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다에서 죽어가는 고래, 내 친구에게
- 잘 지내? 내 친구 고래에게 안부를 전해. 그 인사조차 전하기 미안해. 하루 중, 어둠이 따라 오는 저녁에, 사람이 불 밝힌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컴컴해지는 바다에 혼자 남은 친구를 생각하면 가슴이 사무쳐. 친구가 떠나버린 텅 빈, 이름만 거창한 ‘울산바다 고래바다’를 둘러보고 온 날 저녁에 더욱 그래. 친구가 ‘바다의 로또’라는 사행성 이름으로 사람의 그물에 생명을 잃어버린 뉴스가 보이면 더욱 그래. 미안해 정말. 절대 사람을 용서하지 마. 친구는 알고 있을 거야. 최근 일본이 IWC(International Whaling Commission, 국제포경위원회) 탈퇴를 선언했어. 그건 고래를 마구 살상하겠다는, 바다를 고래의 붉은 피로 다 적시겠다는 야만이야. 동해에 주소 두고 사는 친구의 생명이 더욱 위험해졌다는 이야기야. 일본이 동해 우리 고래까지 씨를 말리겠다는 속셈인 거야. 고래를 사랑하는 사람이 모여 지켜낸 바다 자원인 고래를 자기 밥상에 올리겠다는 ‘도둑질’이야.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었어. 그러나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었어. 일본은 바다에서 숨 쉬며 살아가는 ‘생명’인 ‘고래와의 전쟁’을 오래전부터 계속하고 있었어. 친구도 알지? 우리나라 위안부 할머니와 강제징용 보상 문제가 아직 끝나지 않았듯이. 일본은 친구에게 전쟁 시작을 알렸어. 그건 고래를 사랑하는 전 세계인에게 ‘선전포고’를 한 거야. 이건 침략이야. 고래가 사는 바다를 자신의 ‘바다 식민지’로 만들겠다는 거지. 집단학살이 예고됐어. 친구를 위해 세계가 용서하지 않을 거야. 세계의 많은 고래보호단체에서 일본을 규탄하고 바다에서 일본의 만행을 막을 거야. 울산에서 고래를 지키는 ‘고래를 사랑하는 시인들의 모임’도 행동에 나설 거야. 오랫동안 친구에게 사랑과 위로 시를 보내온 나 역시 용서하지 않을 거야. 친구를 겨누는 포경선의 포를 더욱 조심해. 일본이 ‘연구선’이란 미명의 포경선에 ‘히노마루(일장기)’를 펄럭이며 나타날 거야. 아비를, 어미를, 아기를, 가족을 모두 죽일 거야. 그건 살생이야. 바다의 국경선을 모르고 사는 자유로운 고래가 일본의 바다에 들어서면, 고래 야만국 일본이 다이치에서 수천수만 마리 돌고래 떼를 학살하듯, 자신의 국기 색깔 같은 고래 피를 시뻘겋게 보여줄 거야. 친구는 참을 수 없는 소리로 항변하겠지. 우리 사이에 언제 평화로운 시절이 있었냐고. 그 말 맞아. 인류가 처음 고래를 잡기 위해 바다로 출항한 날부터 우리는 쫓고 쫓기는 사이가 되고 말았어. 하지만 뜻있는 사람이 많아져 무분별한 술래잡이를 용서하지 않은 지 오래됐어, 사람의 야만은 즉시 중단돼야 해. 사람은 바다의 주인이 고래라는 것을 알아야 해. 사람은 사람의 죄를 알아야 해. 바다를 향해 절하며 용서를 구해야 해. 지구는 바다 면적이 70%를 차지하는데, 30%의 면적을 받은 육지 사람은 너무 오만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바다는 지구의 면적 70.8%를 차지한다지. 면적으로 보면 2.43배이고, 부피로 보면 13억7000만㎦에 해당하지. 이 넓은 곳에서 친구와 나는 참으로 미세한 존재야. 미세하지만 우리가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은 ‘포유류’이기 때문이라 생각해. 서로 새끼 낳고 젖 먹여 키우는, 자식의 아비이고 어미이기 때문인 거지. 고래와 사람은 친구가 돼야 해. 그것이 바다에서 우리가 함께 사는 유일한 방법이야. 사실 멸종보호동물인 친구를 여전히 해양수산부가 관리하는 ‘생선대접’에 화가 나. 친구는 ‘환경부’가 지켜줘야 하는 ‘바다의 주인’이야. 귀한 생명이야. ‘고래도시’라는 내가 사는 울산을 봐도 짜증이 나. 여전히 고래는 ‘고래 고기’라고만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울산에 고래잡이가 성행했던 때와 고래잡이가 중단되고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을 비교하면 고래 고기를 파는 식당이 200배 이상 늘어났어. 바다는 사람에게 소금을 비롯해 참으로 많은 선물을 주고 있어. 친구도 큰 선물이지. 고래는 우리와 함께 살아야 할 친구인데 ‘먹거리’로 생각해서는 절대 안 돼. 70년을 살며, 10개월을 임신해서, 자식을 낳아 젖을 먹여 키우는 고래는 우리의 바다 자화상이야. 고래의 멸종은 인류 멸종의 예상 시나리오가 될 거야. 친구 고래. 친구는 여러 해 내가 울산광역시 고래목측조사에 참여한 것을 알 거야. 바다에서 눈으로 친구를 찾는 일이지. 내 소원은 울산에 멋진 ‘고래보호조사선’이 생기는 거야. 그리고 예술가들이 함께 배를 타고 나가 고래를 찾는 거야. 고래를 만나는 즐거움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어. 음악가에게는 고래의 노래를 들려주고, 춤꾼에게는 고래의 춤을 보여주고 싶어. 화가에는 고래의 역동적인 힘을, 아동문학가에는 고래의 동심을, 시인에게는 고래의 에스프리를 다 보여주고 싶어. 예술가들이 진정으로 고래의 작품을 만들어 관객과 독자를 만난다면 너도나도 다투어 고래 친구가 되려고 할 거야. 그때 바다에서 만날 수 있겠지, 친구. 최근에 읽은 케이틀린 셰털리의 GMO(유전자조작식품) 위협에 대한 보고서 ‘슬픈 옥수수’에 이런 구절이 있어. “사실상 땅의 운명과 사람의 운명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바다를 오염하고 죽은 고래 뱃속에서 비닐이 무더기로 나오게 하는 사람들에게 나도 말하고 싶어. “고래가 살아야 사람이 살 수 있어!” 친구 고래. 다시 만날 때까지 살아 있어. 온전하게 일흔 해 천수를 살며 다시 만나길. 정일근 시인 1984년 ‘실천문학’과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바다가 보이는 교실’,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외 다수가 있다. 소월시문학상, 영랑문학상, 지훈문학상, 이육사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 수상. 1992년부터 고래도시 울산에서 살며 ‘고래를 사랑하는 시인들의 모임 대표 시인’으로, 고래보호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현재 경남대 석좌교수.
- 2019-02-01 11:56
-
- 2월 문화캘린더
- 설 명절 연휴가 이어지는 2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뮤지컬) 파가니니 일시 2월 15일~3월 31일 장소 세종M씨어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가 비운의 대가로 남게 된 이야기가 펼쳐진다.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와 ‘바이올린 협주곡 2번-라 캄파넬라’ 등을 재편곡해 매력적인 ‘록클래식’으로 선보인다. (오페라) 테너 마르첼로 알바레즈 내한공연 일시 2월 19일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전설적인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가 발굴한 천재 아티스트 ‘마르첼로 알바레즈’. 뛰어난 음악적 능력을 인정받으며 전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 무대를 석권한 그의 첫 내한공연이다. ‘카르멘’, ‘팔리아치’, ‘투란도트’ 등 총 13곡을 들려줄 예정이다. 100분간 오페라 세계에 흠뻑 빠져보자. (클래식) 알리나 이브라기모바&세드릭 티베르기엥 듀오 일시 2월 21일 장소 LG아트센터 영국의 대표 신문 ‘타임스’가 ‘음악계를 평정할 듀오’라며 극찬한 바이올리니스트 알리나 이브라기모바와 피아니스트 세드릭 티베르기엥. 이들의 합주로 낭만주의 실내악 명곡인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1-3번)’을 들을 수 있다. (연극) 자기 앞의 생 일시 2월 22일~3월 23일 장소 명동예술극장 출연 양희경, 이수미, 김한, 오정택, 정원조 등 세계 3대 문학상인 ‘프랑스 공쿠르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쓴 ‘자기 앞의 생’이 원작이다.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랍계 소년 ‘모모’와 돈을 받고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키우는 유대인 보모 ‘로자 아줌마’의 대화를 통해 사회적 차별과 약자의 현실을 고발하는 수작이다. (콘서트) 미스터션샤인 OST 오케스트라 콘서트 일시 2월 24일 장소 롯데콘서트홀 출연 안두현, 이현진, 송민제, 이신규 20세기 초 조선 의병들의 의와 사랑 이야기로 시청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던 tvN 드라마 ‘미스터션샤인’. 각종 차트를 휩쓴 미스터션샤인 OST가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재탄생했다. 뮤직비디오 영상과 함께 음악을 감상하며 드라마의 감동을 다시금 느낄 수 있다. (영화) 칠곡 가시나들 개봉 2월 27일 장르 다큐멘터리 출연 강금연, 곽두조, 박금분 등 인생 팔십 줄에 한글과 사랑에 빠진 할머니들의 욜로(YOLO) 라이프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경북 칠곡에 사는 ‘평균 86세’ 꽃다운 청춘들이 배움의 즐거움에 빠져 인생을 재밌게 사는 비법을 전수한다.
- 2019-01-31 09:53
-
- [카드뉴스] 최현숙 작가 추천 '진정한 삶을 바라보게 하는' 도서
-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가 추천하는 '진정한 삶을 바라보게 하는 도서'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 저) 이탈리아의 작가이자 화학자인 프리모 레비가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보낸 10개월간의 체험을 기록했다. 저자가 경험한 공포와 불안을 통해 폭력에 노출된 인간의 존엄성과 타락의 과정을 묘사한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저)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당한 주민들의 아픔을 10여 년에 걸쳐 진행한 100여 명의 방대한 인터뷰를 통해 생생하게 들려준다. 피해자들의 삶과 죽음, 비극을 적나라하게 담으며 미래 세대를 향한 고민을 드러낸다.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저)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아니 에르노의 소설. 객관화된 작가의 시선이 돋보인다.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한 여자를 통해 이별과 외로움을 겪는 이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 (이옥남 저) 강원도 시골 마을에 사는 이옥남 할머니가 1987년부터 2018년까지 쓴 일기 중 151편을 엮었다. 100세를 살아온 저자의 눈으로 바라본 자연과 생명, 소소한 일상의 희로애락을 읽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진다.
- 2019-01-28 08:32
-
- ’용기’만큼은 내가 고수!
- 요즘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많다. SBS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을 봐도 그렇다. 이렇게 재능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감탄할 정도다. 달인과 비슷한 말로 무언가 남보다 뛰어나게 잘하는 사람을 보고 우리는 흔히 고수라 한다. 말 나온 김에 나는 어떤 걸 잘하는지 생각해봤다. 중년의 문턱에 있는 나이라면 고수까지는 아니어도 바로 떠오르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세울 게 없다. 그동안 뭐하고 산 걸까 문득 회한이 몰려왔다. 나는 서른을 눈앞에 두고 결혼했다. 남편은 아내가 집에서 내조해주기를 바랐다. 아이들이 귀가할 때 무조건 엄마가 집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남편이 퇴근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은 남편의 성장기에 사업과 휴게소 운영으로 자주 집을 비우신 시부모님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반대로 나는 결혼하면 소소한 꿈들을 남편과 함께 하나씩 이루면서 살고 싶었다. 혼자서는 망설여지는 배낭여행 같은 것이 그런 것이다.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을 때는 우리 둘뿐이라 가능할 것도 같았다. 그런데 1년쯤 지나 첫아이가 태어났다. 그때부터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다시 둘째가 태어나고 20년쯤 지나자 어느새 중학교 3학년 늦둥이까지 있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엄마가 집에 있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던 큰딸은 현모양처가 꿈이었는데 바람대로 졸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을 했다. 딸이 평생 친구라고 자랑하는 딸을 낳자 나는 준비도 없이 할머니가 되었다. 내가 문밖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한 건 둘째와 늦둥이 꼬맹이가 어느 정도 자랐다고 생각할 무렵이었다. 손녀까지 자주 집으로 놀러오다 보니 이러다가 평생 육아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용기가 필요했다. 다행히 뭔가 해보겠다는 내 의견에 가족들은 흔쾌히 지지를 해줬다. 그런데 그동안 하고 싶은 것이 많았어도 막상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자 쉬 떠오르지 않았다. 무엇을 할 때 행복했는지 생각해봤다. 글쓰기와 걷기였다. 그즈음 우연히 92세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99세에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출간한 시바타 도요에 대한 글을 읽었다. 나라고 못하겠나 싶었다. 문득 내 이름으로 된 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먼저 2015년에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을 했다. 뒤늦게 시작한 공부로 하루하루가 바쁘게 지나갔다. 내친김에 2017년에는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에서 진행하는 전자책출판하기과정도 들었다. 또 인생학교와 전문강사양성과정, 배낭속인문학, 도시해설가양성과정, 여행작가과정도 수료했다. 바쁜 와중에 시니어블로거협회에서 리포터 활동도 했다. 2018년에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동년기자와 서울시50플러스 시민기자 활동을 시작으로 인생학교 수료생 중 소수를 대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 기획자 과정을 수료했다. 이밖에도 장독대아카데미 코디네이터, 1인디지털미디어크리에이터, 어린이스토리텔링3급자격증 등 내가 도전하고 성과를 얻은 것들이 참 많다. 30년 가까이 주부로 살다가 ‘용기’라는 단어를 들고 밖으로 나온 중년 아줌마의 ‘용기’에 놀랐을까. 세상은 따뜻한 시선으로 길을 내줬다. 그 길을 걷다 운 좋게 많은 일을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저것 욕심내느라 글쓰기에는 정작 많은 시간을 내지 못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남다른 내 재능을 알 것 같다. 내 재능은 바로 ‘용기’였다. 하고 싶은 것을 주저 없이 시도하고, 필요한 것들은 배워서 채워가고, 직접 부딪쳐 실행하는 ‘용기’가 그것이었다. 2019년에는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만 선택에 깊이를 채울 생각이다. 용기를 낸 덕에 몇 년쯤 지나 내 이름이 찍힌 책을 손에 들게 될지도 모르겠다. 주부에서 사회인으로 거듭난 멋진 인생 경험을 들려주며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외치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 2019-01-24 09:01
-
- 피란수도 부산의 추억을 더듬는 길 ‘초량이바구길’
- 수도권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날, 부산역에 도착했다. 위쪽 지방보다 상대적으로 기온이 높은 부산은 아직 초겨울 같았다. 평소대로라면 부산역 옆 돼지국밥 골목에서 국밥 한 그릇 말아먹고 여행을 시작했을 것이다. 오늘은 초량이바구길에서 시래깃국을 먹기로 했다. 구수한 시래깃국을 호호 불어가며 먹을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걷기 코스 부산역 ▶ 옛 백제병원(브라운핸즈백제) ▶ 남선창고 터 ▶ 동구 인물사 담장 (초량초등학교) ▶ 이바구정거장 ▶ 168도시락국 ▶ 168계단과 168모노레일 ▶ 전망대 ▶ 이바구놀이터와 6·25막걸리 ▶ 이바구충전소 ▶ 당산 ▶ 이바구공작소 ▶ 장기려더나눔센터 ▶ 스카이웨이전망대 ▶ 유치환의 우체통 부산의 산동네와 산복도로 한국전쟁 발발 두 달 뒤, 최후 방어선이었던 부산이 피란수도가 되었다. 전국의 피란민이 부산으로 몰려왔다. 전쟁 전 40여 만 명이었던 부산 인구는 100만 명으로 늘었다. 전체 면적의 절반이 산지인 부산은 폭증한 인구를 수용할 만한 땅이 부족했다. 피란민들은 부산항과 부산역에서 가까운 산동네로 몰려들었다. 산비탈을 깎아 판잣집을 짓고 부두 노동자로, 자갈치 시장 일꾼으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은 산동네에 정착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형성된 동네가 지금의 감천문화마을, 아미동 비석마을, 영도 흰여울마을, 초량동 산복도로 마을 등이다. 부산에 산동네가 많다 보니 자연스레 산중턱을 지나는 산복도로(山腹道路)가 생겼다. 실핏줄처럼 산동네를 연결하며 부산의 상징이 되었다. 부산 동구에서 산복도로가 처음 개통된 초량동에 부산의 근대 역사를 담은 ‘초량이바구길’을 조성했다. ‘이바구’는 이야기를 뜻하는 경상도 방언이다. ‘까꼬막이 천지삐까리’ 초량이바구길 초량이바구길은 부산역에서 산복도로까지 걷는 길이다. 짧은 코스이지만, 부산말로 “까꼬막(오르막길)이 천지삐까리다(아주 많다).” 급경사 계단에는 모노레일이 있으니 앞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부산역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첫 목적지인 옛 백제병원에 도착한다. 백제병원은 1927년에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 종합병원이었다. 폐원된 이후 여러 용도로 사용되다가 현재 1층에 카페 브라운핸즈백제가 입점했다. 근대 건축물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 덕분에 인기를 끌고 있다. 1900년에 지은 부산 최초의 창고인 남선창고 터와 부산 동구의 근현대사와 인물을 소개한 초량초등학교(1937년 개교) 담장을 지나면, 이내 이바구정거장이 나타난다. 이바구정거장은 초량이바구길의 안내소로서 캐리어 보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바구정거장 옆에 있는 바람개비로 장식한 계단에서 본격적인 까꼬막 여행이 시작된다. 초량이바구길의 명물 168모노레일 바람개비계단 끝에서 분식집처럼 생긴 168도시락국 식당이 반긴다. 추억의 도시락을 주문하면, 달걀부침을 얹은 양철 도시락과 진한 멸치 육수 맛이 일품인 시래깃국을 맛볼 수 있다. 시래깃국을 들이마시다시피 하니, 주방을 지키던 할머니가 빈 국그릇을 가득 채워준다. 배불리 먹은 밥값은 단돈 5000원. 감사 인사가 절로 나온다. 168도시락국 식당을 비롯해, 이바구놀이터(영진어묵&공감카페), 6·25막걸리, 게스트하우스인 이바구충전소, 커뮤니티 센터인 이바구공작소 등에는 동구 지역 시니어가 근무한다. 168도시락국에서 조금 올라가면 경사 45˚의 168계단이 기다린다. 쳐다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다행히도 2016년, 계단 옆에 무료 모노레일이 생겼다. 운행거리는 약 60m. 모노레일에 함께 탄 아주머니가 168계단을 가리키더니 “이 계단이 부두 노동자들이 일하러 갈 때 다녔던 지름길이라. 계단 밑에 있는 우물도 봤지요? 할매들이 이 계단으로 물 뜨러 다녔는데, 한 계단 오르고 한 번 쉬고, 고생이 말도 몬했다꼬. 모노레일이 생겨서 얼매나 좋은지 몰라요. 여름에도 시원코. 저짝 아래 함 보소. 갱치가 울매나 좋은지”라며 추억 속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바구길 최고 전망은 이곳 모노레일에서 내리면 바로 전망대로 이어진다. 비탈에 층층이 자리 잡은 초량동 주택가와 멀리로는 황령산, 해운대 마린시티, 부산항과 부산항대교, 영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모노레일 승강장 옆에 있는 이바구놀이터도 전망대만큼 훌륭한 뷰를 자랑한다. 이곳은 야경 감상에 최적화된 장소다. 통통하고 쫄깃한 부산어묵으로 끓인 어묵탕을 먹으며 야경을 감상하노라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인정 넘치는 시니어 직원들이 동네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하면, 음식이 식을세라 살뜰히 살피기도 한다. 이바구놀이터 맞은편 6·25막걸리에서는 막걸리와 해물파전을 맛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갈 때는 모노레일 대신 계단을 추천한다. 걸어 내려가면서 빵집, 아트숍, 카페, 갤러리, 추억의 물건을 파는 다락방장난감BOX, 김민부 전망대에 들를 수 있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로 시작하는 가곡 ‘기다리는 마음’을 작사한 이가 바로 시인 김민부다. 전망대와 마주보고 있는 이바구충전소를 지나 마을 수호신을 모신 당산 쪽으로 올라가면 산복도로와 만난다. 부산에서만 가능한 산복도로 투어 산복도로 턱밑에 자리한 이바구공작소는 방문객 안내센터 겸 주민커뮤니티센터다. 이곳에 근무하는 시니어 문화해설사에게 초량의 근현대사를 들을 수 있다. 이바구공작소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장기려더나눔센터도 들러볼 만하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칭송받는 장기려 박사는 가난한 환자를 돌보는 데 일생을 헌신한 의사이며, 의료보험 창시자로도 유명하다. 장기려더나눔센터에서 유치환의 우체통으로 가는 길에 산복도로를 지나다 보면, 독특한 풍경이 눈에 띈다. 도로 폭이 좁아 건물 옥상을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한쪽 차바퀴를 들어 주차하는 ‘개구리 주차’를 볼 수 있다. 산복도로 가에 위치한 유치환의 우체통은 부산에서 세상을 떠난 시인 유치환을 기리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2층 시인의 방에서 엽서를 써 3층 전망대에 설치한 우체통에 넣으면 1년 뒤에 배달된다. 다음 목적지로 가려면 유치환의 우체통 앞에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주변 명소 & 맛집 초량차이나타운 1884년 초량에 청국 영사관이 설치된 뒤, 중국 상인들이 점포를 겸한 주택가를 형성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1993년 중국 상해시와 부산시가 자매결연을 해 상해문을 건립하는 등 상해 거리를 조성했다. 고기만둣집인 신발원이 유명하다. 차이나타운 일부 구역에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들어선 텍사스 거리가 있다. 두 곳이 한길로 이어져 있는데,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동구 중앙대로 196번길 8. 밀면과 돼지국밥 부산에 여행 와서 밀면과 돼지국밥을 먹지 않으면 서운하다. 부산역 근처에 있는 초량밀면과 본전돼지국밥이 소문난 식당이다. 밀면은 피란 온 이북 사람들이 원조 물자로 공급된 밀가루로 냉면을 대체할 음식을 만든 것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돼지국밥도 피란민들이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돼지 뼈를 이용해 국을 끓인 것이 시초라 한다. 밀면과 돼지국밥은 싼 재료로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을 수 있게 만든 피란 음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초량밀면 동구 중앙대로 225, 본전돼지국밥 동구 중앙대로214번길 3-8. 돼지갈비와 돼지불백거리 초량은 돼지갈비로 유명하다. 한국전쟁 직후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하는 부두 노동자들이 작업을 마친 뒤 초량시장에서 돼지갈비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1980년대에는 초량 육거리 부산고등학교 앞에 돼지불고기백반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검정 프라이팬에 달달 볶은 매콤한 돼지불고기가 없던 입맛도 살아나게 한다. 예나 지금이나 싼값에 푸짐한 한 상이 차려진다. 초량돼지갈비골목 은하갈비 동구 초량중로 86, 초량불백거리 원조불백 동구 초량로 36. 초량1941 초량1941은 초량동 산복도로 위에 자리한 우유 전문 카페다. 1941년 지어진 일본 적산가옥을 개조했다. 이색적인 분위기와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이 눈길을 끈다. 커피와 말차우유, 홍차우유, 커피바닐라우유, 동백우유 등 다양한 병우유를 판다. 고소하고 진한 우유와 쫀쫀한 생크림 속에 과일을 콕콕 박아 만든 과일 샌드위치를 함께 먹으면 한끼 식사로도 충분하다. 동구 망양로. 여행 정보 ➊ 찾아가는 길 전철 1호선 부산역 7번 출구에서 ‘백제병원(브라운핸즈백제)’ 또는 ‘이바구길모노레일’ 방면으로 이동 ➋ 이바구자전거 시니어 도슨트(문화재 해설사)가 운전하는 전동 자전거에 타고 초량이바구길을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 도슨트가 이바구길의 명소 소개와 숨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부산역 분수대 옆에서 출발/ 10시, 11시, 12시, 13시, 14시, 15시 출발. 예약 070-8224-0122/요금 어른 1만 원. 초등학생 7000원(미취학 아동 무료) 우천 시 운행하지 않음 ➌ 이바구버스투어 가이드와 동행하는 이바구버스 투어 상품도 있다. 요금 어른 1만6000원, 초등학생 9000원
- 2019-01-21 10:08
-
- 고개 숙인 연밥을 보며
- 얼어버린 호수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의연하게 서 있는 연밥 하나가 시선을 끈다. 마지막 꽃잎을 떨어뜨리고 벌집 같은 얼굴을 내밀고 소곤소곤 이야기하던 연밥이다. 마른 줄기 하나에 의지한 채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사색에 잠겨 있다. 한 점 조각품이다. 카메라 뷰파인더에 들어온 연밥의 모습을 보며 일흔 살에 접어든 내 얼굴을 떠올려본다. 40세 이후에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던가. 꽃다운 나이에는 누구나 아름답다. 꿈도 많고 청순함과 젊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둘 늘어나는 욕심에 청순함은 때묻고 팽팽하던 살결은 어느 사이 굴곡진 주름으로 변해간다. 맑았던 눈동자도 흐려지고, 작은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50대 중반쯤, 고향 ‘청학동’을 다녀오다가 만난 너무도 고운 자태의 칠순 할머니를 보고 나도 저렇게 늙어야지 다짐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그 연배의 길목에 서 있다. 이후에도 편안한 얼굴을 만나면 그 각오를 다지곤 했다. 미소 머금은 얼굴,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얼굴은 보기만 해도 평화로워진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일이면 다 보시(布施)라 할 수 있다. 불교 경전에서는 무재칠시(無財七施), 즉 재물이 없어도 누구나 보시할 수 있는 일곱 가지를 가지고 있다고 가르친다. 밝은 미소로 상대를 대하는 것도 그중 하나로 들고 있다. 나도 그런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다. 굵은 주름살이 삶의 지혜로 보이면 좋겠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주는 은신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말을 느리게 해도 은근히 힘이 실려 있는 목소리를 갖고 싶다. 젊은 날에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일들에도 남모르는 사정이 있을 거라며 한 번 더 생각하는 여유를 지니고 싶다. 겨울 호수에서 본 연밥 한 송이에서도 인생의 지혜를 배우고 생각하는 날이다.
- 2019-01-14 09:48
-
- 나눔의 미학
- 요즘 먹방이 유행이다. TV 채널 어디를 돌려도 먹거리 방송이 빠지질 않는다. ‘맛집’으로 소문이라도 나면 줄이 길게 늘어서고 손님들이 몰려든다. 사람들이 먹거리에 대해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증거다. 유명한 맛집 골목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남산기슭 장충동 족발집이 유명하다 보니 저마다 ‘원조 할머니 족발집’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신당동에 가면 ‘떡볶이’ 골목이 있고, 의정부에 가면 부대찌개 골목이 있다. 제주도에는 ‘흑돼지’가 유명하다. 전국 어디든 같은 현상이다. 그런데 줄 서는 집은 따로 있다. 바로 원조집이다. 몇십 분씩 기다리는 건 예사다. 어떤 때는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옆에 같은 종류의 음식을 하는 식당이 있어도 그렇다. 나머지 식당들은 대부분 썰렁하다. 먹어보면 맛과 가격에서 그리 큰 차이가 없는데도 그렇다. 한 집은 잔칫집처럼 손님이 넘쳐나고 다른 집은 속된 말로 파리를 날린다. 손님이 없는 식당 주인은 TV를 보고 있다. 왠지 사람들이 줄 서 있는 식당에 가서 먹어야 잘 먹은 것 같고 그렇지 않은 집에서 먹으면 손해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기다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붐비지 않는 식당이 서비스도 더 좋고 분위기가 쾌적하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잘되는 식당으로만 몰린다. 하도 사람이 많아 2호점 3호점을 내는 식당도 있다. 가족이 체인점 식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점포를 하나 더 내는 것은 전쟁터로 뛰어드는 일이다.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는 일이다. 보이지 않는 싸움터, 약육강식의 현장이다. 이러한 싸움터에 아름다운 미담이 전해지고 있다. 일본 소설가 ‘미우라 아야코’의 이야기다. 그는 남편과 작은 점포 하나를 운영했다. 장사가 아주 잘됐다. 점포를 키워도 밀려드는 주문 때문에 트럭으로 물건을 공급할 정도였다. 매출이 쑥쑥 올라 부자가 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 반면 옆집 점포는 파리를 날렸다. 그러던 어느 날 미우라는 남편에게 솔직한 심정을 터놓았다. “우리 가게는 너무 잘되는데 옆집 가게는 문을 닫을 지경이에요. 이건 우리가 바라는 바도 아니고 하느님 뜻도 아닌 것 같아요.” 남편은 아내가 자랑스러웠다. 부부는 가게를 축소하기로 했다. 손님이 오면 이웃 가게로 보내줬다. 적당한 수의 손님만 받다 보니 시간이 여유로웠다. 미우라는 남는 시간을 평소 하고 싶었던 글쓰기를 하며 보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소설이 ‘빙점’이다. 그녀는 그 소설을 통해 가게에서 번 돈보다 몇백 배 넘는 부와 명예를 얻었다.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작은 배려가 부부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여유와 배려가 있을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이 따뜻해진다. 요즘 많은 사람이 힘들어한다. 뭘 해도 먹고살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창업을 했다가 접게 되면 그 피해는 막대하다. 잘못하면 다시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빚에 쪼들리기도 한다. 이럴 때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살맛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우리 가게에 손님이 넘치면 옆집 가게를 소개하는 배려심이 있으면 좋겠다. 잘되는 식당만 고집하지 말고 한 번쯤은 옆집 식당도 찾아주자. 이 추운 겨울, 가난한 이웃에게 배려의 마음이 따뜻한 온기로 전해지길 바라면서.
- 2019-01-14 08:50
-
- ‘요만치’씩 살려낸 엄마 음식 ‘저만치’ 해외까지
- 국민배우 김수미(70)를 모르는 대중이 있을까?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그 이름이 예명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지킬 수(守), 아름다울 미(美). 사람의 도리를 지키고 늙을 때까지 아름답게 살자는 결심으로 직접 지은 이름이란다(본명은 영옥). 그 이름에 반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노라 자부하는 김수미는 최근 ‘한국의 맛을 지키는[守味]’ 문화 전도사 역할까지 해내고 있다. “전 세계에 한국 음식을 알리고 싶다”는 그녀의 원대한 포부는 40여 년 전 어머니를 향한 짙은 그리움에서 시작됐다. ‘2018 제8회 대한민국 한류대상’ 시상식. ‘수미네 반찬’(tvN)을 통해 우리네 어머니의 손맛을 전수 중인 김수미는 한식 문화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 공을 인정받아 ‘특별 공로대상’을 수상했다. 방송을 본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수미네 반찬’은 근래 넘쳐나는 먹방, 쿡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모던한 아일랜드 주방이 아닌 툇마루와 가마솥이 돋보이는 세트장은 김수미가 어린 시절 살던 시골집을 재현한 것. 게다가 제자로 등장하는 베테랑 셰프들이 눈대중 손대중으로 요리하는 그녀의 레시피를 허둥지둥 따라하는 묘한 광경이 펼쳐진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색다른 재미를 주고, 그 근저에 깔린 ‘엄마의 마음’은 가슴 찡한 감동을 선사하며 남녀노소 불문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렇게까지 반응이 좋을 줄 예상 못했어요. ‘아, 진정성을 갖고 하는 건 역시 되는구나’ 싶더라고요. 몇 스푼, 몇 그램 정확한 것보다도 집에서 하는 방식 그대로 보여주려 해요. 워낙 거침없이 해대니까 카메라가 앵글을 못 잡아 당황할 때가 많지.(웃음) 처음엔 장동민 씨가 ‘선생님 레시피가 있으시냐?’라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너희 할머니, 어머니는 저울질해가며 음식하셨니? 요리자격증 있어서 자식들 밥해줬니?’라고 했죠. 그냥 엄마가 딸한테 음식 가르치듯 알려주고 싶었어요. 싱거우면 소금 넣고, 짜면 물 붓고 하면 되지. 경험이 쌓이면 손맛은 다 생기게 돼 있어요.” ‘깍두기에 쪽파를 많이 넣으면 김치가 금세 물러진다’, ‘아귀찜할 때 아귀는 사나흘 꾸덕꾸덕 말린 것을 써야 한다’ 등 김수미는 자신이 툭툭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수십 년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음식의 지혜라고 말했다. 또 글로 써서 남기는 레시피보다는 어머니들의 기(氣)와 영혼을 물려주고 싶은 게 그녀의 오랜 바람이자 목표다. 엄니, 왜 그 맛이 안 날까요? 베테랑 셰프들도 인정하는 김수미의 수준급 요리 실력은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정작 어머니에게 직접 요리를 배워본 적은 한 번도 없단다. 그 옛날 어머니가 해주셨던 음식들을 떠올리며 최대한 그 맛에 가까워지려 하다 보니 솜씨가 좋아졌다고. “열일곱 어린 나이에 엄마가 돌아가신 탓에 요리는 못 배웠죠. 아마 내가 마흔까지 살아계셨다면 음식 안 했을지 몰라요. 할 필요가 없었겠지. 근데 결혼하고 임신을 했는데 엄마가 해준 풀치조림이 생각나는 거야. 그거 한 입만 먹으면 입덧이 싹 가실 것 같은데, 다시는 먹을 수가 없잖아요. 그 뒤로 엄마가 보고 싶을 때면 기억을 더듬어 음식을 해보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수백 번 만들었던 엄마의 풀치조림. 그때마다 그립고 그리운 우리 엄니….” 음식을 하면 할수록 손맛도 늘고, 허기도 채울 수 있었지만, 그리움은 더욱 짙어졌다. 아무리 해도 전에 먹던 그 맛이 나지 않으니 헛헛할 수밖에 없다고. “요즘처럼 추울 때 엄마는 김치콩나물밥을 해주시곤 했죠. 가난한 살림에 푸성귀도 없으니 엄마 나름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한 끼였을 거예요. 지금은 그 소박한 김치콩나물밥에 소고기까지 넣어 먹는 호사를 누리는데도 엄마가 해주시던 것만 못하네요. 가마솥에 지은 김치콩나물밥에 엄니표 양념간장 쓱쓱 비벼 먹던 그 추운 겨울날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김수미는 줄곧 자신의 음식은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이라 표현했다. 때문에 편의점 도시락으로 식사를 하는 젊은이나 인스턴트로 아이들 끼니를 해결하는 주부들이 늘어나는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냉동, 반조리 식품 먹고 자란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 어떤 음식으로 엄마를 추억할까 싶어요. 두부 한 모를 썰더라도 엄마의 손길이 닿으면 그 음식에 온기가 더해지고 영혼이 담기는 거거든요. 그렇게 정성스러운 음식을 먹으면 마음이 온순해지고, 순간 행복을 느낄 수 있죠. 나이 먹어서도 마찬가지예요. 난 예전에 행복은 어디 다락이나 보자기에 싸서 놓은 줄로만 알았어요. 근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에 숟가락 푹 담그면서 밥 먹는 거.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이 있는 삶. 그게 바로 행복이지.” “훌륭한 음식은 영혼을 감동시킨다”고 말하는 김수미에게 ‘소울푸드(soul food)’는 무엇인지 물었다. 단박에 ‘된장찌개’라고 대답한다. 구십까지 살아도 된장찌개와 총각김치만 있으면 다른 반찬 필요 없다는 그녀. 본인 입맛은 소탈하지만, 맛있는 반찬 소개하려 아낌없이 재료를 쓴 것이 뜻하지 않게 오해를 사기도 했다. “방송 1회 때 고사리보리굴비조림을 했어요. 당시 재료비로 따지면 제주산 고사리라 5만 원은 넘게 줘야 사고, 보리굴비도 10만 원은 했을 거예요. 그걸 보고 한 시청자가 댓글을 달았더라고요. ‘김수미 씨는 돈 잘 버니까 비싼 재료도 막 쓰는 거 아니냐’라고요. 생각해보니까 누가 집에서 한 끼 반찬에 15만 원씩 주고 먹겠나 싶은 거죠. 그 댓글이 참 귀하게 다가왔어요. 그래서 요즘엔 진미채, 감자볶음처럼 1만 원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반찬으로 준비해요. 앞으로도 ‘수미네 반찬’에서는 비싼 재료 안 쓸 생각입니다.” 끝이 아닌 마지막 인사 ‘그리운 것은 말하지 않겠다’, ‘나는 가끔 도망가 버리고 싶다’, ‘미안하다 사랑해서’, ‘그해 봄 나는 중이 되고 싶었다’, ‘너를 보면 살고 싶다’. 제목만 봐도 글쓴이의 심정을 알 것 같은 이 책들의 저자는 바로 김수미. 국문학도를 꿈꿨지만 대학 진학을 못한 아쉬움을 독서와 글쓰기로 달래며 살았다. 에세이와 소설, 레시피북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그동안 내놓은 책만 10여 권. 그리고 최근 마지막 에세이 ‘안녕히 계세요’를 집필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마지막’이라니. 그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칠십이 넘었는데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내가 워낙 준비성이 철저하거든. 준비할 수 있을 때 준비하자, 주변 분들에게 여유 있게 인사 남기고 가자는 마음으로 ‘안녕히 계세요’를 쓰기 시작했죠. 마지막 에세이라고 했지만, 책 내고 한 5년, 10년 더 살면 어때요. 그럼 더 좋은 거지. 걱정 마세요 여러분, 저 당장 안 죽어요!(웃음)” 이번 책에는 어린 시절부터 살면서 겪은 충격적인 사건들까지 모두 담아낼 계획이란다.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난 뒤의 삶은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조용필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이 가사가 참 좋아요. 내가 위대한 사람 같으면 괜찮은데, 나는 너무 하찮기 때문에 꼭 흔적을 남기고 싶어요. 시골에서 올라와 이만큼 고생했는데, 그 흔적조차 안 남기면 내 한이 풀릴 것 같지 않아. 그래서 자꾸 뭐든 흔적을 남기려 해요. 앞으로는 그 흔적 중 하나가 ‘수미네 반찬’이 되지 않을까요? 이 프로그램은 애당초 계약 조건을 ‘선생님(김수미)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렇게 해서 사인했어요. 내가 죽기 전까지 ‘수미네 반찬’은 계속할 거예요.”
- 2019-01-11 09:17
-
- 한겨울 녹이는 뜨거운 예금 열풍
- 2018년 주식 등 금융상품에 투자한 이들 중 요즘 밤잠 못 이루는 사람이 많다. 코스피지수가 한때 연 고점 대비 20% 넘게 추락하는 등 격렬하게 요동치면서 주식이나 펀드 등 금융상품 투자자들의 손실이 크게 늘었다. 미국이나 중국 등 글로벌 시장도 피난처가 되지 못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2019년 금융시장도 변동성이 클 것으로 내다본다. 격동의 세월을 맞아 ‘쥐꼬리’만 한 이자로 냉대받던 예·적금 등 안전상품의 가치가 쑥쑥 올라가고 있다. 때마침 금리 인상으로 이자도 두둑해졌다. 다만 가입 조건이나 우대 혜택이 제한적이라, 자금 운용 목적에 맞는 꼼꼼한 비교가 필수다. ‘최고 6%대’ 예·적금 상품의 귀환 “또 허탕쳤어요. 오늘 1번이신 할머니, 손주 해준다고 오셨는데 새벽 1시부터 기다리고 계세요. 정말 핫하고 치사한 적금이다 싶네요.” (jhy***님) 최근 은행 문 앞에 새벽부터 대기줄이 이어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하루 가입자 수 제한으로 다른 지역으로 원정을 가는 고객도 상당수다. SH수협은행은 ‘Sh쑥쑥크는아이적금’으로 인기 돌풍의 중심에 섰다. 아침마다 가입 전쟁이 벌어지자, 지점마다 하루에 10명씩만 선착순으로 가입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비결은 금리다. 2018년 9월 출시된 이 상품은 타 시중 은행에서는 찾기 어려운 최대 연 5.5%의 금리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하지만 가입조건이 제한적이다. 월 10만 원 한도, 최대 만기는 5년, 만 6세 미만의 자녀 명의로만 가입할 수 있다. 이 상품은 출시 두 달이 채 되기도 전에 판매고 10만 좌를 넘는 기염을 토했다. 예상외의 뜨거운 반응에 수협은 2018년 12월 말까지만 한시 판매하는 것으로 판매 계획을 변경했다. 2018년 12월 새롭게 출시된 새마을금고의 ‘우리아기첫걸음정기적금’은 선착순 제한 없이 ‘최소 5%’의 금리를 내세워 인기몰이에 들어갔다. 만 6세 이하 자녀가 있는 가구 대상으로, 아동 또는 부모 중 1인 이상이 새마을금고와 거래하는 경우 파격적인 우대이율을 적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납입 금액은 월 5만 원 이상 20만 원 이하이며, 전체 새마을금고 통합 1인 1계좌만 개설할 수 있다. 직장인 차은진 씨는 “친정어머니께서 아이 통장을 만들어주고 싶다 해서 연차를 내고 가서 적금에 가입했다”며 “연 5%가 넘는 상품은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데 다행히 통장을 만들었다”며 기뻐했다. 최고 연 6.5%까지 우대금리를 제공한다는 ‘우리아기첫걸음정기적금’은 새마을금고 지점별로 금리 차이가 있다. 방문 전 해당 지점에 문의하는 것이 좋다. 비단 아이를 위한 상품이 아니라도 연 5% 안팎의 고금리 상품이 다수 나왔다. 우리은행의 ‘우리 여행적금’은 최고 연 6.0%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여행 특화 상품이다. 정기적금으로 가입기간은 6개월 또는 1년이며, 월 납입 한도는 50만 원이다. 금리는 가입기간 1년 기준으로 기본금리 연 1.8%에 우대금리 연 4.2%포인트를 더한 최고 연 6.0%다. 우대금리는 우리은행 첫 거래고객, 우리은행 계좌로 급여 또는 연금 수령이나 공과금 자동이체 등의 조건을 충족하면 최대 연 0.7% 포인트, 우리신용카드 이용액과 공과금 카드납부 등의 조건을 충족하면 최대 연 3.5%포인트가 제공된다. 제주항공 국제선 왕복 항공권 할인권(최대 10%)과 현대백화점인터넷면세점 적립금(최대 8만 원) 및 1년간 최상위 멤버십 자격도 제공된다. IBK기업은행의 ‘IBK W소확행통장’ 적립식의 경우 월 100만 원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납입할 수 있는 적금이다. 계약기간 중 레저 업종에서 IBK카드를 사용한 실적, 온누리상품권 현금 구매 실적에 따라 최대 연 2.4%포인트의 우대금리를 제공한다. 3년 만기 상품의 경우 최대 연 4.0% 금리를 받을 수 있다. OK저축은행의 ‘OK VIP 정기적금’은 최고 연 4.9%(만기 12개월)의 이자를 준다. 하지만 방카슈랑스 동시 가입이라는 조건이 있다. 월 보험료 납입액에 따라 기본금리 2.5%에 우대금리 0.9~2.4%포인트가 더해진다. 최근 출시된 은행 예금 가운데는 인터넷 전문은행의 상품이 눈에 띈다. 케이뱅크의 ‘코드K 정기예금’의 1년 만기 금리가 연 2.55%(2018년 12월 12일 기준)로 은행권에서 가장 높았고, 카카오뱅크의 정기예금은 연 2.5%를 이자로 준다. 스마트폰 가입 전용 상품이며 우대조건은 없다. 파킹 통장을 아시나요?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갈 길을 잃은 부동자금이 ‘파킹 통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파킹(parking) 통장이란, 말 그대로 주차장에 차를 잠깐 주차하듯 단기간 자금을 굴릴 수 있는 통장을 의미한다. 아주저축은행의 ‘더 마니 드림 저축예금’은 단 하루만 맡겨도 최대 연 2.0%의 금리를 제공한다. 금리는 예금 잔액별로 달라지는데, △1만~9만 원이 1.6% △10만~99만 원은 1.7% △100만~499만 원은 1.8% △500만~999만 원은 1.9% △ 1000만 원 이상은 2.0%다. 예치금액 제한이 없고 인터넷뱅킹 이체수수료도 면제된다. OK저축은행의 ‘OK 대박 통장’은 복잡한 조건 없이 하루만 맡겨도 연 1.7% 금리를 준다. 3개월 안팎의 단기 자금 운용이 목적이라면 특판 RP(환매조건부채권)를 주목할 만하다. 증권사에서 한시 판매하는 상품으로, 단기 자금에 연 3%가 넘는 금리를 제공한다. 하이투자증권은 DGB금융그룹 편입을 기념해 특판 RP는 3개월(91일) 약정 상품으로 연 3.3%의 금리가 적용된다. 신규나 휴면고객 대상으로 가입 한도는 2000만 원까지다. 한국투자증권에서 판매하는 특판 RP는 3개월(91일) 예치 시 연 3%의 이자를 준다. 1인 가입 한도는 10억 원까지이며, 선착순 판매로 한도 소진 시 종료될 수 있어 지점별로 가입 한도를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달러 투자 상품도 나왔다. 신한금융투자는 달러 자산 수요에 맞춰 연 3%의 이자를 주는 ‘달러RP특판’을 내놨다. 만기는 3개월 약정이며, 달러RP에 신규 가입하는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1인당 최대 100만 달러까지 가입할 수 있다. 2019년 금리, 올라가나 주부 박지윤(가명) 씨는 ‘금리 인상시기’ 뉴스에 예금 운용기한을 저울질하고 있다. 박 씨는 “앞으로 금리가 올라간다면 자금을 짧게 굴리다가 고금리 상품으로 갈아타는 게 좋을 텐데, 경기 침체 얘기도 많아 마냥 기다리는 게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고 갸우뚱했다. 한국은행 금통위는 지난해 11월 30일 기준금리를 1.75%로 인상했다. 종전 1.50%에서 0.25bp 올렸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것은 2017년 11월 이후 1년 만이다. 하지만 최근 경기둔화 조짐이 뚜렷해지면서 새해 추가 금리 인상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2019년 경제 및 자본시장 전망’ 보고서에서 2020년까지 경기 하강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봤다. 국내 경제성장률은 2018년 2.7%에서 2019년 2.6%, 2020년 2.5%로 둔화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에 따라 한은은 새해 기준금리를 동결한 뒤 2020년 미 연준의 금리 인상 종료가 확인된 시점에 인하할 것으로 예상했다.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대신증권 등 국내 주요 금융기관들도 새해 기준금리 동결에 무게를 두고 있다. 김수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2019년 우리나라의 경제 여건 악화 속에 GDP갭 마이너스 폭이 추가로 확대되며 정책금리가 동결될 것”으로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새해 금리 인하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들의 ‘특판’ 고금리 상품 출시 경쟁도 곧 수그러들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제2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금리 인상을 전후해 자금을 미리 확보해두려던 2금융권에선 특판으로 상당 부분 목표를 채웠기 때문에 계속 고금리로 고객을 유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금융 전문가들은 경제 침체의 시그널로 읽히는 장단기 금리역전 현상을 주목한다. 미국 국채 5년물과 2년물 금리가 2007년 이후 처음으로 역전되면서 우려를 낳고 있다. 국내에서도 경고음이 들린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18년 12월 5일 한국 국고채 3년물은 연 1.901%, 10년물은 연 2.058%로 마감해 금리 격차가 15.7bp로 줄었고, 장단기 금리의 축소 영향으로 단기 예금과 중장기 예금의 금리 차이도 크게 좁혀졌다. 박해영 하나은행 Club 1 PB센터 PB팀장은 “단기 상품(1개월짜리 등)의 금리와 장기 상품의 금리 차이가 좁혀지면서 상당수 자산가들이 3개월 이내로 짧게 자금 운용을 하는 추세”라며 “금리 동결 혹은 인하 등의 전망이 불확실한 만큼 단기 운용하면서 추이를 지켜보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전했다. 소중한 예금 안전하게 지키는 법 높은 금리의 금융상품을 선택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안전성’이다. 과거 저축은행 파산 사태를 거치며 예금자보호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예금자보호제도는 금융회사 파산 등에 대비해 금융회사별로 예금자 1인당 원금과 이자를 합쳐 5000만 원까지 보호해주는 제도다. 고금리를 겨냥해 저축은행 등에 예금을 맡길 경우 금융기관별로 5000만 원 이내로 나눠 분산 예치하는 것이 좋다. 새마을금고, 신협, 농·수협 지역조합은 현재 예금보험공사의 보호 대상 금융회사가 아니다. 하지만 관련 법률에 따른 자체 기금에 의해 보호를 해준다. 새마을금고 예금은 새마을금고법에 따라 은행과 마찬가지로 원금과 이자를 합쳐 5000만 원까지 예금을 보호하고, 신협도 신협중앙회를 통해 준비된 예금자보호준비금으로 원금과 이자를 포함해 5000만 원까지 보호한다. 금융상품별로 예금자보호 대상을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다. 예·적금은 기본적으로 보호 대상이지만, 양도성예금증서(CD), 환매조건부채권(RP), 수익증권, 주가지수연계증권(ELS),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저축은행 후순위채권, 주택청약저축 등은 보호 대상이 아니다. 다만 대형 증권사가 판매하는 발행어음 같은 경우 예금자보호법의 원금보장을 적용받진 못하지만, 신용도가 좋은 회사인 경우 파산 가능성이 희박해 손실 가능성이 거의 없다.
- 2019-01-11 09:15
-
- 사람 마음도 세탁기에 넣으면 깨끗해질까!
- 거품과 함께 빙글빙글 돌아가는 둥근 통 안의 옷들을 보면서 어쩌다 한 번쯤은 해봤을 생각을 잘 표현한 연극이 무대에 올려졌다. 바로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이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연말 대학로(알과핵 소극장/극단 모시는 사람들)에서 제목부터 심상찮은 이 연극을 봤다. 30년 넘게 대를 이어 세탁소를 운영하는 강태국 씨의 세탁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소재로 다뤘다.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은 중견 극작가 김정숙 씨가 쓴 희곡으로 2003년 예술의전당에서의 초연을 시작으로 2005년 대학로 공연까지 33만 관객을 동원했다. 동아연극상, 희곡상도 수상했다. 극작가 김정숙 씨는 현재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대표이기도 하다. 연극은 시간이 되어도 불이 켜지지 않는 암전 상황에서 야릇한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잠시 후 불이 켜져서 보니 사람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그 후 다시보기로 난장판이 된 상황을 되짚어온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오아시스 세탁소를 아내와 함께 운영하는 강태국 씨는 세탁소에 남다른 애정이 있다. 단지 옷을 세탁하고 다림질하는 게 아니라 사람의 정이 오가도록 자신이 가교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수십 년 전 맡긴 어머니의 옷이 생각나서 찾아온 초라한 행색의 남자에게 옷을 찾아 그냥 내어주고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는가 하면 무명 연기자가 오디션을 볼 때마다 손님이 맡기고 오래 안 찾아가는 옷을 빌려주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치매로 오늘내일하는 할머니가 임종을 앞두고 ‘세탁’이라는 말을 남기자 세탁소를 습격한 자녀들은 세탁소에 걸린 옷들을 뒤지며 할머니의 유품을 찾느라 정신이 없다. 연극은 욕심을 부리고 서로 밀치던 사람들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세탁기에서 하얀 옷을 입고 나오는 것으로 끝난다. 옷걸이마다 빼곡하게 옷이 걸린 무대를 보니 한 친구가 생각난다. 초등학교 동창인 그녀는 계절별로 옷 세 벌만 남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녀는 만날 때마다 늘 눈에 익숙한 간결한 옷차림이다. 여럿이 만난 자리에서 누군가 “세 벌은 너무 적은 거 아니야?” 하고 물었더니 “많이 갖고 있으면 나중에 여러모로 힘만 들지” 하면서 미리 정리하는 삶을 연습하고 싶다고 했다. 나를 포함한 몇이 “대단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우리는 여전히 실천을 못하고 있다. 극작가이자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김정숙 대표는 살면서 한 번쯤 해봤을 세탁소 혹은 세탁기에 담긴 생각을 무대에 올려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어냈다. 인간관계가 점점 야박해지고 물질만능주의로 물들어가는 현 시대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 연극이었다.
- 2019-01-09 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