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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 단상]세탁기를 돌리며-이태문
- 세탁기를 돌리며 희망을 빤다. 내 더러운 욕망에 더렵혀진 꿈을 풀어 추억을 돌린다. 전자동이기에 빨 필요없다고 믿는 자존심 마저 돌고 있다. 기억까지 빨 수 있다면 알뜰 코스로 내 현재를 헹굼으로 내 과거를 탈수로 내 미래를 세탁만이 희망이다. 빨래로 구겨진 순결을 다릴 필요가 있을까 오늘은 볕이 좋다 바람마저 불고 있다 빨래하는 날 빨래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날 빨래하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날 빨래에 말린 빨래 개는 것으로 지날 날 이런 날이 왜 사랑보다 더 안타까울까 내 사랑에 전원을 넣어 육체와 영혼, 게다가 내장까지 꺼내 빨래하고 싶어진다. 시를 세탁할 수 있다면 시인을 빨래할 수 있다면 기억보다 더 선명한 추억보다 더 애틋한 욕망보다 더 강렬한 희망보다 더 설레는 시를 입을 수 있을 텐데 삐이익 삑삑 삐이익 내 손을 떠난 세탁물이 돌아온다. 탈수증에 걸린 시에 햇볕을 부어 넣는다. 빨래의 원시적 축제가 시작된다. 춤을 추고 노래하는 추억을, 희망을, 생명을 유혹하는 빨래에 대한 예의이다. 1999년 데뷔 작품 △이태문 1965년 서울 구로동 출생. 동구로 초등학교, 구로중학교, 관악고등학교 졸업 1999년 와 2000년 으로 데뷔. 에도 작품활동 연세대 국문과 졸.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일본문부성 국비장학생으로 1997년 도일 도쿄외국어 대학 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동대학원 외국인연구자, 일본여행문화연구소 공동연구원을 거쳐 게이오대학, 와세다대학, 니혼대학, 무사시노대학, 오츠마여자대학 등에서 한국문화와 한국어 강의 번역서는 '백화점' '박람회' '운동회' 등 ---------------------------------------------------------------------------------- 댓글: 이불 호청을 세탁기에 넣고 돌리다가 아침나절 시니어 미디어 지에서 본 이태문 시인의 '세탁기를 돌리며'라는 시 한 편을 떠올렸다. 시인의 감성은 역시 다르다. 느꽃지기는 세탁기를 쓸 때마다 별 생각없이 그저 이렇게 세탁기 뚜껑을 벌컥 열고 무심히 더러운 빨래 던져놓고 세제 쏟아붓고 버튼 삑삑 누르고 휘익 돌아서기 마련이었는데, 시인은 그 세탁기를 돌리며 이렇게 삶의 철학이 깃든 멋진 시를 쏟아냈다. 세탁기를 돌리며 이태문 희망을 빤다. 내 더러운 욕망에 더렵혀진 꿈을 풀어 추억을 돌린다. 전자동이기에 빨 필요없다고 믿는 자존심 마저 돌고 있다. 기억까지 빨 수 있다면 알뜰 코스로 내 현재를 헹굼으로 내 과거를 탈수로 내 미래를 세탁만이 희망이다. 빨래로 구겨진 순결을 다릴 필요가 있을까 오늘은 볕이 좋다 바람마저 불고 있다 빨래하는 날 빨래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날 빨래하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날 빨래에 말린 빨래 개는 것으로 지날 날 이런 날이 왜 사랑보다 더 안타까울까 내 사랑에 전원을 넣어 육체와 영혼, 게다가 내장까지 꺼내 빨래하고 싶어진다. 시를 세탁할 수 있다면 시인을 빨래할 수 있다면 기억보다 더 선명한 추억보다 더 애틋한 욕망보다 더 강렬한 희망보다 더 설레는 시를 입을 수 있을 텐데 삐이익 삑삑 삐이익 내 손을 떠난 세탁물이 돌아온다. 탈수증에 걸린 시에 햇볕을 부어 넣는다. 빨래의 원시적 축제가 시작된다. 춤을 추고 노래하는 추억을, 희망을, 생명을 유혹하는 빨래에 대한 예의이다. -1999년 데뷔 작품- '세탁'이라는 의미.. 남긴 오점이며 소소한 미련이며 잘못된 흔적일랑 빡빡 지우고 씻어내버리고 완전한 깨끗함으로, 완벽한 무결점으로, 말끔한 새로움으로, 훌훌 털어내버린 후련함으로 마음이 흐뭇하고 편안해지는 것. 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에서 '세탁'의 의미는 전혀 다르게 어째 구린 냄새가 난다. 세상이 올곧고 투명할수록, 뒤가 구린 권력자가 아무리 뭔가를 덮고 감추고 지워버리고 말짱하고 보송보송한 원시의 순수함마저 강조하며 시치미를 떼지만, 그 누구라도 은밀하게 위장된 그 '세탁'이라는 용어 뒤에 숨은 거짓과 일그러진 욕망을 읽어낼 수 있다. 반면, 시인에게 있어 '세탁'은 그야말로 마음의 결을 다듬는 과정이다. 시인의 맑은 영혼에 담긴 깨끗한 시들은 읽는 이의 꽉 막힌 감성을 뚫어주고 메마른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단비같은 신비한 치유의 능력이 담겨 있다.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한편의 시가 탄생하기까지 시인이 거치는 마음의 '세탁'을 들여다보았다. '혁신은 1000번을 '아니오'라고 말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하지 않던가. 관행과 구태의연함과 뻔한 답습이 가져오는 게으른 반복이 아닌 신선하고 정갈함을 갖춘 시들은 감동을 준다. 끊임없이 맑고 새로운 샘물을 길어올리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여 찌들고 때묻고 더럽혀진 찌꺼기들을 버블버블 비누거품에 녹이고 휘휘 돌려 모두 날려버린 다음, 깨끗하고 순수한 고갱이만을 짜내어 내놓는 시인들의 세탁기라.. 이를 통과해서 나오는 시는 그야말로 매력적이지 않겠는가. 시를 세탁할 수 있다면 시인을 빨래할 수 있다면 기억보다 더 선명한 추억보다 더 애틋한 욕망보다 더 강렬한 희망보다 더 설레는 시를 입을 수 있을 텐데 남다른 감성으로 걸러진 깨끗한 시어들이 따스한 햇살의 기운까지 머금어 시인이 마지막으로 내어놓는 따스하고 기분좋은 보송보송한 시는 시를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감동을 주기 마련이다. 삐이익 삑삑 삐이익 내 손을 떠난 세탁물이 돌아온다. 탈수증에 걸린 시에 햇볕을 부어 넣는다. 빨래의 원시적 축제가 시작된다. 춤을 추고 노래하는 추억을, 희망을, 생명을 유혹하는 빨래에 대한 예의이다. 40대 이상 중장년들을 위한 시니어전문 미디어 잡지 .. 요즘 세상의 중심인 중년들의 소소한 활동이 실린 이 잡지에 눈이 가서 클릭해서 들여다보곤 한다. 바로 우리네 중년들의 이야기가 실리니 눈여겨보게 되고 다양한 내용이 실려 읽는 재미가 난다. 오늘 아침 여기서 마주친 이태문시인의 시 한편이 흐뭇한 수확이다. 여기저기 능력있는 느꽃지기의 중년의 이웃님들도 품고 있는 좋은 작품들 이 잡지에 기고해보시라 권해본다.
- 2014-02-26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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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인생]“마음껏 춤 추니 행복하고 저절로 젊어져요”
- 춤을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는 중년 남성의 이야기. 영화 ‘쉘 위 댄스’는 강신영(63) 씨의 두 번째 인생과 닮아 있는 듯하다. 지긋한 나이에 단단히 춤바람이 났으며, 그 춤이 남녀가 함께 추는 댄스스포츠라니… 게다가 순수한 열정으로 뒤늦게 춤을 배워 멋진 댄서로서의 꿈까지 이뤘으니 말이다. “흥겹죠? 원래 인간은 ‘호모 루덴스’라고 하잖아요. 본능적으로 유희를 즐기는 동물이란 의미지요.” 건설자, 스포츠장갑 회사 공장장, 스포츠 브랜드 사장으로 이어지는 25년간의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마흔 여덟 나이에 시작한 제2의 인생. 강 씨는 댄스스포츠 지도자이자 댄스칼럼니스트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타고난 춤 달인 기질에 꿈틀거리는 열정 강씨가 춤을 처음 접한 것은 1960년대 까까머리 고등학생이던 시절이다. 영화를 상영하는 동네 ‘용산극장’에 가끔 쇼단의 공연이 펼쳐졌는데 ‘댄스의 달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트위스트 김’ 쇼를 하는 날이면 온 동네가 들썩였다. 학생 신분이라 입장 불가였던 그는 쇼를 보고 나온 사람들이 추는 춤을 흉내내며 따라하곤 했다. 그의 다져진 춤 실력은 경주 수학여행에서 위용을 뽐냈다. “트위스트 음악이 나오자마자 총알같이 나가 춤을 췄더니 모두들 경탄하며 환호하던 걸요. 내성적이고 조용한 학생이던 저는 그 일을 계기로 확실히 ‘튀는 아이’가 됐습니다. 또 친구들에게 춤을 가르치는 춤 선생으로 여기저기 불려 다녔지요.” ‘젊음의 행진’이라는 인기 쇼 프로 무대까지 나가 춤을 췄을 정도였으니 그는 학교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는 ‘춤의 지존’으로 통했다. “춤에 대한 열정은 이때부터 늘 제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어른이 된 그는 좋아하는 춤을 계속 출 수 없었다. 학생 때는 춤을 추면 마치 불량학생들이나 하는 짓으로 치부하고 성인이 배우는 사교댄스도 퇴폐문화로 보던 그 시절, 결혼을 약속한 애인의 심한 반대로 춤추기를 그만 둘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금 그를 춤의 세계로 이끈 것은 독일에서 건설 해외지사 주재원으로 일할 때 본 로렐라이 마을축제의 춤이었다. 강씨는 할아버지와 손녀가 선율에 맞춰 밟는 스텝에 깊이 매료됐다. “그들의 춤은 우리와 달리 매우 밝아 보였어요. 퇴폐적인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가족이 어울려 즐겁게 같이 출 수 있는 춤도 있구나. 문화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춤은 댄스스포츠의 한 종목인 ‘자이브’였다. 저걸 꼭 배워야겠다고 그는 굳게 결심했다. 하지만 당장은 어려웠다. 서른 세 살의 젊은 청년에겐 먹고 사는 일이 더 급했다. IMF 외환위기로 1999년 어려운 회사 경영에서 손을 떼기까지 청춘을 불사르며 정말 열심히 달려왔더니 어느 덧 마흔 여덟. 그동안 가슴 속에 담아두고만 있었던 춤에 대한 열정, 로렐라이 언덕에서의 다짐을 실현하겠다고 나선 것은 그때였다. ◆독일서 본 ‘자이브’에 매료돼 댄스스포츠 입문 “그 즈음 우리나라에서도 ‘부부 볼룸댄스’라는 이름으로 문화센터에서 댄스 스포츠의 붐이 일기 시작했어요. 춤에 대한 인식이 워낙 안 좋던 때라서 ‘부부’를 내세웠던 것 같아요. 조심스럽게 아내를 설득해 댄스스포츠 중에서도 자이브를 함께 배웠죠. 자이브는 재즈음악에 맞춰 추는 격렬한 춤이에요.” 이후 댄스에 더 열정적으로 빠져 들게 된 강 씨. 문화회관이든 댄스장이든 배우고 연습할 수 있는 곳만 있으면 일주일 내내 틀어박혀 춤만 췄다. 춤을 추는 무리 가운데 남자는 그가 거의 유일했다. 청일점이라도 쑥스러워하거나 쭈뼛쭈뼛해하지 않았다. 언제나 용기백배 당당한 댄서의 모습이었다. 댄스스포츠 외에도 살사, 재즈댄스, 방송 댄스 등으로 장르를 확대했다. 댄스 동호회에도 나가고 경기 대회에 나가 챔피언의 영광도 안았다. 커플댄스로 댄스스포츠 10종목, 사교춤인 블루스 지터벅, 사교 라틴 살사, 메렝게, 바차타, 스윙, 맘보, 아르헨티나 탱고, 포크댄스까지. 자유자재로 출 수 있는 달인 경지에 올랐더니 가르침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이번엔 ‘지도자’에 도전했다. 2003년 경기대 사회교육원에서 댄스스포츠 코칭 아카데미 1급 자격증을 1년 만에 땄다. 강 씨는 댄스스포츠의 본고장인 영국 유학도 계획했다. 2004년 여름,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 받은 돈으로 쉰 두 살에 영국 댄스스쿨 ‘셈리(Semley) 스튜디오’에서 두 달간 과정을 이수, 국제댄스스포츠지도자(IDTA) 자격증을 땄다. “웬만한 실력자들도 3번 정도는 떨어지는 게 보통이라는데 나는 최우수 성적을 기록했다”는 그의 목소리에 자신감과 자부심이 묻어난다. 항상 가족을 위해 돈을 벌고 써왔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자신만을 위해 과감하게 투자했단다. 귀국 후 그는 곧바로 ‘댄스앤조이’라는 댄스동호회를 만들고 댄스지도자 및 댄스칼럼니스트로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댄스스포츠 전문 잡지의 기자로 일하며 댄스스포츠 관련 책도 4권이나 냈다. “댄스 칼럼을 쓰면서 보람 있게 생각하는 것은 댄스스포츠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바로 잡아 주고 옳지 않은 부분은 밝혀내 정설을 알려주는 거예요. 그 중에서도 댄스스포츠가 건강에 여러 가지로 좋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설명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죠.” 유산소 운동이라서 운동 효과가 크고 친목을 도모해 우울증 개선에도 좋다고 했다. 좋아하는 춤을 마음껏 추니 행복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저절로 젊어진다는 게 강 씨의 얘기다. 그는 춤 전도사를 자처한다. 댄스스포츠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보급을 위해서다. 요즘은 사교춤과 구분해 댄스스포츠를 건전한 체육행위로 보는 경향이 많아졌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단다. 그는 “앞으로 내게 남은 8만 시간을 오롯이 건전하고 아름다운 춤을 나누는 일에 쓰겠다”고 말했다.
- 2014-02-04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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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지로 하게 하는 것도 부모의 역할?… 케네디 家
- 케네디가의 자녀교육을 말할 때 식사시간을 활용한 토론교육도 빼놓을 수 없다. 4남5녀의 자녀를 둔 어머니 로즈 여사는 식사시간을 엄수하지 않으면 밥을 주지 않았다. 이는 아이들에게 약속과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 식사시간에는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읽고 토론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케네디는 중·고교시절 공부를 등한시해도 신문 읽기만은 빼먹지 않았다. 케네디는 초트스쿨에 다닐 때에도 학교 기숙사에서 뉴욕타임스를 정기 구독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이끈 신문 읽기 습관을 평생 습관으로 만든 것이다. 케네디가 훗날 대통령 선거에서 토론을 잘할 수 있었던 것은 신문을 보면서 시사에 밝았던 게 한몫했던 것이다. 그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매일 신문을 읽었는데 그게 케네디의 ‘비밀병기’였던 셈이다. 당시 초트 교장선생은 “언뜻 보기에도 교과서 뒤적이는 건 뒷전인 게 분명한데 세상사에 관한 소식통으로는 자기 학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학생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케네디가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공부뿐만 아니라 예체능도 열심히 하게 했다. 한 번은 셋째 딸 유니스가 다른 사람 앞에서 춤을 추는 게 창피하다며 일주일에 한 번씩 받는 댄스교습이 싫다고 했다. 그때 로즈 여사는 이렇게 말했다. “유니스야, 세상에는 하고 싶은 일보다 하기 싫은 일을 할 때가 더 많단다. 지금은 필요 없는 것 같지만 나중에 필요할 때가 온단다. 지금 춤을 배워두면 나중에 네가 커서 내 말대로 배우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올 거야.” 유니스는 어머니의 말대로 춤이 싫어도 참고 계속 배웠다. 나중에는 춤을 잘 추게 되었고 덩달아 자신감도 생겼다. 어머니 로즈여사는 자녀들에게 수영, 테니스, 골프 교습도 시켰다. 아이들은 짜증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계획대로 따라한 결과 훗날 소중한 재산이 되었다. 만약 케네디 대통령이 어린 시절 수영교습을 받지 않았다면 태평양에서 그가 탄 전함이 침몰했을 때 다른 사람을 구출하기는커녕 자신의 목숨도 건지지 못했을 것이다. 하기 싫었던 수영이 훗날 그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운동이나 음악 등을 하기 싫어도 어린 시절 익히고 실력을 다져놓으면 나중에 크게 쓰일 수 있다. 케네디가의 로즈 여사는 그 사실을 중시하고 자녀교육을 이끌었다.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시켜선 안 된다.”, “아니다, 억지로라도 시켜야 한다.” 이 명제는 자녀교육에서 오래된 논쟁 가운데 하나다. 두 주장 가운데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 쉽게 결론을 내리기 힘들다. 로즈 여사는 자녀들에게 “처음에는 서툴러도 열심히 반복하다 보면 나중에는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또 “세계의 운명은 좋든 싫든 자기의 생각을 남에게 전할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게 로즈 여사의 지론이었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확고한 신념과 원칙이다.
- 2014-01-29 1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