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용정보원의 지능형 직업상담지원서비스(JobCare, 이하 잡케어서비스) 이용자들의 만족도가 약 67%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부터는 전 국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확대된다.
31일 창립 16주년을 맞는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고용정보원은 잡케어서비스 이용자들의 현황과 만족도 등을 조사해 발표했다.
잡케어서비스는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구직자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등에 담긴 데이터를 분석해 해당 구직자의 직무 역량을 파악한 후 구직자에게 도움이 될만한 직업 훈련과 자격 등을 추천하고 구직자의 조건과 적성에 맞는 일자리도 알려주는 서비스이다.
잡케어서비스 시범 이용자 수 2천 명 넘어서
지난해 12월부터 전국 고용센터에서 시범운영 중이며 직업상담사들이 고용센터를 찾아온 구직자의 훈련·자격·일자리 상담을 할 때 활용하고 있다. `21.9월부터 `22.3월 현재까지 총 2417명의 구직자가 잡케어서비스를 이용했다.
전체 이용자 중 남성 959명(40%), 여성 1458명(60%)이 이용했다. 연령별로 보면 20대 이하가 893명(37%)으로 가장 많이 이용했으며, 30대 512명(21%), 40대 487명(20%) 순으로 나타났다.
학력은 전체 이용자 중 4년제 대학교(989명, 41%), 고등학교 이하(802명, 33%), 2·3년제 대학교(539명, 22%) 등의 순으로 많았다.
전체 이용자의 희망 직종으로는 경영지원사무원(9%), 사회복지사 및 상담사(7.0%), 디자이너(5%)순으로 많았고 4년제 대학교 졸업자와 고등학교 졸업자 간 희망 직종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잡케어서비스 66.7%가 만족 이상, 30%는 보통, 3.3%는 만족하지 않음
고용정보원은 잡케어서비스에 대한 대국민 체감도 분석을 위해 잡케어서비스를 이용한 구직자와 재직자 30명을 대상으로 2022년 1월 19일부터 1월 21일까지 이용 만족도 및 개선사항 등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잡케어서비스를 이용한 구직자의 66.7%가 잡케어서비스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76.7%는 향후 잡케어서비스가 인터넷으로도 제공되면 이용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조사에서는 “직종별 취업자의 성별, 연령, 전공, 평균 근속연수 등 다양한 정보의 제공이 필요하다”, “구인 기업의 복리후생, 직무내용, 재직자 현황, 이직률 등의 구체적인 정보가 있었으면 좋겠다” 등의 잡케어서비스 개선을 위한 다양한 의견도 수렴했다.
조사 결과는 22년 하반기 대국민 서비스 고도화 및 활성화를 위한 개선에 활용될 예정이다.
향후 잡케어서비스의 개방 계획
현재 잡케어서비스는 전국 고용센터에서 구직자를 대상으로 시범 운영 중이며 4월 중순부터 민간위탁기관 및 새일센터 등에 개방하고 올해 하반기까지 시범 운영 대상을 전국민으로 확대한 후 내년에 정식 운영할 계획이다.
향후 이용자와 상담사를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단계적 확대를 통해 잡케어서비스를 개선해 나갈 것이다.
나영돈 고용정보원장은 “이번 조사를 통해 이용자 중심의 고용서비스 품질을 계속 관리해 나가는 한편, 불편사항과 개선사항에 대한 의견을 적극 반영할 것”이라며, “구직자가 원하는 정보를 지속해서 발굴하고 AI 기술과 데이터 분석을 정교화하여 내년부터는 모든 국민이 워크넷에 접속만 하면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도록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한국고용정보원(원장 나영돈)은 50~60대 신중년들의 재취업 성공스토리를 담은 취업 지원 동영상 ‘신중년들의 취업가이드’를 워크넷(www.work.go.kr)을 통해 서비스한다고 지난 17일 밝혔다.
총 15편의 동영상으로 구성된 ‘신중년들의 취업가이드’는 재취업에 성공한 신중년들의 취업 준비 경험과 비경 등을 생생한 인터뷰로 담았고, 취업을 준비하는 신중년들이 알아두면 도움이 될 구체적인 취업 정보도 제공한다.
신중년 재취업 사례(12편), 노동시장의 변화와 신중년 일자리 영향(1편), 새로운 형태의 신중년 일자리 소개(1편), 신중년 진출 가능 신직업(1편)으로 구성됐다.
또한, 사례 중심으로 동영상별 15분 내외로 제작된 만큼 동영상 시청에 집중될 수 있도록 제작되어 시청자의 몰입도를 높이게 제작되었다고 평가된다.
새로운 분야로의 재취업형
57세 김모씨는 발로 뛰고 현장을 누빈 덕분에 재취업의 문을 열었다. 영어 학원 강사로 근무하다 코로나로 인한 학원 상황이 나빠져 퇴직한 김씨는 고용센터 위탁 교육기관에서 환경 분야 자격증을 취득하고 관련 직군의 회사에서 현장 실무를 경험하는 등의 노력으로 환경인허가 관련 회사에 취업했다.
“고용노동부의 정보지원을 꾸준히 찾아봤어요. 직접 일해보지는 못하지만, 현장 실무는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고 고용센터를 통해서 관련 직군에서 일하는 분의 회사에 가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셨어요. 일종의 견학식으로요. 어깨너머로 실제로 어떻게 일하는지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런 게 비결일 것 같아요. ‘발로 뛰는 것!’ 가만히 있는다고 누가 제 할 일을 제 코앞에 가져다주지 않아요.”
경력을 살린 재취업형
운수회사 관리자였던 66세 박모씨는 전 직장에서 쌓은 경력과 경험을 살려 제 2인생을 활기차게 보내고 있다.
박씨는 이전의 일자리가 자격증이 없어도 누구나 할 수 있도록 바뀌면서 경쟁력을 잃어 그만두게 됐다. 퇴사 후 고용노동부에서 제공하는 직업훈련과 자동차정비연합회 산하에서 교육받고 정비 능력을 발전시켜 자동차 검사원으로 재취업했다.
“퇴사하고서는 닥치는 대로 더 열심히 살았어요. 유사 업종 아르바이트도 하고, 영업용 화물차를 사서 운송도 직접하고 그랬다니까요? 그동안 평생 차와 관련한 일을 해서 자신 있었고 하나씩 단계를 밟아 오다 보니 자동차 검사원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개인 점포도 내 볼까 했는데 거의 다 판매나 식당 이런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언제 밥을 지어봤습니까, 뭘 팔아보길 했습니까, 그래서 잠깐 고민해보다가 자동차 분야로 굳히기를 했죠.”
우연한 기회를 살린 재취업형
57세 권모씨는 취미를 특기로 살려 재취업에 성공했다. 권씨는 식당에서 주방일을 하다 다쳐 일자리를 그만두게 된 후 건강 관리와 취미를 위해 점핑 운동을 하다가 전문가 프로그램 자격증을 따서 지금은 점핑 클럽 강사로 일하며 건강과 수익을 동시에 챙기고 있다.
“몸이 좋지 않아서 운동을 배우다가 점핑을 알게 되었어요. 조금씩 하다보니까 재미도 있고 몸이 회복 되는걸 느꼈던 것 같아요. 그때 문득 ‘내가 가르칠 수 없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운동을 하면서 몸도 지키고 일도 하는 일석이조! 그때 점핑 강사를 선택했습니다. 점핑 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배우다 보면 전문가의 프로그램 자격증을 수료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코스가 있습니다. 또 일을 할 수 있는 클럽도 서로 공유하며 지내기 때문에 수입을 만들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점핑 강사는 수입도 만들고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직업이라 신중년에게 특히 더 좋은 직업인 것 같습니다.”
고용센터를 적극 활용한 재취업형
전업주부 생활 중 빈둥지 증후군이 걱정돼 재취업을 결심한 56세 유모씨는 고용센터 취업컨설팅을 적극 활용해 재취업했다.
재취업 준비를 위해 고용센터를 방문해 취업정보에서부터 자기소개서, 이력서 쓰기 등까지 다양한 취업 지원을 받았고, 지금은 보험회사 총무팀으로 출근하면서 만족스러운 중년을 보내고 있다.
“몇 번의 이력서를 내고 몇 번의 거절 통보를 받고 그리고 달콤한 열매를 맛보는 것 아닐까요? 자기소개서 쓸 때 고용센터에 방문해서 교육해주시는 선생님께 이력서 쓰는 걸 좀 도와달라고 요청했어요. 3일을 매일 갔었는데 성의를 다해 도와주셨고 그 덕에 취업할 수 있던 것 같아요.”
나영돈 원장은 “신중년들의 재취업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동영상을 통해 재취업에 성공한 사례자들의 경험담을 생생하게 들려주고자 한다”라며, “고령화에 따라 증가하고 있는 신중년들을 위한 맞춤형 경력설계 서비스를 더욱 개발하고 확대하여 제공하겠다”라고 밝혔다.
‘신중년들의 취업가이드’ 동영상은 취업정보사이트 워크넷*과 유튜브 한국고용정보원 채널에서 볼 수 있다.
설거지를 사랑하는 남자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부자 두 사람.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와 마이크로소프트를 탄생시킨 빌 게이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이 두 부호(富豪)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하는 습관이 바로 설거지라고 합니다.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치면 설거지를 거르지 않습니다. 일과 삶,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균형 있게 운영하는 것을 ‘워라밸’(Work-Life Balance)이라고 한다면 두 사람은 나아가 직장과 가정의 조화, ‘워라하’(Work-Life Harmony)를 추구합니다. 가정에서 에너지와 사랑을 충전해 다음 날 일터로 나가는 두 남자.
해외에 두 남자가 있다면 국내에도 못지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남편이라면 ‘공공의 적’ 역대 1위 자리를 한 번도 놓치지 않은 최수종 씨를 떠올립니다. 옆집 정 여사가 집안일에 과부하가 걸린 어느 날 숨도 못 쉬게 몰아치며 설거지까지 겨우 마친 순간, 하필이면 텔레비전에서 이런 소리가 들립니다.
“아니 어떻게 앉아서 밥을 차려달라 할 수가 있어? 난 단 한 번도 아내가 밥할 때 앉아 있어 본 적이 없어. 옆에 꼭 붙어서 뭐가 필요한지 챙기고 심부름하고 무거운 것도 들고 그래야지.”
그 순간 소파에 편안히 기대 휴대전화로 유튜브에 몰입해 있는 남편이 눈에 띕니다. 울컥 눈물이 속에서 차오릅니다. 분노를 넘어 슬픔입니다. 이거 정 여사만 느끼는 심정일까요?
엄마가 뿔났다!
마음 미장공 세 번째로 나눌 주제는 ‘살림’입니다. 살림 하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를까요. 엄마, 아내, 주부. 그렇습니다. 집안일을 도맡은 사람. 밥, 빨래, 청소, 육아, 공과금 납부, 저축, 분리수거, 제사, 경조사 챙기기 등 눈에 보이는 일과 보이지 않는 일이 산더미입니다. 해도 해도 티가 안 나지만, 안 하면 금방 티가 나는 그 일이 살림입니다.
2008년 방영되어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엄마가 뿔났다’(KBS-2TV).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주인공을 맡은 김혜자 씨는 그해 방송사와 백상 연기대상을 수상합니다. 엄마이자 며느리이자 아내인 주인공은 62세 되던 날, 당당히 1년 휴가를 선언하고 원룸을 얻어 집안 탈출에 성공합니다. 남편부터 세 자식, 며느리까지 모두가 반대하던 휴가를 단 한 사람 시아버지의 동의를 얻어 감행합니다. ‘엄마 파업’으로 획득한 자유와 나만의 시간을 누리기도 잠깐, 임신한 며느리는 하혈하고 남편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어쩔 수 없이 복귀합니다. 66부작 드라마 마지막 장면에서 엄마는 이렇게 독백합니다.
“하지만 다음 생에는 나도 내 이름 석 자로 불리면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
금쪽같은 내 새끼와 82년생 김지영
그 뒤 10여 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강산이 적어도 한 차례는 바뀌었고, 세상은 빛의 속도로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정은요? 책과 영화로 엄청난 공감과 논쟁을 불러일으킨 ‘82년생 김지영’은 오히려 동서양 할 것 없이 나라 밖에서 더 주목을 받았습니다. 요즘 ‘금쪽같은 내 새끼’(채널A)에는 집안일에 질식해 숨구멍 하나 찾지 못한 채 사회와 단절되어 정신적·육체적·정서적 고통을 안고 사는 엄마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합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201호도 그렇고 504호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림의 힘
살림의 가치를 살려야 합니다. 살림하다 아프고, 마음 상하고, 병드는 게 말이 되지 않습니다. 왜? 살림은 살리는 일이니까요.
살림은 OO이다!
빈 곳에 알맞은 답은 무엇일까요?
예, 맞습니다. 침대가 가구가 아닌 과학이란 광고 문구처럼, 살림은 과학입니다. ‘밥은 하늘이다’, ‘밥심으로 산다’고 말합니다. 밥을 지을 때 모든 과학이 다 동원됩니다. 물, 불, 가스, 전기 같은 에너지의 원리도 알아야 하며, 칼, 솥, 팬 등 각종 재질의 도구와 전자제품에 대한 이해와 능숙함도 필요합니다. 제철 식재료를 알아야 신선하고 영양 있는 것들로 값싸게 구입해 맛있게 조리할 수 있습니다. 김장김치만 해도 발효 기간과 온도가 맛과 선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요. 된장이나 간장 만들기는 어떻고요. 과학의 정수가 모여 있는 게 김치와 장맛입니다.
1단계를 통과하셨다면 이번엔 다섯 글자에 도전해볼까요?
살림은 OOOOO이다.
제가 준비한 답은 ‘정성 끝판왕’입니다. 정성이란 귀찮은 게 귀찮지 않은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아이 똥 기저귀를 가는 일, 산지에서 갓 올라온 생선과 채소를 사러 전통시장에 가는 일, 퀴퀴한 고린내 나는 양말을 빠는 일이 힘은 들어도 귀찮지 않습니다. 내 식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귀한 일입니다. ‘귀찮다’는 ‘귀(貴)하지 아니하다’는 말입니다. 귀찮지 않다는 그래서 매우 소중하고 귀하다는 뜻입니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 온 식구가 재택근무에 비대면 수업으로 삼시세끼 집밥 시대가 열렸습니다. 돌아서면 밥하는 ‘돌밥돌밥돌밥’으로 살림하는 일이 새삼스레 의미가 생긴 세상이니 참 알다가도 모를 요지경 속입니다.
살림은 OOOO테스트다.
3단계는 좀 더 어렵습니다. 맞히셨다면 대박! 진정한 살림꾼, 프로 ‘살림 장인’으로 인정합니다. 최근 들어 세대 가릴 것 없이 유행하는 성격 유형 검사 MBTI라고 답하셨다면 정답에 거의 근접한 셈입니다. ‘성질머리’가 제가 원하는 답입니다. 살림을 해보면 자기 본성, 성품이 성질머리로 뾰족 튀어나오는 순간이 정말 많습니다. 배운 적이 있든 없든 계급장 떼고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배워야 하는 것이 살림입니다. 예전에 살던 본가에서 해오던 습성을 새 식구, 새 풍습과 문화에 맞춰가는 과정에서 지지고 볶다가 툭툭 성질 하나가 머리를 들이밀기 마련입니다. 모난 마음, 욱하는 성질을 누르고 둥글리는 것이 살림입니다. 못된 생각, 원망하는 마음으로 칼질을 하면 꼭 손을 베거나 다칩니다. 피를 보고서야 아차 합니다. 식구들 먹일 음식, 살리려는 음식을 만들면서 독한 마음, 살기(殺氣)를 넣을 수는 없습니다. 그럴 때 먹은 밥은 희한하게 체합니다. 귀신같이 어찌 알았을까요.
엄마라는 경력 왜 스펙 안될까?
그만큼 귀하고 소중한 살림을 우리는 오랫동안 어떻게 치부해왔을까요. ‘부엌데기’, ‘솥뚜껑 운전수’, ‘아줌마가 밥이나 하지’ 이런 말로 비하하고 업신여기지 않았나요? 남자들뿐만 아니라 살림의 주된 당사자인 여자들조차도 하찮거나 허드렛일로 여기고, 잡일로 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세상에 하찮은 일은 없습니다. 그 일을 잡일이니 막일이니 허드렛일이라고 대하는 그 마음이 하찮고 사소할 뿐이고, 그 태도가 값쌀 뿐입니다. 모두가 소중하고 꼭 필요한 일입니다. 특히 살림은 신성하고 고귀할 뿐만 아니라 사람과 물건과 주변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허드렛일로 대하는 순간 자기 자신을 위축시키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만들고 맙니다. 텔레비전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주부, 살림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습니다.
“집에서 놀면서….”
‘놀면서’라고도 안 하죠. ‘처놀면서’라고 하죠.
“집에서 처놀면서, 잠이나 처자면서 도대체 하는 일이 뭐야?”
안 그래도 무보수 노동, 사적 영역에만 묶여 있는 삶에서 느끼는 소외와 단절로 살림하는 사람은 충분히 불안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이런 식으로 비하와 경멸과 조롱이 섞인 표현을 스스럼없이 한다면 댁의 아내는, 엄마는, 며느리는 위축되고 분노할 것입니다. 오죽하면 몇 년 전 장안에 화제가 되었던 제약회사 자양강장제 광고도 있었잖아요.
(태어나서 가장 많이 참고 일하고 배우며 해내고 있는데)
“왜 엄마라는 경력은 스펙 한 줄 안 될까?”
이렇게 자조적으로 한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게 바로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화나게도 하고 울렸던 부분입니다. 주부의 일, 살림살이의 가치를 경제적으로 환산한 것도 한때 유행으로 그치고, 2022년 현재까지도 이력서, 자기소개서 한 줄도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남에게 맡길 때는 이 모든 살림살이 단계마다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출산, 육아, 가사 노동, 가정 경영과 관리, 부모님이나 아픈 가족을 부양하고 돌보는 일이 아예 경력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외의 영역에서 경력을 개발하라고 밖으로 내몰기만 하는 게 어불성설(語不成說)이고, 선후(先後)가 바뀐 이야기입니다.
먹을 때
밥 먹을 때
우리는 겸손해집니다.
제아무리
난 척하려 해도
뻐기려 해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는
먹을 수 없기에
내 앞에서
정수리 보여주는 당신을
나는 사랑합니다.
-, 19쪽
오늘 아침 봄동으로 된장국을 끓였습니다. 멸치다시 육수와 쌀뜨물에 친정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된장과 생애 처음 담근 보리고추장으로 국물을 내서 상에 올렸는데 다들 참 맛있게 먹었습니다. 국그릇에 고개를 박고 맛나게 먹는 남편과 두 아들의 정수리를 보고 저도 정수리를 보여줍니다. 누구나 밥 먹을 때 어떤 자리에서든 정수리를 보여주잖아요. 특히 한국 음식은 국물이 많기 때문에. 같은 동양 문화권이라도 중국이나 일본 음식처럼 그릇을 손에 들고 먹는 게 아니라 고개를 숙여서 먹습니다. 그런 것처럼 먹는 일, 살리는 일이 신성하고 고귀한 한편 스스로를 낮추고 겸손하게 만드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바로 살림의 힘이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요. 맛난 음식 드시고, 서로 정수리 보여주면서 낮추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정직한 길을 걸어온 사람은 진실하고 솔직하다. 소박하고 따뜻하다. 무엇보다 겸손하다. 우선 내 진로를 모색하고, 그 도상에서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사회로 시선을 확장하며 꾸준히 쉼 없이 걸음을 뗀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성실하고, 사람답고, 정의롭다고 말한다. 고영회는 그런 사람이다. 그는 보통 사람들은 하나도 갖기 어려운 전문 자격증을 셋이나 갖고 있다. 변리사이자 이공계의 꽃이라 불리는 2개 기술 분야의 전문가다. 시쳇말로 꽃길만 걸어온 것일까. 함께 그가 걸어온 길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서울대 합격한 알밤, 몸 팔러 중동으로
“보리밭에서 김을 매고 있다가 서울대 합격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 고향이 진주 동편의 진양군 금산면 시골인데 서울에 사시던 6촌 형님이 전화 연락을 주셨고, 그 전화를 받은 동네 사람이 헐레벌떡 달려와 알려주신 거죠. 학교 다니는 틈틈이 농사를 돕고 지게를 지고 땔감을 구하러 다녀야 했던 곤궁한 시절이었죠. 중학교 1학년 때 폐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밀린 병원비, 그 후 형제들 학비, 생활고로 인한 이런저런 빚에 눌려 집안 형편이 상당히 어려웠지요. 아버지의 폐암은 젊은 시절 7, 8년간 일본에서 광부 생활을 하셨던 게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빈곤의 대물림을 끊어보려고 돈 벌러 갔던 것이 오히려 병환을 불러왔으니 가난은 더 험상궂은 얼굴로 우리 가족을 덮쳤던 거지요.”
어릴 적 그의 별명은 알밤. 머리가 크고 영특해서 그렇게 불렸다. “알밤, 이리 와봐라. 네가 공부를 열심히 하면 아버지가 어떻게 해서든 대학까지 보내주마.”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추억이 받아든 합격 통지서에 여울졌다.
1977년, 서울대 자연계열로 들어간 후 건축학과를 택했다. 학비와 생활비 마련이라는 생존의 꼬리표가 늘 붙어 다녔던 고달픈 대학 시절이었다. 과외 아르바이트로 버텨나갔지만 간혹 끼니를 거를 때도 있었다. 건축과를 나오면 100% 취업이 되던 때라 국내 경기 호재와 함께 중동 건설 붐을 타보자 결심했다. 1982년, 미륭건설(현 동부건설)을 통해 공사 현장 기사로 파견됐다.
“그 당시 중동에 가는 걸 ‘몸 팔러 간다’고 했어요. 국내에서 30만 원 월급쟁이가 거기 가면 80만 원 이상 받을 수 있었어요. 2.5배나 많았던 거죠.”
그는 4남 2녀 중 넷째 아들이지만 선친이 집안 살리려고 일본 광산에 돈 벌러 갔듯 그도 사우디아라비아로 향했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 빚에 눌려 고 씨 가족이 야반도주할 거라는 소문까지 동네에 돌던 때였다. 바람이 불었다 하면 모래가 비처럼 내리고 모래밭에 달걀을 묻으면 익어서 나오던, 말 그대로 열사의 땅이었다. 그렇게 3년 3개월을 모래 섞인 밥을 먹으며 돈을 벌어 집안의 빚을 얼추 갚고 나니 20대가 저물고 있었다. 중동의 모래 열기처럼 식을 줄 몰랐던 건축 경기가 1980년대 중후반부터 가라앉기 시작했다.
“경기 좋을 때는 고용했다가 일이 없으면 그냥 잘라버리거나 가차 없이 책상을 빼버리는 현실을 보면서 제 미래도 암울하게 느껴졌습니다. 말로는 기술 강국을 지향한다 하면서도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대우와 처우는 실망스러웠지요.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소모품 다루듯 했으니까요.”
기술사란 별을 두 개나 땄으나
그에게 도전은 일상이다. 길이 아니다 싶은데도 뭉개고 있을 이유가 없다. 미래를 다지기 위해 엔지니어로 전문성을 갖추기로 마음을 다잡고 퇴근 후 독서실로 직행해 자정까지 공부했다. 말 그대로 주경야독의 노력으로 1991년 기술계의 최고봉이라 할 기술사 자격증을 땄다. 건축시공 기술사와 건축기계설비 기술사, 기술 분야 최고의 타이틀을 두 개나 갖게 되었다. 합격률은 5% 미만, 이공계에서 기술사는 그만큼 영예로운 이름이다. 그렇게 엔지니어로서 자긍심을 갖는가 싶었으나 제도적 구멍과 허점은 여전했고 깊숙이 들어갈수록 실망스러웠다.
이렇게 하늘의 별을 두 개나 땄지만 제대로 빛이 나지 않은 대신 그의 근성이 빛을 발했다. 모순과 불합리에 정면으로 맞서는 그의 근성 말이다. 단합된 목소리와 응집된 힘을 내기 위해 2002년 대한기술사회를 발족, 초대 회장이 되어 기술사 제도 개선 운동을 펼쳤다. 문제가 있는데도 덮어두면 구성원들이 고통을 받고, 그 신음에 무심하면 사회 전체가 병들기 마련이니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기술사에 대한 처우가 제대로 되어 있었다면 변리사가 되지 않았을 거예요. 기술사의 제 위치 찾기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다시금 회의가 일면서 이대로 고여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방향 전환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수험생 가장, 37세 늦깎이 변리사로
엔지니어로 소위 잔뼈가 굵어가던 때, 인생을 전환하기엔 늦었다면 늦은 나이라 할 수 있는 30대 중반에 그는 변리사 시험에 도전한다. ‘그간 무수한 시험을 치렀고 따지고 보면 인생 자체가 도전과 통과의 시험 치르기가 아닌가. 최선을 다해보고 안 되면 그때 포기하면 된다. 세상을 살면서 할걸, 하지 말걸 하는 후회는 남기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6개의 눈동자’가 있었다. 여우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두 딸을 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진로 변경에 대해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익숙하게 겪어왔지만 고생 중에 돈 고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수험생 가장’이 된 후 새삼 절감했다. 기술사 준비할 때와는 또 다른 압박감 탓인지 연거푸 두 번을 낙방했다. 첫 시험에서 1.1점 차로 떨어졌기 때문에 두 번째 시험에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막상 성적을 받아보니 결과는 더 나빴다. 또 한 번 고배를 마시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지막이란 각오로 세 번째 도전에서는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공부에만 매달리느라 집에 생활비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설상가상, 하루는 독서실에서 돌아와 보니 네 살 딸애가 피를 쏟고 있는 거예요. 병원에서 진단 내린 ‘특발성 혈소판 감소증’이란 병명조차 무서웠지요. 원인 모를 피를 쏟고, 쏟았다 하면 좀체 멈추질 않는 거예요. 한방 치료를 통해 체질을 완전히 바꾸고 나서야 근 5년간 지속된 병세가 잡혔지요. 아내는 당시 둘째 아이를 가졌던 터라 만삭인 상태에서 큰애를 데리고 병원을 다녔는데 출산을 앞두고는 어쩔 수 없이 시골 어머니께 도움을 청했지요. 그런데 얼마 안 지나 이번엔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셨어요. 아내는 둘째를 이집 저집에 맡긴 채 입원 중인 큰아이와 어머니를 간병해야 했고, 저는 퇴근과 동시에 작은애를 찾아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갔지요. 심청이 젖동냥하듯 작은애가 고생했지요.”
돌이켜보면 그때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였다. 재정적·가정적 위기를 딛고 고진감래하여 1995년 변리사가 된 기쁨은 그래서 더욱 컸다. 그해 응시자는 5000여 명, 이 가운데 30명이 합격했으니 약 150대1의 경쟁을 뚫은 것이다. 그는 1958년생 동갑 응시생과 함께 최고령 합격자로 37세에 늦깎이 변리사가 되었다.
변호사의 변리사 자동 자격 금지 법제화 이루다
변리사 자격 취득 후 성창특허법률사무소를 내고 한숨 돌리나 했더니 기술사 세계에서 보아온 불합리한 관행이 변리사 세계에도 고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발견했다. 변호사에게 변리사 자격을 자동으로 부여하는 제도가 그중 하나.
이 관행을 뜯어고쳐 법에 명시된 변리사 고유 권한을 되찾고자 그는 37대 대한변리사회 회장(2014~2016년)에 취임했다. 관성적으로 주어지던 변호사의 변리사 자격 자동 취득 금지를 법제화하기 위해 4000여 변리사회 회원의 수장이 되어 임기 2년 동안 총력전을 펼쳤다. 2015년 12월 31일, 회장 임기 만료 2개월을 앞두고 마침내 변리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변호사가 변리사 업무를 병행하기 위해서는 6개월의 실무교육을 받도록 한 것이다. 이후 매년 300~400명이 받던 자동 자격이 30~40명 선으로 줄었으니 법 효율은 90%에 달한 셈이다.
변호사에게 자동으로 주어지던 변리사 자격이 고 회장에 의해 75년 만에 사실상 폐지된 것이다. 변리사회 출범 이래 전례 없던 법 개정이자 고 회장의 승리였다. 그 일이 실제로 성사될 것이라 믿은 사람은 없었다. 4만 회원이 등록된 변호사회는 덩치만 해도 변리사회보다 10배나 크고 국회 상임위, 법사위 등의 80~90%를 변호사가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자기 집단에 불이익이 되는 법안을 통과시켜줄 성싶냐는 게 상식이었고 또한 지배적 견해였기에.
“저라고 그걸 몰랐겠습니까. 하지만 직접 뛰어들어보니 본질과 이치가 들어옵디다. 입으로만 떠들지 말고 몸으로 뛰어보면 답이 나옵니다. 골리앗을 이기는 다윗이 종종 나오는 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는 여세를 몰아 연임에 도전했다. 변리사회 회장의 연임 금지 규정이 폐지된 점 또한 도전을 부추겼다. 한 번 더 회장이 되면 변호사의 변리사 자동 자격 금지 제도 법제화에 이어 이번에는 법에 규정된 특허침해소송 대리권을 변호사로부터 오롯이 되찾아올 기회였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불거졌다. 변리사회 회원 중 변리사 자격을 가진 변호사 50여 명이 조직적으로 투표를 한 것이다. (변리사회는 변리사 시험에 합격한 회원, 변호사로서 변리사 업무를 병행하는 회원, 특허청 출신 회원, 이렇게 한 지붕 세 가족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자동 자격 제도 폐지로 불이익을 당하자 대한변호사협회에서 고 회장의 재선을 저지하고 나선 것.
‘눈엣가시이자 미운털 고영회’를 떨어뜨리기 위해 상대 후보를 적극 지지, 상대 후보와의 표 차는 투표한 변호사 수만큼 벌어져 465대415로 고 회장이 낙선했다. 이른바 역선택을 당한 것이다. 이후 시험 출신 젊은 변리사들의 선거 복기로 부정선거 정황이 드러나면서 신임 회장의 탄핵안이 통과되었다. 37대 고영회 회장에 이은 38대 회장이 두 달 만에 해임되어 변리사회 초유의 불명예를 안게 됐다. 사필귀정이었다.
물오른 인생 3막, 다시 쓰는 통합이력서
변리사 업계에 전대미문의 업적을 남기며 20여 년 혼신으로 일했던 변리사에서 최근 그는 기술사 업무로 다시금 방향을 전환했다.
“인생은 돌고 도는 거라더니 싫어서 나갔던 집을 30년 만에 돌아왔다고 할지, 환갑 즈음부터 처음 배운 도둑질인 기술사 업무에 나중 배운 변리사 업무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변리사로서는 경쟁력이 점점 떨어지는 점도 작용했고요.”
현장 경력, 전문 기술사 경력, 법률 문제에 정통한 변리사 경력 등 제각기 핀 꽃이 연륜으로 버무려져 건설 분쟁 해결 전문가로 독보적 지위에 올랐다. 40년 경륜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이력서로 인생 3막을 연 것이다. 속된 말로 변리사로서는 한물갔지만 기술사로서는 한창 물이 오르고 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곧장 그 길을 가는 사람도 있지만, 돌아간다 싶었던 길을 지금 와서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30년 전 일이 다시 본업이 된 저처럼 말이지요. 현실이 고통스럽다 해도 그 고통이 미래의 기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고통 자체도 지나고 보면 경험이란 측면에서 삶을 풍요롭게 하지요. 당장은 죽을 맛 같아도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태어났으니 고생도 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긍정적 마음이 긍정적 결과를 낳는다는 보편적 진리를 믿고 한세상 살아내야지요.”
이런 인생관을 가진 그에게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조차도 ‘참 좋은 시절’이 보장된 셈이 아닌가!
올해 60세가 된 A씨는 직장에서 정년퇴직했다. 은퇴생활을 즐길까 고민했지만 국민연금 수령 전까지 수입이 없어 생활비가 걱정이다. 결국 재취업을 결정했으나 당장 취업 때까지 생활비가 걱정이다. A씨가 불현듯 떠올린 것이 비자발적으로 직장을 그만 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다. 그런데 정년퇴직을 한 시니어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을까.
정답부터 말하면 정년퇴직자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실업급여는 고용보험에 가입한 근로자가 실직했을 때 구직활동 기간 동안 생계 안정을 위해 받는 급여다. A씨 같은 정년퇴직자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다만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고용보험에 가입한 사업장에서 실직하기 전 18개월 중 180일 이상 근무했어야 한다. 둘째 자발적으로 직장을 그만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셋째 일하겠다는 의사와 근로 능력을 갖추고 적극적으로 취업활동을 해야 한다. 정년퇴직은 내가 그만두고 싶어서 그만둔 게 아니므로 비자발적 퇴사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실업 상태임을 증명해야 한다. 고용센터 홈페이지에서 ‘메뉴→개인서비스→조회→상실신고서와 이직확인서’를 선택하면 처리됐는지 알 수 있다. 처리가 안 됐다면 전 직장에 연락해 발급을 요청해야 한다. 본인이 전화하기 번거롭다면 근로복지공단에 연락하면 된다. 공단에서 퇴직자를 대신해 전 직장에 발급을 요청한다.
신청은 거주지 담당 고용센터에서 할 수 있다. 방문 전 인터넷에서 사전 절차를 밟고, 고용센터를 방문하면 빠르게 신청할 수 있다. ‘구직등록, 수급자격 신청자 온라인 교육→수급자격 인정 신청→구직급여 신청’ 단계를 거치면 된다.
‘구직 등록’은 고용노동부 고용정보시스템 ‘워크넷’에서 할 수 있다. 구직활동을 위한 이력서와 자기소개를 작성하면 된다.
또 고용센터 홈페이지에서 ‘수급 자격 신청자 온라인 교육’을 수료해야 한다. 구직 등록과 수급 자격 신청자 온라인 교육 순서는 상관없다. 온라인 교육은 시청 후 별도 조작 없이 30분이 흐르면 자동 로그아웃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교육 시작 후 7일 이내 수료하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수강해야 한다. 온라인이 아니어도 고용센터에서 직접 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
교육을 수료했다면 14일 이내에 신분증을 가지고 고용센터에 가서 실업급여를 신청해야 한다. 고용센터에서 ‘수급 자격 인정 신청서’를 작성한 뒤 실업급여 신청 창구로 가면 된다. 담당 직원이 자격 여부를 최종적으로 확인하면 신청이 완료된다. 신청이 완료되면 ‘취업희망카드’를 준다. 취업희망카드에는 실업급여 관련 알아야 할 점들과 고용센터 출석 일정이 적혀 있다.
수급 자격 인정 신청서를 제출했더라도 두 번 이상 고용센터를 방문해야 한다. 실업급여를 신청하면 2주 뒤 고용센터에 재방문해서 1회차 실업인정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때도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그리고 4회차 실업인증일에도 고용센터를 방문해야 한다. 휴대폰 알림서비스에 등록하면 고용센터에서 회차별 실업인정일에 맞춰 문자메시지를 보내 주니 이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구직활동을 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1회 차 교육 때는 증명하지 않아도 되지만 2회 차부터는 구직활동기록을 고용센터에 제출해야 한다. 정년퇴직자는 지인 소개로 구직하는 사례가 많다. 이때는 구인 공고와 면접관 명함이나 면접 확인서를 제출하면 된다.
워크넷을 통한 구직활동을 했을 때는 이메일 입사지원 내역을 제출하면 된다. 잡코리아, 인크루트 같은 취업 포털사이트에서 구직했다면 모집 공고문과 취업활동증명서를 제출하면 된다. 개인 이메일로 지인의 소개를 받았다면 모집 공고문과 보낸 편지함 인증 파일을 캡처해서 제출해야 한다. 팩스나 우편으로 지원했으면 사진, 팩스 송신증, 등기 영수증을 제출해야 실업상태를 인정받을 수 있다. 증빙자료는 월 1회 제출하면 된다.
실업급여는 퇴직 전 평균임금의 최대 50% 수준이다. 1일 지급 금액은 6만120원~6만6000원 사이에서 정해진다. 각자 책정한 1일 지급 금액을 소정 일수만큼 더해 받게 된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은 90~240일이다. 나이와 고용보험 가입 기간, 근무 연수에 따라 달라진다.
실업급여는 재취업하면 지급이 종료된다. 다만 실업급여를 받게 될 기간이 1/2 이상 남았다면 조기재취업수당을 받을 수 있다. 조기재취업수당은 남은 실업급여의 50%다. 한 직장에서 1년을 근무해야 청구할 수 있다. 재취업 후 1년이 지난 뒤 고용센터에 신청하면 된다.
"인구 변화가 신중년 취업의 핵심이다. 인구변화를 잘 살피면 시장 변화와 취업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조영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16일 열린 ‘신중년 취업트렌드2021-신중년 미래 일자리 히든카드’ 온라인 세미나에서 이와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은퇴 후에도 스스로 경제활동을 하며 생계를 책임지려 하는 신중년이 늘고 있다. 이에 취업을 희망하는 시니어를 위한 온라인 세미나가 열렸다.
이번 세미나는 서울시50플러스재단과 현대자동차그룹, 고용노동부, 상상우리 4개 기관이 함께 한 신중년 커리어 프로젝트 ‘굿잡5060’의 세부 프로그램 중 하나다. 이날 신중년의 취업 전략과 방향에 대한 강의와 분야별 취업 전문가 토론, 현장 토크가 진행됐다.
인구학자인 조영태 교수는 ‘신중년의 미래를 정하는 앞으로의 10년’을 주제로 한 기조강연에서 "인구 변화를 관찰하면 미지의(未知)의 미래를 기지(旣知)의 미래로 바꿀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구 변화에 따라 어떤 산업과 관련 시장이 성장하고, 특정 산업이 어떻게 변화할지 알려주기 때문에 취업시장의 지표로 쓸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창업을 준비하는 시니어들에게 조 교수는 “여지껏 실버산업은 규모가 매우 작았지만 증가하는 시니어 인구에 맞춰 점점 커질 것”이라며 “요즘은 어르신들도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한다. 디지털 디바이스와 시니어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합치면 (사업을 어떻게 구상하고 어떤 분야를 준비하면 좋을지) 해답이 나올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신철호 상상우리 대표는 신중년 맞춤 취업전략의 하나로 '신중년 이력서 쓰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신 대표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 직위에 있었어도 자동적으로 해낼 수 있었던 업무를 ‘경험’, 나의 힘이 아니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일들을 ‘역량’으로 분류"하며 "이력서를 역량을 중심으로 작성할 것"을 강조했다. 특히 신 대표는 "입사 후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 인재임을 드러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전영 고용노동부 고령사회인력정책과 주무관은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신중년 일자리 지원 제도로 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 국민취업지원제도와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를 소개했다. 안선진 서울시50플러스재단 서부일자리팀 팀장은 50+적합일자리 사업, 서울50플러스 인턴십, 50플러스 보람일자리 등 서울시가 진행하는 중년 일자리 사업 참여를 독려했다.
마지막으로 최영순 한국고용정보원 미래직업연구팀 팀장이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요즘 일자리 찾기’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최영순 팀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취업을 원하는 시니어가 디지털 리터러시(디지털 문해력)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같은 디지털 플랫폼으로 일자리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 팀장은 “정보를 모으기보다 골라내는 능력이 중요하다”며 “디지털 플랫폼을 일자리를 얻기 위한 새로운 무대로 인식하고 낯설지만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조영태 교수는 “오늘 전달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신중년들이 70대까지 건강하게 일할 수 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퇴직한 중장년이 재취업 과정에서 처음 마주하는 난관은 바로 이력서다. 강산이 변하는 사이 채용 트렌드도 바뀌었고, 이력서 형식도 이전보다 다양해졌다. 이제는 경력을 단순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인사 담당자의 이목을 끌기 어렵다. 또 사회 초년생이 아닌 만큼 패기 넘치는 열정 대신 긴 세월 쌓아온 내공을 매력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낯선 재취업의 시작, 첫발을 성공적으로 내딛기 위해 알아야 할 이력서 노하우를 소개한다.
도움 중장년 재취업 전문기업 상상우리
재취업을 준비하는 중장년은 일반적으로 생소한 분야보다는 동종 업계로의 경력 이직을 선호한다. 고령에 새로운 업무를 익히기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전직할 경우 임금을 큰 폭으로 낮춰야 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방법은 헤드헌터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높지 않다. 2019년 취업포털 사이트 잡코리아가 헤드헌팅 공고 17만3000여 건을 분석한 결과 러브콜이 집중되는 연차는 3년~5년 차 미만으로 전체의 29.6%를 차지한 반면 △10년~15년 차 미만(10.3%) △15년~20년 차 미만(2.5%) △20년 차 이상(0.7%) 등 연차가 높아질수록 헤드헌팅 기회가 줄었다.
성공적인 재취업을 위해서는 헤드헌터의 메일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대신 원하는 기업에 적극적으로 이력서를 내밀고 일자리를 탐색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중장년 재취업 전문기업 상상우리 신철호 대표는 “나이에 대한 편견으로 중장년 채용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기업도 있지만, 능력을 명확하게 보여줄 수만 있다면 편견을 역전시킬 수 있다”며 “서류 탈락의 원인을 나이에서 찾기보다는 이력서를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장년은 서류만 합격해도 취업에 70% 정도 가까워진 것이나 다름없다”며 “기업 입장에서 궁금해할 만한 이력서를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매력적인 이력서를 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STEP 1. 이력서 작성 전 준비 사항
◇ ‘실무자’라는 마음가짐
경력이 20~30년가량 되는 중장년은 임원 등 관리직 신분으로 있다 퇴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무자를 채용하는 기업은 임원 경력이 많은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3~6개월의 짤막한 실무 경험이 더 유리하다. 재취업을 한다면 과거와 달리 실무를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하고, 이에 따른 괴리감을 줄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 직무 역량 분석 후 목표 정하기
이력서를 작성하기 전, 먼저 자신의 역량을 파악해 취업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중장년은 최소 2가지 이상의 직무 역량을 보유한 경우가 많다. 이 중 실무에 투입되었을 때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해야 한다. 경력을 분야와 직무별로 적고, 정량·정성적 성과를 정리하면 자신의 핵심 역량을 보다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다음 직무와 관련한 기업을 찾아보는 것이다. 실제로 소프트웨어 기술영업 분야의 30년 경력을 보유한 A씨는 유사 제품군을 취급하는 기업 목록을 만들고, 해당 기업의 공고만 집중 공략해 재취업에 성공했다. 이처럼 문어발식 지원보다는 한 우물을 파는 것이 유리하다.
◇ 채용 공고 뜯어보기
대부분의 채용 공고는 지원자에게 요구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공개한다. 채용 공고를 전략적으로 분석해서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이력서 작성의 출발점이다. 가령 모집하는 직책이 팀장·실장·관장 등 ‘담당자’나 ‘책임자’로 적혀 있다면 실무 능력을 눈여겨본다는 의미이므로 학벌 등 단순 고(高)스펙 정보보다는 직무 경력을 강조해야 한다. 또 나이 제한을 두는 기업이 많지 않지만, 경력 기간에 ‘2년 이상’이라고 명시된 경우는 대부분 사원·대리 등 주니어 직급을 뽑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보가 부족하다면 전화로 물어봐도 된다. 기업 또한 채용으로 인해 빚어지는 위험 부담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원하는 인재상을 명확하게 이야기해줄 것이다.
STEP 2. 뽑히는 이력서 쓰기
◇ 직무와 무관한 정보는 과감하게 OUT!
경력 많은 중장년은 채울 내용이 없어 고민하는 사회 초년생과 달리 이력서의 분량을 쉽게 채운다. 경력기술서를 포함해 5~6장이 넘는 이력서를 쓰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정보가 너무 많으면 인사 담당자의 집중력을 떨어트리기 때문에 먼저 불필요한 경력을 제거하는 것이 유리하다. 분량은 최대 3장을 넘지 않도록 한다. 자격증도 마찬가지다. 회계 담당자를 뽑는데 요가나 필라테스 자격증은 필요하지 않다. 열정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될 순 있지만, 전문성을 떨어트리므로 직무 관련 자격증만 기술한다.
Tip 중장년 취업포털 서비스 ‘워크위즈’(workwiz.co.kr)에서 중장년 맞춤형 이력서 양식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 핵심 역량은 앞으로, 약점은 뒤로
중장년은 대부분 전통적인 이력서 양식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채용 공고에 ‘자유 양식’이라고 명시돼 있다면 보편적인 순서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중장년 이력서는 인적 정보 대신 직무 관련 역량을 맨 앞으로 배치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인사 담당자가 지원자의 나이만 보고 넘겨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직무 관련 역량을 상단에 작성하고, 이와 관련해 정량적 성과를 냈던 최신 경험을 2~3개 정도 작성하는 것이 좋다. 이후 나머지 경력은 간단히 쓴다. 최근 1~2년간 경력 단절이 있었다면 직무 관련 자격증이나 프로젝트, 재능기부 활동 등을 기재해도 된다. 나이나 학력이 약점이 될 것 같다고 판단되면 해당 내용을 맨 뒤에 배치하는 전략도 나쁘지 않다.
Tip 이력서에 텍스트만 쓰라는 법은 없다. 업무 역량을 도표나 다이어그램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도 눈길을 끄는 전략 중 하나다.
◇ 매력적인 헤드라인을 만들자
지원자에 대한 인사 담당자의 첫인상은 대략 15초 안에 결정된다. 넘쳐나는 경쟁자들 속 인사 담당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는 ‘입사지원서’ 같은 평범한 제목보다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헤드라인을 상단에 써주는 것이 좋다. 말하자면 자신을 표현하는 슬로건 같은 것이다. 단, 시키는 대로 다 한다는 식의 추상적인 내용은 매력을 떨어트린다. ‘시장의 요구를 반영하는 IR 전문가’와 같이 직무가 분명히 나타나면서 역량이 돋보이는 헤드라인을 써야 한다. 직급 대신 영어 이름을 부르는 등 수평적인 기업이라면 ‘마케팅 전문가 제임스 김’ 등 기업의 특징을 활용한 헤드라인으로 조직의 분위기를 따르겠다는 태도를 보여줘도 좋다.
Tip 헤드라인에 ‘배달의민족체’ 등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폰트로 포인트를 주면 트렌디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단, 모든 텍스트에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전체 폰트는 ‘맑은고딕’이나 ‘나눔바른고딕’ 등 가독성 높은 고딕체가 무난하다.
STEP 3. 최종 제출까지 꼼꼼하게
◇ 맞춤법 검사로 오탈자 점검
아무리 좋은 내용을 써도 오탈자가 눈에 띄면 허술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서류를 모두 작성하고 난 뒤에는 맞춤법 검사를 통해 오탈자를 점검해야 한다. ‘네이버 맞춤법 검사기’나 ‘부산대 한국어 맞춤법 검사기’를 활용하면 된다.
또 동일한 이력서로 여러 기업에 지원할 경우 A사의 기업명이 적힌 이력서를 B사에 그대로 제출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는데,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노력이 물거품되지 않도록 기업명을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 메일 제목과 파일명은 깔끔하게
마지막으로 메일을 보낼 때는 이력서라는 것을 곧바로 알 수 있도록 제목에 지원 부문과 이름을 명시한다. 첨부파일 제목은 ‘기업명_지원 부문_성명_이력서’ 등과 같은 형식으로 한 줄로 정돈해서 보낸다. 정해진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소한 부분에서 성의를 보이는 것도 합격률을 높이는 전략 중 하나다.
화려한 인생 2막을 위해 어디로든 달려가고 싶지만, 올해도 바깥 활동은 여의치 않다. 다행스럽게도 요즘엔 얼마든지 집 안에서 자기계발과 교육을 통한 재도약이 가능하다. 즉 뉴노멀 시대에는 온라인 플랫폼과 디지털 활용 능력이 노후 삶의 관건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로 주춤했던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힘차게 한 해 시동을 걸어보자.
도움말 이진서 인생다모작연구소장·서울시50플러스재단 앙코르전직지원 전문강사
[step 1] 현재 나의 상태 점검하기
새해를 앞두고 퇴직했다면 이런저런 계획이 많았을 것이다. 현실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이루려면 현재 자기 상태에 대한 점검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고용노동부에서 운영하는 ‘장년워크넷’ 홈페이지에서는 생애설계 자가진단과 관련한 서비스를 무료로 받아볼 수 있다. 물론 온라인을 통해서다. 10분 내외로 간단한 테스트가 가능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경력개발 지향 유형과 경력행동 유형에 관한 정보와 맞춤형 경력 준비 가이드라인을 제공받을 수 있다.
생애경력설계 자가진단 방법
➊장년워크넷 접속
➋전체 메뉴 중 ‘자가진단 서비스’ 클릭
➌화면 중앙 ‘자가진단하기’ 클릭 후 테스트 진행
➍결과 확인 및 이메일 발송
Tip+ 사이트 내 ‘생애경력설계서비스’ 메뉴에서는 중장년을 위한 온라인 동영상 교육도 진행한다.
[step 2]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하기
포스트 코로나 시대, 리부트를 위한 시니어의 자세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이진서 인생다모작연구소장은 “나이가 들수록 태도나 마음가짐을 바꾸기 쉽지 않지만, 이제 변화는 생존의 문제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을 예로 들며, 시니어 역시 이에 적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컴퓨터 활용이나 스마트폰 조작 등 선택의 문제로 여기고 미뤄온 일들을 지금이라도 익히고 체득해야 도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마침 지난해 정부에서 ‘디지털 뉴딜’ 정책을 발표해 디지털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 프로그램 등도 활기를 띨 전망이다. 이러한 변화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성공적인 인생다모작에도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평생학습포털에서 디지털 활용 능력 키우기
➊서울특별시 평생학습포털 접속 및 로그인
➋‘온라인학습’ 메뉴 클릭
➌‘정보/컴퓨터’ 메뉴 클릭
➍원하는 강좌 클릭 후 ‘수강신청’하기
Tip+ 디지털 관련 강좌 외 인문, 어학, 교양, 자격증 등 다양한 커리큘럼도 제공한다.
[step 3] 웹 세상에 항시 플러그인하기
시니어의 생애설계는 일자리, 재무, 건강, 관계, 여가, 사회봉사, 자기계발 등 7대 영역으로 구분해 이뤄진다. 중요한 건 어느 영역이든 시니어 스스로 고립된 상태에 놓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오프라인을 통한 만남의 창구가 줄어든 만큼, 온라인으로 정보의 플러그를 꽂아두고 많은 사람과 소통하길” 권했다. 가령 구직활동을 할 때도 취업포털사이트만 찾기보다는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 등에서 다양한 정보를 섭렵하고, 내게 알맞은 정보를 선별하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관심 있는 사이트를 즐겨찾기 해두고 동향 파악과 정보 수집을 위해 자주 들러보는 것도 자기계발에 도움이 된다.
Tip+ 만약 일자리에 관심이 있다면 전 연령대를 망라하는 취업포털사이트보다 나이 제한에 비교적 관대한 구직 정보가 담긴 정부 일자리 관련 사이트를 먼저 찾아보는 것이 좋다.
[step 4] 온라인 텃밭에 씨앗 뿌려두기
개인 유튜브나 블로그, SNS 등을 통해 정보 수집과 더불어 자기 브랜드를 강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 은퇴 후 전문성을 살려 강사를 꿈꾸는 이가 많은데, 초반엔 이력서를 아무리 내도 찾는 곳이 없을 수 있다. 이때 재능기부나 소액의 강의라도 시작하며 경험을 쌓는 동시에 SNS를 통해 자신을 어필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효과적이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강의나 개인 콘텐츠를 올려 수익 창출까지 꾀한다면 금상첨화다. 물론 그 수준까지 내다보려면 디지털 세상에 더 익숙해져야 하고, 배워야 할 것도 많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지금부터 차근히 나만의 콘텐츠를 쌓아간다면, 몇 년 뒤 온라인 텃밭에 뿌린 씨앗을 거둘 날이 찾아올 것이다.
온라인 클래스로 SNS 브랜드 강화하기
➊클래스101 접속 및 로그인
➋검색창에 SNS 키워드 입력하기 예)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➌강좌 리스트에서 원하는 커리큘럼 꼼꼼히 살펴보기
➍강좌 선택 후 클래스 신청하기(유료)
Tip+ 단순히 강의를 듣는 것 외에 각 분야 크리에이터들의 클래스 소개를 보며 어떤 방식으로 온라인 콘텐츠를 제작하고 홍보, 판매하는지 흐름을 살피는 용도로도 활용해보자.
베이비붐 세대의 대거 은퇴로 중장년의 재취업을 위한 다양한 직업훈련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있다. 각 지자체와 기관, 기업 등에서도 역량 있고 전문성을 갖춘 시니어 인재 활용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추세다. 앞서 고령화를 겪은 미국과 일본에서 성공 사례로 꼽히는 중장년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가 접목할 부분은 무엇일지 살펴보자.
참고 자료 한국산업인력공단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중·장년 특화 직업훈련과정 운영 개선방향」연구’ (2020)
◇ AARP ‘Back to work 50+’
AARP(미국은퇴자협회)는 2012년 50+ 세대의 재취업을 지원하는 사업인 ‘Back To Work 50+’를 만들어 2013년에 콜로라도 덴버에서 파일럿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이듬해인 2014년에는 미국 커뮤니티 칼리지 연합회와 협력해 사업을 전국적으로 확대했다. ‘Back To Work 50+’는 구직자를 각 지역에 필요한 인력으로 양성해 구체적인 직업 기회를 연결함으로써 취업에 성공하게끔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구체적으로는 △각 지역의 커뮤니티 칼리지, 노동력 투자 위원회, 실업자를 위한 비영리 단체, 그리고 각 지역의 기업체가 협력할 여건을 조성 △구직자의 업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단기 직업훈련 프로그램 제공 △직장 응시에 필요한 전략과 기술 습득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구직자에게 정부나 사회 차원의 재정지원 기회 알선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지역의 회사들이 50+세대 구직자 채용에 관심을 갖도록 독려하는 등의 일들을 진행하고 있다.
◇ AACC ‘The Plus 50 Initative’
AACC(미국 커뮤니티 칼리지 연합회)에서는 50+세대 학생들이 자신의 커리어를 발전시키고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하여 재취업 또는 커리어 변화를 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50세 이상에게 직업훈련과 커리어 개발에 필요한 특화된 프로그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이수 과정을 모니터하여 학위·자격증 취득까지 관리하는 전략을 개발했다. 50+세대를 대상의 프로그램을 운영해본 경험이 있는 5개 ‘멘토(mentors)’ 칼리지와 이들의 경험을 전수 받을 10개 ‘멘티(mente)’ 칼리지를 선정한다. 각 대학에서 개발하고 운영하는 취업·직업훈련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이고 다른 대학들과 공유하기 위해 ‘C-PAD’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개발, 활용하고 있다. 50세 이상 학생들이 학습이나 취업과 관련하여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조언을 해주는 프로그램인 ‘Plus 50 Coach’ 또는 Plus 50 Advisor’를 두고 고령의 학생들이 대학을 잘 마무리하고 재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 도쿄일자리센터 ‘시니어 중소기업 서포터 인재 프로그램’
도쿄일자리센터는 도쿄 도민의 고용과 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구직자와 기업 사이의 괴리를 해소하는 것을 목적으로 2004년 설립됐다. 취업에 이르기까지의 카운슬링 세미나를 충실히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자신의 적성과 응모서류(이력서, 직무 경력서) 작성 등 취업 활동의 자세한 흐름을 모르는 구직자를 대상으로 카운슬러의 개별상담을 진행한다. 특히 ‘시니어 중소기업 서포터 인재 프로그램’은 대기업·중견기업 등에서 풍부한 경험·능력을 가진 시니어(55세 이상)를 대상으로, 지금까지 쌓아온 조정 능력, 협상 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 종합관리 능력을 살려 중소기업 재취업을 목표로 한다. 희망자는 먼저 도쿄일자리센터에서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방법’ 과정을 수강해야 한다. 해당 프로그램의 직무유형은 7가지 직종(경영, 인사노무, 재무경리, 해외, 영업, IT시스템 관련, 기술관리)으로 구분된다. 취직에 성공한 시니어 중 전문성으로 직종에 합치된 경우는 약 70%이며, 비전문영역으로 취직된 경우는 30%다.
◇ 주식회사 퀄리티오브라이프 ‘생애 프로페셔널 프로그램’
생애 프로페셔널 프로그램은 도쿄 소재의 민간 주식회사 퀄리티오브라이프(Quality of Life)가 2006년 11월부터 대기업 전문분야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50세 이상 사람을 대상으로 중소기업에 경영 자문을 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기업의 조언자로서 경영지원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50세 이상의 사람을 ‘생애 프로페셔널’로 임명하고, 기업의 여러 경영 문제를 자문하도록 지원한다. 이렇듯 시니어 전문가의 오랜 경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개인에 맞게 전담 코디네이터를 지원하여 평생 직업을 갖도록 하는 것이 장점이다. 고문 소개 서비스를 활용하며, 가령 주 1회 출근 등 시니어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근무 형태의 유연한 근무가 가능하다. 전담 코디네이터는 시니어 전문가의 경험과 희망하는 조건에 맞도록 중소기업을 소개하고 중소기업과의 조건 조정이나 계약 진행까지 돕는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받는 클래식 음악. 음악 속 숨겨진 사연이나 명사의 말을 통해서 클래식에 쉽게 접근해보자. 아래의 인터뷰는 가상으로 진행했다.
“죽음은 쓰라린 고통이지만, 제대로 살아 보지도 못한 죽음만큼 힘든 건 없다.”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이 요절의 비애를 표현한 말이다. 역사적으로 박수칠 때 떠나는 사람처럼 화려한 족적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는 천재들이 있었다. 이렇게 요절한 천재를 비운의 천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번에 만난 그도 마찬가지다. 31세에 요절한 젊은 천재는 생전에 1000곡 이상을 작곡했고, 음악적 수준이 절정에 달했을 때 세상을 떠났다. ‘가곡의 왕’, 슈베르트를 만나 삶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얘기를 들어봤다.
안녕하세요, 슈베르트 씨.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반가워요. 먹을 것이 좀 있나요? 며칠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더니 힘이 없네요. 좀 먹고 나서 인터뷰를 합시다.
오는 길에 간식거리로 챙겼던 비스킷을 그에게 건넸다. 그는 정말 며칠 굶은 사람처럼 소량의 간식을 허겁지겁 먹었다. 가까이에서 본 그는 멀리서 볼 때보다 훨씬 왜소했다. 왜소한 체구와 더불어 초점을 잃었던 눈동자는 간식을 먹은 후 조금씩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생전의 삶과 지금은 얼마나 비슷한가요?
달마다 용돈을 받습니다.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금이라고 하더군요. 이런 제도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 개인적인 모임에 참석하는 친구 중에 법에 밝은 친구가 있는데, 그가 나를 대신해서 신청했어요. 정말 고마운 친구예요. 물론 받은 금액을 늘 까먹어요. 매달 얼마씩 오는지 잘 몰라요. 그냥 내키는 대로 쓰다 보면 돈이 없더군요. 며칠 전부터 돈이 바닥나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요. 가끔 나를 위해서 집 앞에 빵을 놓고 가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들도 요 며칠은 바쁜지 안 보여요. 말하고 나니 나의 삶은 생전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군요.
이곳에서도 모임을 하고 있나요?
물론이죠. 생전에는 시대적 상황 탓에 밖에서 뭘 하기가 꺼려졌어요. 대신 그냥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수다나 떨려고 만든 모임이에요. 그런 소모임이 당시 유행이기도 했고요. 친구들이 내 음악을 좋아한 덕분에 그곳에서 연주도 하고, 춤도 추면서 흥겨운 파티를 열었죠. 저는 기분이 좋아서 그 파티에 가면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을 마시곤 했지요. 그래서 얼마 없던 재산을 탕진하기도 했어요. 친구들은 그때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서 여기서는 계모임을 하자고 하더군요. 예전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기적으로 꼬박꼬박 회비를 내고 만나고 있어요.
폰 슈파운과 쇼버, 둘은 당신에게 어떤 친구인가요?
폰 슈파운은 동지고, 쇼버는 친구예요. 오선지를 살 돈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을 때, 슈파운이 내게 오선지를 사줬어요. 그는 똑똑하고 유능한 고위 관료였고, 법에 밝았어요. 앞서 내게 용돈을 받을 수 있게 해준 친구가 그예요. 생전에 소모임도 그의 집에서 자주 열었어요. 이 소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어요. 덕분에 당대의 예술가들과 많은 교류를 할 수 있었어요. 그가 없었다면 작곡을 이렇게 많이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쇼버는 나의 마음을 잘 아는 친구였어요. 마음이 잘 통해서 많이 어울려서 놀았어요. 내가 가곡을 많이 쓸 수 있었던 건 쇼버 덕분이에요. 그 친구는 독일 문학에 참 능통했어요. 내게 좋은 시도 많이 알려줬고요. 그의 문란한 사생활과 사상을 좋아하지 않던 친구들도 많았지만, 나는 그를 많이 아꼈어요. 내 안에 감춰진 천재성을 일깨우는 데 그가 큰 역할을 했어요. 그도 나를 참 많이 좋아했어요. 우리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어요.
곡에서 괴테의 시를 많이 인용하셨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괴테는 독일이 낳은 천재 시인이죠. 괴테는 시를 쓸 때 콧노래를 부르면서 쓴다는 말이 있지요. 그런 버릇이 반영되는 것인지 몰라도, 노래로 쓰기에는 아주 적합한 시가 많아요. 그래서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이 그의 시를 노래로 썼죠. 저도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서 괴테에게 곡을 보냈지만, 그분은 거들떠보지도 않으셨죠. 후일에 듣기로 제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극찬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는 내 시에 곡을 붙인 게 아니라 시 자체를 노래했고, 그는 내 시를 훔친 거야”라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습니다. 생전에 그와 마주 보며 그런 말을 들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베토벤은 만나고 오셨죠?
조금만 늦었으면 거기서 못 뵙고, 여기서 인사를 드릴 뻔했어요. 이곳으로 오시기 일주일 전쯤 인사를 드리고, 제 곡의 악보를 보여드렸죠. 다른 이들은 제 곡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선생님은 보시고 칭찬하셨어요. 천재가 천재를 알아본 거라고 할까요? (웃음) 물로 저도 그 당시 죽음에 가까운 시기였던 탓에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선생님과 제가 좀 더 건강한 상태로 만났다면 어땠을까? 이곳에 와서는 늘 그런 상상을 해본답니다.
그때 쓰신 곡이 ‘겨울 나그네’인가요?
그렇죠. 그 시기 즈음 쓴 곡이에요. 세상에 남긴 나의 유언 같은 곡이에요.
이 곡을 쓴 이유가 있나요?
‘겨울 나그네’는 뮐러의 시를 바탕으로 쓴 곡이에요. 그 시를 볼 때마다 나의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못생기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내가 사랑한 여자들에게 버림받았고, 나의 모든 것을 쏟았던 곡들은 대중들에게 인정받지 못했지요. 존경하는 괴테 선생님도 사후에 나를 인정하셨어요. 모임에서 나와 어울렸던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난 외톨이였어요. 아버지는 가업을 이어 교사가 되기를 원하셨지만, 나는 그걸 뿌리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가난한 음악가로서 곡을 쓰며 겨우 목숨을 이어가는 나그네였어요. 말년에는 이런 삶을 청산하는 마음으로 이력서를 썼어요. 궁정의 부악장 자리였는데, 큰 기대를 했지만 결국 탈락했어요. 정처 없이 방황했지만 정착하지 못한 삶, 그게 내 모습이에요.
뮐러의 시와 다른 점이 있나요?
뮐러의 시와 개수는 동일하지만 순서가 조금 달라요. 처음 발표한 곡은 뮐러의 12개 시로 마무리를 했는데, 이후 그가 추가로 시를 발표하면서 곡의 구성을 조금 다르게 했어요. 뮐러의 경우 고난 끝에 결국 희망찬 내일을 위해서 나그네가 여행을 떠나지만, 나의 곡은 더 큰 절망과 함께 사라지는 것입니다. 내 삶에는 절망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가까스로 찾아온 희망이 있었다면, 내가 죽은 해에 참가했던 연주회가 다예요. 그것마저 이어갈 수 없었죠. 처음으로 내 소유인 피아노가 생겼지만, 제대로 쳐볼 시간도 없이 이곳으로 오게 됐어요.
이 곡은 4원소설을 기반으로 한 곡인가요?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지요. 하나의 감정이라고 해도 비추는 거울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잖아요. 가령 사람마다 ‘슬픔’을 정의하는 방식이 다르잖아요. 애인의 배신일 수도 있고, 계속해서 떨어지는 시험, 반려견의 죽음 등 하나의 감정이 개인에게 어떤 이미지로 그려질지 아무도 알 수 없어요. 물론 이 곡에 제가 특정한 이미지를 담은 것은 아니에요. 다만 31년 삶을 살면서 축적된 슬픔이란 감정을 이 곡에서 표현하려고 했어요. 지독한 가난과 불행, 외로움, 사람으로부터 배신, 절망, 육체적 고통. 저를 괴롭혔던 수많은 일을 곡에 녹여내려고 했어요.
본인에게 음악이란?
삶의 이유. 아무런 이유도 없이 태어나고, 아무런 목적도 없이 떠돌아다닌 내가 유일하게 살아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은 곡을 쓸 때였다. 어느 때는 곡을 쓰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처럼 느껴졌다.
가곡의 왕이란 별명이 무색할 만큼, 생전에는 인기가 없었다. 그의 말처럼 소모임을 하는 친구가 그에게 전부였다. 사랑하는 여인에게도 버림받았고, 존경하는 선생님은 그를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의 삶은 처절하고 비참했다. 하지만 그는 오선지 위의 음표처럼, 자연스럽게 고통에 자신을 내맡기면서 살았다. 콤플렉스 덩어리였지만, 오히려 그 콤플렉스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계기를 마련했고, 그 안에 있던 감정을 음악에 녹여낼 수 있었다. 나그네처럼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했지만, 그 자유로움이 곡을 쓰는 데 하나의 좋은 밑거름이 됐다. 그가 좋아했던 괴테는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그의 방황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었다. 숱한 시간이 흘렀지만, 그가 남긴 최선은 여전히 곡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