흥미진진해지고 시청률도 상승 중인 드라마 ‘쇼윈도’. 문희경은 주요 역할로 출연 중이다. 그녀가 맡은 김강임은 패션 기업의 회장이다. 한선주(송윤아 분)의 엄마이기도 하다. 즉 문희경은 여성 회장이자 엄마로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쇼윈도’와 김강임에 대해 “하고 싶었던 작품, 역할”이라고 강조하며 “그래서 굉장히 즐겁게 촬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쇼윈도’ 제작진은 문희경의 캐스팅을 두고 고민이 많았다. 그녀가 송윤아의 엄마로 보일지 우려했다. 다행히도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제작사에서 제가 송윤아 엄마를 하기에는 너무 젊다고 생각해서 망설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과감히 전화했어요. ‘나 김강임 역할 하고 싶다, 나를 대체할 배우 없을 것이다’라고 어필했죠. 제작진분들이 저를 직접 만나본 후 고민을 떨치고 저를 과감히 캐스팅했죠. 연기를 해보니까 저하고 송윤아는 진짜 엄마하고 딸이 되더라고요. 저는 이렇게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어필하는 편이에요. 기다리고만 있으면 안 되잖아요.”
이처럼 문희경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놓치지 않는다. ‘쇼윈도’에 앞서 출연한 ‘슬기로운 의사생활’도 그랬다. 석형(김대명 분)의 엄마로 출연한 문희경은 분량이 많지 않았지만, 나왔다 하면 통통 튀는 존재감을 과시했다. 화려한 스타일링도 한몫했다.
“모든 배우가 신원호 감독님, 이우정 작가님 작품을 하고 싶어 하잖아요. 어느 날 작가님이 저를 원하신다고 연락이 온 거예요. 진짜 소리 지를 정도로 좋았어요. 그래서 덥석 물었죠.(웃음) 저나 김갑수 선배님, 김해숙 선배님은 역할의 크기와 상관없이 좋은 배우들, 스태프들과 같이 작업하는 것을 즐거워했어요. 그것만으로도 좋은 기억이고 잊을 수 없는 일이죠.”
문희경은 부유한 상류층 역할을 많이 맡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는 사모님이었고, ‘쇼윈도’에서는 회장님이었다. 그녀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사모님이지만 아들만 바라보는 평범한 엄마였고, ‘쇼윈도’는 재벌 회장 역할이다”라고 차이점을 짚었다. 문희경은 그동안 사모님 역을 많이 맡은 것보다 ‘누군가의 엄마’에 그친 것에 아쉬움이 더 커 보였다.
“늘 배우로서 갈증이 있었죠. 살림하고 누군가를 뒷바라지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쇼윈도’의 김강임 역할을 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룹 회장이고 여성 경연인이잖아요. 그동안 부잣집 사모님은 많이 연기했지만 경영인은 처음이었어요. 엄마보다는 일하는 여성이죠. 그래서 스트레스가 좀 풀려요.”
사모님 역할을 주로 맡다 보니 캐릭터가 철부지거나 얄미운 경우가 많았다. 그녀가 인생작으로 꼽는 2010년 SBS 드라마 ‘자이언트’ 때부터 이어져온 이미지 같다. 극 중 계모 오남숙 역을 맡은 문희경은 악녀 연기로 큰 사랑을 받았다. 카카오TV 웹드라마 ‘며느라기’에서는 기존과 다르게 평범한 시어머니로 분했다. 그런데 너무나도 현실적이어서 더 얄미웠다.
“사실 저도 착한 역할 많이 했어요. 그런데 못된 역할, 카리스마 있는 역할만 기억하시더라고요.(웃음) 사실 ‘며느라기’ 역할은 악역도 아니고 가정밖에 모르는 현실적인 시어머니죠. 착하고 좋은 것 같으면서도 며느리들에게 시킬 것은 다 시키니까 욕을 먹더라고요. 이게 욕 먹을 일인가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문희경은 “포스 있고, 예민할 것 같고, 못될 것 같다”는 오해를 받는다. 때문에 실제 그녀를 만난 사람들은 정반대 이미지에 깜짝 놀란다고. 귀엽고 순수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저는 그냥 역할에 충실할 뿐이에요. 배우는 맡은 역할을 100% 해내야 하는 게 숙명이죠. 배우는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상태에 있다고 생각해요. 빨간색, 검은색 등 다양한 컬러를 입힐 수 있어야죠.”
출연작
드라마 SBS ‘자이언트’, KBS2 ‘감격시대’, JTBC ‘귀부인’, JTBC ‘품위있는 그녀’, MBC ‘슬플 때 사랑한다’, MBN ‘우아한 가’,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카카오TV ‘며느라기’, 채널A ‘쇼윈도 : 여왕의 집’ 등
영화 ‘좋지 아니한가’,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간신’, ‘글로리데이’, ‘인어전설’, ‘어멍’ 등
가족, 그리고 제주
실제 엄마로서의 문희경은 어떨까. 그녀는 슬하에 작곡 공부를 하는 딸이 있다. 문희경에게 딸은 제일 친한 친구고, 둘도 없는 존재다. 딸 얘기를 할 때 가장 행복해 보인 그녀. 그러다가 이내 언젠가 딸이 시집 갈 때를 떠올리고는 “어떻게 보내야 하나”며 울컥하기도 했다.
“딸은 제 인생의 원동력이에요. 허투루 살지 말아야겠다는 경각심을 줘요. 엄마이기 때문에 책임감도 더 느끼고 열심히 하려고 하죠. 딸을 낳은 것은 축복이고,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에요. 딸은 소통이 잘되고 친구 같아요. 걔가 더 언니 같아요. 저를 막 혼내요.(웃음) 결혼은 안 하겠대요. 친구들과 같이 실버타운 들어갈 거라고 그러더라고요. 저는 너한테서 해방되고 싶다고 하고요. 그런데 막상 걔를 보내면 눈물 날 것 같아요.”
도시적인 이미지와 달리 그녀의 고향은 제주도다. 농사짓는 부모님 밑에서 문희경을 포함한 여덟 남매는 아옹다옹 살았다. 중산층이었지만 가족이 워낙 많다 보니 풍족하게 살지는 못했다고 한다.
“제주도는 남아 선호사상이 심했어요. 아들 두 명을 낳으려다 보니 딸 여섯 명을 낳게 된 거예요. 그래서 8남매가 됐죠. 저는 다섯째고요. 부모님은 과수원도 팔며 자식들을 공부시킨, 자식들을 위해 사신 분들이죠. 형제들이 공부는 잘했어요. 선생님, 대학교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공부를 악착같이 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공부 잘하면 시키고, 못하면 안 시킨다고 하셨거든요.”
문희경이 공부를 필사적으로 한 데는 이유가 있다. 남몰래 가수라는 꿈을 키웠기 때문. 어린 시절부터 친척들 앞에서 빼지 않고 노래를 부르던 소녀는 자신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봤다. 나이 들면서 가수에 대한 꿈은 확고해졌고, 꿈의 실현을 위해서는 제주도를 벗어나 서울로 가야만 했다.
“대학교에 들어갈 때 부모님이 서울행을 반대하셨어요. 당시 집안이 좀 어려웠기 때문에 제주교대에 들어가 초등학교 교사가 되기를 바라셨죠. 저는 서울에 가야만 했어요. 그래야 대학가요제든지 강변가요제든지 나갈 수 있으니까요. 서울 안 보내주면 죽어버리겠다고 데모도 하고 그랬죠. 결국 대학에 합격하니까 보내주시더라고요.”
마침내 문희경은 숙명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했고, 계획대로 일이 술술 풀렸다. 1986년 ‘제1회 샹송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고 ‘쇼86’에 출연했다. 이어 1987년 ‘강변가요제’에서는 ‘그리움은 빗물처럼’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대학에 가고 상도 받으면서 제 꿈에 한 발짝씩 다가가는 것 같았어요. TV에도 나오니까 부모님도 ‘어릴 때부터 노래 좋아하더니 하네, 가수 할 수 있으면 해라’라고 응원해주셨죠.”
그렇게 벗어난 제주도지만, 고향은 고향인가 보다. 문희경은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도에 대한 그리움도, 애정도 커졌다. 제주 해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인어전설’, ‘어멍’에 출연하기도. 배우로 제주를 찾아 해녀 연기를 하기까지, 감회가 남달랐을 듯싶다.
“내 고향 제주는 정신적 지주죠. 내게 배우로서 가수로서 감성적인 부분을 줬다고 할까요. 고향을 생각하면 가슴이 찡하기도 하죠. ‘내가 어떻게 고향을 떠나왔는데, 꼭 성공해서 돌아갈 거야’ 그런 마음이 강했어요.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고요. 예전에는 그렇게 벗어나고만 싶었는데, 나이 들면서는 고향에 내려가서 살고 싶다는 귀향 본능이 생기더라고요. 나중에는 내려가서 살 거예요. 촬영이 있을 때만 서울로 올라오고, 귤 농사도 하고 여유롭게 살고 싶어요.”
25년 만에 다시 가수
앞서 얘기했듯이 문희경은 1987년 강변가요제 대상 출신이다. 가수가 되는 지름길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녀의 가수 인생은 잘 풀리지 못했다. 문희경은 1989년에 1집 ‘갈 곳 잃은 연정’, 1994년에 2집 ‘예전 같지 않은 너’를 발표하며 발라드 가수로 활동했다. 그러나 한계에 부딪혔고 결국 뮤지컬 배우로 전향했다. 첫 작품은 1996년 ‘노트르담의 꼽추’ 에스메랄다 역으로 기록된다.
“문희경이라는 사람도 점점 잊혀갔죠. 가수는 내 길이 아니라고 느꼈어요. 어릴 때부터 꿈을 키워서 서울에 왔는데 아닌 길을 억지로 갈 수는 없잖아요. 과감히 포기하고 뮤지컬을 하게 된 거예요. 그때는 뮤지컬이 활성화되지도 않았고, 미래도 안 보이고, 암흑 같은 시기였죠. 하루하루 버티면서 그날그날에 충실하면서 열심히 살았어요.”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는 찾아오는 법이다. 마침내 문희경은 2007년 어둠을 벗어나게 됐다. 연극 무대에 선 그녀를 보고 정윤철 감독이 러브콜을 보내 영화 ‘좋지 아니한가’에 출연했다. 문희경은 제8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녀는 정윤철 감독을 ‘은인’이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후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린 문희경. 오히려 가수의 꿈에 가까워지는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2015년 문희경은 MBC ‘복면가왕’ 출연으로 노래 실력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이후 2016년에는 JTBC ‘힙합의 민족’에 출연했다. 딕션이 좋은 그녀는 놀라운 랩 실력을 보여주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2020년에는 MBN ‘보이스트롯’에 출연해 트로트 실력을 뽐냈다. 아름다운 음색으로 최종 5위를 거머쥐었다.
노래 실력을 인정받은 문희경은 결국 다시 가수가 됐다. 지난해 2월 트로트 정규 앨범 ‘금사빠 은사빠’를 발매한 것. 가수를 포기하고 배우가 된 지 꼭 25년 만이다. 그리고 지난 12월에는 ‘보령에 가자’, ‘서해랑길에서’, ‘대천에 가자’ 총 3곡을 발매했다.
“제가 ‘보이스트롯’을 하면서 정의송 선생님 노래를 세 곡이나 했어요. 그 인연으로 선생님께서 고맙다고 곡을 선물로 주시면서 앨범을 내게 됐죠. 제가 다시 가수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고, 생각도 없었어요. 악착같이 가수를 열망할 때는 정말 안 됐잖아요. 다 내려놓고 노래를 즐기면서 했더니 가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거예요. 지금은 인사할 때 ‘배우 겸 가수 문희경’이라고 해요.”
정리해보면 문희경은 ‘가수→뮤지컬배우→배우→가수 겸 배우’의 삶을 살고 있다. 이제는 “노래 부를 때보다 연기할 때가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연기를 할수록 깊이와 재미를 느낀다. 그리고 그녀는 사람들이 ‘노래 잘하는 배우’로 봐주기를 바랐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던 제주도 꼬마는 50여 년이 흐른 뒤, 자신이 배우 겸 가수가 될 줄 알았을까. “꿈에는 나이 제한이 없다”는 그녀의 메시지가 더욱 특별하게 와 닿는다.
“결국 돌고 돌아 가수도 하고, 뿌듯하고 만족한 삶이죠.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연결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사람 일은 몰라요. 그러니까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거예요. 지금은 백세인생 시대이기 때문에 나이가 있다고 망설이거나 주저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꿈이 있다면, 꿈을 꾸라고 하고 싶어요. 꿈에는 나이 제한이 없잖아요. 목표를 설정하고 달려가면, 삶에 긴장감이 생기고 원동력이 되더라고요. 에너지 넘치는 삶을 살자는 거예요. 여러분, 꿈을 꾸고, 도전하세요!”
코로나19 장기화로 고령층이 디지털 격차를 호소하고 있다. 방역 패스 시행으로 식당, 카페, 노인복지관 등을 이용하려면 접종 이력을 의무적으로 인증해야 한다. 고령층은 스마트폰 이용이 익숙지 않아 고충을 겪고 있는 것. 이에 서울시는 2022년 더욱 적극적으로 디지털 교육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29일 디지털 소외 계층이 되기 쉬운 어르신들을 위해 2022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디지털배움터'와 연계해 서울형 디지털 배움터를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어르신 뿐만 아니라 장애인 대상 교육을 시작하고, 찾아가는 교육은 25개 전 자치구로 확대된다.('21년 5개 자치구)
5개 자치구 중 하나인 성동구는 지난 11월부터 '찾아가는 스마트 교실'을 확대 운영하고 있다. 스마트 봉사단을 2명에서 8명으로 늘렸고, 교육 대상 장소도 기존 동 주민센터 외에 지역 경로당으로 넓혔다. 서울시립성동노인종합복지관과 연계한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생활지원사와 함께 집으로 직접 찾아가는 서비스도 시행해 거동이 불편한 대상자도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서울디지털재단은 '고령층 친화 디지털 접근성 표준'을 2022년 더욱 확대해 시행할 예정이다. 지난 12월 시립용산노인종합복지관 모바일 홈페이지에 처음으로 적용 완료했다.
'고령층 친화 디지털 접근성 표준'은 재단이 고령층의 편리한 디지털 접근성을 위해 지난 2020년 전국 최초로 개발한 표준안이다. 중요한 글자는 크기를 키워 가독성을 높였고 검색 기능은 중심부에 노출했다. 메인 화면 하단에는 어르신들이 주로 찾는 메뉴인 식단, 공지사항, 일정, 동영상 바로가기 기능을 넣었다.
재단이 복지관을 이용하는 65세 이상 어르신 6명을 대상으로 사용자 테스트를 한 결과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 훨씬 많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재단은 이번 사업 적용 사례와 개선 과정을 담은 보고서를 오는 2월에 발간할 계획이다.
서대문구는 새해부터 경로당에 '디지털 튜터'를 내보낸다. 구는 디지털 교육 경력자, 4차산업혁명 관련 자격증 소지자 등을 대상으로 20명을 뽑는다. 기본 교육을 한 뒤 지역 경로당 111곳의 수요를 조사해 약 60곳으로 내보낼 계획이다.
디지털 튜터는 4개월 과정의 스마트 기초 과정을 진행한다. 와이파이 설정, 앱 내려받기, 데이터 정리, 정보 무늬(QR코드) 사용, 건강·지도·택시 앱 이용, 무인 민원·병원·영화관 키오스크 활용 등을 교육할 예정이다. 기초 과정 이후 심화 과정은 인공지능(AI)로봇 활용, 메타버스 활용, 주제별 비대면 프로그램 등의 교육을 예정 중이다.
그런가 하면, 대한노인회는 '디지털 경로당'으로 변화를 중점 추진할 계획이다. 앞서 지난 5월 대한노인회는 LG유플러스와 '디지털 경로당 구축 협력'을 체결했다. 디지털 경로당은 LTE 통신망이나 와이파이 등 유무선 통신 인프라를 기반으로 영상 회의 시스템과 돌봄 로봇 등이 도입된 공간이다. 어르신들의 실내 외 환경을 모니터링하고 방문자들의 출결 상태를 분석해 고독사나 사고사에 대응하는 역할도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정리’는 점점 어려워진다. 어떤 물건이든, 사람이든 ‘추억’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리하지 않고 모아두면 의미 있던 물건도 짐이 되고 쓰레기가 되는 법이다. 그럼 도대체 정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국내 시니어 라이프 오거나이저 1호’ 김민주(55) 한국청소직업학원 이사를 만나 조언을 들어봤다.
먼저 ‘시니어 라이프 오거나이저’(Senior Life Organizer)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겠다. 단어의 뜻을 풀어보면 ‘중장년(Senior)+생활(Life)+정리하는 사람(Oragnizer)’이다. 한국어로는 ‘생활조력 전문가’라고도 불린다.
시니어에게 정리란 노전(老前) 정리, 생전(生前) 정리 및 유품 정리까지 포함된다. 이에 시니어에게 정리가 특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김민주 이사는 2026년 초고령화 시대에 발맞춰 시니어 라이프 오거나이저를 창직했다.
시니어 라이프 오거나이저는 기존의 수납 정리 전문가나 가사도우미와는 차별된다. 시니어들의 생활 공간 개선을 돕는 정리수납과 생애 설계를 연결해 효율적인 노후 생활까지 도움을 준다.
평범한 직장인, 시니어 라이프 오거나이저 되다
김민주 이사의 인생은 2009년 ‘정리수납’ 교육을 듣고 180도 바뀌었다. 정리수납 전문가 이전의 그녀는 무역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었다.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키우면서도 20년 넘게 일했다. 정리수납, 살림 등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살림을 도와준 친정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집안일을 도맡게 됐다.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결혼한 지 15년이 넘었을 때 처음으로 살림을 오롯이 하게 됐어요. 집안일을 해보니 할 일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너무 재미가 없고 바쁘기만 했어요. 살림을 못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관심 분야는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살림을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어 정리수납 교육을 듣게 됐죠.”
정리수납 교육 후 그 매력에 푹 빠진 김민주 이사. 그녀는 2012년 12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013년 정리수납 회사를 차렸다. 그리고 2016년 12월 시니어 라이프 오거나이저를 창직했다. 김 이사는 “정리수납 일로 가정집을 돌아다니다 보니 부모님들이 정리를 못 한 집들을 보게 됐다. 그래서 부모님 집 정리 프로그램을 해야겠다 싶어, 시니어 라이프 오거나이저로 명명하면서 특허를 냈다”고 설명했다.
김민주 이사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한국정리수납협동조합도 꾸렸다. 지금은 임기가 끝나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또한 그녀는 현재 한국청소직업학원의 이사로 있다. 행정 일을 하면서 강사로 교육도 한다. 김 이사는 의뢰를 받으면 ‘정리·청소·소독’을 함께 한다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니어에게 정리가 중요한 이유
앞서 말했듯이 시니어 라이프 오거나이저의 출발점은 ‘부모님 집 정리 프로그램’이었다. 김민주 이사는 어르신들이 ‘정리를 못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리정돈을 못 해서가 아니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녀들은 결혼해서 집을 떠나는데, 물건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 물건들은 자신들이 피땀 흘린 돈으로 산 것이기도 하고, 자녀들의 추억도 배어 있기 때문에 차마 버리지 못하는 것.
“어르신들은 전쟁도 겪으셨고, 그 이후는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잖아요. 굉장히 치열하게 살았고, 근검절약, 희생, 봉사의 아이콘이죠. 자기들은 아껴 쓰면서 자녀들에게는 많은 것을 해주셨죠. 월급 타서 살림도 장만하고, 학교도 고등교육 이상 투자했죠. 컴퓨터, 그랜드피아노도 사주고요. 그런데 자녀들이 결혼할 때 자기한테 필요한 것만 가져가다 보니 본가에 짐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 넓은 집에서 부모님들이 짐과 함께 사시는 이유죠. 결국에는 몸이 아파오니 정리를 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죠. 그래서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정리를 같이 하면 어떨까 싶었어요.”
김민주 이사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시니어의 마음을 이해했다. 먼저 베이비부머가 어떻게 살았는지 이해해야 했다. 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에 대해 김 이사는 “물욕을 못 채운 상태로 자랐다”고 짚었다. 그 베이비부머들이 결혼할 당시에 13, 15평의 아파트가 생겼고, 자녀들이 중고등학생이 됐을 때는 24, 28, 32평 아파트로 옮겨갔다. 집이 넓어지다 보니 장롱, 냉장고, TV 등을 사들인 것. 거기에 홈쇼핑, 대형마트의 확대로 크고 작은 물건들을 더욱 사들였다는 설명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자신이 못 채웠던 물욕을 자녀들에게 채우고, 물건을 사들이는 것으로 충족했죠. ‘못 버린다’를 그냥 이해하면 쉬워요.”
자칫 주의해야 할 것은 정리를 못 한다고 해서 쓰레기 집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김 이사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의뢰인으로 서울 송파구의 고급 아파트에 혼자 사는 한 할머니를 꼽았다. 할머니는 11년 동안 한 번도 청소를 안 했고, 아들·딸과의 사이도 멀어진 상태였다. 김민주 이사는 할머니의 동의 하에 대청소를 했는데, 이후 할머니는 자기한테 소중한 물건들이 사라졌다며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고 한다. 누가 봐도 버려야 할 것들인데, 할머니는 그것들을 다 품고 기억하고 있었던 것. 김 이사는 “물건을 버린다는 것을 못 견디고 상실감을 크게 느낀 것”이라며, 시니어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2022년, 시니어에게 추천하는 정리 방법
그렇다면 어렵게만 느껴지는 정리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김민주 이사는 “버리기 전에 물건이 더 이상 집 안으로 안 들어오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건을 사기 전에 꼭 필요한지, 집에 대체할 물건이 있는지 고려해볼 것을 조언했다. 다만 잘 먹고 잘 살아야 하기 때문에 식재료는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구입하라고 말했다.
더욱이 물건을 사들여도 ‘아끼다가 똥 되는 경우’가 많다. 그녀는 “물건은 쓰려고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왜 쓰지 않고 아끼냐”면서 “이 세상에서 아까운 존재는 시간과 사랑뿐이다”라는 어록을 남겼다. 더불어 김 이사는 모든 정리의 시작은 ‘물건 째려보기’라고 생각한다. ‘역할이 끝난 물건, 방치된 물건, 설레지 않는 물건’을 찾는 과정이다. 더불어 “40세부터 정리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가 40대 때 창직을 했잖아요. 그때부터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을 째려봤어요. 안 보이던 물건이 보이기 시작하고, 역할이 끝난 물건도 보이는 거죠. 집에 보면 자녀는 다 컸는데 공갈젖꼭지, 유치원 때 읽던 전집류, 중고등학교 교복, 그랜드피아노 다 있을걸요. 추억인 건 알겠지만 다시 쓸 일이 없잖아요. 그걸 버릴지, 갖고 있을지는 그 물건의 주인인 자녀가 결정하는 거예요. 귀중한 거니 결혼할 때 가져갈 수도 있고, 버리라고 할 수도 있죠. 그렇게 정리를 하는 거예요. 저도 10년째 째려보니 이제 조금 정리가 됐어요.”
김민주 이사는 2022년을 시작하는 시니어들에게 ‘비움-나눔-채움’이라는 3단계 정리법을 제시했다. 사람도, 물건도, 식재료도 비우고 나누는 정리를 한 뒤, 최상위 것들로 다시 채우자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정리를 하면 ‘내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 또한 갖게 된다’고 궁극적인 의도를 밝혔다.
“하루에 하나씩 물건 버리기를 해보는 거예요. 휴대폰의 전화번호부도 ‘ㄱㄴㄷ’ 순서로 하루에 한 명씩 정리해보세요. 우리는 20%의 물건만 쓰고, 80%는 안 쓰는 물건이에요. 안 쓰는 것들을 버린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눠준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유익해요. 그리고 휴대폰에 ‘버림의 행복’이라는 사진 폴더를 만들어 놓고, 버리기 전에 사진을 찍어두세요. 내일은 뭘 버릴까 기대하게 돼요. 평생 하라는 건 아니에요. 매일 계속 버리면 상실감이 생기니까, 어느 정도 충족되면 좀 쉬어야죠. 사람들이 비우면 행복하다 하잖아요. 비워야 다른 것들로 채워져요. ‘비운다, 버린다’를 나눠준다로 생각하시고, ‘채운다’는 제대로 된 것들로 채운다고 생각하라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김민주 이사는 홀로 살다 86세에 세상을 떠난 이모 이야기를 전했다. 이모는 근검절약했고 물건을 아껴뒀지만 세상을 떠난 뒤 그것들은 다 쓰레기가 됐고, 자식들에게 짐만 됐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김 이사는 살아 있을 때 ‘정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금쪽같은 자식들에게 그렇게 우려하는 ‘짐’ 같은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이모님이 돌아가시고 4남매 자식들이 조를 짜서 집 청소를 했는데 3개월 이상 걸렸어요. 정리를 해보니 옷, 스카프, 장갑 등 안 입은 좋은 것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처음에는 딸들이 좋다고 가져갔지만, 나중에는 한탄이 되는 거죠. 그러다 어느 날 서랍장에서 돈이 나오니까 자식들의 자세가 달라졌죠. 그걸 보면서 현금, 통장, 도장이 아닌 것은 다 쓰레기가 된다고 느꼈어요. 저는 시니어들이 뭘 남기고 뭘 버려야 좋을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돈 있으면 자식들 다 주라는 것도 아니에요. 건강하게 살면서 좋은 것 드시고, 좋은 데 다니시라는 거예요.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를 하고 있기도 하고, 앞으로 시니어 라이프 정리 교육은 더욱 중요해질 것 같아요. 국가 차원이면 더 좋고, 교육이 확대됐으면 좋겠어요. 시니어에게 정리란 자신의 빛나는 인생을 돌아보면서 추억을 반추하는 것이고, 금쪽같은 자식들을 덜 고생시키는 것이죠.”
집에서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정리정돈 팁
정리수납을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수납 도구를 미리 구매할 필요는 없다.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박스(홍삼, 화장품, 각티슈)나 쇼핑백을 활용하면 수납 도구가 된다. 홍삼 박스 옆면에 손잡이를 부착하면 수납 트레이가 된다.
◆ 쇼핑백을 활용한 수납 도구 만들기
손잡이 끈을 풀어놓는다. → 들어갈 공간의 높이보다 조금 낮게 접는다.(앞뒤로 각각 접기) → 접힌 부분을 안으로 집어넣어 바구니 형태로 만든다. → 그대로 냉장고 야채칸에 넣어두면 저절로 칸막이가 생겨서 종류별로 나눠 수납할 수 있다. 또한 쇼핑백 옆면에 링 라벨을 안팎으로 붙인 다음 풀어둔 손잡이 끈을 넣으면 또 다른 수납 도구로 활용 가능하다.
매장이 열리면 바로 달려간다는 의미의 오픈런(Open Run) 현상이 MZ세대를 중심으로 전 세대에 퍼지고 있다. 이들은 원하는 물건을 얻기 위해 개장 전부터 문 앞에서 밤을 새우고, 몇 시간씩 줄을 선다. 명품, 디저트, 컵 등 종류도 다양하다. 클릭 한 번에 제품이 집 앞까지 배송되는 시대에 왜 이토록 특정 제품에 열광하는 걸까?
결제하기 버튼 한 번만 누르면 다음 날 원하는 물건이 집 앞으로 온다. 심지어 빠른 배송을 강조하는 유통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긴 덕에 ‘분 단위’ 배송이 확산되는 추세다. 이제 당일 배송이나 새벽 배송보다 더 빨리도 가능하다. 심지어 1시간 안에도 물건을 받아볼 수 있다. 이토록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최근 ‘오픈런’ 현상이 20·30세대를 중심으로 점점 치열해지는 모양새다. 오픈런은 말 그대로 매장이 오픈(open)하면, 바로 달려가야(Run) 원하는 물건을 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매일 아침 백화점 앞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해외 명품 브랜드의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개장을 기다리는 쇼핑객 행렬이 백화점 외벽을 따라 늘어선다. 올해 들어 샤넬, 루이비통, 에르메스 등이 잇달아 가격을 올리며 더 비싸지기 전에 물건을 사려는 소비자의 매수 심리를 부추겨서다.
시간, 장소, 종류 가리지 않아
오픈런 현상은 명품 브랜드를 넘어 다회용 컵, 디저트 등 종류를 불문하고 일어난다. 지난 9월 스타벅스가 단 하루, 음료를 일회용이 아닌 다회용 컵에 제공하는 ‘리유저블 컵 데이’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에 고객들이 개점 전부터 대기하는 오픈런 현상이 나타났다. 일부 매장에서는 꼼수를 써서 한 번에 많은 양의 커피를 사는 사재기 현상까지 벌어졌다. 상품은 조기 매진됐고, 음료 주문 시 무료로 제공되는 컵이지만 개당 2500~3000원 수준으로 중고매장에서 거래됐다.
‘핫’하고 ‘힙’하다는 장소들은 점점 접근조차 어려워진다. 11월 13일 오후 1시, 서울 강남구에 있는 유명 도넛 가게 앞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었다. 20·30대로 보이는 이들은 빵을 맛보려 긴 시간을 대기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매장 앞에서 마주친 직원은 엄청난 인파가 익숙하다는 듯 길게 늘어선 줄을 정리하고, “거리두기 때문에 조금씩만 떨어져서 대기해주세요” 같은 말을 쉼 없이 반복했다.
직장인 박민근(27) 씨는 “오랜 시간 기다려서 뭔가 사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여자친구가 서울 간 김에 사다달라고 하도 부탁해서 집에 돌아가기 전에 사러 왔다”고 전했다. 대학생 김지혜(23) 씨는 “나 빼고 다 다녀왔나 싶을 정도로 SNS에 인증샷이 넘치는 유명한 곳이라 너무 궁금해서 와보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에서 도넛 가게 이름을 검색해보면 12만 개 정도의 게시물이 올라와 있을 정도다.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 역시 도넛을 사는 과정부터 구매 후까지 쉴 틈 없이 사진을 찍었고, 일부는 그 자리에서 바로 SNS에 사진을 게시했다. 꿀팁이나 빠른 손, 줄 서서 기다리는 인내를 겸비해 얻은 ‘영광의 증표’인 셈이다.
득템력 인정받고 성취감 느껴
긴 시간 줄을 서서 물건을 구매하는 것은 언뜻 보면 시대를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최신 트렌드에 민감하며, 남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MZ세대에게는 줄을 서서 무언가를 얻는 행위도 하나의 놀이 문화다. 또한 미래보다는 현재를, 가격보다는 취향을 중시하는 성향을 가진 이들이 많다. 당장 갖고 싶거나 먹고 싶은 게 있다면 가게 앞에 장사진을 치고, 알람까지 맞춰두며 접전을 벌여도 행복하다. 자신이 충분히 만족감을 느낄 것 같다고 생각되면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어디든 찾아가는 것이다.
이 치열한 희소가치 게임은 욕망이라는 에너지를 동력으로 움직인다. 희소성 있는 물건을 가지고 싶은 소유욕, 얻었을 때 오는 희열감, 자랑하고 싶은 과시욕, 타인이 그것을 부러워할 때 오는 우월감 등을 총망라한다. 실제로 물건을 획득한 이들은 SNS에 인증 사진을 게시해 과시하고, ‘득템력’(원하는 아이템을 얻는 능력)을 인정받는다. 그리고 게시물 하단에는 부러움을 표하는 댓글들이 이어진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오픈런이 “남들과는 다른, 새롭고 개성 있는 아이템을 추구하는 성향을 가진 MZ세대의 욕망을 잘 나타내주는 현상”이라며 “구하기 힘든 물건일수록 소유욕을 자극하고, 이를 얻었을 때 성취욕과 과시욕, 우월감이 더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SNS가 오픈런 과열 양상을 자극하기 좋은 플랫폼”이라며 “실제로 그다지 맛있거나 특별하지 않은 곳인데도 SNS 바람을 한번 타면 그쪽으로 몰리는 경우가 있어 마케팅 수단으로도 자주 이용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