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2월 31일과 2026년 1월 1일은 날짜만 다를 뿐 실은 같은 하루다. 아침이면 동쪽에서 해가 뜨고, 저녁이면 서쪽으로 해가 진다. 달라진 건 불리는 이름뿐이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이 두 날을 구분하는 유일한 기준은 그날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가에 달려 있다. ‘의미(意味)’의 ‘뜻 의(意)’자는 ‘날(日)을 마음(心)에 새긴다’는 뜻을 품고 있다. 기억에 남는 날이란 마음에 새겨진 날이다. 의미 없는 날은 그저 2025년 12월 31일이고 2026년 1월 1일이란 이름으로만 남는다.
의미 없이 보낸 하루는 기억되지 않는다. 그날이 그날처럼 여겨질 뿐이다. 의미가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날을 살아내긴 했지만 내가 만들지 않아서다. 당연히 내 삶은 아니다. 직장이나 단체, 소속의 일원으로 하루를 통과했을 뿐이지 그 삶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소속이라는 옷을 벗어야 비로소 자연인 누구라는 한 사람으로 돌아와 온전하게 나의 날을 맞이할 수 있다. 나이 든 이들에게 의미 있는 하루가 더욱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산 날보다 살날이 적어질수록 하루의 무게는 더 무거워진다.
의미 있는 날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내가 만들어야 한다. 그 출발점이 ‘결심(決心)’이다. ‘결단하다’의 ‘결(決)’자는 ‘물 수(水)’자와 ‘터놓을 쾌(夬)’자가 합쳐진 글자다. 막힌 것을 끊어 흐르게 한다는 뜻이다. 중국의 황하는 범람을 막기 위해 상류의 둑을 의도적으로 터뜨리곤 했다. 하류의 다수를 살리기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결단이 있었다. 결심이란 이처럼 미루지 않고 감수할 것을 감수하는 선택이다.
이제껏 결심만 하다 지나간 1월을 다시 맞는다. 나이 들어 두려운 것은 실패가 아니라 헛됨, 허망(虛妄)이다. 의미 없이 흘려보낸 시간이다.
1월의 우리 결심은 요란하지 않아도 된다. 남에게 보일 목표도, 거창한 선언도 필요 없다. 다만 내가 이제껏 하지 못했던 일을 하겠다는 다짐이면 충분하다. 몸을 무리하지 않는 일, 흐트러진 관계를 정돈하는 일, 오래 묵은 감정의 찌꺼기를 걷어내는 일 같은 현실적인 결심이 실행력을 낳는다.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결심은 무의미하다.
시니어의 1월은 단순해야 한다. 속도를 늦추고,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며, 마음을 단정히 한다. 크게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속도를 늦출수록 작은 온기가 또렷해진다. 관계의 수보다 질이 중요해지는 시기다. 1월은 욕심을 접고 삶의 기초를 다시 놓는 달이다. 화려함이 아니라 정갈함으로 새해를 맞는 것, 그것이 나이 든 이들이 보일 1월의 태도다. 1월은 비로소 내 삶의 주인으로 서기 위한 결심의 달이다. 내 삶이 빛나야 하는 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