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論語)> 계씨(季氏)편에 나오는 고사다. 공자에게는 백어(伯魚)란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자식인 백어에게 공자가 내린 가르침은 오직 두 가지, 즉 어느 날은 ‘시(詩)’를, 다른 날에는 ‘예(禮)’를 배우라고 한마디 한 것이 전부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와 아마 동일한 고사인 듯한데 <논어(論語)> 양화(陽貨)편을 보면 공자께서 백어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기록이 나온다. “너는 시경(詩經)의 ‘주남(周南)’편과 ‘소남(召南)’편을 공부하였느냐? 사람이 ‘주남’과 ‘소남’을 공부하지 않으면 아마 담벼락을 마주보고 서 있는 것[牆面而立]과 같으리라!” 여기서 ‘담벼락을 마주보다’란 의미의 ‘장면(牆面)’ 또는 ‘면장(面牆)’이란 단어가 유래한다. 담벼락을 마주하고 서면 아무것도 볼 수가 없으므로, 마치 학문 또한 공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는 비유이다.
이후 공부를 함으로써 요행히 ‘담벼락을 마주 보는 처지는 면했다’는 의미의 ‘면장면(免牆面)’이란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구당서(舊唐書) 염립덕전(閻立德傳)을 보면, “내가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해서, 요행히도 담벼락을 마주보는 처지는 면하였고[幸免牆面], 지필묵과 인연을 맺어 겨우 여러분들 틈에 낄 수가 있었습니다[吾少好讀書 幸免牆面緣情染翰 頗及儕流]”라고 하는 표현이 나온다. 여기서 ‘면장면(免牆面)’ 또는 줄여서 ‘면장(免牆)’이란 단어가 유래하니, 우리가 가끔 사용하는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고 할 때의 ‘면장’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 ‘공부하지 않으면 또한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는 의미의 ‘면장(面牆)’은 이후 ‘담벼락을 마주 서듯 통하지 않아 답답하다’는 의미로 또한 바뀐다. 송(宋) 대의 대유학자인 주자(朱子)의 ‘영개창(詠開窓: 창문을 열고)’이라는 시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작일토장당면립(昨日土牆當面立) 어제는 흙 담에 얼굴을 대하고 섰다가,
금조죽유향양개(今朝竹牖向陽開) 오늘 아침은 해를 향해 대나무 창문 열었네.
즉, 도(道)가 깨우쳐지지 않는 답답함을 표현하면서 ‘토장당면(土牆當面)’이란 구절을 사용하였는데, 이후 이 표현은 조선 정조 때 다산(茶山)이 이재의(李載毅)와 사단(四端)에 대해 논쟁한 글인 ‘답이여홍(答李汝弘)’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이달 초 주신 편지에서 사단(四端)에 관한 주장을 차분히 살펴보니 제가 말씀드린 것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주신 글의 내용이 제 말과 합치되는데도 결론에서는 마치 이론(異論)이 있는 것처럼 말씀하셨더군요... 지금 크게 바라는 것은 반드시 우리 두 사람이... 완도의 관음굴(觀音窟)로 함께 들어가 보고 듣는 것을 거두고 티끌세상을 벗어나, 마음속에서 환한 빛이 나오게끔 하는 것입니다. 그런 뒤에야 저의 당면토장(當面土墻), 즉 담벼락을 맞대고 있는 듯한 답답함과 노형의 장공편운(長空片雲), 곧 드넓은 하늘에 걸린 한 조각 구름 같은 의심이 모두 탁 트여서 말끔히 풀릴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비록 10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는다 해도 반드시 한곳으로 귀결될 리가 없을 것입니다.”
언사는 공손하지만 다산은 이재의의 글을 읽고 난 심정을 당면토장(當面土墻), 즉 흙벽과 마주하고 앉은 느낌이라고 적어, 그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