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속초시 하면 누구나 바다와 산을 떠올린다. 그러나 필자는 속초시에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조용한 호수다. 그곳에 나의 작은 아지트가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무작정 속초시로 여행 가서 영랑호를 찾았었다. 천천히 한적한 호숫가를 걷는데 예쁜 집 두 채가 눈에 들어왔다. 짙은 회색 지붕의 모던하면서 아담한 집 두 채가 나란히 호수를 내려다보고
아주 오래전 중학교 3학년 국어시간의 일이다. 국어선생님은 머리가 하얗고 이가 몇 개 빠진 할아버지였고 성함은 ‘김이홍’이었다. 당신 이름에 세 가지 성씨 즉, 김씨, 이씨, 홍씨가 들어있다고 자주 자랑하셔서 사십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 내재되어 있던 작문 소질
그 날 국어시간에는 작문을 하라고 하셨다. 작문의 주제는 ‘국어 선생님’이었
“집에서 엄마가 책 읽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엄마를 닮아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는 지인의 말에 아들은 정색하고 대답했다. 엄마가 책을 안 읽는다는 건지, 아니면 집에서는 읽지 않는다는 건지 분간이 안 돼 헛웃음을 웃었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살면서 손에서 책을 놓아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아들이 엄마 책 읽는 광경을 볼 수 없었던 건 왜일까?
나는 부모님처럼 늙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은 자신들의 뼈와 진을 녹여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소진되어 버렸다. 아무 준비 없이 맞이한 노년은 무료한 일상과 건강을 잃어버린 신체 때문에 고통스러워 보였다. 이런 부모님을 보면서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는 말을 습관처럼 되뇌었다.
그러다가 나도 늙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건
삶의 변화가 되는 한권의 책이 여러 권이 될수 있다.
필자는 고등학교 때 영어교과서에 나오는 단어하나 때문에 고르게 된다.
영어교과서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단어하나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억지로 말로 싸우다보면 절대로 승부가 결정이 안 나고 진흙탕인생이 될것이라는 상상이 되는 인생 환갑까지 오다보니 그 여고시절 영어선생님이 사투리가 섞인 악센트로
말씀
책은 빌리고 안 갖다줘도 범법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책을 여러사람이
쉽게 빌리고 쉽게 사고 애착이 없는 분들도 있지만 어린시절부터 책에 대한
애착이 많았다. 빌려줘도 꼭 받아서 찾아오는 편이었다.
한국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백과사전,종이신문 조간석간신문을
정독을 하는 선생님이셨던 아버님의 영향으로 계속 책을 모아두고 이동할 때 어린시절 썼던
일기장도 수
대형 책꽂이를 3개를 놓고 혼자 사용하는데도 늘 책꽂이가 모자란다. 책을 좋아해서 잘 사들이기도 하지만 잘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몇 번이나 골라서 버리려고 했으나 이 책도 중요하고, 저 책도 꼭 필요하고 해서 한 권도 못 버리고 이사할 때마다 가지고 다녔다. 한번은 이삿짐센터 직원이 책이 많다고 필자 보고 박사냐고 묻기도 했다. 참으로 민망하고
어린 시절 어른들로부터 자주 들은 말이 있다. 바로 ‘저놈 인간 안 될 놈’이라는 말이었다. 이 말을 들으면서 항상 어떻게 사람 노릇하는 인간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닮고 싶은 롤 모델을 찾는 것이었다. 꿀맛을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한 숟가락 입에 넣어주면 끝나는 것 아닌가. 필자가 그렇게 지나한 노력으로 찾아낸 것이 바
어린 시절 뒷동산 고갯마루에서 꿈을 키웠다. 성년이 되어서는 대도시 고갯마루를 찾았다. 어머님 품 같이 포근한 그곳에서 마음을 다스리고 활력을 얻었다. 가는 곳마다 필자의 아지트 ‘고갯마루’이다.
◇시골 뒷동산으로 가출
할아버님과 할머님이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 계셨다. 할아버님께서 천자문을 가르쳐 주셨고 할머님은 항상 업어주셨다. 그때까지 아버님,
예전 마당 넓은 친정집에는 책이 많았다. 어머니는 유난히 책 읽는 걸 밝혀서 사랑방 한쪽 면에 책장을 세우고 벽면 가득 책을 채웠다. 그 당시 우스갯소리로 졸부들이 집안을 번쩍거리는 모양의 전집을 한 번 꺼내 읽지도 않으면서 과시하듯 진열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정말 책을 좋아해서 사들였고 그래서 지금도 누구와 이야기해도 지지 않을 만큼의 지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