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지금도 이순신 장군을 만나러 갈 때면 소년 시절 소풍 전날처럼 마음이 설렌다. 오랜 도시 생활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쌓인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는 것 같은 홀가분함을 미리 만끽한다. 특히 통영에서 배를 타고 20여 분 달려가서 한산도 동백꽃을 구경할 생각을 하면 안달이 날 정도다. 이순신 장군의 영당인 충무사가 바라보이는 홍살문을 지날 때부터 어떤 웅혼한 기상을 느낄 수 있다. 고즈넉한 곳, 영정 앞에 향불을 피우고 소망을 기도하고 사당을 한 바퀴 돌면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도심의 찌든 삶의 때를 푸른
인생은 버라이어티 쇼다. 다만 그것이 매번 재미와 감동을 전해주는 쇼는 아니라는 거다. 내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것은 진학과 직장, 결혼과 입양, 이혼과 퇴직 등 인생의 중요한 결정적 순간마다 깊이 영향을 주었다. 어린 나이에 겪은 부모의 상실은 나보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돌보고 좋은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부담을 갖게 했다. 스스로에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을 종용했다. 그로 인해 힘든 인생을 자처했고 오히려 외로운 삶을 살았다. 대학 생활 내내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업과
지인으로부터 응모를 권유받고서 많이 망설였다. 나의 삶이 브라보를 외칠 만큼 멋지거나 이룩한 것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침 공부하는 모임의 구호를 좋아하는데 ‘Per Aspera Ad Astra(고통을 넘어서 별을 향하여)’다. 나 스스로 죽을 만큼 고통의 시간을 넘어 지금의 시간에 이르렀으므로 이 시대를 열심히 살아가는 중노년 세대와 그 과정을 공유하는 것도 충분히 뜻이 있을 것 같아 써보기로 하였다. 2021년 소설 ‘효옥’ 출간 차라리 죽음을 택하려 했을 정도로 어려운 시간을 겪었을 때 그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살면서 나의 노력이나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건강이었다. 2021년 10월 30일. 내가 살아온 인생 중 그 어떤 날보다 잊을 수 없는 날….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여름. 7월 6일 1차 코로나 예방접종을 했고, 3주 뒤인 7월 27일 2차 코로나 예방접종을 했다. 그러고는 1~2주 후부터 나의 왼쪽 윗눈이 서서히 꺼지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성형외과를 방문해 상안검 수술을 했다. 그 후 서서히 수술받은 왼쪽 눈이 감기고, 사시가 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안과를 가서 여러 검사를 진행했는데, 본래 사시가 없던
섬 같은 날이 있다. 잘 버티며 살다가도 무너질 것만 같은 날이 있다. 요즘, 내가 그랬다. 이런저런 어수선한 일들이 많았는데, 특히나 회사 일감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 문제였다. 그간 게을렀나 싶어 일에 더 집중을 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혼자인 날이 늘어갔고 삼십대 힘들었던 기억이 자꾸 고개를 들었다. 기어코 지난 연말에는 마음의 힘을 잃고 우울에 빠졌다. 이런 상황을 주위에 들킬까 싶어 더 분주한 척 보냈다. 감추다 보니 더 혼자였다. 그 우울한 공간으로 2002년 어느 날의 ‘끊어진 넥타이’가 떠올랐다. 책장을 뒤
올림픽이 끝나고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되었다.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난 여행사들은 인재들을 영입하고 있었다. 해외여행이라는 당근에 이끌려 여행사로 들어갔다. 여타 기업에 비해 급여는 적었지만, 해외여행은 매력적이었다. 잦은 해외 출장은 일과 여행의 경계가 모호했다. 고객들을 인솔하는 일이지만 보고 먹고 자는 모든 것이 여행객과 다름없었다. 제주도도 못 가봤는데 국제선을 타고 해외를 다닌다는 게 신기했다. 세계 곳곳으로의 출장은 나의 인문학적 소양을 몰라보게 높여주었다. 방문국의 역사와 지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사람들과 산업에
나는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요즘 기대수명을 알아보는 앱이 있길래 궁금증이 생겨 작성해보았다. 나의 가족력과 여러 가지 건강상태에 대한 질문에 솔직하게 답변을 하면 기대수명이 계산되어 나온다. 나의 기대수명은 115세로 나왔다. 일단 기분은 좋았다. 그날 저녁 아내와 이야기를 나눴다. “여보 내가 몇 살까지 살 것 같아?” “당신은 건강 체질이니까 9988이 가능할 거야.” “사실은 오늘 기대수명을 체크해보았더니 그보다는 훨씬 더 사는 걸로 나오던데.” “몇 살?” 내가 115세로 나왔다는 말을 하면서 둘 다 놀라고 말았다.
1986년 3월 30일, 서른 살의 나이에 저는 일곱 형제의 맏며느리가 되었습니다. 장남의 숙명처럼 시부모님을 모셔야 했고, 주변의 염려는 저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당시 저는 젊음의 패기인지 알 수 없는 용기인지 모를 힘에 ‘나도 능히 해낼 수 있다’고 외쳤지만, 현실은 모진 바람처럼 매서웠습니다. 시어머님은 완벽한 며느리를 기대하셨습니다. 음식 솜씨부터 집안일까지, 빈틈없는 살림꾼이 되기를 바라셨지만, 사회생활이 전부였던 저는 서툰 손길로 모든 것을 헤쳐나가야 했습니다. 일곱 자녀를 키우시며 온갖 풍파를 겪으신 시어머니
“직장암입니다.” 치질인 줄 알고 찾아갔던 병원에서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직장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 앞에 “의사 선생님, 어려운 말씀 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야말로 쥐가 고양이를 배려하는 듯한 내 모습에 쓸쓸한 웃음이 나옵니다. 암…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암환자. ‘얼마나 못된 짓을 했으면 암에 걸렸을까?’ 말하지는 않아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흔합니다. 오죽하면 “암에 걸려서 죽어라”라는 악담이 있을까요? ‘내가 그렇게 못되게 살았나?’ ‘나만큼 성실하게 산 사람도 드물 텐데….’ 이런저런 혼
1050일 후 저는 수십 년 몸담았던 교직 생활을 마치고 자연인이 됩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36년의 교직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가슴이 뭉클해지고 벅차오릅니다. 평교사로 시작해 지금의 교육장이 되기까지 수많은 사연이 있었습니다. 특히 두 번의 해외 파견은 교직에 갇혀 있던 저에게 넓은 세상을 향한 시야를 열어주는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힘들고 고단했던 날들도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즐겁고 행복했으며 보람도 많이 느꼈습니다. 이제 몇 년 후면 오롯이 ‘사람 김선경’이라는 타이틀로 인생 2막을 맞이하게 됩니다. 약간은 낯설지
첫 번째 도전 – 일본 대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어느 날, 캠퍼스 게시판에서 우연히 한 대자보를 발견했다. 친하게 지내던 선배가 일본 문부성(현 문부과학성) 장학생으로 선발됐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이름을 보는 순간, 마치 내가 합격한 듯 가슴이 터질 듯 뛰었다. 가까운 사람의 성공은 언제나 가장 강렬한 자극이 된다. 그날 이후 나는 일본어에 몰입했다. 식사 시간조차 아껴가며 독학에 전념했고, 그렇게 꿈을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마침내 나는 일본 유학이라는 인생의 새로운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한국을 떠나 처음
바로 지금, 하루하루 충실하게 오늘을 잘 살자! 어느 누군가의 말처럼 ‘첫 30년은 멋모르게 지나가고, 지나온 30년은 가족을 위해 살고, 이제 남은 30년은 자신을 위해 멋지게 준비하라’고. 제대로 광야에 홀로 설 수 있을 때 발가벗은 나의 모습을 보고서야 참 나를 깨닫고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는다. 바로 이게 인생 2막이란다. 틀 안에 안주하던 학창 시절, 직장 생활도 후회 없이 모범적으로 잘 살아왔지만, 뭐라고 내 인생사에 꺼내놓을 만한 별난 스토리는 없는 듯하다. 퇴직 이후 이러한 나의 모습을 집중하여 여기에 담아보는 이유다
이투데이피엔씨는 지난 15일 신중년‧꽃중년을 위한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 창간 10주년을 기념해 진행된 제1회 ‘2025 나의 브라보! 순간’ 수기 공모전 시상식을 개최했다고 16일 밝혔다. 이번 공모전은 신중년‧꽃중년 세대의 진솔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사회의 중심으로 활약 중인 이들을 응원하고자 기획됐다. 공모전은 이투데이피엔씨가 주최하고 서울시 50플러스재단, 예스24(Yes24), 신한은행이 후원했다. 시상식은 서울 강남구 이투데이 사옥에서 열렸으며, 수상자와 독자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진행됐다.