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로 서야 가족이 바로 선다!’ 진부해 보이는 것 같은 이 말 속에 5070세대의 자아가 녹아들어 있다. 진부하다고 아재 자아로 치부하면 안 된다. 말이 진부하다고 5070세대의 인생이 진부한 것은 절대 아니다.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이 어느덧 20~30년이나 훌쩍 지났다. 쏜살같은 세월의 빠름에 총총하던 눈빛은 노안으로 시들고, 숯덩
영화 에서 주인공(스티브 맥퀸 분)이 꿈속에서 무죄를 주장한다. 재판관은 이렇게 판결한다. “너의 가장 큰 죄는 인생을 낭비한 죄다.” 영화 대사이지만, 인생을 살면서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 않은지 고민해볼 필요성이 있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을까? 마냥 바쁘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제대로 살고 있는지 의문이 갈 때가 있다. 너무 사소
조영환 AJ가족 인재경영원장(62)은 ‘가정도 회사처럼, 가족은 고객처럼 경영하라’고 말한다. 그는 “가정은 기업의 축소판”이라며 “가족에도 회사 경영 마인드가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제로 1990년부터 가정경영계획을 수립해, 27년여 실행해온 성공적 가장이기도 하다. 삼성그룹에서 26년간 인사조직 분야를 담당했다. 이후 5년간 강연, 집필 등을 하
작품을 보면 화가의 심성을 짐작하게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런 화가 중엔 단연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나 에드바르트 뭉크(Edward Munch, 1863~1944)가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이들의 작품은 ‘미술 심리’, ‘미술 치료’ 분야에서 연구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종교화가 아닌 작품에서 따뜻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 마음만 동동 구르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이번 호에는 최학 소설가께서 故김용덕 교수님께 쓴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김 교수님.
참으로 오랜만에 인사 올립니다. 40년 가까운 세월을 흘려보내면서, 더러 예전 초등학교 시절의 방학숙제를 떠올리듯 가끔 교수님을 생각하긴 했지만
오래전에 우연히 라는 일본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궁금할 정도로 흥미 있는 내용이었는데 ‘사토라레’의 뜻은 내 마음속 생각을 남에게 들키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주인공이 하는 생각을 1km 이내 누구든지 다 들을 수 있는데 정작 본인은 그걸 모른다. 가령 길을 가다가 ‘저 소녀 참 예쁘다’고 생각하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모두 ‘아,
망망대해에 고깃배 한 척이 유유자적한 모습으로 떠 있다. 주변에는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이 바다에 튕겨 하늘로 솟아오르는 빛의 잔치로 눈이 부실 지경이다. 배를 때리는 파도소리만이 심해와 같은 적막에 미세한 균열을 내고 있을 뿐이다. 멀리서 보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이 바다놀이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팽팽한 긴장감으로 서늘한 느낌마
최근 자연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방법이나 그 효과는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밥을 상추와 깻잎 몇 장에 싸먹는 것만으로 자연식이라 할 수 있을까. 또 반드시 병이 낫는 효과를 얻어야 자연식일까. 이런 의문과 함께 약초 전문가가 바라보는 자연식은 무엇인지 그 답을 얻기 위해 한국본초임상연구소 안덕균(安德均·76) 소장을 만났
‘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화가인 엄정순(57) 디렉터는 오래전부터 이 질문이 화두였다. 보이는 것 이면에 무언가 있을 것 같은데 이해하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답답함. 엄 디렉터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즐거움, 그 밖의 세상에 있는 진실과 본질 등에 대해 생각이 많았다. 그 생각이 ‘눈을 쓰지 않는 세계’에 대한 관심과 탐험으로 이어졌고 ‘우리들의
사실 정원사는 우리에게 그리 익숙한 직업은 아니다. 좁은 주거 지역에 많은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국내 대도시의 특성상 대다수의 한국인은 정원이 없는 주거 형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저 사다리에 올라 큰 나무의 모양을 전정가위로 다듬는 영화 속 등장인물이 떠오르는 정도다. 그러나 이제는 아파트에서도 작은 정원을 만드는 사람이 많아지고, 공원이나 화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