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아파트 11층에 대학 선배 언니가 산다. 필자보다 8년이나 학번이 빠르니 나이도 꽤 들었는데 어떻게 관리를 했는지 필자랑 친구처럼 보여서 아파트 부녀회라도 열리면 다들 비결 좀 알려달라고 한마디씩 한다.
선배는 남편과 사이좋기로 소문이 났고 늘 다정하다. 노후대책도 연금이나 이자 수입으로 아주 튼튼히 해놓은 것 같다. 남편이 은퇴한 지는 오래되었
조영환 AJ가족 인재경영원장(62)은 ‘가정도 회사처럼, 가족은 고객처럼 경영하라’고 말한다. 그는 “가정은 기업의 축소판”이라며 “가족에도 회사 경영 마인드가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제로 1990년부터 가정경영계획을 수립해, 27년여 실행해온 성공적 가장이기도 하다. 삼성그룹에서 26년간 인사조직 분야를 담당했다. 이후 5년간 강연, 집필 등을 하
“라디오코리아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989년 2월 1일, LA의 한인들은 눈물을 흘렸다. 라디오를 틀었는데 한국어가 나오고 한국 노래가 나왔던 거다.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말이다. 그렇게 수많은 한인들을 울렸던 목소리는 지금도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어김없이 흘러나온다. 28년 동안, 그가 마이크를 놓았던 날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저 방송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 마음만 동동 구르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이번 호에는 최학 소설가께서 故김용덕 교수님께 쓴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김 교수님.
참으로 오랜만에 인사 올립니다. 40년 가까운 세월을 흘려보내면서, 더러 예전 초등학교 시절의 방학숙제를 떠올리듯 가끔 교수님을 생각하긴 했지만
필자가 중․고교생이었던 시절에는 스승의 날이 되면 각 반의 반장이 중심이 되어 학생들의 코 묻은 돈을 걷어 선생님 선물도 마련하고 가슴에 꽃도 달아드리곤 했다. 또 강당에서 재롱잔치도 벌이고 운동장에서 선생님들과 배구시합을 하는 등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이렇게 사랑이 넘치고 화기애애했던 스승의 날 분위기가 언제부터인가 달라졌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
예술과 시장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아니 정확하게 문학작품과 상업영화의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원작자인 줄리언 반스가 ‘영화는 소설로부터 멀리 갈수록 좋다’고 말했다는데 이건 원작과 달라진 영화에 대한 찬사일까? 아니면 영화가 책과 다르니 소설을 읽으라는 야유일까? 아무튼, 각기 다른 장르이니 무어라고
‘늘푸른 연극제’는 지난 해 ‘원로 연극제’로 시작했다. 한 평생 연극에 몸 바쳐 온 원로 연극인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행사이다. 7월 28일부터 8월 27일까지 한 달 간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4개의 연극을 공연한다. 그 중 노경식 작가의 ‘반민특위’ 연극을 감상했다. 권병길, 정상철, 이민철, 김종 구 외 극단동양레퍼토리에서 20여명의
할머니를 일컫는 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할매, 할멈 그리고 할망구 등이 그것이다. 할머니는 큰 어머니라는 뜻의 순 우리말이다. ‘할’은 ‘크다’라는 뜻의 순우리말 ‘한'이 변형된 말이다. 할머니는 원래 한어머니이다. 지금도 전남지역에 가면 할아버지를 한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한아버지가 발음하기 편하게 할아버지로 변한 것이다.
주사(酒邪)는 ‘술을 마신 뒤에 나쁜 버릇으로 하는 언행’을 말한다. 생전의 아버지는 주사가 심했다. 언행에 더해 고압적이고 폭력적이었다. 그 당시는 필자가 사춘기라서 그런 주사를 참지 못하고 욱하곤 했다. 그 결과는 가출이었다. 한창 감정이 예민했던 고등학생 때 무려 4차례나 가출을 했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맨손으로 상경해 서울에서 장사를 하며 자리를
한때 홍콩 감독 허안화(1947년~)에 관한 국내 평가는 “여러 장르를 아우르며 실망과 환희를 동시에 안겨주는, 높낮이가 심한 연출자”였다. 그러나 필자는 (1997)과 같은 범작에서도 실망한 적이 없다. 서극, 담가명 등과 함께 1980년대 홍콩 뉴웨이브를 이끌었던 허안화는 진중한 사회파 드라마에서부터 액션, 시대극, 멜로를 아우르며 홍콩과 홍콩인이 처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